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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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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dece8><colcolor=#4e2e1f> 임예진
林藝眞 | Lim Ye Jin
파일:임예진.jpg
본명 임기희 (林琪熙)
출생 1960년 1월 24일[1] ([age(1960-01-24)]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행당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예천 임씨 (醴泉 林氏)
신체 A형, 왼손잡이[2]
가족 오빠 임창승 여동생 임휙승
배우자 최창욱, 딸 최우리솔
종교 개신교
학력 무학여자중학교 (졸업)
무학여자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문리과대학 (연극영화학 / 학사)
소속사 심스토리[3]
데뷔 1974년 ' 파계'

1. 개요2. 활동3. 사건사고/논란
3.1. 부친의 채무불이행 논란3.2. 관련 문서
4. 여담5. 출연
5.1. 영화5.2. 드라마/시트콤5.3. 뮤지컬5.4. 뮤직비디오5.5. 방송5.6. 광고5.7. 홍보대사
6. 수상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배우.

잡지 '여학생'의 표지모델로 데뷔하였다. 삼촌의 소개로 캐스팅되었다고 한다.

1974년 영화 파계로 데뷔했는데 당시 충격적인 데뷔였다. 어린 비구니 역으로 출연하여 삭발 투혼을 했다.[4] 1970년대 고교 스타로 눈이 부신 전성기를 보내다가 성인 연기자의 길로 접어들 무렵에 큰 좌절을 겪었지만 꾸준히 활동하며 조연과 단역, 프로그램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5], 꾸준히 활동해왔다.

그러던 중에 중년에 접어들어 예능에 눈뜨게 되고[6][7], 현재는 예능과 드라마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제 2의 전성기를 열어가고 있는 배우. 특히 주말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에서 주책맞고 눈치없는 캐릭터인 소양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2. 활동

2000년대 장나라, 송혜교, 문근영, 박보영이 있었고, 2010년대 수지, 아이유, 김유정이 있었다면 1970년대에는 원조 국민 여동생 임예진이 있었다.[8]

1970년대는 그야말로 가위질로 대변되는 검열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당시 10대들은 암암리에 테이프나 LP, 영화 등을 소비하면서 문화 소비층이 되었고 이런 트렌드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임예진이었다.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에 그야말로 미소녀라고 일컫을 수 있는 임예진은 일약 10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임예진의 젊은 시절.

파일:/image/008/2014/01/20/2014012015091783847_1_59_20140120151905.jpg
파일:external/c.hani.co.kr/23efbc701315dbce85ced8af44f63d4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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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아도 착하고 똘똘하고 모범적이면서 착실한 여학생이 당시 임예진의 이미지였다. 교과서의 영희가 화면에 튀어나왔다고 보면 될 정도로 당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8~ 90년대에 유행하던 연예인 책받침의 원조스타 역시 임예진이었으며, 학생용 수첩, 교복 모델 등등 지금 여성 아이돌들이 걸었던 그 길을 처음으로 걸었던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다. 그 시절 임예진 또래 혹은 그보다 한두어 살 어린 남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로망의 대상이었다.

거기에 당대의 청춘스타 이덕화[9]와 촬영했었던 <진짜 진짜> 시리즈가 공전 절후의 대박[10] 이후 이어지는 하이틴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은 무조건 임예진이 차지했으며 임예진을 기준으로 영화계가 돌아갈 정도의 반열에 오른다. 1976년에는 연예인 수입 순위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1970년대 스케쥴이 워낙 많아 영화사 관계자들이 학교로 픽업을 하러 왔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엔 한국이 개발도상국이었고 청소년들은 어려웠던 1960년대를 지내느라 영양 상태가 좋지 않고 야외 활동도 많아 사람들의 피부색이 지금에 비해 어두웠다. 그런데 임예진은 특이할 정도로 피부가 하얀 편이라 관계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 중 하얀 얼굴만 찾으면 되어서 편했다고.
파일:임예진 젊은시절.jpg

젊은 시절의 임예진

하지만 1970년대 후반에 하이틴 계열의 영화가 정부 정책으로 우수 영화 장르에서 밀려나게 되고, 마침 그 무렵에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임예진 본인도 성인 연기자로서의 길을 준비하게 된다. 1979년도 신성일과 함께 촬영했던 '땅콩 껍질 속의 연가'를 시작으로 성인 연기자의 길을 가게 되지만, 하이틴 스타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었던 탓에 노출을 감수 할 수밖에 없었던[11] 성인연기는 기자들과 연예계의 좋은 먹잇감이 되어 대중과 언론의 뭇매[12]를 맞게 되고 이후 장기간의 슬럼프가 이어진다.[13] 참고로 저 영화에서 함께 출연한 신성일이 훗날 인터뷰에서 공개한 촬영 에피소드에 의하면, 당시 임예진의 어머니가 매니저처럼 임예진을 보호하며 동행했고, 절대 노출씬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식사하고 오시라고 잠시 외출하게 만든 뒤 그 짧은 틈을 노려 번개처럼 찍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성인 이후에는 당시 각 방송사에 있었던 공채 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역으로 시작한 탤런트들 대다수는 특채로 계속 연기를 이어가 또래 공채들에게는 이질적 존재로 따돌림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를 잘 극복하고 스타로 매김한 송승환, 강남길도 그때 겪은 고통에 상당한 공감을 표하는 것을 보면 꽤 심했던 모양이다.

외모도 이질적이었던 것이 청소년기에는 강점이었으나 성인기에 들어서서는 단점이 되었다. 바람불어 좋은 날을 보면 미모로 유명했던 김보연, 유지인이 함께 출연함에도 혼자서 완전히 다른 피부톤을 하고 있어서 이질적이기까지 하다.

이때의 슬럼프를 깨게 해준 이가 바로 선배 윤여정. 하이틴스타로 인기를 얻다 성인배우로서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던 임예진에게 윤여정은 "니가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했다면 사랑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베푸는 것도 중요해. 언제까지 사랑 받는 주인공만 할래? 그토록 사랑을 받았으면 이젠 사랑을 나눠줘야지. 배우는 어떤 역할이든 해낼 수 있어야 배우야. 넌 아직 배가 덜 고파서 고민하는 거야. 헝그리정신이 부족한 거지."라며 임예진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해주었고, 그로 인해 임예진은 '아역배우'에서 진정한 '성인배우'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본인에게 직설적인 조언을 해준 윤여정에 대한 고마움은 대단히 크다고 한다.

이러한 조언을 받아들인 임예진은 배우로서의 끈을 놓지 않고 조연과 단역을 오가며 활동하니, 과거의 임예진을 모르는 사람이 늘어나며 서서히 하이틴 스타라는 이미지는 잊혀지고 한 명의 배우로서 거듭나기 시작한다.

어느새 드라마계의 큰 손인 김수현 사단의 일원으로 안방극장에서 익숙한 얼굴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서기 시작한다.[14]

그렇게 1980년대에서 이미지 변신을 성공한 임예진은 SBS 개국 이후 최초의 시트콤이라고 할 수 있는 《 오박사네 사람들》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전까지의 청순 이미지는 전부 없애버리고, 국민학생 조카와 노닥거리는 철부지 고모 역할에 개그연기도 상당히 물이올라 감초연기를 톡톡히 한다[15]. 그래도 그 외모가 어딜 가진 않아서 그 미모는 여전히 돋보인다.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는 예능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특히 ' 세바퀴'의 고정패널로 출연하여 김연아, 나르샤, 산다라박, 세일러 문 등등 나이를 잊은 패러디 개그를 선보여 다시 한 번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16][17]

현재는 방송 3사의 여러 드라마에서 조연(주로 주인공의 어머니 역)으로 감칠맛을 더 하고 있으며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3. 사건사고/논란

3.1. 부친의 채무불이행 논란

2018년 12월 15일, 인천에서 부동산업자로 일했던 A씨는 임예진의 부친이 자신에게서 빌린 2억 5,000만 원을 10년째 갚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임예진父 "10년째 2억 5,000만원 채무불이행"

공식 입장을 통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서로 연락조차 주고받지 않을 정도로 아버지하고는 연락이 끊겼으며, 아직 이번 주장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3.2. 관련 문서

4. 여담

5. 출연

5.1. 영화

5.2. 드라마/시트콤

5.3. 뮤지컬

5.4. 뮤직비디오

5.5. 방송

5.6. 광고

5.7. 홍보대사

6. 수상


[1] 음력 생일은 1959년 12월 26일이다. [2] 필기는 오른손으로 한다. [3] 네이버 프로필 기준 [4] 극 중 노출씬은 임예진의 증언에 의하면 대역이라고 한다. [5] 어린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맡은 적도 있었다. [6] 푼수끼 넘치는 아줌마 컨셉으로 활동중인데 전성기 시절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묘한 겝모에가 느껴진다. [7] 예능프로그램 세바퀴에 고정패널로 출연하여 방영당시 인기곡이였던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나르샤 스트리트 파이터 춘리 분장도 맡았었고 컨셉은 예민한 여성이였다. [8] 원조라고 하면 1960년대 김창숙이 있었고 1980년대 미녀와 순정남에서 임예진 며느리 역할인 윤유선, 1990년대 이소라, 최진실이 계보를 잇는다.(사실 윤유선과 최진실은 동갑이고 윤유선이 빠른 년생으로 나이로는 최진실이 언니가 되지만 윤유선은 아역배우 출신인 반면 최진실은 20살 되어서 연예인이 되어 시기는 차이가 나는 것이다.) [9] 이덕화는 임예진과 함께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당시 임예진의 인기를 단 한 마디로 정리했다. "그냥 다 죽었어. 임예진한테." [10] 이 당시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촬영 당시 이미 스물세 살이었던 이덕화와 임예진 사이에 '썸씽이 있다 없다'가 당시 연예지의 주된 떡밥이 되자, 이를 걱정한 임예진의 어머님이 직접 촬영장에서 이덕화를 감시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오히려 임예진의 어머님이 이덕화를 절대적으로 신뢰했으며 딸을 보호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임예진의 인기는 옆에서 보는 사람이 불안할 정도로 수직상승하게 된다. [11] 당시 성인영화는 무조건 한 장면은 벗는 신이 있다시피 해야 했다. 폭력성이나 대사로는 거의 성인등급이 주어지지 않았고, 오로지 벗느냐 아니냐로 등급을 매기던 시절이라... 심지어 어린이가 보는 만화나 반공영화에도 끔살 장면이 나온다. [12] 오죽하면 유인촌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가족 드라마에선 집 나간 여고생을 신부로 앉혔다는 이야기까지 나와서 드라마 자체가 조기종영을 맞았다. [13] 1970년대 후반은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의 신 트로이카 여배우가 방송계를 지배한 시대였다. 이런 대스타와 비교했을 때 한참 인기에서 떨어진 건 사실이었다. 더구나 이 트로이카는 각각 색다른 매력과 외모로 남성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는데, 이 때문에 누가 더 미인인가를 놓고 설왕설래가 오갈 정도였다. 더구나 당대 최고의 잡지였던 선데이 서울이나 여성용 잡지 표지모델에는 이 3명이 반드시 들어갔다. [14] 김수현은 임예진을 송승환처럼 막 쓴다. '무자식 상팔자'에서는 짜도 짜도 그렇게 짤 수 없는 무자비한 자린고비이자 며느리를 박대하던 시어머니 역할을 주었다가, '그래, 그런거야'에서는 유부남과의 사이에서 딸을 둘이나 낳은 인면수심의, 예쁘장한 게 전부인 세컨드 출신으로 자식 때문에 또 속썩이는 역할을 준다. 송승환이 '무자식 상팔자'에선 대기업 상무까지 한 엘리트였다가(심지어 이때는 두 배우가 부부역) '그래, 그런거야'에선 젊은 시절 거의 양아치였다 정신차린 기분파 일식집 사장이 되는 것처럼. 대단한 열연처럼 보이진 않겠지만, 세컨드 출신의 외모지상주의자 속물과, 지지리도 못살던 집에서 시집와 평생 목표가 가난 피하기라 계란 한 알에도 부들부들하는 또 다른 속물을 한 배우가 연기한 것이다. 하이틴 스타 출신이라 폄하되고 있지만 임예진의 연기 스펙트럼은 대단히 넓다. [15] 게다가 연기자라면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하는 속물 연기도 하는 등 조연으로서의 스펙트럼까지 넓히고 있다. [16] 동안이고, 목소리도 어렸기에 그게 가능하기도 했다. [17] 잘 알려있지 않지만, 2006년 MBC 예능 '참 잘했어요'에서도 방송 여기저기에 간섭을 하는 '임PD' 캐릭터로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었다. [18] 후속작인 오경장에서도 오지명의 친동생 오방순 역으로 출연하는데, 실제 오지명과 임예진의 나이차이는 무려 21살 차이이다. [19] 달수 역은 강남길. 달수 시리즈는 단막극이면서도 일종의 연작 드라마여서 등장인물과 기본설정이 그대로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