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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7 20:14:24

일본 3대 악녀

1. 개요

일본사에서 유명한 3명의 악녀. 현대에 와서는 중국 3대 악녀와 같은 전통적 관점에서의 악녀들이 재평가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2. 목록

2.1. 호조 마사코

北条 政子 (1157년 ~1225년)
가마쿠라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부인. 이즈 반도 호족이었던 호죠 토키마사이다.

남편인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외도에 심하게 질투하여 그 (亀の前; 카메노마에)의 거처를 흔적도 없이 파괴하고 증오하는 첩을 내쫓기도 하였으며, 또 자신이 낳은 아들 쇼군 자리에서 끌어 내려 억지로 출가시킨 후, 죽음으로 내모는 매정한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섯살 손자조차 성난 불길 속에서 태연하게 죽여 버리는 잔인함, 또한 아버지의 후처로 들어온 의모(牧の方; 마키노카타)를 시골로 추방해 버리는 등 어려 악행이 유명하며, 그 외의 여러 의문사 및 암살의 연출자가 아닌가의 소문이 돌았다.

또, 일본에서 꽤 인기있는 역사적 인물인 요시츠네[1]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어서 악녀로 불렸을 수도 있다. 물론 실제 요시츠네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긴 했어도 형에게 반역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당시 미나모토 집안[2]의 동량(후계자)을 독점하려는 요리토모가 요시츠네가 황가와 가깝게 지내는 것을 고깝게 여겼고 호조 마사코 역시 이를 부추겼다는 의혹이 있다. 거기다 요리토모가 사망한 이후, 카마쿠라 막부의 헤게모니는 외척이었던 호죠 가문이 장악하는데, 토사구팽-누명-숙청이 반복되던 카마쿠라 막부 초기의 정변 속에서 초대 쇼군의 적통마저 멸족되어 실권을 찬탈당하기까지 했으므로[3] 여기에 대한 일본사의 음모론까지 더해지면서 더더욱 미움을 받기 쉬워진 것도 있다.

마사코에 대한 평가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 부분이 있다. 한국어 위키피디아 문서에 의하면 < 아즈마카가미(吾妻鏡)>, <구칸쇼(愚管抄)>[4] 등에서 마사코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고, 무난한 고평가의 흐름은 무로마치 시대에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마사코에 대한 평가가 본격적으로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에서 수입한) 유교가 대대적으로 보급되는 에도 시대로 보여지는데, 외척 가문(호죠)이 본가(카와치 겐지)를 멸문시킨 행위가 일본 유학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면서 저평가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일본 3대 악녀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2.2. 히노 도미코

日野富子 (1440년 ~ 1496년)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 정실부인이자 일본 희대의 악녀. 3대 악녀 중에서도 끝판왕으로 취급받는다. 전국시대의 시작인 오닌의 난의 원인제공자 중 한 명이다.

적극적인 정치적 발언, 지위 및 권력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치부와 권력강화에 매진하는 모습으로 인해 대표적인 악녀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

2.3. 요도도노

淀殿 (1569년 ~ 1615년)
전국시대(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인물. 아자이 나가마사 오이치(お市) 사이의 장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실. 도요토미 츠루마츠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생모.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바람기 상대인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때, 그런 소문을 흘린 사람들을 처벌한 것. 둘째 아이인 히데요리를 출산한 후 히데요시의 양자로 지금까지 후계자로 여겨지던 도요토미 히데쓰구를 자살로 몰아 히데쓰구의 일가를 몰살시킨 것 등으로 악녀로 평가 받는다. #

지금은 오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등쌀에 인생 말아먹은 전국시대의 피해자로 보는 면도 생겨서 3대 악녀에 포함시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처벌이나 히데츠구는 요도도노가 아니고 히데요시가 전부 한 것이다.[5][6]

3. 기타

'3대'에는 들지 않지만 시라카와 천황 황후 후지와라노 도쿠시 호겐의 난을 유발해 헤이안 시대를 몰락으로 이끈 만악의 근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카스가노츠보네를 3대 악녀 중에 대신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정작 카스가노츠보네도 실제에 비해 악행이 과장되었다.[7] 에이코인이 주인공인 드라마나 만화 오오쿠에서 카스가노츠보네가 곱씹어보면 개뻘짓 섬뜩한 쓰레기로 등장하는건 그냥 각색이다.

4. 관련 글


[1] 언더독 효과 혹은 약자 및 패배자에게 동정심을 표하는 심리를 나타내는 일본어가 호간비키(判官贔屓)인데, 이는 형에게 이용만 당하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요시츠네의 관직명 호간(判官)에서 유래했다. 참고로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역사적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 혹은 사카모토 료마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와 1, 2위를 다투는 구도이다. [2] 정확하게는, 카마쿠라 쇼군을 세습하는 카와치 겐지 계통의 집안을 의미한다. 미나모토(源)라는 글자 자체는, 한국의 김씨나 이씨처럼 다양한 본관의 여러 가문들이 공유하던 한자독음이었다. [3] 요리토모의 직계뿐 아니라, 카와치 겐지 방계 또한 대부분 요리토모에 의해 숙청당했기 때문에 미나모토 본성을 사용할 수 있던 유력한 카와치 겐지의 인물은 진작에 죄다 사라진 뒤였다(...). [4] 죠큐의 난 당시 활동하던 천태종 승려 지엔(慈円)이 지은 사론서. 지엔(1155-1225)은 마사코(1157-1225)와 거의 동시대의 인물로 겐페이 전쟁에서 조큐의 난으로 이어지는 혼란상을 몸으로 겪은 인물이기도 하고, 구칸쇼에 아즈마카가미와는 충돌하는 내용이 종종 기술되어 있어 교차검증 등에 사용된다고 한다. [5] 요도도노가 히데요리를 낳자 히데요리를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당시 후계자였던 히데쓰구를 처형한 데다가 그 자손까지 전부 숙청했다. [6] 사실 이외에도 히데요시에게는 네네라는 정실이 있었는데 아이는 낳지 못했지만 그래도 현명하고 내조를 잘 하는 여성으로 오다 노부나가도 그녀를 칭찬하고 바람을 피우던 호색한 히데요시를 욕했을 정도였는데 하필 그녀가 출가를 하고 요도도노는 히데요리의 모친으로써 권세를 누린 데다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은 네네를, 서군은 요도도노를 업고 싸웠다는 점도 있어서 욕을 먹은 것도 있다. 한마디로 이 적자를 업고 정실에게 개겼다는 것 때문에 평가가 낮았던 것. 하지만 현재는 당대의 역사 연구가 진행되면서 그런 거 없다는 게 대세가 되었다. [7] 오히려 카스가노츠보네는 실책도 있긴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미츠를 보좌하며 막부의 기틀을 다진 명신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