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2-17 14:06:09

일루스

 
{{{#FCE774 {{{#!wiki style="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81818,#E5E5E5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0.742em; letter-spacing: -0.35px"
{{{#!wiki style="" <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sine collega: 동료 없이 단독 선출
  • Annus A post consulatum B (et C): B(와 C)의 집정관 집권으로부터 A년 뒤
황제 겸 집정관 }}}
401년 402년 403년 404년
플라비우스 빈켄티우스 플라비우스 아르카디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프라비타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루모리두스
동방 아리스타이네투스
405년 406년 407년 408년
플라비우스 스틸리코 플라비우스 아르카디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아니키우스 아우케니우스 바수스
아니키우스 페트로니우스 프로부스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필리푸스
동방 플라비우스 안테미우스
409년 410년 411년 412년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아우구스투스 바라네스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sine collega sine collega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테르툴루스
브리타니아·갈리아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콘스탄티누스 아우구스투스
413년 414년 415년 416년 417년
헤라클리아누스 플라비우스 콘스탄티우스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콘스탄스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콰르투스 팔라디우스 플라비우스 콘스탄티우스
418년 419년 420년 421년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모낙시우스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플린타 플라비우스 콘스탄티우스
동방 플라비우스 에우스타티우스
서방 플라비우스 아그리콜라
422년 423년 424년 425년
플라비우스 호노리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동방 플라비우스 아스클레피오도투스 빅토르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키두스 발렌티니아누스 카이사르
서방 플라비우스 아비투스 마리니아누스 플라비우스 카스티누스 요안네스 아우구스투스
426년 427년 428년 429년 430년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히에리우스 플라비우스 펠릭스 플라비우스 플로렌티우스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Ⅲ
플라비우스 플라키두스 발렌티니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아르다부르 플라비우스 타우루스 플라비우스 디오니시우스 플라비우스 플라키두스 발렌티니아누스 아우구스투스
431년 432년 433년 434년
동방 플라비우스 안티오쿠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플라비우스 아레오빈두스
서방 아니키우스 아우케니우스 바수스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 플라비우스 아르다부르 아스파르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Ⅳ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435년 436년 437년 438년 439년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Ⅴ 플라비우스 안테미우스 이시도루스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Ⅵ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Ⅶ
플라비우스 플라키두스 발렌티니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세나토르 플라비우스 시기스불투스 아니키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파우스투스 페스투스
440년 441년 442년 443년
플라비우스 플라키두스 발렌티니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타우루스 셀레우쿠스 키루스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플라비우스 아나톨리우스 sine collega 플라비우스 파테리우스
동방 플라비우스 에우독시우스
서방 플라비우스 디오스코루스
444년 445년 446년 447년
플라비우스 테오도시우스 아우구스투스 ⅩⅧ 플라비우스 플라키두스 발렌티니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
카이키나 데키우스 아기나티우스 알비누스 플라비우스 노무스 퀸투스 아우렐리우스 심마쿠스
동방 플라비우스 아르다부르
서방 플라비우스 칼레피우스
448년 449년 450년 451년
동방 플라비우스 제노 플라비우스 Flor(entius) 로마누스 프로토게네스 마르키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서방 루피우스 프라이텍스타투스 포스투미아누스 플라비우스 아스티리우스 발레리우스 팔토니우스 아델피우스
플라비우스 플라키두스 발렌티니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겐나디우스 아비에누스
452년 453년 454년 455년
동방 플라비우스 스포라키우스 요안네스 빈코말루스
서방 플라비우스 바수스 헤르쿨라누스 플라비우스 오필리오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 플라비우스 플라키두스 발렌티니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스투디우스 프로코피우스 안테미우스
456년 457년 458년 459년
동방 바라네스 플라비우스 파트리키우스
요한네스
서방 에파르키우스 아비투스 아우구스투스 율리우스 발레리우스 마요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리키메르
sine collega
플라비우스 콘스탄티누스 레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루푸스
460년 461년 462년 463년
동방 플라비우스 아폴로니우스 플라비우스 다갈라이푸스 레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안토니누스 메살라 비비아누스
서방 플라비우스 마그누스 플라비우스 세베리누스 리비우스 세베루스 아우구스투스 카이키나 데키우스 바실리우스
464년 465년 466년 467년
플라비우스 루스티키우스 레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푸사이우스
아니키우스 올리브리우스 (타티아누스) 플라비우스 요한네스
동방 플라비우스 바실리스쿠스
서방 플라비우스 헤르메네리쿠스
468년 469년 470년 471년
프로코피우스 안테미우스 아우구스투스 레오 아우구스투스
sine collega 카일리우스 아코니우스 프로비아누스
동방 플라비우스 제노 플라비우스 요르다네스
서방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 메시우스 포에부스 세베루스
472년 473년 474년 475년
동방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
서방 루피우스 포스투미우스 페스투스
레오 아우구스투스 레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제노 아우구스투스
sine collega sine collega sine collega
476년 477년 478년 479년 480년
플라비우스 바실리스쿠스 아우구스투스 Annuspost consulatum Basilisci Augustiet Armati 일루스 플라비우스 제노 아우구스투스 카이키나 데키우스 막시무스 바실리우스
플라비우스 아르마투스 sine collega sine collega sine collega
481년 482년 483년 484년
동방 sine collega 플라비우스 아팔리우스 일루스 트로쿤데스 Annuspost consulatum Trocundi 플라비우스 테오데리쿠스
서방 루피우스 아킬리우스 마이키우스 플라키두스 세베리누스 아니키우스 아킬리우스 아기난티우스 파우스투스 데키우스 마리우스 베난티우스 바실리우스
485년 486년 487년 488년
동방 Annuspost consulatum Theoderici 플라비우스 롱기누스 Annuspost consulatum Longini Annuspost consulatum Longini
서방 퀸투스 아우렐리우스 멤미우스 심마쿠스 카이키나 마보르티우스 바실리우스 데키우스 Nar. 만리우스 보에티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우스 에클레시우스 디나미우스
루피우스 아킬리우스 시비디우스
489년 490년 491년 492년
동방 플라비우스 에우세비우스 플라비우스 롱기누스 sine collega 플라비우스 아나스타시우스 아우구스투스
서방 페트로니우스 프로비누스 아니키우스 프로부스 파우스투스 플라비우스 올리브리우스 플라비우스 루푸스
493년 494년 495년 496년
동방 플라비우스 에우세비우스 Annuspost consulatum Eusebii sine collega 플라비우스 파울루스
서방 카이키나 데키우스 파우스투스 알비누스 투르키우스 루피우스 아프로니아누스 아스테리우스 플라비우스 비아토르 Annuspost consulatum Viatoris
플라비우스 프라이시디우스
497년 498년 499년 500년
동방 플라비우스 아나스타시우스 아우구스투스 요한네스 스키타 요한네스 퀴 에트 깁부스 플라비우스 파트리키우스
플라비우스 히파티우스
서방 Annuspost consulatum Viatoris 플라비우스 파울리누스 Annuspost consulatum Paulini Annuspost consulatum Paulini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8px; padding: 0 6px"
}}}}}}}}}}}}}}}


이름 일루스
(영어: Illus 그리스어: Ἴλλους 또는 Ἰλλοῦς)
출생 미상
사망 488년
직위 집정관, 마기스테르 밀리툼
반란 대상 제노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동로마 제국 레오 왕조의 반란자. 같은 이사우리아인 출신인 제노 황제를 도와 여러 반란을 진압했으나, 아일리아 베리나 황후와 암투를 벌이다 484년 반란을 일으켜 레온티우스를 새 황제로 추대했지만, 4년만에 진압당했다.

2. 생애

이사우리아 혈통으로 알려졌으나, 출생지와 출생년도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레오 1세 치하에 군대에 입대하여 여러 직책을 맡았는데, 제노와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474년 제노가 황위에 오른 뒤, 그는 아사우리아 출신 군 지휘관을 맡았다. 475년 바실리스쿠스가 여동생이자 레오 1세의 황후였던 아일리아 베리나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키자, 제노는 곧바로 도피했다. 바실리스쿠스는 일루스에게 제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루스는 제노의 동생 플라비우스 롱기누스를 인질로 잡아서 제노를 유인하려 했다. 그런데 바실리스쿠스가 수도에서 이사우리아 족을 학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루스는 제노의 편으로 돌아섰다. 한편 애인을 죽인 오빠에게 분노한 베리나는 제노의 귀환을 위해 자금을 보냈다가 발각당하자 블라케르나의 교회로 피신했다. 476년 8월 제노는 일루스의 도움으로 황위에 복귀했고, 베리나에게 버림받은 바실리스쿠스는 교회로 피신했다가 피를 흘리지 않게 해주겠다는 제노의 약속을 믿고 밖으로 나왔다가 연금된 뒤 굶어 죽었다. 일루스는 이 공적을 인정받아 478년 집정관이 되었다.

479년, 마르키아누스 황제의 외손자이자 베리나 황후의 딸 레온티아의 남편인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일루스의 집을 불태우고, 황궁 앞까지 진격해 제노를 거의 사로잡을 뻔했다. 그러나 그날 밤 일루스가 칼게도니아에 주둔하고 있던 이사우리아 부대를 이끌고 수도로 들어와서 반란군을 궤멸시켰다. 마르키아누스는 형제들과 함께 성 사도 교회로 피신했으나 곧 일루스의 부하들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로 유배된 뒤 탈출을 시도했으나 체포되어 이사우리아의 파우리우스 요새에 수감되었다. 나중에 탈출한 뒤 군대를 일으켜 안키라를 공격했으나, 일루스의 동생 트로쿤데스에게 요격당하여 사로잡혔고, 재차 요새로 보내졌다.

이렇듯 잇따른 반란을 제압한 일루스는 마기스테르 밀리툼의 직책에 올라 동로마군 총사령관으로서 절대권력를 누렸다. 그는 전쟁 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고, 시인이자 점술가인 팜프레피우스를 후원했다. 그러나 아일리아 베리나 황후는 팜프레피우스를 미워해 그를 추방했다. 이에 일루스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여서 편히 쉬게 해줬다. 그러나 일루스는 곧 베리나 황후의 표적이 되었다. 베리나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그를 제거하지 않는 한 자신의 입지가 약해질 게 자명하다고 판단했다.

베리나는 일루스를 죽이기 위해 수 차례 음모를 꾸몄으나 실패했다. 수도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일루스는 이사우리아에서 병사들을 긁어모으는 한편, 제노에게 베리나를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제노는 그녀를 타르수스로 유배보내는 것으로 끝냈다. 이후 제노의 황후이자 베리나의 장녀인 아일리아 아리아드네는 제노에게 어머니를 석방해달라고 청했다. 제노는 아리아드네에게 일루스에게 간청하라고 했다. 아리아드네는 일루스를 만나 울먹이며 어머니를 풀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일루스는 "그녀는 또 다른 황제를 세워 당신의 남편에게 대항할 거다"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아리아드네는 제노에게 어머니와 일루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제노는 "당신이 나와 함께 하면 좋겠다"라며 베리나가 유배지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였고, 아리아드네는 어머니와 함께 일루스에 대한 세 번째 암살 시도를 벌였다. 암살자는 일루스의 귀를 잘랐지만 죽이지 못했다.

결국 이대로 가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판단한 일루스는 484년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처음엔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했지만, 제노로부터 진압 임무를 맡아 달려온 레온티우스와 협의하여 마르키아누스를 폐위한 뒤 레온티우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또한 그는 베리나를 유배지에서 풀려나게 한 뒤 레온티우스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게 했다. 그녀가 일루스를 일관되게 죽이려 했던 것을 볼 때,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우나, 아마도 자신을 끝까지 풀어주지 않는 제노를 원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루스가 자신을 여러 번 죽이려 했던 베리나를 풀어준 점 역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인데, 황실의 일원인 그녀를 이용해 레온티오스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술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시 제국 백성들은 거듭된 반란에 신물이 나 있었고, 오랑캐로 여기던 이사우리아인 출신인 일루스를 경멸했기에, 별다른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제노는 동고트족 지휘관 테오도리크를 파견해 이들을 진압하게 했고, 테오도리크는 안티오키아 인근에서 반란군을 격파했다. 레온티우스와 일루스는 파푸리우스 요새로 후퇴하여 4년간 농성했으나, 488년 끝내 함락되어 테오도리크에게 참수되었다. 두 사람의 수급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제노에게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