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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2:47:22

일라이 매닝/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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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 시절2. NFL
2.1. 드래프트 논란2.2. 첫 슈퍼볼 우승2.3. 두 번째 슈퍼볼 우승2.4. 그 이후
3.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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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 시절

프로가 되기 전에는 아버지 아치 매닝의 모교 미시시피 대학교에 진학, 올 미스 레벨스팀에서 대학 무대을 밟았었다.[1] 시기는 다르지만 형과 같은 FBS/SEC 컨퍼런스에서 뛰었던 것.

대학 시절 내내 팀을 우승 후보급으로 이끌며 여러 영웅적인 활약과 드라마틱한 스토리들을 만들어냈던 형에 비해 4학년이 될 때까지 개인 활약은 훌륭하지만 팀은 컨퍼런스 약체 신세에서 구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4학년 시즌 드디어 걸출한 활약과 함께 팀을 우승을 기대해볼만한 위치까지 이끌지만[2] 하필 같은 컨퍼런스 디비전팀이자 당시 닉 세이반이 이끄는, 그해 내셔널 챔피언쉽 위너 LSU 타이거스와의 맞대결에서 패해 컨퍼런스 우승에 실패한다. 이어진 플레이오프에서는 슈가 보울에 진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를 꺾으며 대학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게 된다. 형보다 못한 아우라는 말을 들었고 내셔널 챔피언쉽 우승은 끝내 이뤄내지 못했다.

2. NFL

2.1. 드래프트 논란

비록 대학에서 매닝 가문의 기대치만큼, 그리고 형만큼의 족적을 남기진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아버지나 형만한 재능을 충분히 보여줬던지라 일라이 역시 동년배 최고의 쿼터백 재능으로 평가받으며 2004년 NFL 드래프트에 참가, 유력한 전체 1순위 지명후보로 꼽히게 된다. 하지만 이때 희대의 NFL 드래프트 사건을 일으키게 되니, 당시 간신히 막장팀의 이미지를 벗어던지던[3] 드래프트 지명권 1순위[4] 샌디에이고 차저스에 입단하기 싫다는 이유로 징징을 시전한 것. 거기다 드래프트 거부와 트레이드 요구 과정에서 자기 아버지까지 동원하는 바람에 더 심하게 까였다.[5] 아버지인 아치 매닝은 "샌디에이고에는 드류 브리스라는 확실한 주전 쿼터백이 있어서 일라이의 재능을 썩히기만 할 게 뻔하니까, 당장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뉴욕 자이언츠 같은 팀을 가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샌디에이고는 단시간 안에 일라이를 주전으로 기용하겠다고 설득을 했으나 실은 더 높은 계약금을 줄 수 있는 뉴욕 자이언츠에 가고싶다는 말이었다.

결국 일라이 매닝은 지명 후 전체 4순위인 필립 리버스와 트레이드 되어 뉴욕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그러고는 실질적으로 4순위니 4순위 계약금을 받아야 한다는 자이언츠 구단을 상대로 입단 경위야 어쨌든 지명 받은 건 전체 1순위이니 1순위 계약금을 받아야 한다[6]면서 징징을 시전, 입단 과정에서 또 까이면서 자이언츠 팬들 중에서 여전히 이 선수의 안티가 존재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참고로 일라이의 아버지인 아치 매닝은 두 아들을 대학 보낼때도 이런 식의 입김을 넣었다. 페이튼 매닝이 아버지 아치 매닝, 형 쿠퍼 매닝의 모교인 미시시피대학을 거절하고 테네시대학을 택했을때, 아치 매닝이 "몇 년만 기다려 얘보다 더 잘하는 동생은 미시시피로 보낼께"라고 학교 관계자에게 말했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결국 일라이는 1순위 지명 후 뉴욕 자이언츠로 트레이드 된 뒤 전문가들 예측대로 신인임에도 6년 54M에 사이닝보너스 20M을 받는 역대 최고의 신인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로 당시 NFL은 다른 신인 드래프트가 존재하는 스포츠와 다르게 샐러리캡이 존재함에도 신인 선수에 대한 연봉, 계약금 제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라이 매닝의 은퇴 이후 이 징징거림을 재평가하는 쪽도 있다. 일라이 매닝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현재 오너들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 (카우보이스나 차저스, 커맨더스) 또는 QB를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면서 1라운더를 데려와놓고 트레이드 혹은 짜르기를 반복하다가 (이전의 타이탄스나 현 돌핀즈, 제츠) 막장으로 간 팀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에 자신을 잘 키울 수 있는 팀을 스스로 선택했다. 콜츠의 선택을 거절한 명예의 전당의 존 엘웨이나 차저스의 선택을 거절한 일라이가 결국에 무시 못할 레거시를 스스로 쌓은 뒤[7] 은퇴했기 때문에 요즘 5스타 QB들이 드래프트 전 재능도 재능이지만 성공을 위해 팀 운영 방식이나 팀 분위기를 알고 자신과 안 맞으면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먼 미래인 2021년 역대 최고의 대학 쿼터백으로도 거론되는 트레버 로렌스 뉴욕 제츠 잭슨빌 재규어스 중 한 팀으로 드래프트 되는 상황이 일어나니 아예 일라이해도 무죄라는 말이 나오는 중이다.근데 로렌스 본인이 직접 일라이하지 않을 거라 했다

2.2. 첫 슈퍼볼 우승

우여곡절의 드래프트 사건끝에 뉴욕 자이언츠에 입단한 후, 어찌됐건 벤 로슬리스버거, 필립 리버스같은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전체 1위에 지명된 쿼터백이니만큼 그가 받는 기대는 컸다. 그러나 루키 시즌은 주전이 되고 싶다면서 그렇게 입단한 자이언츠에서도 커트 워너에 밀려 절반밖에 선발로 나서지도 못했으며 두번째 시즌은 본격적으로 주전이 되며 시즌 초반 드디어 활약하기 시작하나했더니 후반가서 폼이 떨어지며 와일드카드전에서 캐롤라이나 팬서스에게 셧아웃 패배를 당하는 졸전을 펼쳐버렸다. 두번째 시즌도 9주차까지는 팀을 6-2로 이끌며 선전하더니 후반가서는 팀의 연패행진의 주역이 되면서 8-8로 시즌을 마쳤다.

그렇게 형은 커녕 그가 받던 기대에도 못미치던 쿼터백이 되는가 싶었는데... 2007-08시즌 역시 10승 6패라는 성적때문에 과연 자이언츠가 이 놈을 프랜차이즈 쿼터백으로 믿고 가야할지 의문까지 드는 와중에 턱걸이로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그가 사고를 쳐버리게 되니, 와카전, 디비전 라운드, 컨퍼런스 챔피언쉽에서 정규 시즌 기록들을 웃도는 활약을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어버린 것. 그리고 이어진 슈퍼볼 XLII(Super Bowl XLII)에서 정규시즌 전승에다가 전승 우승 도전으로 기세등등한 톰 브래디, 랜디 모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상대로 경기 종료 35초를 남기고 역전에 성공해 뉴잉글랜드를 전승준으로 쳐박으며 자이언츠에 슈퍼볼을 가져오는 역사적인 승리까지 이뤄냈다. 당시의 경기는 슈퍼볼 역사에 길이남을 명승부이자 역전극으로, 그의 커리어의 반환점이자 평생동안 기억될 순간이었는데, 특히 4쿼터에서 쌕을 당할 절제절명의 위기를 빠져나와서 던진 패스[8]를 리시버 데이빗 타이리가 헬멧으로 꽉 고정시켜 받아낸 장면은 역대 슈퍼볼 최고의 장면 1위에 올랐다.[9] 이 경기로 자신은 슈퍼볼 MVP가 되며 형이 슈퍼볼 링을 얻은 바로 다음해에 슈퍼볼 링을 얻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이 시즌의 전승준은 패츠 팬들이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언급하기도 싫어할 정도의 흑역사이며 악몽 같은 최악의 슈퍼볼로 여겨질 정도로 임팩트가 컸다.

2.3. 두 번째 슈퍼볼 우승

이어진 2008 시즌은 드디어 슈퍼볼 우승 경험치를 먹고 제대로 프랜차이즈 쿼터백스러운 활약을 펼쳤다. 팀도 12-4라는 호성적으로 디비전 우승과 함께 디비전 라운드로 플레이오프 직행을 한다. 그런데 하필 자신의 천적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만나면서 졸전을 펼쳐주면서 깔끔하게 패배를 당해버렸다. 비록 시즌을 또다시 일라이스럽게 끝내긴 했지만, 2009년에는 커리어 첫 4,000야드 패스 전진 기록을 세우면서 계속해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팀이 부상 문제에 시달리는 통에 8-8로 시즌을 마쳤으며, 2010년에도 4,000야드를 넘기며 팀을 이끌었지만 이번에도 천적 필라델피아 이글스에게 4쿼터에만 28점을 내주며 38-31로 역사적인 역전패를 당하며 지구 우승을 뺏기고 플레이오프 진출에도 실패했다. 비록 나쁘진 않은 세 시즌이었지만 슈퍼볼 우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꾸준한 기복 기복이 꾸준하다. 덕분에 엘리트라기엔 부족함이 있는 모습이었던 참에 2011-12 시즌을 맞게 된다.

2011-12 시즌에는 수비가 부상 등으로 전력이 크게 떨어지면서 좋은 성적을 내긴 어려울거란 평가를 받았다. 거기에 본인도 프리시즌 인터뷰에서 자신을 톰 브래디에 비교하며 대차게 까이기까지 했는데... 이 말은 이 시즌 슈퍼볼 역사 한정으로 현실이 된다. 정규 시즌 4,933야드로 5,000야드에 육박하는 엄청난 활약을 펼쳤지만 팀이 수비불안에 시달리며 5할을 간신히 넘는 성적(9승7패)에 그쳤다. 그러나 다른 지구팀들도 함께 죽을 쒀준 덕분에 NFC 동부 우승과 함께 플레이오프에 와일드카드 홈경기에 겨우 진출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턱걸이 플레이오프에서 또다시 전설을 써내려가게 되니... 애런 로저스, 알렉스 스미스 등 엘리트 쿼터백을 차례차례로 꺾고 결국 46회 슈퍼볼(Super Bowl XLVI)에서 톰 브래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4년 만에 리턴매치를 벌이게 됐다. 그리고 경기 전 전문가 및 라스베가스 도박사들의 예상부터 경기 전개 내용, 결과까지 4년전의 판박이. 그리고 이 경기에서 다시 한번 톰 브래디를 슈퍼볼 준우승으로 처박으면서 명실상부한 톰 브래디 킬러로 떠올랐다. 거기에 두번째 슈퍼볼 MVP 수상은 덤. 이것이 진정한 데자뷰. 이 두번째 슈퍼볼 우승으로 그토록 놀림을 받아도 결국 엘리트라 자칭하고 다닐만한 업적을 세웠으며 드래프트 때 징징거려서 깎아먹은 평판도 거의 묻어버리게 됐다.[10]

2.4. 그 이후

2012, 2013년에는 각각 프로볼에 선정되고 자이언츠 프랜차이즈 역대 최다 패싱 전진 선수가 되는 영예를 안았지만 또다시 슈퍼볼 반지 보유 쿼터백치곤 확실하게 부족했다. 거기다 2014년엔 오델 베컴 주니어의 등장과 함께 커리어 최다인 4,410야드, 2015시즌은 조금 더 많은 4,436야드는 형이 좀 잘했다 싶은 시즌엔 쉽게 찍어주던 숫자다.[11]를 찍었지만 결국 4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로 계속 까이고 있다. 2년간 최약 오펜스 라인맨이라던가 러닝백과 일라이간 불협화음이 그칠날이 없었다는 핑계도 댈 수 있지만, 어차피 성적 안좋으면 까일수밖에 없는게 쿼터백 숙명. 계속 이런식으로 시간보내다 은퇴할 경우 2번 슈퍼볼 우승&MVP 따놓고도 명예의 전당에도 못들어가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올 정도이다.

특히 슈퍼볼 50에서 페이튼이 생애 두 번째 슈퍼볼 우승을, 그 것도 역사상 최초로 두 팀에서 우승을 한 쿼터백이 되면서 슈퍼볼 우승반지 갯수도 똑같아지면서 우승 외엔 정규시즌 성적이나 플옵 진출등에서 한참 밀리는 일라이가 형 따라잡으려면 더 분발해야될 상황이다. 아무리 슈퍼볼 우승 반지 2개가 있어도 매년 쉬지 않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슈퍼볼 우승에 도전하던 형에 비해 정규시즌 승률 5할도 못채우고 예선통과도 못한 시즌이 많은 건 분명히 팀빨 이전에 일라이가 스스로 넘어야할 문제이다.

하지만 2018시즌 급격한 노쇠화로 이제 은퇴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고 뉴욕 팬들은 2019년 매닝의 은퇴를 기원하면서 상위픽을 쿼터백에 쓰자고 하고 있다. 롱패스 능력의 실종으로 오델 베컴 주니어와 세이콴 바클리까지 있는데도 팀이 힘든 상태. 뉴욕 자이언츠도 일라이 매닝의 뒤를 이을 쿼터백을 찾고 있는 중. 게다가 오델 베컴 주니어까지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로 이적하였다. 그리고 바클리는 살려조

결국 2019년 드래프트에서 자이언츠가 대니얼 존스를 선택하며 일라이의 주전 활용은 앞으로 2~3년은 더 이어질 예정었으나... 꿈도 희망도 없다 초반부터 부진이 계속 이어지자 2019시즌 3주차에 일라이를 벤치로 내리고 존스를 선발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존슨의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초반 두 경기에서 2연승. 그러나 이후 경기부터는 오락가락하며뭔가 한방이 있다카던데 글쎄 내리 연패중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팀에서는 이대로 존스를 프렌차이즈 주전으로 밀고가는 것으로 보인다.

존스가 시즌 막바지 손가락 부상으로 이탈하자 다시 주전으로 복귀! 라이벌 필라델피아 이글스와의 게임에서는 초반에 선전했으나 후반의 침묵으로 연장전 돌입후 아쉽게 패배한다. 그 다음주 마이애미와의 홈경기에서는 3개의 인터셉션을 내줬으나 2개의 터치다운 패스와 바클리의 활약으로 오래간만에 승리를 따낸다. 이 승리로 귀신같이 통산 승률 5할을 회복하였다. 자신의 마지막 경기임을 예감한 듯 경기 종료 후 일일이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홈팬들의 환호에 화답하며 조용히 퇴장했다. 이후 존스의 부상이 회복되고 마이애미와의 경기가 일라이의 고별전이 되었다.

2019시즌 동안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자이언츠에서 주전 QB으로서 생활은 끝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은퇴 언급은 하지 않고 있고 다음주에 할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등 현역에 대한 의지는 여전하다. 트레이드 소식도 종종 나오고 있어 오프시즌 동안 거취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3. 은퇴

2020년 1월 FA 선언과 동시에 자이언츠에서의 16시즌을 뒤로하고 전격 은퇴를 발표했다. 그래도 자이언츠 슈퍼볼 우승 중 2번을 만들어 내고[12], 그의 등번호인 10번이 영구 결번 되면서 명예롭게 은퇴하게 되었다. #

은퇴 이후 2021년 9월 26일 3주차 홈 경기에서 영구결번식을 거행하며 그의 10번은 영원히 일라이의 번호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21시즌부터 형과 함께 ESPN 먼데이 나잇 풋볼 분석가로 나서고 있다. 특히 ESPN2와 ESPN+에서 형과 함께 매닝캐스트라는 타이틀로 중계를 하고 있는데, 매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13]
[1] 형인 페이튼 매닝은 같은 컨퍼런스의 테네시에 진학했었다. [2] 이때 팀 동료로, 훗날 자이언츠에서 같이 슈퍼볼을 2번이나 따내는 활약을 한 거인 러닝백 브랜던 제이콥스가 같이 있었다. [3] 1998년 드래프트 전체 2번으로 지명한 쿼터백 라이언 리프가 폭삭 망한 후유증이 오래 갔다. 그해 전체 1번 픽이 바로 페이튼 매닝. [4] 이 시기의 차저스는 라이언 리프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어느 정도 팀을 재건하여 매년 플레이오프 진출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었는데 하필 그해 주전 쿼터백 드류 브리스가 지독한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려 주전에서 쫓겨나기까지 하는 등 폭망하면서 성적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서 1순위 지명권을 차지했다. [5] 한마디로 "네 나이가 몇인데 그 나이 먹고도 네 진로를 네가 스스로 결정 못하고 아버지 품 속에서 징징거리고 있냐?"라는 식. 비슷하게 1983년 드래프트에서 볼티모어 콜츠 가기 싫어서 서부 가겠다고 뻐팅긴 선배 존 엘웨이는 자기 야구실력 가지고 뉴욕 양키스 지명 핑계 대면서 정치질을 하긴 했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표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6] NFL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신인은 자기보다 앞선 순위로 지명된 선수보다 계약금을 단돈 1센트도 더 받을 수 없게 되어있다. 즉 일라이를 전체 지명 1순위로 취급하면 받을 수 있는 계약금의 상한선은 무한대(...)이지만 4순위로 취급하면 3순위 지명자(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래리 피츠제럴드)의 계약금이 계약금의 상한선이 된다. 구단과 선수 입장에서는 일라이를 1순위로 간주하느냐 4순위로 간주하느냐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7] 물론, 이때 비교대상이 된 필립 리버스 역시 슈퍼볼 반지만 없을 뿐 일라이에 뒤지지 않는 커리어를 쌓고 은퇴했기 때문에 당시 차저스는 누굴 골라도 결국 키워낼 능력이 있음을 입증했고, 이는 리버스의 후임인 저스틴 허버트의 대성공으로 다시금 증명되었다. 그냥 라이언 리프가 재수없게도 희대의 똥망픽이었던 것 [8] 이 장면은 50회 대회 때 역대 슈퍼볼 MVP들을 소개하는 행사에서 일라이가 등장할 때(6분 50초부터) 쓰이게 된다. [9] 더구나 데이빗 타이리는 이전에는 스페셜 팀에서 허드렛일이나 도맡아 하던 거의 듣보잡격 선수였으니... [10] 그럼에도 일부 안티들은 어김없이 시전되는 그의 인터셉션을 예로 들어 "아직까지 멀었다"고 도리질 중. 사실 지금까지의 커리어로 볼때는 형보다는 브렛 파브의 커리어를 따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플레이 스타일이 형보다는 파브에 훨씬 가깝기도 하고. 파브만큼만 해줘도 욕 안 먹는다. 비록 파브가 말년에 현역연장 욕심 때문에 좀 모양 빠지게 은퇴를 했지만 비교할 걸 비교해야. [11] 참고로 페이튼은 커리어에서 4,500야드 이상을 총 6번 찍었고, 시즌 최고 기록은 5,477야드에 달한다. [12] 일라이가 현역이던 기간 동안 슈퍼볼 2번 이상 우승한 팀이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피츠버그 스틸러스, 뉴욕 자이언츠가 끝이다. [13] 특히 매닝캐스트에 게스트를 초대하는데, NFL 전현직 선수들은 물론 르브론 제임스 같은 타 종목 유명선수들, 심지어는 드웨인 존슨, 스눕 독 같은 연예인들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