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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3 22:00:52

이치키 기요나오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군의 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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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키 기요나오
[ruby(一木清直, ruby=いちき きよなお)]
파일:이치키.gif
출생 1892년 10월 16일
사망 1942년 8월 21일 (향년 49세)
최종 계급 소장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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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치키 기요나요는 무타구치 렌야와 함께 루거우차오 사건을 주도한 군인이며, 과달카날 전역 테나루 전투에서 일본군을 이끌었던 장교다. 전사 당시 계급은 대좌. 사후 추서로 최종 계급은 소장이다.

2. 생애

루거우차오 사건 당시 무타구치 렌야의 발포명령을 받았을 때도 "예? 바, 발포해야 합니까?"라며 당황했다고 한다. 지휘관이 비정상이라 상식적으로 반응하는 게 이상해 보이는 효과.

1942년 8월 20일 22시 30분 과달카날에서 에드윈 블록 중령이 이끄는 미국 제1해병연대 2대대 진지에 반자이 돌격을 하다가 자신과 777명의 병사와 장교들과 함께 그대로 정글의 고깃조각이 되어버렸다. 일단 일본에서는 군기를 불태우고 자살했다는 입장이지만 그럴 틈도 없이 몰살당했기 때문에 신빙성은 낮다. 게다가 이치키가 지대를 이끌고 파병을 가기 전에 제17군 참모에게 "툴라기 섬(과달카날 섬과 플로리다 섬 가운데있는 작은섬)도 우리 부대가 탈환해도 되나?" 라고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따름. 당시 일본군은 필리핀 전투 등으로 미군의 전력을 매우 얕보고 있었고 야습과 총검백병주의 사상에 대한 무모할 정도의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과달카날 전투가 아니었어도 죽을 목숨이었다. 그 전에 미드웨이 상륙작전을 지휘하기로 했는데 전사했다.

3. 기타

과달카날에서 최초 목격자를 잔인하게 고문한 전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