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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6 14:44:55

이제르론 공방전


1. 개요2. 배경3. 난공불락의 요새
3.1. 어두운 면
4. 역대 이제르론 공방전들5. 의의

1. 개요

은하영웅전설 이제르론 요새을 놓고 벌어진 공방전들에 대한 문서.

2. 배경

은하연방 지구통일정부 라그랑 그룹이 붕괴되고 흑기군이 내전을 벌인 90여년에 걸친 혼란기를 종식하고 2세기간 인류역사상 최대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그 이후 연방은 여러 문제점들을 안으며 쇠퇴해갔다. 이러한 와중에 등장한 이가 루돌프 폰 골덴바움으로 그는 연방군 시절에 얻은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해 마침내는 은하제국을 세우고 자신은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루돌프는 재위초반을 제외하면 폭정을 일삼았고 이에 공화주의자들은 반발했으나 루돌프는 이를 무자비하게 찍어눌렀다. 루돌프 사후 공화주의자들은 반란을 일으켰으나 다음 황제인 지기스문트 1세의 아버지, 노이에슈타우펜 공작이 지휘하는 제국군에게 또다시 짓밟혔다. 이리하여 공화주의자들의 민주주의 회복 시도는 좌절되었다.

그러고 백수십년 동안 제국의 체제는 굳어졌고 공화주의자들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어보였다. 그것은 제국을 전복시키는 것도 제국을 탈출하는 것도 모두 어려웠기 때문으로 제국령 외부는 인류가 한번도 가본적 없는 외우주였으며 애초에 공화주의자들은 죄수 신분이었으므로 탈출 시도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알레 하이네센이라는 공화주의자는 드라이아이스를 띄워 탈출한다는 아이디어를 입안, 실행시켰고 마침내 제국력 164년, 40만에 달하는 공화주의자들을 데리고 제국령을 탈출했다. 비록 이 공화주의자 집단은 50여년에 달하는 기간동안 반수 이상이 죽고 지도자 하이네센도 잃는 큰 희생을 치러야 했지만 끝내 하이네센이라는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행성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자유행성동맹을 건국하여 민주공화주의의 부활을 선언했으며 제국력을 폐기하고 은하연방이 쓰던 우주력을 부활시켰다. 이 때가 제국력으로 218년, 부활시킨우주력으로 527년이었다.

처음에 자유행성동맹은 매우 작은 세력이었으나 공화주의자들은 힘껏 노력하여 (OVA 한정) 은하연방의 황금기가 재현되려고 했다고 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그리고 1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제국력으로 331년, 우주력으로 640년에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은 서로의 접경 지역에서 초계함들끼리의 조우로 마침내 처음으로 조우하게 된다. 동맹은 건국할 때부터 각오한 바였으나 제국으로서는 정체불명의 외계함대가 나타난 것이었기에 크게 당황했고 제국군은 몰살당한다.

그러나 제국군은 필사적으로 본토와 통신을 시도한 끝에 자신들이 겪은 사실을 알렸고 곧 제국은 제국령 바깥에 우리 외의 또다른 세력이 존재함을 인지하게 되었고 과거의 모든 기록을 조사한 결과 200여년 전에 대규모로 발생한 공화주의자들의 탈출 기록을 찾아낸다. 그 때는 그저 우주 어딘가에서 사망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 사건으로 그들은 어딘가에 정착해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국에게 있어 인류 유일의 정체는 은하제국 황제를 중심으로 한 전제군주제였다. 따라서 제국에게 있어 자유행성동맹은 반란군이었고 당연히 이들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이미 제국군은 은하연방 시절부터 꾸준히 쌓아놓은 군사력이 있었고 제국에서는 반란이 잦았기에 제국군의 실전 경험도 충분했기에 제국군은 절대 지리라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휘관이었던 헤르베르트가 너무 무능하였기에 제국군은 다곤 성역 회전에서 참패하였고 이것이 제국-동맹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제국과 동맹의 전쟁은 너무 오래 끌어졌다. 그나마 어쩌다가 간혹 서로간에 큰 타격을 준 전투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전황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우주력 745년에 벌어진 제2차 티아마트 회전은 좀 달랐다. 제국군은 단 40명만에 60명의 장성급 장교를 잃었고 이 피해는 단순히 숫자만 복구하는데에도 10여년이나 걸렸다. 그로부터 9년 후 당시 은하제국 황제인 오토프리트 5세 이제르론 회랑에 대형 거점지 건설을 시도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건설된 것이 이제르론 요새이다.

이제르론 요새가 건설되면서 제국군의 상황은 편해졌다. 그간 전쟁은 제국이 공격하고 동맹이 방어하는 구도였는데 그렇다고 해도 제국군이나 동맹군이나 멀리서 진군해온 만큼 전쟁에 있어 특별히 누가 힘들다 하는건 없었지만 이제르론 회랑 한복판에 제국군의 대형 거점지가 생겨버리자 제국군은 이 요새를 거점삼아 공세를 퍼붓기 쉬워졌고 반대로 동맹이 공격해오려고 하면 이 요새를 거점삼아 막아내면 그만이었다. 그렇다고 동맹군이 이를 우회하여 제국을 공격할 순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군사적 열세를 만회해보고자 동맹이 이제르론 공략을 시도한 것이 이제르론 공방전의 시작이었다.

3. 난공불락의 요새

그러나 이제르론 요새의 공략은 쉽지 않았다. 짠돌이 군주인 오토프리트 5세가 어쨌거나 돈 퍼부어가며 만든 요새답게 이제르론 요새는 너무 튼튼했다. 이제르론 요새의 스펙을 간단히 읊어보면 이렇다.

이러한 이유로 이제르론 회랑은 죽은 동맹군 장병들의 시신으로 '포장'되었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후일 이 요새가 동맹군에게 점령되자 입장이 반대가 돼버렸다.

사실 이런 스펙이 있어도 의외로 라인하르트, 오베르슈타인, 로이엔탈, 양 웬리 같은 비범한 이들은 이제르론의 가치를 그렇게 높이 보지 않았다. 오베르슈타인은 막 7차 공방전이 끝나고 오베르슈타인이 탄 함선에 있던 병사가 이제르론이 넘어갔다며 허망하게 말하자 우린 언제든 이제르론을 수복할 수 있다며 진정시켰고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양 웬리는 페잔 회랑이 넘어간 이상 이제르론의 가치는 없다고 여겨 쿨하게 포기했고 라인하르트와 로이엔탈 또한 이를 정확히 내다보았다.

이러한 이유는 이제르론은 스펙상으로는 완벽하지만 단점 또한 없지는 않았다.

3.1. 어두운 면

스펙상으로는 완벽한 이제르론 요새였으나 제7차 공방전을 기점으로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뀐 요새다. 여기에는 스펙 외의 문제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스펙은 참 좋은데 다른게 안 되어서 난공불락 타이틀에 걸맞지 않는 수모를 겪은 케이스가 된 셈이다.

7차때는 제국군의 지휘운용 실패로 제국군은 요새 지휘관과 함대 지휘관을 따로 두었고 이는 처음에는 두 지휘관이, 나중에는 그 아래 부대들조차도 서로 반목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고 그래도 평소에는 둘이서 다툴땐 다투더라도 공을 세워야 할 때는 열심히 싸우는 효과도 있었고 딱히 큰 문제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양 웬리를 만나며 이 점이 공략당한다. 실제로 양 웬리에게 열심히 낚였던 젝트는 함대 지휘관이고 그에게 조언을 한 슈톡하우젠은 요새 지휘관이었다.

9차때는 이제르론의 스펙은 제국군을 막아내기엔 충분했지만 전략적 이점이 사라져 동맹군이 자동으로 포기한 케이스다. 그러다 보니 주인은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이제르론이 그렇게 큰 피해를 입어 체면 깎이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이전에 벌어진 8차전에서 이제르론 못지않게 강한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공략 시도를 함으로서 이제르론을 무력으로 찍어누르려면 그정도 무력은 있어야 하며 그마저도 실패해 이동요새 하나 끌고온다고 이제르론을 무너뜨리는건 불가능한게 입증되었다.

10차때는 역시 스펙도 좋고 7차와 같은 실수도 반복하지 않았지만 동맹군이 숨겨준 함정카드를 발견하지 못해 당한 케이스. 심지어 한번 발사로 제국군의 전의를 완전히 꺾어버려 스펙만은 무력으로 어떻게 안된다는걸 다시 한번 입증했다.

4. 역대 이제르론 공방전들

4.1. 1차에서 4차까지

1차에서 4차까지는 모두 동맹군의 대패로 끝났다고 짧게 언급되고 지나간다. 예외적으로 OVA 한정으로 등장하는 인물인 제임스 쏜다이크가 반전운동에 뛰어든 계기는 제2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자식 셋이 전사했기 때문이라고 나와 그나마 한번 언급이라도 되었다. 아무튼 1차에서 4차까지의 이제르론 공방전은 이제르론 요새가 엄청난 악명을 얻은 계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4차에 걸친 이제르론 공략이 모두 무용지물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4.2. 5차

4차까지 동맹군은 처절하게 패배했으나 5차 공격을 맡은 시드니 시톨레는 이제까지의 제국군을 분석하여 토르 하머의 사정권을 알아냈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이전과는 달리 어느정도의 성과를 이뤄냈다. 비록 이 공격은 요새 사령관인 클라이스트가 자신의 경력에 먹칠이 되지 않게 하기위해 주류함대의 희생을 무시하고 토르 하머를 쏴 무산되었지만 이전까지의 공략들에 비하면 성과가 컸으므로 패장인 시톨레는 오히려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하였다.

4.3. 6차

2년이 지난 뒤 동맹군은 다시 공략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윌렘 홀랜드의 제안을 택하였고 그 결과 사상 최초로 이제르론 요새의 외벽에 구멍을 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비록 여기서도 라인하르트의 활약으로 졌지만 그래도 제법 호각으로 싸우긴 했고 작전을 제안한 홀랜드는 승진했다.

4.4. 7차

사상 최초로 이제르론 요새가 함락되었다. 자세한건 문서 참조.

4.5. 8차

요새 대 요새 전투라고도 불리는 은영전 역사상 유일한 요새끼리의 전투이자 최대규모의 화력싸움. 자세한건 문서 참조.

4.6. 9차

제국군이 이제르론 요새를 탈환하였다. 자세한건 문서 참조.

4.7. 10차

양 함대에 의해 이제르론 요새가 재점령되었다. 자세한건 문서 참조.

4.8. 11차

은영전 마지막으로 벌어진 이제르론 공방전이다. 자세한건 문서 참조.

5. 의의

이제르론 공방전은 1차부터 6차까지는 동맹의 공세에 대한 제국의 성공적인 방어였지만 7차부터는 꽤나 복잡하다.

7차 공세는 동맹의 최초의 제국령 정복으로서 이 때문에 제국이 반란군 따위에게 영토를 잃었다는걸 창피해해서 처음으로 외적이라는 말을 썼고 또한 제국군 3대 장관이 모두 총사퇴하려고 했을 정도의 엄청난 파급력을 낳았다. 동맹에서의 주전기류가 강화된건 덤.

8차, 9차 공세는 별 영향이 없다. 별로 중요한 전투가 아니었기 때문,

10차 공세는 멸망해가는 민주공화주의 세력의 반격이자 양 웬리가 계략로서 완벽함을 보여준 전투였다. 이 10차 공세로 하여금 민주공화주의세력은 완전히 멸망하지 않고 이제르론 요새에 웅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11차 공세는 이 민주공화주의세력의 저력을 보여준 전투였다.
[1] 통상적인 함대전에서는 동맹군도 밀리지 않았지만 이놈의 토르 하머 때문에 꼭 말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