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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2:47:57

이정수(쇼트트랙)/선수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이정수(쇼트트랙)

1. 유년 시절2. 주니어 시절3. 2008-09 시즌
3.1. 국가대표 선발전3.2. 월드컵 시리즈3.3. 2009 세계선수권
4. 2009-10 시즌
4.1. 국가대표 선발전4.2. 월드컵 시리즈4.3.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4.4. 2010 세계선수권4.5. 담합 논란
5. 2010-11 시즌6. 2011-12 시즌
6.1. 국가대표 선발전6.2. 월드컵 시리즈
7. 2012-13 시즌
7.1. 국가대표 선발전
8. 2013-14 시즌
8.1. 국가대표 선발전
9. 2014-15 시즌
9.1. 국가대표 선발전9.2. 월드컵 시리즈
10. 2015-16 시즌
10.1. 국가대표 선발전10.2. 월드컵 시리즈
11. 2016-17 시즌12. 2017-18 시즌
12.1. 국가대표 선발전12.2. KBS 해설위원
13. 2018-19~2021-22 시즌
13.1. 선수 활동13.2. KBS 해설위원
14. 2022-23 시즌
14.1. 국가대표 선발전
15. 2024-25 시즌
15.1. 국가대표 선발전15.2. 월드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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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년 시절

집안 사정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이정수의 누나 이지아(피겨 스케이팅)와 이정수의 트레이닝을 위해 매달 훈련비로만 200만 원씩 써야 했다고 한다. 허나 이지아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금전 문제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인라인 스케이트와 웨이크보딩으로 전향해야 했고, 이로 인해 이정수는 누나의 희생에 자극을 받아 쇼트트랙 연습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어린 시절 칠보유치원을 다니면서 '진덕'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2. 주니어 시절

대표팀으로 선발되는 대부분의 쇼트트랙 선수들이 중학생 때 두각[1]을 나타내는 데 반해 고등학생 때 두각을 보였다.[2] 2006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종합 우승을 거뒀고 2007 주니어 세계선수권 2008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2년 연속 종합 2위로 대회를 마치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 나갔다.

3. 2008-09 시즌

3.1. 국가대표 선발전

주종목 1500m에서 오히려 결승 진출에 실패했으나 500m에서 선전하며 3위를 기록했고, 1000m 4위, 3000m 슈퍼 파이널에서 2위를 기록하며 최종 4위(42점)로 커리어 처음으로 시니어 대표팀 승선에 성공한다.

3.2. 월드컵 시리즈

이호석 성시백이란 쟁쟁한 선배들과 동갑이지만 시니어무대 경험이 1년정도 빠르고 선발전에서 1위를 기록할정도로 좋은 폼을 보여주는 곽윤기가 있는 가운데서도 1500미터에서 세계랭킹 2위, 1000미터에서 3위를 기록, 세계 종합랭킹 4위에 올라서며 빠르게 성장해 나갔고, 특히 1500미터에선 당시 최강자들이었던 이호석이나 성시백도 이정수를 경계해야 할 정도로 큰 가능성을 보여줬다. 단 운이 좋은 케이스였기도 했는데, 선발전 1위를 했던 곽윤기는 1500m에 한번도 참가하지 않았고, 이호석도 곧 열리는 밴쿠버 올림픽을 염두에 둬서인지 본인이 가장 강한 종목인 1000m와 취약한 종목인 500m에 조금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1500m에 세번 밖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 덕에 이정수는 세계선수권 개인전 멤버로 선발이 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꽤 많은 기회를 부여받았다. 또한 1500m에서는 성시백과의 결승경기 맞대결에서 2승 1패를 기록했고 1000m에서도 금메달과 은메달을 한개씩 수집하며 데뷔 시즌임에도 굉장한 성과를 냈다.

3.3. 2009 세계선수권

계주 준결승에서 3번 주자로( 곽윤기- 이호석-본인-박진환) 출전했으나 결승 진출에 실패해 첫 세계선수권 메달 획득에는 실패한다.

4. 2009-10 시즌

4.1. 국가대표 선발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행이 걸려 있는 대표선발전에서 1000m와 3000m 슈퍼파이널을 우승하며, 선발전 종합 우승자 성시백(90점)에 이어 2위(68점)에 올라 개인전 출전권을 따내는데 성공한다. 당시 이호석이 2009년 세계선수권을 종합우승해 자동선발이 되어서, 개인전은 선발전 2위까지만 주어졌고, 4위까지 올림픽에 계주멤버로 참가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올림픽이 걸린 시즌이었기 때문에 개인전 멤버에 들어가기 위한 난이도가 더욱 높았던 시즌이었다.

4.2. 월드컵 시리즈

본 시즌부터 포텐이 제대로 터지며 월드컵에서 1500m와 1000m에서 뚜렷한 활약을 해나가 꾸준히 상위권에 오르며 두 종목에서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했으며 월드컵에서도 종합 우승자에 오르면서 최고의 주가를 달렸다. 2차 월드컵 1500m 결승, 2차 월드컵 5000m 계주 결승, 4차 월드컵 1500m 준결승&결승. 반면 500m에는 단 한 종목도 출전하지 않았으며 곽윤기가 항상 대신 출전했다. 물론 모두들 이정수가 500m에 약한 걸 알기에 당시 의문을 품은 사람은 없었다. 자세한 건 아래 '담합 논란' 문단 참조.

이정수가 월드컵에서 보여준 폼은 실로 대단하기는 했지만, 당시까지는 한국선수들이 캐나다, 미국, 중국 선수들을 중장거리 종목에서 이기는건 당연시 여겨지는 때였고, 월드컵에서 (1500미터에서 특히) 아폴로 안톤 오노 샤를 아믈랭을 터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당시 실력적으로는 실질적인 투탑이었던 이호석 성시백이 잔부상으로 월드컵 중반부터 삐끄덕거리거나 불참했기 때문에 이정수가 손쉽게 월드컵을 우승했다고 보는 분위기에다 올림픽에서는 이호석과 성시백이 금메달을 두고 경쟁할거라 예상되었다. 한국 언론의 포커스도 저 둘에 더 맞춰져 있었고 이정수에 대해선 다크호스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이정수 본인도 현실적으로 금메달을 기대하는 눈치는 아니었고 동메달이라도 따자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반면 북미 언론에서는 월드컵 세계랭킹 1위, 그것도 1500미터와 1000미터 두 종목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한 걸 봐서 올림픽에서 크게 일을 낼 선수로 예상했다.[3]

4.3.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예선과 준결승을 통과했으며 결승에서 이호석, 성시백 그리고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를 만났다. 물론 이호석과 성시백 둘다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에 이 둘의 금메달 경쟁대결을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경기가 후반에 다가가면서 성시백과 오노가 몸싸움을 벌이다 둘 다 속도가 줄은걸 틈타 1위로 올라서게 되었고, 마지막 코너를 돌때 크게 돌며 인코스를 노리던 성시백과 경합하게 될줄 알았으나 이호석이 그걸 빈틈이 생겼다 판단해서 추월을 시도하는 판단미스를 범한다. 결국 성시백과 같이 넘어지는 바람에[4] 국민밉상 아폴로 안톤 오노와 다른 미국 선수인 J.R. 셀스키가 어부지리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냈다. 만약 이호석과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셋이 휩쓸려 오노가 은메달도 아니고 금메달을 가져가는 더 끔찍한 대참사가 일어날 뻔했다. 이정수는 다행히 그는 접촉없이 1위로 골라인을 통과해 벤쿠버 올림픽 쇼트트랙 첫 금메달을 차지했다. 원래는 금메달을 따면 태극기 세리머니를 하려고 했으나 선배들이 쓰러진 걸 보고는 마음이 아파서 하지 못했다.
1000m에서도 상승세를 타면서 예선과 준준결승을 무리없이 통과했으나 준결승에서 번번히 추월을 실패하면서 결승 진출에 큰 위기를 맞았다.[5] 더군다나 이호석답답한 나머지 경기 후반에 시원한 인코스 추월을 성공하여 1위로 뛰어오른 반면 본인은 탈락이 확실해 보였는데, J.R. 셀스키와 캐나다의 프랑수아 아믈랭이 마지막 경기에서 충돌하는 바람에 운좋게 2위로 결승에 진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믈랭이 셀스키와 접촉을 하자 셀스키가 미는 바람에 아믈랭이 넘어졌는데 이 때 셀스키가 실격처리되었고 아믈랭이 어드밴스로 결승에 갔다.

사실 뒤에서 추월을 시도하는 선수가 아웃코스에서 과도하게 물리력을 행사하며 들어오면 밀쳐내거나 쓰러뜨릴 수 있으며 이 경우 추월을 시도하는 선수가 반칙이고, 쓰러뜨리는 선수는 정당방위로 취급되기 때문에 오히려 저 상황에서 실격을 받았어야하는 선수는 아믈랭 쪽이었다. 하지만 더 깐깐하게 모든 접촉 장면을 분석한다면 셀스키 또한 이정수가 아웃코스 추월을 시도할 때 손을 사용하여 푸쉬했기 때문에 아믈랭은 물론 셀스키 또한 실격당했어야 마땅했다.

1000m에서는 이호석, 캐나다의 아믈랭 형제,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와 맞붙게 되었다. 그가 1000m에서 1500m만큼 강하지 않은 것을 감안해 금메달은 이호석, 이정수는 메달권에 들거나 4위에 머물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결승이 시작되고는 준결승 때와는 다르게 이정수가 추월 기술이 세계 최강급인이호석을 따라가는 전략을 택했다. 경기중반 오노가 아믈랭 형제를 흔들자 이호석이 아웃코스 추월을 시도했고 이호석이 나감과 동시에 이정수 또한 이호석을 따라 아웃코스 추월을 했다. 그리고 추월을 성공하고 나서도 체력이 아직 많이 남아돌던 이정수가 상승세를 몰아 이호석에게 인코스 추월을 성공시켰고 마지막 경합까지 선두를 지켜내 2관왕에 성공했다.[6] 은메달을 딴 이호석 선수는 동료를 축하하면서도 금메달을 못 딴 것에 대한 아쉬운 표정을 보여줬다.
준결승에는 4순위였던 김성일이 대신 출전했고 이정수는 결승에 4번째 주자로 출전했다. 원래 계주에 강한 선수는 아니지만 이호석, 성시백, 곽윤기가 500m 후유증[7] 때문인지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딱히 별로 한 것은 없는 이정수가 가장 문제없이 준수하게 탔다. 이정수는 당일날 500m를 곽윤기에게 양보하며 불참했기 때문에 체력과 컨디션이 모두 회복되어 있었기에 다른 세명에 비하면 훨씬 침착하게 경기를 이끌어 나갔다.

성시백이 마지막 두바퀴를 남겼을 때 마지막 주자인 곽윤기를 제대로 푸쉬해주지 못하는 사고가 나며 한국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4위로 내려앉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곽윤기가 원맨쇼를 선보인 덕분에 4위에서 2위로 뛰어올라 팀에 은메달을 안겼다. 이로써 이정수는 올림픽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따냈고 1500m 준결승과 1000m 결승에서 올림픽 신기록까지 작성하는 등 상당히 성공적인 올림픽을 보냈다.[8]

여담으로 이 대회에서 이정수가 대한민국의 1, 4호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열린 세계 최고의 축구잔치에서 동명이인의 축구선수가 대한민국의 1, 4호 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또한 대한민국 대표팀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 수와 남아공 월드컵에서 넣은 골 수는 각각 6개였다.

4.4. 2010 세계선수권

올림픽이 끝나고 한국에서 세계선수권 대회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이정수가 부상으로 세계선수권 대회 참가를 포기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하지만 성시백이 1000m에서 넘어지며 진짜 부상을 당하면서 계주를 뛸 멤버 한명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발생했고 뜬금없이 부상당했다고 알려졌던 이정수가 참가하게 되었다. 결국 세계선수권에서 계주 금메달을 따게 됐지만 그의 커리어에 큰 위기가 찾아온다.

4.5. 담합 논란

2010 세계선수권에서 이정수가 거짓 발목 부상으로 인해 출전을 포기하였고 곽윤기가 대신 출전했다. 하지만 5000m 계주 결승에서 부상당한 성시백 대신 이정수가 출전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이정수의 가족들은 이정수가 발목 부상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발목 부상을 이유로 세계선수권 개인전 종목 출전을 못했음을 알게된다. 이정수의 아버지는 당시 국가대표 대표팀의 선수를 지냈던 권수현 선수의 아버지인 권금중에게 이 사건을 알렸고 그들은 대한체육회 조사위에 대한빙상연맹에 대한 감사를 신청하기를 결정하고, 사건의 조사를 위해 200명의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하지만, 대한체육회 조사위에 감사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300명 이상이 필요했다. 이정수의 아버지와 권금중은 안현수의 아버지에게 팬이 많은 안현수의 팬 카페에 이 사건을 써서 공개해주길 요청한다. 안현수의 아버지 주변에서는 아들을 위해서 사건을 밝히지 마라 했으나 아버지는 공개하였고, 당시 이정수의 누나의 글 "왜 어른들의 싸움에 희생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라는 글과 함께 이 사건은 커뮤니티에 퍼져나갔고,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1 #2

대한빙상연맹은 이정수와 김성일 선수가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언론에 공개한다. # 그리고 선수들의 자의로 각서가 써졌다고 반박하였다. 당시 안현수의 아버지 안기원은 빙상연맹을 이끄는 두 부회장 전명규와 당시 쇼트트랙 담당 부회장이었던 유태욱이 코치와 선수들에게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라 주장을 했고, 이정수는 전재목 코치가 윗선의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당시 빙상인들 중에 일부는 선수측에서 주장하는 '윗선'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큰 대회에서 코치와 선수가 '선발전 순위'라는 원칙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출전 선수를 결정할 수 있었겠느냐는 설명이다. #

이정수는 동계올림픽 당시 전재목 코치가 1000m 출전권을 곽윤기에게 양보할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선발전에서 곽윤기가 도와주었으니 이번에는 이정수가 양보할 차례라는 논리를 내세웠고 만약 1000m를 타면 세계선수권을 포기하라는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기훈 코치가 '개인전 성적대로 출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기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전 코치를 막아 해당 경기 출전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담합설에 대해서는 "당시 선수간 협의했던 사실이 없었다"며 강력 부인했다.

이에 대해 곽윤기는 2009년 4월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000m 준결승을 앞두고 이정수가 전재목 코치를 찾아와 먼저 도와달라는 부탁을 했다면서 당시 전 코치가 나에게 이정수를 도와주라고 말해 (담합을)흔쾌히 수락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밴쿠버 올림픽 때 이정수가 약속을 안 지켰다면서 "솔직히 내가 올림픽 개인전 전 종목을 타게 될 줄 알았는데 정수가 올림픽 1000m를 앞두고 자신이 타겠다고 해서 좀 황당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성시백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곽윤기를 옹호하는 글과 앞에서 삐끗하는 이정수를 받쳐주는 곽윤기의 모습이 담긴 선발전 영상을 올렸다. 하지만, 당시 네티즌들은 다음과 같은 비판하기도 하였다. “곽윤기 선수가 도와줬다는 게 진실이었어도 왜 굳이 이런 동영상을 올리는 의문”입니다.“이정수 선수가 빙상연맹의 부조리에 대해 고발하려고 했지 곽윤기선수를 욕 먹이려 했는지도 분간이 안되나요”또 다른 네티즌은 “빙상협회의 비리를 밝혀내서 앞으로 이런 문제가 안 생기길 바랬는데 선수들 간의 싸움, 편가르기식으로 번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여론은 악화되었고, # 파벌논란 및 진실게임 논란이 심화되었다. 또한 당시 성시백이 자의로 올린것이 맞냐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성시백은 이와 관련해 본인의 뜻으로 올린것이라고 해명한다. # 이로인해 성시백의 동영상 업로드는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 이 때 당시 진선유도 곽윤기를 옹호하는 영상을 올렸지만 화제가 되지 않았다. [9]

선발전 당시 이정수는 1500m, 500m에서 실격과 탈락으로 0점이었기에 국가대표팀 승선이 어려워졌다. 그로 인해 1000m 준결승에서 곽윤기는 이정수를 도와주다 3위로 들어와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이정수는 결승에 진출해 1위를 한다.

전재목 코치는 "지난해 대표선발전 1,000m 준결승을 앞두고 선발전 점수를 전혀 못 땄던 이정수가 ’도와달라’고 부탁해 곽윤기의 동의를 받았다. 종합 순위가 바뀌면 곽윤기가 올림픽 개인전에 나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엔 부탁을 거절했으나, 이정수가 ‘그러면 개인종목을 곽윤기에게 양보하겠다’고 말해 부탁을 전했고, 곽윤기가 이를 승낙해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이정수의 개인코치인 송재근 코치는 "당시 윤기가 '저 너무 착하게 살았나 봐요. 전코치님이 정수 1,000m 올려주라는데 어떡하죠'라고 상의해와 마음아팠다"며 선발전 상황을 증언했다.

전 코치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이정수가 말을 바꾸면서 약속이 틀어졌다고 말했다. "선발전 때 약속이 기억나느냐고 묻자 이정수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출전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전 코치는 "조금 뒤 이정수에게 ’그러면 곽윤기가 희생한 게 있으니 대신 세계선수권을 양보하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이정수가 곽윤기와 의논한 다음 ’1,000m 양보하고 세계선수권에 나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김기훈 감독에게 설명했으나 "지금은 바꿀 수 없다"고 말해 바꾸지 못했고, 대신 이정수와 곽윤기에게 "곽윤기가 세계선수권에 나가는 것으로 하자"고 말해 동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전 코치는 그러면서 "이정수가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 출전하지 않은 것도 강압이 아니었다" 처음엔 "부모님과 학교가 걸려 나가야할 것 같다"고 주장했으나, 송재근 코치와 최재석 단국대 감독 등이 설득한 끝에 "곽윤기에게 미안하다"며 빠지겠다고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김기훈 감독이 ’그냥 바꿀 수 없으니 사유서를 받아와라’로 해 사유서 문구를 의논해 알려줬다"면서 "이정수 본인이 타지 않겠다고 해서 출전시키지 않은 것이며, ’강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빙상연맹은 초기에는 이정수와 김성일이 세계선수권 개인종목에 출전하지 않은 것은 두 명이 작성한 자필사유서에 의한 것이라고 반박했으나 추가 의혹들이 공개되었다. 그전해 대표선발전에서도 전 코치는 이정수와 성시백, 곽윤기, 김성일, 이승재 등을 지도했고, 짬짜미 의혹이 불거진 1,000m 준결승에서는 이승재가 처음에 선두로 달리며 다른 팀 선수의 체력을 떨어뜨리고 나서 뒤로 처지는 작전을 구사했던것이 알려지기도 했다. # 대한체육회 감사실이 빙상연맹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 2010년 4월 8일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4월 국가대표선발전 3000m 슈퍼파이널 경기를 앞두고 일부 코치와 선수들은 서로 1~5위 랭킹 안에 들어갈수 있도록 협조하고 시즌 국제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 #

그리고 그리고 성시백의 미니홈피 영상이 올라온 이후 성시백과 곽윤기 또한 담합을 했었다는 주장이 '2009 코리아 챔피언쉽 남자 3000m 수퍼파이널(2009 Korea Championship Male 3000m SuperFinal) 영상과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되었다. 그 주장에 따르면 “노란 모자가 성시백, 주황 모자가 곽윤기”라며 “당시 성시백은 포인트가 다 차서 국대가 확정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1분 30초에 보면 시종일관 성시백이 1등을 유지하다가 천미터 포인트 지점에서 코치가 성시백에게 '뒤에 윤기가 있으니 벌리라'고 소리 질러 곽윤기가 포인트를 획득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적었다.[10] 그리고 글을 쓴 네티즌은 “애초에 초기 감사 때 처음 담합 이야기가 나온 것은 3000m 경기였다”고 주장했다. 대한빙상연맹에 대한 비난 여론은 더 나빠졌다. #

대한체육회는 감사결과 "전 코치가 곽윤기의 메달 획득을 위해 두 선수에게 불참 사유서를 작성하도록 강압적인 지시를 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지었고 담합에 관해서는“선수들이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았으나 정황으로는 담합이 분명했다"고 결론내렸다. 이로 인해 전재목 코치는 영구 제명, 김기훈 감독은 3년 자격 정지의 징계를 받았으며 송재근 코치와 최광복 코치 등 선발전 당시 경기심판위원 5명은 1년 자격 정지를 받았다. 당사자들인 이정수와 곽윤기에게는 3년 간 자격 정지 조치를 취했으나 너무 가혹한 처분이라는 여론도 있었고 자격 정지를 받은 본인들도 항의를 하여 6개월 자격 정지로 확정되었다. 하지만 6개월 정지 적용 시점이 2010년 7월이었기 때문에 같은 해 9월에 있었던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 2011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5. 2010-11 시즌

2011년 1월 징계가 해제된 후 제 92회 동계체육대회에서 출전한 모든 종목(500m, 1500m, 5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복귀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6. 2011-12 시즌

6.1. 국가대표 선발전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여 4위를 기록, 턱걸이로 국가대표 복귀에 성공했다. 그러나 개인전 출전권은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노진규를 제외한 선발전 1-2위까지만 주어지는 것이라, 종목 선택권과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은 없었다.

6.2. 월드컵 시리즈

언급한대로 개인전 출전권이 없기에 자신의 주종목이지만 다른 한국 선수들에게 마찬가지로 선호 종목인 1500m를 뛸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래서 주종목이 아닌 본인의 취약종목인 500m에 어쩔 수 없이 출전하였다. 그러나 2011년 10월에 열린 월드컵 2차 500m 결승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11] 같은 해 12월에 열린 월드컵 3차와 4차에는 차순위인 서이라가 대신 출전했으며[12] 2012년 2월에 열릴 월드컵 5차부터 복귀 예정이었다. 복귀이후에도 슬럼프는 계속 지속되었다.

여담으로 당시 대표팀의 에이스로 떠올랐던 선수는 노진규였는데, 운동을 쉬다 체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이정수가 당시 노진규에게 맞춰져있던 대표팀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가는데 버거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비록 대표팀 복귀 이전까지 1년을 쉬었기에 불완전한 체력이었지만, 지구력이 강점이 이정수가 힘들어 할 정도면 노진규의 지구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볼 수 있다. 이정수는 훈련이 몸에 무리가 간게 500m 결승전에서 발목부상을 당하게 된 원인이라고 했다.

7. 2012-13 시즌

2012년에는 이호석과 함께 국내대회에 참가하며 활약했다. 2013년 4월 올림픽 대표팀에 재승선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졌다. 전국대회에서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발될 거라 예상하였다.

언론 인터뷰에서 '짬짜미' 사건을 마무리 지은 후 곽윤기와 사이를 회복했고, 소치 올림픽에서 3관왕을 해내 명예회복을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계속해서 부상에 시달리는 바람에 기량이 많이 쇠퇴해져 2011-12 시즌에는 크게 활약을 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곽윤기가 계속해서 상승세를 탔고 거기에다 신예 노진규, 신다운까지 가세해 이정수 입장에선 경쟁이 더욱더 힘들어졌다.

7.1. 국가대표 선발전

2012-13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이호석과 함께 다시 한번 국가대표 선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으니 컨디션을 끌어올려 2013-14 시즌 대표선발전에서 발탁만 된다면 소치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국제대회에서 이탈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국제 레벨에서 타던 감각도 떨어져 더욱 힘들어지게 되어 우려가 많았다.

2009년 이후로 무섭게 성장하던 선수였지만 파벌 싸움과 중부상 때문에 성장이 느려졌다. 짬짜미가 언론에 까발려진건 당연히 좋은거지만 덕분에 자기 성장에 걸림돌을 만든 셈이다. 곽윤기보다도 포텐이 늦게 터진 선수지만, 위에 이미 서술되었듯이 2009-10 시즌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밴쿠버 올림픽에선 이정수에게 운이 좀 따라줬던건 있으나 충분히 이호석, 성시백 이후 곽윤기와 함께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이끌 선수중 하나였다. 출전정지로 못 뛰게 되며 감각을 잃기 시작했고, 심지어 허리부상까지 당하게 되어 훈련을 하지 못하고 재활에만 집중했다.

8. 2013-14 시즌

8.1. 국가대표 선발전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여러 불운이 잇따르며 선발에 탈락했다. 사실 시작은 나쁘지 않았고 첫 이벤트였던 1500m에서 몸이 가벼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1500m 결승에서 결승선을 앞두고 미끄러지며 2위에서 3위로 내려앉게 되어 기대했던 만큼 포인트를 확보하지 못했고, 1000m와 500m에서도 일찌감치 떨어지며 다시 한번 국대 승선에 탈락하게 된다. 선발전이 끝난 이후 대체로 이정수의 재능이 안타깝다는 반응들이 많았고, 그의 반해 새로 선발된 선수들[13]의 기량이 검증이 되지 않았던 상황이라 남자 대표팀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자신의 2번째 올림픽의 꿈을 져버릴 수 없었는지 소치 대회를 앞두고 스피드 스케이팅 도전을 선언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 중엔 쇼트트랙을 연습 겸용으로 하던 선수들이나 쇼트트랙에서 롱트랙으로 전향한 선수들이 많다. 대표적으론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쇼트트랙에서 장거리 롱트랙으로 전향해 5,000미터 은메달, 10,000미터 금메달을 따낸 이승훈이 있다. 올림픽 2관왕이라는 업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종목은 1500m와 5000m를 목표로 한다고 한다.

최근 1500미터 훈련에서 기록한 시간대가 지난 2012년 국대 선발전으로 치면 2위에 해당되는 기록으로 알려져 국대 선발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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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5000m에서 6위를 기록하며 진출권을 따지 못했고 다음날에 치러진 1500m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며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긴 했으나 2위 안에 들어야만 대표팀 승선이 가능한지라 최종적으로 결국 선발전에서 탈락되었다. 이승훈의 성공사례를 보고 스피드 스케이팅을 너무 쉽게 봤다며 질타도 많이 받았다.

결국 사실상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 물 건너가 버리고 만 셈인데 일단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만 29살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환경이나 빠른 세대교체 때문에 베테랑들이 살아남기가 상당히 힘들다. 그러나 자기 관리를 잘해낸다면 샤를 아믈랭이나 아폴로 안톤 오노처럼 롱런하는 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스피드 스케이팅 도전을 실패한 후 다시 쇼트트랙으로 돌아왔다. 우선 국대에 다시 선발되어 월드컵과 세선에서 조금씩 기량을 회복해 나가는 게 관건이다. 쇼트트랙 복귀 이후 치르는 첫 대회였던 전국 종별 쇼트트랙 대회에서는 3000m 슈퍼파이널에서만 1위에 올랐다. 체력은 여전하지만 과거보다 떨어진 스피드나 쇼트트랙 감각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9. 2014-15 시즌

9.1. 국가대표 선발전

1차 선발전인 타임레이스를 순조롭게 통과한 후 2차 선발전에서 1500m 3위로 13점을 획득, 종합 8위를 기록해 턱걸이로 3차 선발전에 합류하게 되었다. 과거보다 인코스 추월 능력이 상당히 보완되었다는 롱트랙에서 도대체 뭘 배워왔길래?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으나 정작 본인의 최대 장점이었던 체력적인 우월함은 과거보다 많이 감퇴된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3차 선발전에서의 성적 여부에 따라서 3년 만에 국제무대로 복귀할 가능성도 열리게 되었다.

9월 29일 열린 최종 선발전에서 1500m 1위, 1000m 2위, 3000m 슈퍼파이널에서 1위(+ 9바퀴 점수 5포인트 획득)으로 종합 94점으로 당당히 1위에 올랐다. 2차 선발전을 8위로 턱걸이 진출했지만 3차 선발전에서의 대선전으로 최종 순위를 4위까지 끌어올려, 3년만에 국가대표 복귀를 확정지었다! 단순히 복귀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닌, 최종 선발전에서 종합 1위로 국가대표에 합류했다는 점에서 이정수의 전성기 기량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드디어 키울 수 있게 되었다.

9.2. 월드컵 시리즈

2014-15 시즌 첫 대회인 1차 월드컵 1500m에서 신다운과 함께 결승에 진출, 3위로 골인하며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3시즌만에 치른 국제대회 복귀 무대를 성공적으로 치르며 향후 시즌에 대한 기대를 가져볼만 하게 되었다.

2차 월드컵에서는 1500m 대신 500m와 1000m에 출전했는데 500m는 광탈했지만 원래부터 단거리에서 너무 취약했던 선수라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1000m에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준결승 진출도 못해보고 탈락했다는 것. 이미 언급되었듯이 지구력이 예전보다 떨어져 있는 상태인데, 이정수가 스피드가 빠르지는 않지만 1000m나 특히 1500m에서 꾸준한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강인한 체력 덕분이었으나 현재 체력이 받혀주질 않으니 예전처럼 스피드가 긴 시간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경기 감각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 소극적인 경기 운영도 이정수가 예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 한 몫하고 있다.

3차 월드컵에서는 주종목인 1500m에 다시 출전했으나 준결승에서 신다운, 그리고 J.R. 셀스키의 부재를 틈타 미국의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존헨리 크루거에 밀려 파이널 B에 진출했다. 그런데 파이널 B에서 레이스 후반에 전성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아웃코스 패스로 시원하게 다른선수들을 제친 후 1위로 경기를 마쳐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운 레이스를 펼쳤다.

2015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 3장 중 2장이 국가대표 선발전 1, 2위인 박세영, 서이라로 이미 확정된 상황에서 나머지 1장을 놓고 4명의 선수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인데, 현재까지는 중장거리에서 굉장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신다운에게 많이 뒤쳐져 있다. 곽윤기도 500m에서 상당히 선전하며 이정수보다 한 발 앞서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어, 개인전 출전권을 위해서는 남은 3번의 월드컵에서 극적인 반전을 이뤄야만 하는 상황이다.

서울에서 열린 4차 월드컵에서도 1500m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준결승전 마지막 바퀴에서 추월에 성공하며 2위로 결승에 진출하는 듯 했지만, 중국 선수를 밀친 것이 반칙으로 판정되어 실격되었지만 3000m에서는 레이스 극초반에 한바퀴를 앞서나가는 전략이 성공하며 여유있는 레이스로 금메달을 따냈다. 다른 선수들보다 한 바퀴를 더 탄 뒤, 같이 출전한 신다운 곽윤기가 추월하면 이미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정수가 트랙을 휘저으며 뒤에 있는 선수들의 추월을 막아버리는 작전으로 한국인 금/은/동 싹쓸이에 공헌한 것은 덤. 레이스 막판에 다시 한 번 맨 앞에서 레이스의 속도를 끌어올리는 모습을 연출할 정도로 이정수 특유의 우월한 지구력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5차 월드컵에서 또 한번 결승 진출에 실패해 B파이널에서 1위를 하는걸로 만족해야했다. 6차 월드컵에서 조차 결승진출에 실패하며 B파이널에 진출했고 3위로 결승선 통과했다.

월드컵 시리즈 종료 후 그의 대한 총평은 다음과 같다.
1. 현재 쇼트트랙 트렌드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다.
2. 자신의 강점을 단 하나도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
3. 자신감이 부족하다.

현재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선수들이 서이라, 박세영그리고 신다운[14]으로 확정된 상태에서 계주에 출전할 선수 두명이 결정이 돼야 하는데, 곽윤기가 계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은 물론 올시즌 성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마지막 한 공석은 이정수나 한승수 둘 중 한명으로 결정되게 되었다.

개인전 성적이나 랭킹은 이정수가 더 높지만, 계주에서의 활약은 한승수가 더 낫다는 평가가 있고, 저 남은 자리 하나가 계주멤버이기 때문에 이정수가 원래도 계주에서 약하다는걸 감안하면 한승수가 뽑힐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곽윤기가 경미한 부상을 입게되어 이정수, 한승수 둘다 상관없이 세계선수권에 참가하게 됐다.

최근 인터뷰에서 안현수와 붙어보고 싶냐는 질문에 안현수보다는 노진규와의 제대로된 맞대결을 해보고 싶다 밝혔다. 2012년에 체력적인 부분에서 노진규에게 밀렸던게 약간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걸로 보인다. 반면 곽윤기랑은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겨뤄봐서 질렸다고 한다.

10. 2015-16 시즌

10.1. 국가대표 선발전

3차 선발전에서 심하게 부진하며 최하위를 기록. 대표팀 재승선에 실패한다. 하지만 2차까지는 선발에 성공 되었으므로 예비 멤버로 훈련하였다. 한편 곽윤기도 선발전에서 부진했지만 노련함을 발휘하여 최종 5위로 선발에 성공했다.

그런데 신다운이 출장징계를 받아, 김한울이 대표팀에 들어오고, 이번에는 김한울이 출장징계를 받게되어 차순위인 이정수가 3,4차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었다..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현재 곽윤기 박지원 이외에는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거나 대표팀의 중심이 되는 선수가 없기 때문에 신다운이 없는 지금 이정수에게 부활의 기회가 없지 않아 있다.문제는 지금 곽윤기가 1500미터를 너무 잘탄다 물론 마지막 순위에 있기 때문에 출장이 제한되고 월드컵에서 성적이 좋아 세계선수권에 참가가 가능하더라도 계주에만 출전이 가능하다.

10.2. 월드컵 시리즈

3차 월드컵에서 1000미터와 500미터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1000미터를 그것도 예선에서 광탈하면서 대차게 까이는중. 전성기때와 현재 1000미터가 운영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기도 했고[15] 원래 1000미터에서 아주 강한 선수가 아니라 더 고전한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준결승 진출도 못해보고 탈락한건 꽤나 충격적인 결과다.결국 믿을 사람은 곽윤기 하나인가..? 현재 폼으로는 주종목 1500미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많았다. 6차 월드컵에 곽윤기와 함께 1500미터 2차 레이스 결승에 진출했고, 이스라엘의 블라디슬라프 비카노프가 경기 초반에 한바퀴를 잡는 전략에 성공하면서 1위를 굳힌 가운데, 곽윤기와 함께 여러명의 타국 선수들을 상대로 아웃코스 추월을 성공해내며 3위로 골인해 월드컵 첫 개인전 메달을 목에 걸었다.[16]

11. 2016-17 시즌

지난 시즌 곽윤기에 이은 돌아온 '베테랑 에이스' 2탄
부활의 신호탄을 쏘는데 성공한 1500m 스페셜리스트

11.1. 국가대표 선발전

1차 선발전에서 21점을 획득해 3위에 랭크되어 있다. 엄청나게 선전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반면 2015/2016 월드컵 종합 우승자 곽윤기는 8점을 획득하는데 그쳐 6위에 머물렀다. 2차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 최종 3위로 선발 되었다! 직관평에 의하면 1-2차전 모두 몸이 상당히 가벼워 보였다고 한다. 10월에 치른 3차 선발전에서도 신다운에 이어 2위를 기록해 1~3차 선발전 종합 1위로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 및 2017년 동계 아시안게임 1000m, 1500m 종목 출전권을 획득했다. 오랜만에 턱걸이가 아닌 상위권으로 대표선발이 되었기 때문에 쇼트트랙 커뮤니티에서도 이번 시즌 이정수의 부활을 은근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11.2. 월드컵 시리즈

1차 월드컵에서 1500m에 출전하였다. 준결승에서는 중반부터 1-2위로 순위를 유지하며 결승 진출이 유력해보였으나, 뒤에 따라오던 선수들이 연달아 추월을 시도했고, 인코스 추월까지 허용하여 점점 순위가 내려갔다. 마지막에 아웃코스 추월을 시도했으나 이미 경기 후반이라 다른 선수들도 속도를 내던 상황이었고, 스피드가 그리 빠른편이 아닌 이정수에게 선두 탈환은 힘들어보였다. 마지막에 공간이 나오자 아웃코스로 앞에 있던 선수들을 추월하기는 했으나 아쉽게 3위로 골인해 파이널 B로 갔다.어 이거 지지난 시즌부터 보던 광경 아니었나?

파이널 B에서는 마지막 바퀴까지 거의 체력을 비축하다시피 경기를했고 막판에 시원한 아웃코스패스를 해내며 선두였던 프랑수아 아믈랭을 라인 코앞에서 역전시켜 1위를 기록했다. 준결승때도 이렇게 과감하게 탔어야 했다는게 중론이다.

마지막날에는 1000m 준준결승에서 앞에서 달리던 사뮈엘 지라르, 샤를 아믈랭, 티보 포코네 3명의 선수들 사이로 깔끔하게 추월해내는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1000m 준결승에서 치고나갈 타이밍을 놓치고 작전실패로 결승진출은 무산된다.

5000m 계주 결승에 출전해서 다른 한국 선수가 넘어지며 그대로 메달없이 경기를 마치나 했는데, 캐나다의 샤를 아믈랭이 꽈당을 시전해 준 덕분에 어부지리로 3위를 기록하며 동메달을 가져갔다.

2차 월드컵에서 1500m 1차 레이스는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메달을 따는데는 실패했지만, 1500미터 2차 레이스 결승에서 2위를 하며 드디어 메달을 목에 거는데 성공했다. 여담으로 이 결승 경기에서 1위를 기록한 싱키 크네흐트 노진규의 1500미터 세계신기록을 갱신해 많은 한국 쇼트트랙 팬들이 안타까워 했다.

3차 월드컵 1500미터 결승에서 드디어 오랜시간 끝에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다.[17] 결승에 싱키 크네흐트, 세묜 옐리스트라토프, 신다운 등의 장거리 강자들과 준수한 실력을 갖춘 존헨리 크루거가 모인 가운데 1위로 골인하며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특히 선두로 달리던 싱키 크네흐트가 속도를 계속 올리며 거리를 넓히려 했으나, 이정수가 뒤에 바짝 따라붙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두바퀴를 남기고 인코스 추월을 성공시키며 선두로 올라섰고 그대로 선두를 유지해 결승지점을 통과했다. 지난 경기들과는 달리 더 적극적인 모습이었고, 후반 뒤집기가 아니라 선두권에서 자리를 잡고 경쟁 상대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다 빈틈을 이용하는 전략을 썼다.
4차 월드컵에서도 1500m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번에도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라고 할 수 있는 싱키 크네흐트의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며 바짝 따라붙었고, 크네흐트가 아웃코스 추월을 할 때 같이 따라 나가다가 마지막 코너를 남기고 인코스 추월로 1위에 오른 후 그대로 결승지점에 골인했다. 3차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경기보다도 더 훨씬 자신감있고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줬다는게 대다수 평이다.

이정수의 개인 인터뷰에 따르면 09-10시즌 때보다도 더 기량이 높아진 느낌이라고 한다.

아시안 게임 출전으로 인해 5,6차를 결장했지만 최종 랭킹 6위로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이번 시즌 한국 남자 선수중에 가장 좋은 성적이다.

11.3. 2017 삿포로 동계 아시안 게임

1500m, 1000m, 5000m 계주에서 각각 동-3위[18]-은메달을 따냈다. 이정수가 처음으로 출전한 아시안 게임이긴 하지만, 사실 이정수는 올림픽 메달로 군면제가 되었기 때문에 딱히 금메달을 따야 할 동기부여가 없으므로 그의 첫 아시안게임 출전이라는 것 외에는 큰 의미는 없는 대회였다. 그렇다보니 군면제를 받지 못한 후배들( 신다운, 박세영, 서이라)을 위해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였다.[19] 그리고 주장으로써 한창 하락세였던 대표팀을 잘 이끌어준 것도 눈여겨볼만했다.

11.4. 2017 세계선수권

주종목인 1500m는 준결승 초반 런쯔웨이의 스케이트날에 오른발 바깥쪽 날이 부딪혀 넘어지면서 허무하게 마무리 지었다. 개인전을 치르는 삼인방중 가장 메달권이 유력해 보였던 선수라 많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가장 취약한 500m도 준준결승에서 탈락했다. 1000m에서는 준결승에서 탈락하여 파이널 B에 진출했고 3위를 기록하며 끝마쳤다.

결국 포인트 부족으로 슈퍼파이널 진출도 무산되었다. 지난 시즌 곽윤기와 비슷하게 월드컵에서는 기량을 회복했지만 세계선수권에서 아쉬운 결과를 냈다. 또한 이 세계선수권이 그가 개인전 출전자격을 가지고 출전한 첫 세계선수권이었기 때문에 더 아쉬움이 남았다.

12. 2017-18 시즌

12.1. 국가대표 선발전

2차 선발전까지는 통과했지만 1차에서 부진하여 포인트 획득이 너무 적었고 결국 최종 탈락하였다.

그런데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를 준비중이라는 소식이 나왔다. 2014년 소치 올림픽 출전을 위해 스피드 스케이팅에 도전한 이후로 두번째이다.

소치 올림픽이 걸려있던 2013-14 시즌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평창 올림픽을 위해 스피드 스케이팅 대표팀 선발에 재도전하였고 5000미터[20]와 1500미터 종목을 노렸지만 두 종목에서 모두 탈락하여 이정수의 올림픽 참가는 이렇게 다시 한번 무산이 되었다. 은퇴여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선수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 밝혔으며, 그렇게 되면 쇼트트랙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당연히 높다.

2018년 1월 1일부터 송경택이 코치로 있는 스포츠토토빙상단 쇼트트랙팀에 입단한다. 또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을 원한다고 밝혔다.

12.2. KBS 해설위원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진선유와 함께 KBS 해설위원을 맡았다. 가즈아, 빵셔틀 등 인터넷 유행어 드립을 날리거나, 오른발이 아프면 왼발로 타라, 여보세요 등등 제갈성렬을 잇는 드립욕심 충만한 해설로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2018년 2월 20일 여자 계주 3000m 결승전 중계 중 대한민국 팀이 선두로 들어온 후 비디오 판독을 기다리고 있을 때 "금메달 가즈아아아!"[21]라고 소리쳤다.

13. 2018-19~2021-22 시즌

13.1. 선수 활동

올림픽 이후에도 국가대표 승선에는 계속하여 실패했다. 2021-22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열린 국내대회에서는 좋은 컨디션을 보여 기대를 모았지만 정작 선발전에서는 다시 한번 부진하며 그의 2번째 올림픽 출전이 또 한번 좌절됐다. 2014년과 2018년에도 그랬듯이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팀 선발에 다시 도전했지만 결국 선발에는 실패했다. 현재로서는 은퇴 가능성이 높아보이나,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출연한 곽윤기의 유튜브 영상에서의 대화 내용을 보면 아직까지는 선수 생활을 지속하고 싶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동갑내기 친구인 곽윤기도 2022 세계선수권 대회 이후 은퇴선언을 번복하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도전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13.2. KBS 해설위원

2018 평창 동계올림픽때처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도 다시 진선유와 함께 KBS 해설위원을 맡았다.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와 2000m 혼성계주에서 큰 논란이 된 심판 판정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14. 2022-23 시즌

14.1. 국가대표 선발전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11위를 차지해 2차 선발전에도 진출했다. 500m 결승에 진출하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었는데, 2위로 결승전을 통과하며 21점의 포인트로 슈퍼파이널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슈퍼파이널에서 중간 5포인트를 획득하며 6위를 했고 2차 최종 5위로 마무리했다. 1, 2차 합산 결과 박장혁과 동점이었으나 2차 순위가 높은 선수가 우선이기 때문에 이정수가 최종 7위로[22] 국가대표 팀에 합류했으나, 예비 멤버이기 때문에 앞 순위 선수들이 부상이나 기권을 하지 않는 다음에는 공식 경기에 출전하기는 어렵다.[23]

15. 2024-25 시즌

15.1. 국가대표 선발전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깜짝 3위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고 2차 선발전에서 10위를 기록하며 종합 5위로 16-17시즌 이후 8년만에 국가대표팀 복귀에 성공했다.

15.2. 월드 투어

5000m 계주 준결승에서 3번 주자로 뛰었으나 후반부 이탈리아에게 추월을 당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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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를 들면 안현수, 이호석, 성시백 등이 포함된다. [2] 무릎팍도사에서 이승훈이 얘기했다. [3] 단 이쪽 언론도 올림픽을 앞두고 월드컵 랭킹만을 기준으로 평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아폴로 오노가 아직도 최고라고 여기는 곳에서 객관적인 평가가 나오기는 힘들다. [4] 다만 단체전이 아닌 개인 경기에서, 국적과 관계없이 자신의 최고 기록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스포츠에서 당연한 것이기에 3등으로 질주하던 이호석이 동메달보다 은메달을 위해 성시백을 추월하려 시도한 것이 잘못된 것인가라는 의견도 있긴 하지만 무리해서 들어오긴 했다. 더군다나 이 때는 성시백 선수가 군대 미필이었고 할리우드 액션으로 메달을 가져간 오노의 동료들이 메달을 가져가는 바람에 많은 비난이 있었다. 다행히 성시백의 어머니가 이호석에게 위로를 해줬고 성시백도 사과를 받아주면서 별다른 일없이 넘어갔다. [5] 이정수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할 수 있는데 좋은 스피드로 아웃코스로 추월을 시도하는 상황에 셀스키가 대놓고 손으로 밀었고 흐름이 끊긴게 굉장히 컸다. [6] 대한민국 남자 선수로는 김기훈 안현수, 진종오에 이어 2관왕을 달성한 네 번째 선수가 되었다. [7] 이호석이 또 넘어지는 바람에 곽윤기는 결승진출 무산, 성시백은 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코 앞에 두고 넘어지는 바람에 펜스에 충돌 이후 미끄러지며 3위로 들어왔으며 나중에 오노의 실격으로 은메달을 받았다. [8] 그 뒤 1000m 올림픽 신기록은 샤를 아믈랭이 갈아치웠고, 1500m 올림픽 신기록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임효준이 갈아치웠으며 당시 이정수 본인이 해설을 맡고 있었다. [9] 성시백은 벤쿠버 당시 쇼트트랙 담당 부회장 유태욱의 실업팀인 용인시청 소속이었고, 유태욱은 진선유를 지도했다. [10] 남자 3000m에서는 1000m를 1위로 통과한 선수에게 포인트가 주어진다. [11] 복숭아뼈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12] 이정수 다음 순위인 5위는 안현수였으나 그의 러시아 귀화 때문에 6위인 서이라가 기회를 얻었다. [13] 이한빈 박세영(쇼트트랙). [14] 아직 완전히 확정된건 아니지만 올시즌 성적과 기량만으로는 출전은 물론 개인전 출전도 확정이다. [15] 더 빠르게 진행된다. [16] 페이스북으로 전이경 변천사에게 축하를 받기도 했다. [17] 마지막으로 금메달을 땄을 때는 무려 11-12시즌 5차 월드컵 1500미터 금메달이다. 14-15시즌 3000미터도 있기는 하지만 이건 시범종목에 가까워서 큰 의미는 없다. [18] 아시안게임의 한 국가 금은동 싹쓸이 방지법에 따라 3위를 기록했으나 동메달을 받지는 못했다. [19] 물론 박세영같은 경우는 혼자 해냈다고 봐도 되는 케이스다. 서이라는 1000m 준결승에서 탈락위기를 이정수가 한티안위를 잘 견제해줘 결승진출을 할 수 있었다. 신다운은... 지못미 [20] 참고로 해당 종목에는 쇼트트랙과 유사한 방식의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인 매스스타트 출전권도 같이 걸려있다. [21] 심지어 즈를 z발음으로 아주 정확하게 발음했다. [22] 이준서가 자동선발이 된 관계로 사실상 마지막 순번이 되었다. [23] 실제로도 예비 멤버들이 경기에 출전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