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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5년 1월 |
출생지 | 황해북도 금천군 계정리 |
부모 |
부친 이병호(1937년생), 모친 박영순(1937년생) 형제자매 (이광수 본인 포함) 5명 전처(1992년 결혼) 장남(1994년생) 후처, 장녀, 차녀[1] |
학력 | 계정고등중학교 (졸업) |
1. 개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침투한 북한군 무장공비 중 생포되어 유일하게 생존한 인물.2. 생애
1965년 1월생으로 황해북도 금천군 계정리 출생이다. 협동농장원 출신인 아버지 이병호[A]와 어머니 박영순[A] 사이의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1981년 계정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조선인민군 육군에 입대했다. 1991년 8월부터는 인민무력부 정찰국 3기지에서 근무했고, 1992년 부대에서 정해준 여자와 결혼해 1994년에 아들도 하나 낳았다. 1995년 7월부터 조선인민군 해군으로 전군돼 22전대 2편대 1호 잠수함 조타수로 복무하다가 남한에 침투조가 탑승한 잠수함의 조타를 맡았는데 잠수함이 해변에서 좌초되며 그대로 고립된다. #다른 동료 둘과 괘방산으로 도망가면서 배가 고파 고생했는데, 동행했던 동료들은 "배고파서 더는 못 가겠다. 이곳에서 싸우다 죽자"고 했다고 한다. 그는 싸우다 죽기보다는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몰래 빠져나온 뒤 북쪽으로 도보로 이동했다. 그렇게 산 다섯 개를 넘었는데 날씨가 덥고 갈증도 심해 뭐든지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산을 내려와 민가에 접근했다가 집주인의 전화 신고를 받고 출동한 두 경찰 공무원인 최우영, 전호구 경장에게 생포되었다.
체포된 후 광어 회가 먹고 싶다는 말을 해서 한바탕 소동이 난 적 있다. 무언가 북한에 보내는 암호가 아니겠는가 하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런 게 아니고 남측 수사관이 술을 주면서 "안주로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묻길래 '(북한에서 듣던 대로) 남한이 그렇게 못 산다면 광어회 구해오는 데 시간 깨나 걸리겠지?' 싶어 했던 얘기라고 한다. 사실 광어는 양식되기 전까지만 해도 고급 횟감으로 알아주던 생선이라 그렇게 틀린 판단도 아니었다. 하지만 1980년대에 광어 양식을 성공한 후 광어는 길거리 횟집의 수조에도 빠짐없이 들어있고 횟집이라면 기본으로 메뉴판에 들어 있는 흔한 횟감 중 하나가 되었고, 잠깐 자리를 비운 수사관이 바로 광어회를 가져오는 걸 본 이광수는 충격받았는지 이후 조사에 순순히 응했다고 한다.
귀순하기로 선택하여 남한에 남았고, 대한민국 해군 군무원으로 특채되어 해군교육사령부 산하 충무공리더십센터에서 정훈 교관을 하고 있다.
나중엔 남한에서 새로 결혼도 하고 딸 2명을 낳았다. 1999년 경남대 법행정학부(야간)에 입학해 2003년 졸업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행정대학원 안보정치과에 진학해 안보정책학 석사학위도 받았으며 2016년엔 사건 20주년을 맞아 당시 자신을 체포한 경찰관과 해후하기도 했다. 기사 서로가 생명의 은인이라 하며 매우 깊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