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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01:25:42

윤준환

윤준환
파일:만화가 윤준환.jpg
<colbgcolor=#000><colcolor=#fff> 본명 윤인섭
출생 1941년 7월 13일
전라북도 익산군 이리읍
(現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사망 2024년 8월 29일 (향년 83세)
학력 이리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경력 한국만화가협회 정회원
동아만화미디어 대표
한국어린이만화연구회 회장
가족 배우자 이기원
슬하 1남 2녀[1]

1. 개요2. 생애3. 주요 작품4.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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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만화가. 꾸러기와 맹자로 잘 알려진 만화가이다.

2. 생애

1941년 7월 13일 전라북도 익산군 이리읍(現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시내 지역)에서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려서 인정을 받았고, 이리고등학교 입학 후 친구들과 같이 미대 입시를 준비하여 195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에 진학, 1학년 때부터 하숙집 친구 3명이랑 여러 신문과 잡지에 만화를 투고했다. 2학년 때 <아리랑> 지 신인만화공모전에서 3위를 따고 삽화가로 일했으며, 공군 3년 복무 후 4학년 2학기 때 <소년세계> 창간과 더불어 편집부에서 근무했다. 1968년 <소년조선일보>를 통해 '싱겁이'란 작품으로 만화가로 데뷔하여 1969년 <경향신문> 편집국 미술기자로 입사했고, 주간 <소년경향> 편집부로 일하다가 폐간 후 <주간경향> 편집기자 일도 도왔다.

1971년 KBS로 옮겨 미술 디자이너로 취직해 1995년까지 주로 보도국 보도미술부에서 일했으며, 그 와중인 1971년부터 28년 동안 <소년조선일보>에 '말썽천재 꾸러기'를 연재하였다(이때 필명으로 '윤준환' 명의를 썼다). 만화가 생활 내내 아침에 원고를 그린 후, 낮 2시부터 밤 11시까지 직장 생활을 해왔다.

1981년 <꾸러기 시리즈>가 어문각에서 처음 단행본으로 나왔고, 1990년대 초반까지 최대 18곳까지 연재할 정도로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1987년부터 4년 간 보물섬에 이 만화를 재구성한 '꾸러기와 맹자'를 연재하였다. 익살스럽고 장난끼스러운 두 캐릭터를 통해서 명랑적이고 활발하게 이야기를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93년 < 일요신문>에서 '물대포'를 연재하면서 시사만화 작가로 변신했고, 1995년 KBS 퇴사 후 1998년 동아일보의 동아만화예술대학 교수진으로 참여한 바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만화계의 침체로 활동이 너무 줄어들었으나, 2015년부터 사망 전까지 < 세상만사>를 연재해왔고, 그 외에 네이버 한국만화 거장전에서 비정규직론이라는 만화를 올려 호평을 받기도 했다. #

2024년 8월 29일 별세했다. #

3. 주요 작품

4. 출처



[1] 막내 아들 윤장원은 평소 존경하던 부친과 유사한 인생 경로를 밟아왔는데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를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되어 공기업에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배경 부산광역시다. 다만, 나중에 만화일기로 출간되었을 때는 표준어로 바뀌어 출간되었다. 다만, 아주 간간히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기는 한다. 우야꼬라는 이름부터가 동남 방언으로 '어떻게 하지?'라는 뜻이다. 그 외에도 아빠는 우짤래에 할아버지는 우야노, 심지어 증조부는 우야까, 고조부는 우짜지 등 5대가 줄줄이 경상도 사투리식 이름들을 가지고들 있다. [3] 케이블방송이 출범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90년대 초까지는 지상파 방송에서 주말마다 인기팀 위주로 프로야구 경기를 자주 중계해줬다. 심지어는 KBS1에서도 중계를 했을 정도였으니... 그 당시 KBS 아나운서를 역임했던 이계진씨의 자서전에서 80년대 KBS 별명이 "Korean Baseball System"이었다는 회고가 있다. 참고로 그 당시 KBS1에서는 지금의 중국 CCTV마냥 광고를 편성했었다. 공영방송이면서도 광고수익까지 다 들어왔던 시기다. [4] 지금도 암암리에 차별과 적대감이 남아 있는 마당이고, 또한 작가가 한창 활동할 당시는 정치인들의 농간으로 지역감정이 극에 달했을 시기였는데, 이런 와중에 어떻게 이런 걸 다 꾸밀 수 있었는지도 아이러니. [5] 쭈구리의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가 컨닝하게 네 시험지를 살짝 내려보라고 하자 쭈구리는 일단 거절했는데, 계속해서 요구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지경까지 가자 고민하던 쭈구리는 "그래, 내렸다! 실컷 봐!"라며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내보였다.(...) [6] 어머니는 아들이 스트레스로 나가도 오히려 "망할 자식 같으니, 지가 나가면 대수냐?"라고 화를 내지만 아버지는 그나마 아들 걱정을 하는 듯 "아무리 그래도 비가 이렇게 오는데... 우산도 없이 비 맞다가는 감기 걸릴텐데..."라며 걱정하며 한숨을 푹 쉰다. 나중에 쭈구리가 걱정되어 밖에 나선 할아버지가 이후 전화해 아들이 병원에 있다고 하자 어머닌 표정 변화가 없지만 아버지는 "뭐, 뭐라고요? 우리 쭈구리가 병원에?!"라면서 거의 기겁할 듯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