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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94545,#2d2f34><colcolor=#FFF,#FFCB08> 음악 | 디스코그래피 ( 솔로) | |
소속 그룹 | YB | ||
사건사고 |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재 | ||
기타 | 윤도현의 러브레터 · 두시의 데이트 윤도현입니다 · 방송 · 유튜브ㆍ 4시엔 윤도현입니다 | ||
윤도현 음반 목록은
틀:윤도현의 음반목록 참고 YB 음반 목록은 틀:YB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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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PD < 친구여(Feat. 인순이)> (200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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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철 <슈퍼스타> (200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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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81e1e><colcolor=#fff> 윤도현
尹度玹|Yoon Do-hyun |
|
출생 | 1972년 2월 3일 [빠른생일][음력] ([age(1972-02-03)]세) |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現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파평 윤씨 (坡平 尹氏) |
신체 | 176cm[3], 74kg, 270mm |
혈액형 | O형 |
MBTI | INFJ [4] |
학력 |
문산초등학교 (졸업) 문산북중학교 (졸업) 문산고등학교 (졸업) 인천전문대학 (토목과 / 중퇴) 성공회대학교 ( 신문방송학 03 / 제적[5]) |
직업 | 싱어송라이터, 뮤지컬 배우, 유튜버, 라디오 디스크자키 |
가족 | 부모님, 남동생 윤규현 |
배우자 이미옥[6], 딸 윤이정(2005년 3월 2일생)[7] | |
데뷔 | 1994년 12월 정규 1집 〈 가을 우체국 앞에서〉 |
소속사 | 디컴퍼니 |
소속 그룹 | YB |
포지션 | 메인보컬, 기타, 베이스, 키보드 |
종교 | 개신교( 예장통합)[8]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제9보병사단 상병 소집해제[9] |
취미 | 스케이트보드, 산악 자전거 |
링크 | | |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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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록 밴드 YB의 보컬이자 리더이기도 하다.2. 주요 활동
2.1. 음악 활동
1집에 담긴 사진 |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본 도어즈의 공연 실황 영상으로 음악에 빠지게 된다. '단두대' 라는 스쿨밴드를 결성. 드러머로 처음 밴드 음악을 시작했다. 헤비메탈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92년 파주의 포크 음악[11] 동아리 '종이연' 에서 활동을 시작했다.[12] 1994년 1집 앨범 <가을 우체국 앞에서>로 솔로 데뷔(종이연 활동당시 곡)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댄스 음악과는 성향이 달라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13] 데뷔 무대를 가요톱10에서 가졌는데, 당시 댄스그룹 팬들이 노래에 집중하지 않고 떠들자 "거, 박수 좀 쳐주세요!" 라고 껄렁한 태도로 소리를 친 일화가 유명하다. 훗날, 윤도현은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서 직접 그때의 뒷이야기를 해줬는데, 정말로 화가 나서 한 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데뷔 시절의 영상을 자세히 보면,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으로 얼굴이 굳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댄스 음악이 주류였던 당시 가요계 분위기에 밀려 초기에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1집이 아쉬운 성적으로 끝난 뒤 라이브 무대를 전전하며 활동했는데, 이 시절부터 윤도현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격려해 주던 선배 뮤지션들이 상당히 많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광석과 신해철. 김광석이 윤도현을 자신의 콘서트에 데리고 다니면서 전도 유망한 후배라고 소개했던 일은 유명한 이야기며, 신해철 또한 영화 정글 스토리 OST 작업 당시 앨범 부클릿에 윤도현을 "앞으로 크게 될 윤도현"이라고 적어놓은 바 있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이등병의 편지>의 작곡가이자 윤도현과 고향(파주)이 같은 선배 뮤지션 김현성도 이 시절 많은 도움을 줬다[14].
김광석과의 인연은 윤도현이 다른 가수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했을 때 김광석이 그 모습을 보고 뻑가서 자신의 공연에 게스트로 데리고 다닌 것이라고 한다.[15] 아는 형님에서 밝히기를 김광석에게 가장 크게 감동했던 일이 게스트 출연을 위해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KFC 치킨을 사줬던 것이라고 한다. 정확하게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받은 것이 아니라 대기실에 들어가면 항상 주문해놓은 치킨이 누구건지 몰라서 못 먹고 있다가, 공연이 끝난 뒤 김광석에게 겨우 말을 꺼내서 먹어도 되냐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해줬고 그 다음 날 공연을 갔더니 아예 한 박스 더 다서 '도현이 거' 라고 써놓았다고 한다. 이러한 김광석과의 인연으로 윤도현은 김광석이 사망한 뒤 매해 추모 콘서트와 추모 앨범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답하고 있다.[16]
영화 정글 스토리에 윤도현은 주연으로 발탁되는데, '타잔' 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경력이 캐스팅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참고로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이 윤도현의 어릴 적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니(개봉 당시 자평) 관심 있다면 한 번 보는 것도 좋다.[17] 참고로 이 음반에 실린 <가을 우체국 앞에서>와 <사랑 Two>는 2002년 라이브 앨범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고 노래방에도 뒤늦게 등록되었다. 현재까지도 YB의 대표곡으로 사랑받고 있고, 윤도현 본인도 편곡해서 리메이크 앨범에 수록하기도 하였다.
1996년 2집부터 윤도현은 1집 녹음에 세션으로 참여했던 김진원, 유병열, 박태희와 함께 윤도현 밴드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 ' 너를 보내고' 등 특유의 시원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록발라드가 뜨면서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된다.[18] 윤도현의 1집 시절엔 많은 사람들이 그를 ' 포크록의 기대주' 정도로 평가하고 있었는데, 밴드를 결성하면서 하드록으로 방향을 바꾼 것. 물론 이후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긴 하지만, YB의 4집 시절까지는 유병열이 밴드의 활동 방향을 잡고 있었다고 한다. 또 솔로 활동 등에선 포크록 음악도 불렀다. 오세암의 OST로 삽입된 이소은과의 듀엣곡 '마음을 다해 부르면'이나 2005년 솔로 활동 당시 불렀던 ' 사랑했나봐'가 대표적이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당시 김경호나 박완규[19] 등에 비해 무명 락커였으나[20] 그 당시에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수준이었고[21] 전문가들 역시 기대주로 보고 있던 찰나 1999년 너를 보내고의 히트로 대중적 가수가 되면서 이후 2000년대까지 꾸준히 히트곡을 낸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엔 윤도현 밴드 버젼의 오 필승 코리아가 뜨면서 거의 국민밴드가 된다.
윤도현의 밴드 활동 사진(2000년대 이후) |
2.2. 뮤지컬 활동
뮤지컬 활동도 데뷔 때부터 활발했다. 록 발성을 주로 쓰기 때문에 일반적인 뮤지컬보다는 주로 록 뮤지컬을 표방하는 작품에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본래 포크/발라드 쪽으로 보내질 뻔 했던 감성과 목소리가 남아 있는 덕에 감성극에 등장하는 경우도 곧잘 있는 편이다.환경문제를 다룬 김민기의 작품 <개똥이>에서 1995년 아주 초창기에 운 좋게 주연 '개똥이' 로 발탁된 것이 뮤지컬 데뷔.
이후 고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로 만들어진 < 광화문 연가>에 2011년 초연과 2012년 재연에 참가했다. 광화문연가 초연 기획 당시 병상에 있던 고 이영훈 작곡가가 윤도현에게 직접 출연을 부탁하여 성사되었다. 2012년판에는 YB가 블루아지트 밴드로 함께 참여했는데, 허준의 감정연기와
2013년 <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는 16년 만에 다시 유다 역으로 출연했다. 16년 전보다 깔끔해진 외모는 덤. 역대 최고령 유다인데 3옥타브를 넘어서는 초고역 노래를 쉽게 소화하는 위엄을 보였다. 2015년에는 뮤지컬 < 원스>의 '남자' 역으로
2021년 7월부터 뮤지컬 광화문 연가에 중년 명우 역으로 출연한다. 앞선 2011년에 공연 된 버전이 아닌 2017년 초연 버전의 광화문 연가다. 이후 2024년 사연에 다시 한번 출연한다.
2.3. 유튜브 활동
자세한 내용은 윤도현/유튜브 문서 참고하십시오.2.4. 방송 활동
자세한 내용은 윤도현/방송 활동 문서 참고하십시오.3. 가창력
포크 씬에서 처음 음악 생활을 시작한만큼 탄탄한 중저음과 함께 한국 락씬의 레전드 중 한명으로 뛰어난 고음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많은 락커들이 젊은 시절 목을 혹사하다 나이가 들면서 역량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반면, 윤도현은 라이브 무대 많이 하는 가수임에도 여전한 유지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뛰어난 성대 능력에 더해 윤도현만의 개성 있는 음색이 더해져 대중성까지 확보한 매우 드문 락커다. 한국에서 윤도현보다 더 대중적인 락커라고 해봤자 한손에 꼽을 정도.[23]윤도현의 보컬은 다음과 같이 요약 가능하다. 성대의 강한 피지컬 + 다양하고 입체적인 소리 + 담백한 표현과 기교. 실제로 윤도현은 공명강을 최대로 활용하고 쉬프팅 사운드[24]와 거친 스크래치, 성대를 꽉 붙인 단단한 소리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프로 가수들 중에서도 강하고 두터운 편인 음색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고음에서도 특유의 음색을 잘 잃지 않는다.
발성적인 측면을 보자면, 흔히 전문가들이 성대 접촉이 잘되는 가수로 김범수, 이적, 하현우 등과 함께 꼽는 보컬 중 하나인데, 그 덕에 소리가 굉장히 단단하고 선명하며 음색이 굉장히 진하게 드러날 뿐 아니라 오랜 시간 가창을 해도 성대가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25] 덧붙여 이렇게 정석적으로 올바른 발성을 `사용하는 보컬들이 듣는 '개성의 부족'이란 비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본인의 주 장르인 락에 걸맞은 파워풀한 벨팅 창법 외에도 성구 전환 이후 소리를 까뒤집지 않으며 힘 있게 내는 창법[26], 정석적인 두성 창법이나 중성 류의 깔끔한 고음, 거기에 폭발적인 샤우팅까지 다양한 발성과 창법을 높은 완성도로, 짧은 시간 내에 오갈 수 있는 극소수의 보컬리스트 중 한 명.[27]
발성의 안정감 역시 한국 최고 수준인데, C5(3옥타브 C)에서 Breathe Support[28]가 가능한 남성 보컬이다.[29] 게다가 바리톤에 가까운 음색을 갖고 F4부터 C5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파워풀한 공명을 사용하는데도 안정적인 성문 하압으로 호흡 지지를 이루어낸다. 덕분에 중음의 다이나믹은 물론이고 고음역대 연주 능력까지 뛰어난 발성 괴수.[30]
고음에서 후두가 올라가지만[31] 성대 근육 자체가 워낙 발달한 터라 성대의 접촉이나 소리의 밀도 자체에 변함이 크게 없는 괴물 보컬리스트다. 성대를 얇은 상태로 만들어서 굉장히 강력한 힘으로 접촉시킨 뒤 내는 소리는 윤도현만의 음색이 담겨 맑은 피치감과 단단한 질감을 모두 갖고 있다. 많은 이들이 비음으로 착각하지만 이는 워낙 피치가 얇고 높다 보니 생기는 착각일 뿐, 실제로는 비음과 달리 발성적으로 가는 무리가 0에 가까운 아주 질 좋은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윤도현의 발성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 이러한 부분. 3옥타브 미(E5) 정도의 음역은 음색이 진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단하게 발성하는 게 가능한 무시무시한 보컬. 실제로 윤도현은 뛰어난 발성과 타고난 성대의 힘으로 극저음부터 초고음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다. 그만큼 발성이 대단한 것. 이로 인해 초고음 역시 탁월하게 소화하지만 두꺼운 톤을 가진 보컬들에 적절한 중고음도 남들보다 훨씬 공명감있게 부른다.[32]
이렇듯 성대의 접촉력 및 강도가 상당히 센편이기 때문에 라이브에서 삑사리 등의 실수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당장 아무리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라도 유튜브에 OOO 실수를 검색하면 그 가수의 실수들을 모아놓은 영상들이 있는데, 윤도현은 그런 영상 자체가 없다. 또한 음감[33] 및 박자 감각 역시 무척이나 뛰어나 빠른 록을 주 장르로 하는 가수임에도 박자, 음정 실수가 없다. 정말 기복이 적다. 이타카로 가는 길을 촬영하는 도중에는 워낙 스케쥴이 빡빡하고 시차 적응 등의 문제도 있고 했기 때문에 제아무리 실력파 가수라도 컨디션 조절이 굉장히 힘든 상황[34]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크게 컨디션 난조를 보였던 적이 없다.
성대 근육도 남들보다 발달해 성대결절도 쉽게 걸리지 않는 성대라고 한다.[35] 그래서 자신만의 목소리가 뚜렷하며 어떤 장르들도 전부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하는 편이다. 음역대 역시 넓어 깊은 저음부터 3옥타브 도(C5)~ 미(E5)에 육박하는 고음들도 목소리 변화 없이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낸다.[36] 데뷔 직후엔 3옥타브 솔(G5)에 육박하는 스틸하트의 명곡 She's Gone을 원키로 앉아서 완창하는 기염을 토한 적도 있었고, 전성기 시절에는 하루살이에서 보여줬듯이 3옥타브 솔(G5) 이상의 포르타멘토 샤우팅에 비브라토를 넣어 부르기도 했다. 나이 들어서도 신의 목소리라는 프로그램에서 윤민수와 함께 부른 호랑나비라는 곡에서 3옥타브 파♯(F♯5)을 지르기도 하였다.
2018년 9월 국카스텐과의 합동 공연인 '몽타주' 콘서트에서도 죽지 않은 굉장한 가창력을 선보인 바 있다. 47세의 나이에도 국카스텐의 곡 중에서도 최상위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곡인 거울을 2키 낮추고 완창하면서 곡 막바지에 3옥타브 도(C5) → 3옥타브 레(D5) → 3옥타브 미(E5)로 이어지는 샤우팅을 보여주었다.[37] 참고로 바로 전 주 '아는 형님'에 출연했을 때에는 '거울' 1절을 원키로 완창한 바 있다.
2021년 8월 26일에 엔플라잉 유회승과 함께 뮤지컬 홍보를 하러 제시의 쇼!터뷰에 출연했을 때 제시가 유회승의 긴장을 풀기 위해 유회승의 6단 고음이 유명하니 지금 한번 해볼 수 있냐고 물었고 이에 유회승이 보여드리겠다며 라이브로 6단 고음을 선보였다. 그걸 들은 제시가 윤도현을 보고 오빠 이거 돼요?라고 물었고 이에 윤도현은 못한다고 답했으나 이 말을 듣고 제시가 실망하자, 유회승이 이렇게 하면 된다며 음을 알려주자 짧게 나마 6단 고음을 선보였다. 영상.
파워풀한 성대 접촉을 토대로 벨팅 창법을 자주 사용하며 속이 꽉 찬 단단한 소리[38]를 자랑하지만, 벨팅의 단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성대 피로도 같은 문제들도 특유의 무지막지한 성대 근육 덕에 그다지 보이지 않고[39] 음정이나 박자, 세밀한 감정 표현같은 기교적/컨트롤적 면[40]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보이는 완전체 보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벨팅 창법에서의 뛰어난 역량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그것만이 내세상 커버인데, 후렴구에서 부담스러울 정도의 고음이 자주 등장하는 노래인데도 특유의 벨팅 처리에 스크래치에 비브라토까지 넣어 여유롭게 완창한다.
물론 벨팅은 샤우팅이나 스크래치처럼 어디까지나 창법의 일환일 뿐 윤도현 발성의 기저는 기본적으로 “접촉이 잘 된 강한 두성” + “뛰어난 피치와 안정된 후두 위치를 바탕으로 한 소리 질감”이다. 여기에 록 장르의 곡을 부를 때는 보다 강렬하고 강한 접촉에 스크래치까지 넣어 벨팅 창법을 자주 쓰는 것. 그 와중에도 높게 찌르는 두성 피치와 귀가 얼얼할 것 같이 쨍하게 들리는 성대 접촉은 유지하니 그야말로 괴물이 아닐까 의심될 지경. 게다가 많은 가수들이 성대 접촉을 강하게 하기 위해 목을 좁히는 실수를 많이 범하는데(가성대와 주변 공간까지 좁혀가며 성대를 강하게 조이는 것을 말한다) 윤도현은 성대 자체의 힘이 워낙 강해서 목을 조이지 않고도 성대를 강하게 붙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강한 성대 접촉에 워낙 능한 가수인데도 풀어서 내는 소리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물론 발성적으로는 조금 더 위험한 소리일 수 있으나 곡의 표현을 위해 자신의 성대가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는 그냥 사용하는 듯. 대표적으로 박하사탕 최후반부 “나 돌아갈래”에서 “갈래” 부분이 각각 2옥타브 시(B4)와 2옥타브 라(A4)인데 이때는 소리를 살짝 풀어 기식음도 주면서 느낌 있게 부른다. 물론 윤도현이 저 정도 음역에서 성대 접촉을 못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당장 박하사탕 3절 후렴구 시작할 때 나오는 애드리브는 2옥타브 시(B4)를 길게 끔에도 역시 표현을 위해 강하고 단단하게 접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폭발적인 성량과 강력한 성대 능력을 기반으로 한 넓은 음역대, 파사지오 구간을 지나도 음질의 차이가 거의 없는 존재감 있는 목소리를 가졌으며, 특유의 강력한 성대 접촉과 이를 유지하면서도 넓은 공명강 덕에 넓으면서도 강력한 고음을 낼 수 있다. 사람들이 윤도현을 저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YB의 곡들이 중음 정도의 음역대[41]를 가졌기 때문에 음역대가 낮다...는 것인데, 이는 근거 없는 매도에 해당한다. 윤도현의 하드웨어는 역대 대한민국 보컬 하드웨어 순위를 매겨도 상위권에 랭크될 수준으로 매우 강력하다. 바리톤 성종이라고도 하나, 이는 공간을 잘 활용하는 그의 보컬 특성상 음에 비해 소리가 두껍게 들리는[42] 윤도현 발성의 특성일 뿐, 음역대로 보나 발성 능력으로 보나 당연히 테너다. 물론 나얼이나 김범수같이 얇다 못해 간드러지는 수준의 성대를 가진 테너는 아니지만, 타고난 톤 자체가 남들보다 높은 테너임은 당연한 사실. 특유의 스크래치와 공명감을 이용한 폭발적인 샤우팅도 곧잘 소화해내기 때문에 전성기 시절의 실질적 음역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다. 특유의 단단한 샤우팅[43]으로 3옥타브 파(F5)까지 소화 가능하며[44] 그 질감은 상상 그 이상. 그 이상의 샤우팅은 아무래도 성대 접촉이 조금 약해지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다른 가수들의 샤우팅에 비하면 엄청 단단하다.
2010년대 들어선 전성기 시절보다 음역대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전성기를 맞고 있는 여타 락 보컬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다.[45] UV 피처링 당시엔 샤우팅으로 3옥타브 솔(G5)을 올리기도 했고, 두성으로 순간적으로 뽑을 수 있는 최대 음역은 3옥타브 레♯(D♯5)[46]에서 3옥타브 미(E5)[47] 사이로 보인다. 2018년 현재로서도 3옥타브 대의 진성 고음이 가능한 듯하다. 불과 6개월 전인 록 페스티벌에서도 국내 락발라드 곡 중 최상위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잊을게'를 원키로 완창한 뒤 3옥타브 레♯(D♯5)~ 3옥타브 도(C5)로 이어지는 진성 애드리브를 선보인 적이 있다. 심지어 3옥타브 레♯(D♯5)에서 중음역대와 같은 수준의 무시무시한 성대 접촉을 보여주었다.[48] 게다가 2018년 평양 공연에서도 곧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리즈 시절 못지않은 성대 접촉과 고음 질감을 선보인 바 있다. 물론 관리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꾸준함계의 괴물이다. 그리고 2024년 대학 축제 시즌에서 뽀로로의 오프닝인 노는 게 제일 좋아를 메탈 버전으로 편곡해서 불러 3옥타브 파♯(F♯5)을 여러 번 지르기까지 했다. 정말 자기관리의 끝판왕.
이 진성 위주의 폭발적인 고음과 파워 덕에 붙은 별칭이 일명 핵폭탄 고음. 간혹 그의 락 창법이 잘 드러나는 영상에 대한 평가를 보면 '마치 고음에서 핵폭탄 터지는 것 같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성량과는 별개로, 고음에서 전혀 얇아지지 않는 소리와 그 밀도가 여타 가수들에게선 쉽게 느낄 수 없는 질감을 준다. 한편,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 시기에 많이 불렀던 하드록 곡들은 상당한 고음과 피지컬을 요구한다. 물론 이후에 나온 곡이나 락발라드 역시 2옥타브 후반대의 중고음역을[49]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50]
보면 음정을 잘 맞추는 보컬이다. 주 장르가 락이라서 넓은 음역대를 필요로 하고, 밴드 음악을 하는 만큼 밴드 사운드의 소리를 뚫을만한 풍부한 성량이 필요키 마련인데, 그런 조건들 속에서도 음정이 어긋나는 일이 거의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지만, 프로 가수들도 고음역에서 많은 성량을 필요로 하는 곡들일수록 음정을 맞추기가 힘들다. 또한 특유의 호흡법은 라이브 도중 숨소리가 거의 들리는 일이 없을 정도로 유려한데, 이 장점들에 윤도현의 굉장한 무대매너와 YB의 명곡들이 더해져 그야말로 미친 라이브를 뽑아내는데 일조한다.
단점이라면 가성 구사를 힘들어한다는 것이다.[51] 애초에 진성으로 성대가 많이 단련되어 있고, 그래서 가성을 구사하는데 자신이 없어 한다.[52]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에서 성시경의 거리에서가 선택되자 "가성을 못 내요..." 라며 의기소침하는 모습을 보였다.[53] 깔끔한 가성은 아니지만, 윤도현 만의 허스키한 가성을 잘 구사한 무대 영상
덧붙이자면 그가 벤치마킹했던 보컬은 딥 퍼플의 이안 길런과 주다스 프리스트의 롭 헬포드라고 한다.[54]
오랜 가수 생활 동안 창법의 기본적인 틀이 유지되었으나 세부적으로는 조금 다르다. 과거에는 저음 파트에서 힘을 빼 읊조리듯 부르고 고음 파트에서 강하게 지르는 유형이었으나 지금은 힘 조절을 하여 낙차 없이 일정한 톤으로 부른다. 이는 그가 체력적으로는 약간의 하락세를 겪고 있지만 발성에 있어서는 좀 더 견고해졌다는 뜻이다. 2003년 2022년 영상을 보면 목에 힘을 덜주고 공명강을 더 활용하는 점이 눈에 띈다. [55]
4. 음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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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음반 목록 ▶ |
윤도현의 솔로 1집은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서 YB의 정규 1집을 겸한다. 실질적으로는 솔로 2집이 진짜 솔로 1집이라고 할 수 있다.
5. 히트곡
- 가을 우체국 앞에서 (1994)
- 사랑 Two (1994)
- 너를 보내고 (1999)
- 담배가게 아가씨 (1999)
- 오 필승 코리아 (2002)
- 잊을께 (2003)
- 사랑했나봐 (2005)
- 나는 나비 (2006)
- 흰수염고래 (2011)
6. 여담
- 스펀지에서 파평 윤씨 가문이 잉어를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확인할 때 불렀던 두 연예인 중 한 명이다. 당시 정확한 사연 제보명이 "윤도현은 잉어를 먹으면 아버지한테 혼난다."여서 영상에서 가장 먼저 등장했고, 뒤이어 등장한 다른 한 명은 윤성호였다.
- 1994년 데뷔 동기임과 동시에 친구 사이인 연예인으로 김경호와 유희열이 있다. 둘 다 1971년생이지만 빠른 1972년생인 윤도현과 친구라고.[56] 실제 김경호는 당대 인기 락커로 은근한 라이벌 기믹도 있었지만 윤도현이 진행하는 tv/라디오 방송에 얼굴을 자주 비추는 편이었다.[57] 또한 과거 윤도현 콘서트 게스트로 등장한 적도 있었다. 링크.
- 강산에와도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무명 시절 만났던 친구 김C와 함께 강산에를 많이 따랐다고 한다. 참고로 소속사도 다음기획(현 디컴퍼니)이라고 같은 회사였는데[58] 2018년 기준 강산에는 다른 소속사로 이적했다. 확실한 것은 윤도현에게 영감을 준 선배 가수가 강산에라는 것. 목소리가 비슷하단 사람도 있는데, 들어보면 강산에가 좀 더 중후한 톤이라 차이는 있다.
- 1박 2일 백두산편에서 김C가 말하기를, 원래 경기도 파주에서 살다가 독립하여 살았던 곳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이다.
- 판타스틱 듀오에서 밝히길, 전인권을 존경한다고 한다. YB 멤버들 모두 들국화를 자신들의 롤모델로 꼽았으며, 오랫동안 YB 콘서트의 마지막 곡은 돌고 돌고 돌고였을 정도였다. 윤도현은 2007년 전인권이 메스암페타민 투약 혐의로 구속됐을 때 김장훈과 함께 법정까지 출석해 치료를 위해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 가장 아끼는 후배 중 하나로 버즈의 보컬리스트 민경훈을 뽑았다.[59] 아는 형님에 출연하여 보고싶었던 사람으로 민경훈을 선택하기도 했다. 버즈의 잠정해체로 인한 민경훈의 슬럼프 시절 '밥 한끼라도 사주면서 대화 좀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민경훈은 '우리의 시작을[60] 만들어준 사람에게 잘 안 돼서 찾아가는게 어려웠다'라고 했다.
- 2000년경에 4집으로 YB를 해체하고 개 분양업에 잠시 몸을 담았던 적이 있었다.[61] 그런데 3개월 정도 전념하던 중 4집 수록곡 '너를 보내고'가 뒤늦게 인기를 끌자 소속사 사장이 다시 음악을 하자고 해서 접었다고 한다. 그리고 키우던 개들은 팔기가 그래서 전부 친구들에게 분양해 줬다고 한다.
- 2002년 월드컵 당시 ' 오 필승 코리아'가 대박을 치면서 당시 과장 좀 보태 안 불러본 대중이 없다시피 하다보니 국민 밴드 비슷하게 되어버려 광고 모델로도 많이 활동하게 된다. 4개월간 10억 CF. 하지만 록 하면 따라오는 ' 저항', '비주류'같은 선입견이 있다보니 광고 많이 찍었다고 YB의 안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다.[62] 다만 CF를 받을 때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받는 듯하다. 코카콜라에서 8억 원짜리 CF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실소득은 약 10억 원 이상) 거절했다고.[63]
- 윤도현이 축구에 대한 진지한 애정이 없으면서 월드컵을 이윤 추구로 이용한다고 비판하는 축구 팬들도 있다. # 사실 윤도현 본인도 '오 필승 코리아'가 너무 떠버려서 자신이나 밴드에 너무 축구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에 대해서 부담스럽다는 투의 토로를 한 적도 있다. 아무튼 이미지를 벗긴 힘든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응원가도 맡았다. 매년 월드컵 시즌만 되면 축하가수로 항상 나온다.
- 2002년 평양 공연 때 간 가수이기도 한데, 이때 본인을 놀새떼(오렌지족, 날라리 같은 뉘앙스의 북한 은어)라고 표현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때 너를 보내고를 불렀는데, 이후 탈북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게 공연 이후 북한에서 대박이 나서 당시 북한 젊은이치고 이 노래 안 불러본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64] 이후 2018년 평양 공연에도 참여해 16년 전 평양 방문을 회상하기도 했다.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도 배석해 만찬장에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와 '나는 나비'를 부르기도 했다.
- 2002년 평양에 공연을 갔을 때 같이 따라간 부사장 이름이 다름아닌 김정일이었는데, 방북을 앞두고 통일부 측에서 절대 함부로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윤도현도 이 얘기를 듣고 쫄아서 직원들에게 조심하라고 교육까지 했지만, 공연이 끝나고 옥류관에서 대동강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던 중 술기운에 긴장이 풀렸는지 윤도현 본인이 이걸 까먹고 마침 일행과 떨어져 서있던 부사장에게 "야 정일아!"라고 소리치는 대형사고를 쳤다(...) 식당 분위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고, 윤도현은 동명이인이라며 열심히 해명을 해야 했다고 한다.[65]
- 2012년 9월에 출시된 UV의 신곡 '그 여자랑 살래요' 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뮤직비디오에서도 유세윤의 삼촌으로 열연(?)을 펼치기도 했다. 가발을 쓰고 진공청소기를 기타삼아 펼치는 퍼포먼스가 인상적.
- 공연이나 콘서트 때 원래는 욕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66] 한 여성 팬이 어느 날 편지를 보내 좋아하는 가수라고 소개하며 자식 델고 공연장 갔는데 욕을 너무 많이 해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는 내용을 전해와 이후 욕을 안한다고 한다.[67] 본인 말에 의하면 하필 그 공연이 특히 욕이 심했던 공연이었다고 한다.[68]
- 2005년 '사랑했나봐'는 짱구는 못말려 한국 에피소드에서 등장했다. 마츠자키 우메(나미리 선생)가 해외로 떠나는 도쿠로와의 갈등을 해소하고 공항으로 그를 쫓아갈 때 흘러나왔다. 일단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분위기에 잘 맞게 넣었다는 평. 그 외에도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 SBS 버전 오프닝 역시 윤도현이 불렀다. 여러모로 애니메이션과 관련이 깊은 가수다.
- 2002년 6월 15일 뮤지컬 배우 출신 이미옥 씨과 결혼식을 올렸고, 3년 뒤인 2005년 딸 윤이정 양을 낳았다. 부모의 성을 모두 썼고 정이라는 이름은 초코파이 CF에서 보고 따왔다고 밝혔다. 2010년 Olive TV에서 '윤도현의 파파걸 인 런던' 리얼리티를 방영, 윤도현과 윤이정 양이 함께 영국여행을 떠나는 에피소드가 공개된 적이 있다. 야무지게 행동하며 분량을 챙겨가는 윤이정 양의 귀여운 모습이 포인트. 마지막날에는 동료 기타리스트의 집을 찾았는데, '사랑을 지켜야 해' 라는 제목의 노래를 같이 만들었다. 2011년 YB의 싱글 앨범 <꿈을 뺏고 있는 범인을 찾아라> 의 앨범 커버 역시 딸이 그렸고, 2012년 9월 SBS 정글의 법칙 마다가스타르 편에서는 직접 나레이션을 같이 했다. 2022년 현재는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생이며, 제주도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다. 윤도현이 딸의 학업 때문에 제주도로 이사해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 후배 가수들도 요청하면 꾸준히 곡을 주는 중이다. 정진운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지금이 아니면' 은 YB의 박태희가 작사, 윤도현이 작곡했으며, 연주도 YB가 직접 했다고. 또한 윤하에게 준 'One fine day', 김재중에게 준 'Now is good', 가희에게 준 '색색의 세계' 등이 있다. 대중적으로 뜨진 못했어도, 각 노래들은 각 가수의 팬덤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 영화음악 작업 또한 꾸준히 하고 있다. <한반도> OST인 YB의 '1178' 을 비롯해 2013년 3월 <전설의 주먹>의 주제곡으로 YB의 '후회 없어' 를 영화에 맞게 개사하였고 그 해 10월 개봉한 영화 < 소원>의 주제곡 '소원' 을 작사, 작곡, 노래해 노 개런티로 제공하였다. 2015년 12월 개봉한 히말라야의 주제곡으로 산울림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를 리메이크하여 배우 황정민과 함께 녹음하였다.
- 2014년 10월 27일 가수 신해철이 사망했을 때 눈물을 보였고, 발인식에서는 직접 위패를 들고 고인을 배웅했다.[69] 신해철이 과거 정글 스토리 OST 앨범 부클릿에 '앞으로 크게 될 윤도현'이라고 치켜세워준 선배이기도 하였으니, 윤도현 입장에서는 김광석을 떠나보낼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많이 도와준 선배를 하늘나라로 보낸 셈이다.
-
걸그룹 노래를 많이 커버했던만큼걸그룹 멤버들과의 친분도 꽤 두터운 편이다. 카라의 허영지, 모모랜드의 주이, 2NE1의 산다라박, 소녀시대의 수영, EXID의 하니 등과 절친하다.
- 주변 사람들에게 확실히 의리가 있다고 한다. MC몽이 병역기피 사건으로 자숙 중일 때 한 트위터 유저가 MC몽을 사칭해 자신이 복귀 앨범을 준비 중인데 피처링을 해달라고 윤도현의 트위터에 멘션을 남겼는데, 윤도현은 곧바로 해주겠다고 답을 달았다고. 물론 사칭이기 때문에 진짜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평소 아는 사람에 대한 의리가 확실히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과거에는 상당한 골초로 담배 피우는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2010년대에 들어 금연했다고 한다. 보드에 취미를 붙히게 되면서 흡연으로 체력이 떨어져 보드 타기가 힘들어지자, 과감하게 담배를 포기했다고... YB의 다른 멤버들도 모두 흡연자였지만 2013년부로 전 멤버가 금연한 밴드가 되었다.
- 이와 연관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밴드가 뜨면 보컬이 뛰쳐나가 솔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70] 가요계에서 오랫동안 밴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나는 가수다'에서는 처음 단독으로 섭외되었음에도 끝까지 YB와 함께 하여 결국 방송 중반 이후부터는 YB로 명칭이 표기되기도 했다.[71] 실제로 라이브 무대에서 관객들이 윤도현을 연호하면 YB라고 친절하게 고쳐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송에서도 항상 ' YB의 노래하는 윤도현입니다' 라고 말한다. 원래는 윤도현 밴드였는데 팀원들을 고려해 YB로 밴드 명칭도 바꾼걸 보면 확실히 배려심은 있는 편이다. 흰수염고래도 힘이 있지만 생존을 위한 사냥 외엔 남을 괴롭히지 않고 살아가는 흰수염고래의 모습을 보고 만든 곡이라고 하니..
- 2020년 1월에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채널 설명은 격조없고 오토튠도 없는 집라이브. 실제로 영상만 보면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유튜버 같은 느낌이다. 설명대로 딱히 보정도 없고 심지어 부를 때 앞에 마이크마저 없다. 그럼에도 발성이 좋은 가수답게 충분히 들을 만하다.[72]
- 2020년 3월 10일 코로나-19의 확산 방지와 피해 복구를 위해 자신과 아내, 딸 이름으로 1억 원을 기부했다. 전달된 후원금은 장기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의 긴급생계비와 생필품과 마스크, 손소독제 등이 들어 있는 키트를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 방위병으로 복무했다고 한다. 사유는 악관절 증후군 때문이라고 하는데, 당시 워낙 그 나이대 청년들이 많아서 작은 사유로도 방위병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본인이 밝혔다. 참고로 자신이 방위병인 걸 알았을 때 펑펑 울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해병대에 가고 싶었다고 한다. 참고로 복무했던 부대가 무려 백마부대였고, 보직은 PX 관리병이었다고 한다. #
- 정치 관련해서 본인이 이용당하거나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에 지긋지긋하다고 밝힌 적이 있다.[73]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는 이전처럼 정치적 성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두 차례 대선에 나왔을 당시 나는 나비와 흰수염고래를 로고송으로 제공했고, 문재인 정부의 유해 귀환 기념식과 남북정상회담에서 축하공연을 하는 등 우회적인 방식으로 참여하는 듯. YB의 공연 디렉터이자 디컴퍼니에서 뮤직컨텐츠 본부장을 맡았던 탁현민이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 2023년 8월 10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암 투병 사실을 고백했다. 정확히는 위 말트 림프종이며, 2021년 건강검진 후 진단을 받아 3년간의 치료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룹 YB 활동에 피해가 갈까봐 암 투병 사실을 숨겼으며, 라디오와 공연 스케줄을 병행했다고 한다. # 4시엔 윤도현입니다도 뮤지컬이나 공연 연습으로 자리를 비운 것 외에는 2024년 9월 13일에 하차를 선언할 때까지 진행했다.
- 2023년 9월 27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인스타를 통해 밝혔던 암 투병에 대한 자세한 내막과 심정을 고백하였다.
- 2023년 고려대학교 축제인 대동제에 YB로 방문해 민족의 아리아를 락 버전으로 편곡해 열창하는 등 인상적인 무대를 남긴 덕분인지, 24년도에 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22, 23 방문한 아티스트 중 다시 보고 싶은 아티스트” 순위에서 1위 YB, 3위 윤도현을 차지하는 위엄을 보여 줬다. 덕분에 2024년에 재섭외되어 고려대 대동제 전체의 헤드라이너로써 무대를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윤도현도 1, 3위라니 이게 무슨 일이냐며 기뻐했다.
- 2020년대 들어서도 대학 축제에 심심찮게 섭외되는 편인데, 동 세대 가수 중에선 드문 케이스긴 하다. 그만큼 젊은층에게도 어필이 된다는 것. 이는 뛰어난 가창력과 히트곡이 많은게 일단 가장 큰 이유긴 하겠지만, 한편으론 윤도현의 라이프 스타일이 너무 올드하지 않은 것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디가 따로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보면 패션 감각이 제법 있는 편.
[음력]
1971년
12월 19일
[2]
파평 윤씨 집성촌이다. 학창 시절은
문산읍에서 보냈다.
[3]
과거 방송에서 밝혔다.
[4]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5]
문화활동우수자 전형으로 입학했으나 F 학점을 받아서 제적.
[6]
1971년생으로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으며 7년의 연애 끝에
2002년
6월 15일 결혼했다.
[7]
尹李情. 부친과 모친의 성을 한 글자씩 따오고
초코파이 CF를 보다 문득
情이라는 한자가 마음에 와닿아 이름에 넣게 되었다고 한다.
프랫 인스티튜트에 재학 중이다.
[8]
자양동 신양예배당 집사.
무종교였으나 멤버
박태희의 영향으로 예배당을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9]
PX병으로 복무했다고 한다.
[10]
2020년
1월 29일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11]
오늘날 윤도현은 락커로 유명하지만 사실 음색 자체는 포크 음악에 좀 더 어울리는 감도 있다. 2000년대 내놓은 히트곡
사랑했나봐도
포크록의 일종이다.
[12]
이 시기
이등병의 편지를 보컬로 부르고 다녔는데 김광석보다도 먼저였다.
[13]
참고로 당시 유명 가수들이 여의도 방송국에서, 윤도현 정도 되는 그래도 전문 뮤지션들이 주로 대학로에서 활동했다면, 이들보다도 떨어지는 말 그대로 인디밴드들이 점차 몰리기 시작한 곳이 홍대거리였다.
[14]
최근 콘서트에서 "현성이 형 덕분에 노래를 하게 됐다. 형이 아니었다면 저는 음악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https://omn.kr/26j7f
[15]
김광석의 공연에 자주 함께 서던 또 다른 게스트가 바로
김장훈이었는데, 둘이 김광석 공연 게스트 자리를 놓고 경쟁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이 때의 인연으로 김장훈과도 절친한 사이가 되었으며 함께 방송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16]
훗날
윤도현의 추천으로 방송에 데뷔한
김제동은 김광석과 함께 공연을 다녔던 윤도현을 두고두고 부러워했다고 한다. 김광석은 김제동이 군복무를 할 때 사망해서 실제 만난 적이 없다고.
[17]
윤도현은 이 영화 출연을 반흑역사로 여기고 있지만, 종종 방송에서 자랑하기도 했다. 놀러와에서 밝히길 부모님은 개봉하자마자 이 영화를 보러갔는데 고개를 못 드셨다고...
[18]
원래 윤도현은 밴드를 하고 싶어했지만 기획사 사정으로 밴드를 결성하기 어려워지자, 사장이 1집이 잘 되면 밴드를 결성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19]
물론 박완규는 솔로 시절
천년의 사랑으로 대표되는
원히트원더 성격이 강했지만 그 곡이 원체 히트하긴 했고 자체 가창력이 뛰어나다보니 매니아들이 있었다. 다만 엄청 대중적인 외모나 음색은 아니다보니 2000년대는 거의 잊혀진 가수로 지내긴 했다.
[20]
무명이긴 했지만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를 선언했던 95년도 연예잡지에서 한국 록의 기대주로 김경호와 윤도현이 나란히 소개되기도 하였고 둘이 같이 찍은 사진도 있을 정도로 유망주 취급은 받았다. 당시에도 한국은
김종서,
신해철 등이 인기를 얻는 것을 제외하면 록의 불모지였지만 2년 후 김경호가 지상파에서 그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버린 것을 시작으로 윤도현도 지상파로 본격적으로 진출하여 그 판도를 잇게 되었다.
[21]
2016년 복면가왕으로 뜨기 전
하현우 정도 됐다고 보면 될 듯.
[22]
이 공연에 YB멤버인
박태희,
김진원도 같이 출연했다.
[23]
2020년대에도 대학축제에서 떼창이 가능할 정도니 말 다했다.
영상1,
영상2.
[24]
정상급 락커들이 자주 사용하는 소리 질감으로, 허스키하면서 완전히 풀리진 않은 상태로 내는 소리를 뜻한다.
[25]
물론 이는 후술하겠지만 윤도현의 성대 근육 자체가 타고난 감도 없지 않다. 애초에 프로 가수 중에서도 상위권은 어느정도 타고나야 되는 것도 엄연히 있긴 하다만.
[26]
전성기
박완규가 이쪽 창법이었다.
[27]
이는
UV - '그 여자랑 살래요(feat. 윤도현 from YB)'를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데, 브릿지 구간에는 맑고 깨끗한 두성으로 2옥타브 중후반의 중음역대를 선명하게 소화하며, 후렴구의 '충격적이죠' 파트는 파워풀한 벨팅으로, 하이라이트 구간의 샤우팅은 말 그대로 폭발하는 듯한 느낌으로 부르는 등 2옥타브 중반부터 3옥타브 솔(G5) 사이의 음역을 한곡 안에서 매끄럽게 부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라이브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CD 삼킨 수준으로 해낸다.
[28]
흔히 말하는
지지음역으로, 목에 무리 없이 소리낼 수 있는 음역을 말한다.
[29]
남자가 진성 C5를 서포트 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 가창력이 훌륭하다는 남성 보컬이어도 웬만해선 G#4 ~ A4 정도이며, 흔히 실력 좋은 아이돌 여성 메인 보컬들도 진성 C5을 안정적으로 서포트하는 경우는 결코 흔하지 않다. 더군다나 윤도현은 현대화된 믹스보이스 발성을 정식으로 배운 케이스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희귀한 케이스.
[30]
물론 하현우처럼 진짜 초고음을 내는 락커에 비하면 초고음역대의 그것은 좀 떨어지는 편이지만, 중저음이 원체 탄탄하고 음색도 잘 잃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프로 가수로는 더 대중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31]
물론 고음에서 후두는 누구나 올라간다. 오히려 윤도현은
박효신과 함께 고음에서도 후두 위치가 굉장히 낮은 편인 가수이다. 2옥타브 라(A4) ~ 시(B4)에 달하는 고음역도 일반인이나 대부분의 가수들은 목을 조이고 후두를 올려서 소리를 낼 때 윤도현은 안정된 후두 위치와 공간을 가지고 통소리에 가깝게 발성할 수 있는 굉장히 드문 가수이다. 이 문단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이상의 고음역일때의 이야기다.
[32]
'너를 보내고' 같이 그다지 높지 않은 노래의 경우 테너가 공명감 있게 부르기가 쉽지 않다.
[33]
성대 접촉력이 강하면 귀에 전달되는 스스로의 음정이 더 정확히 들리기에 음감에 좋은 영향을 준다.
[34]
당장
하현우만 해도 한 번 퍼져버려서 윤도현과
소유만 녹화에 임했던 적이 있다.
[35]
윤도현이 어느 날 목이 너무 아파 '성대결절인가 보다...' 하고 병원에 달려갔는데
의사가 "단순한
감기다. 성대 주변 근육이 두꺼우셔서 결절은 걱정하실 필요 없겠다" 라고 했다고 한다.
[36]
보통 남성들은 두성 음역대로 음역이 넘어가면 파사지오를 극복하며 음색이 조금 달라지게 되는데 윤도현은 고음부에서도 톤의 변화가 거의 없다. 이는 성대 접촉이 고르게 유지되며, 고음으로 가도 안정적인 후두 위치 때문.
[37]
두 키를 내렸기 때문에 애드립을 제외하면 최고음은 3옥타브 도(C5). 게다가 곡 자체가 간주를 제외하면 꽤 짧은 곡임에도 3옥타브 도(C5)가 20번, 2옥타브 시(B4)가 8번이나 등장하는 엄청난 헬곡이기 때문에 상당한 호흡과 고음을 필요로 한다.
[38]
비슷한 사례로는 국내에
권인하,
임재범,
김바다,
홍경민 등이 있고, 해외로 나가면 지금은 고인이 된
프레디 머큐리 같은 전설적인 락 보컬들이 있다. 근데 창법은 솔직히 가수 본인이 직접 테스트라도 해서 말해주지 않는 이상 정확히 맞다 아니다를 판별하기가 좀 어렵기도 할 뿐더러, 많은 가수들이 한 창법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다만 윤도현의 벨팅이 다른 록 가수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윤도현은 성대를 과접촉 수준으로 강하게 붙이는 창법을 사용해도 목을 별로 조이지 않고 공명감을 유지한다. 기본적으로 벨팅은 목 내부 공간을 있는 대로 좁혀서 성대를 짜내듯 강한 소리를 내는 게 보통이지만, 윤도현은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성대 자체의 힘이 워낙 강력하여 목을 조이지 않고 과접촉 소리를 만들어내는 보컬이다.
[39]
'윤도현이 벨팅 말고도 다양한 발성에 능하기에 성대 피로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라는 반박이 나올 수 있는데, 윤도현이 아무리 다양한 발성에 능하다고 하더라도 록 계열의 노래에는 벨팅이나 샤우팅같이 터질듯한 느낌의 창법이 자주 사용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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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술하겠지만 벨팅 도중에도 비브라토나 스크래치 같은 스킬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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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2옥타브 솔(G4)에서 3옥타브 도(C5) 사이의 음을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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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두껍지 않다. 두꺼운 게 아니라 넓은 거다. 윤도현의 발성에서 성대 자체는 매우 얇게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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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의 3옥타브 미(E5) 이상에서의 고음은 완벽한 두성이라기보다는 샤우팅에 가깝지만 워낙 성대 접촉률이 높고 호흡을 잘 사용해서 두성처럼 들린다. 윤도현, 하현우 등 뛰어난 피지컬을 기반으로 한 발성을 사용하는 보컬들의 최고 장점으로, 샤우팅이 두성처럼 들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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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지금보다 고음 발성이 안정적이지 않다고 평가받는 나가수 시절에도 3옥타브 미(E5) - 3옥타브 레(D5) - 3옥타브 미(E5)로 이어지는 샤우팅을 라이브에서 손쉽게 소화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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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옥타브 기준의 가창력 평가는 지양되어야 하지만, 음역대와 표현의 폭이 무엇보다 중요한 록 보컬로서 윤도현의 이런 넓은 음역대는 충분한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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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V 피처링 진성 부분 최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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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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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중에서도 상당히 얇은 테너인 김범수도 3옥타브 레(D5)를 넘어가면 접촉이 약해진다. 테너치고 두꺼운 음색을 가진 윤도현이 그 음역대에서 그 정도의 접촉을 선보이는 것은 무시무시한 음역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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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구간으로, 파사지오가 이쪽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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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곡이 '
사랑했나봐'와 '잊을게'이다. 얼핏 들었을 때 둘 모두 최고음이 고작(?) 각각 2옥타브 라(A4)와 2옥타브 시(B4)로 넘사벽급 고음이 아닌데도 완창하기 상당히 힘든데, '사랑했나봐'의 경우 앞서 말한 것처럼 파사지오 구간에 후렴이 걸쳐있고, 고음이 솟구치는 느낌으로 호흡 없이 올라가기에 삑사리가 잘난다. 게다가 설령 이 음을 찍을 수는 있어도 어설프게 두성이나 중성 발성을 사용했다간 고음의 짧은 지속시간 덕에 성구 전환이 제대로 되지않아 우습게 들릴 수 있다. '잊을게' 역시 엄청난 초고음은 아니지만 최고음을 찍는 시간이 짧고 이전 음과 이어지며, 남성의 흉성 최대 영역인 2옥타브 라(A4)를 살짝 넘어서는 고음역이라 벨팅을 사용하지 않고는 마스터하기 힘든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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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에서 가성 파트를 박태희에게 넘기기도 한다. 물론 이는 베이시스트 박태희의 가창력이 좋기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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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굳혀 단단한 진성을 매커니즘과 가성을 내는 매커니즘이 정 반대기 때문이다. 특히 윤도현은 거의 이런 창법으로만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진성에 영향이 있을까하는 부담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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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기준으로 가성이 능숙하지 않다는 것이지 결코 가성 자체를 못 내는 것은 아니다. 5집
박하사탕(노래)처럼 후렴구에서처럼 특유의 허스키한 가성을 깔끔하게 구사하는 곡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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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도 윤도현의 창법은 이 둘보다는
로니 제임스 디오나
그레이엄 보넷과 비슷하다. 이안 길런과 롭 핼포드는 초고음 보컬로 유명한 보컬들이다. 물론 둘 다 중고음역대를 매우 잘 구사한 보컬들이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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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기억 속에'서'에서 2003년 버전이 꽉찬 파괴력이 있는 느낌이었다면 2022년 버전에서는 좀 더 듣기 편하고 울리는 느낌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전에도 목에 힘을 많이 주는 보컬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세하게 비교해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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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건 김경호는 윤도현과 친구 사이지만, 같은 빠른72인 이윤석과 서경석과는 형동생 사이다. 사실 윤도현도 유희열과는 처음엔 형동생 사이였는데, 어느 날 한 모임에서 한 사람이 둘이 친구 아니냐고 얘기했고 그때부터 친구로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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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싱어 윤도현 편에서 게스트로 출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도 두세 번 정도 나와서 친한 사이임이 드러나는 토크도 했으며, 윤도현의 MUST 김경호 편에서도
큐티하니를 부른(!)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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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도 이 회사 소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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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도 데뷔부터 꾸준히 롤모델로 윤도현을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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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가 인디밴드 시절에 전국투어에 데리고 다녔다. 메이저 시장 데뷔 이후에는 윤도현의 러브레터, 라디오 등 꾸준히 초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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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열이 탈퇴하면서 탈퇴는 곧 해체라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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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락밴드라고 광고 찍지 말란 법은 없다. 오히려 그렇게 돈 벌고 영향력을 키워 사회에 환원하는게 나을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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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의 인기로, 절친이였던 김경호는 괜한 질투심에 농반진반 잠시 윤도현을 멀리 했다고 한다. 당시 김경호는 6집의 실패 이후
성대결절에 걸리고, 전 소속사가 남긴 막대한 빚을 지게 되면서 슬럼프를 겪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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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명성희씨의 말에 의하면, 본인도 tv를 보고 윤도현에게 빠져 윤도현 밴드가 묵고 있다고 알려진 평양 호텔에 무작정 갔는데, 자기 외에도 소녀팬들이 수십명 몰려있었다고. 허나 이미 윤도현 밴드는 나간 뒤라 만나진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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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과 동명으로 이름을 지을 수 없다. 북한에서 이 3명의 이름을 가진 사람은 본인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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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역시 2002 월드컵의 인기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었다. 락을 좋아하는 팬들이 락은 비주류여야 하는데 너무 메이저로 올라간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스트레스가 장난아니었고, 무대에서 욕을 하고 나면 좀 개운해져서 그랬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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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읽으며 본인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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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이 잘 따르는
강산에가 관객들에게 반말하며 편안히 공연하는 스타일이라 거기에 영향을 받았었을 수도 있다. 초창기에 이게 멋있어 보였는지 윤도현이 (20대였음에도) 반말로 공연을 딱 시작했는데 분위기가 싸늘해지면서 한 사람이 "저기요! 몇 살입니까?"라고 물었으며 바로 "죄송합니다"하면서 꼬리를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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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윤도현은
N.EX.T의 5.5집 앨범인
ReGame?에서
날아라 병아리의
하모니카 피처링을 담당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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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도 인기 밴드는 보컬만 안 나가면 유지된다는 식으로 발언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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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후
김윤아는
자우림으로 섭외되었고 나는 가수다 2에서도 백두산, 국카스텐, 시나위같은 밴드는 모두 보컬명이 아닌 밴드명으로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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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 라이브 영상을 보면 성량이 너무 커서 소리가 지직거리며 뭉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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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속사인 디컴퍼니에서 정치적 색깔이 가장 적고 얌전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한다. 진보/보수라는 프레임보다는 그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던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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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가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