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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12:38:55

유현준(건축가)/비판 및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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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축 분야의 오류 및 오인용 논란
1.1. 오스만의 파리 개조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1.2. 이벤트 밀도 개념1.3. 귄터 니츠케를 잘못 인용1.4. 가우디의 역현수선 아치1.5. 고대문명과 전염병에 대한 잘못된 설명1.6. 성기능이 떨어질수록 고층에 집착 1.7. 자기 표절 의혹1.8. 트램 관련 오개념 및 편향적인 주장1.9. 한옥에 대한 편향적인 주장
2. 언론에서 잘못된 정보로 일반인을 호도하는 문제
2.1. "온돌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 발언2.2. 공간과 권력에 대한 실험의 오류

1. 건축 분야의 오류 및 오인용 논란

그의 기고문이나 방송에서의 발언 등에서 건축 분야의 지식에 대한 오류나 잘못된 인용 등의 문제가 발견되곤 한다. 유현준 교수가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대중과 폭넓게 접하고 있는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에 이런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임에는 틀림없다.

후술한 사항들은 다양한 요인과 배경을 따져 볼 수 있는 현상들에서 하나의 요인을 확대해석하거 하나의 기준만을 적용하여 이를테면 'A라는 현상은 B로 인해 일어난 것' 또는 'A는 이러이러한 특징과 비례가 있으니 이를 따르지 않는 B와 같은 건축 사례는 잘못된 것' 등과 같이 들리는 특유의 화법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해하기 쉬운 대중친화적인 전달을 가능하게도 하나 때론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른 정보를 받아들이게하는 양날의 검일 수 있는 화법이다.[1]

문서명은 "논란"으로 되어있지만 논란이라기보다는 유현준 교수가 말한 내용의 오류에 관한 팩트체크라고 보는 것이 옳다. 유현준 교수가 사회에 논란을 불러올 정도로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건축가로서 자질문제보다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가끔씩 싫어하는 사람이 보이는 정도다.

1.1. 오스만의 파리 개조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

유현준 교수는 중앙일보 기고문 #에서 오스만(Haussmann)의 파리 개조 계획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다. 알쓸신잡2 영월편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이야기했는데[2], 이것은 그가 오스만의 파리 개조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나폴레옹 3세 시절에 오스만 시장이 파리를 방사상 구조로 바꾸게 된다. 12개의 직선 간선도로가 개선문으로 모여드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설계가 나온 이유는 프랑스 대혁명 때문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 시민봉기로 인해 수백 년 지속된 왕권이 무너졌다. 당연히 이후에 권력을 잡은 자는 시민봉기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적은 수의 군대로 시민봉기를 통제해야 했다. 그래서 나온 디자인이 방사상 구조이다. 파리에서 시민이 봉기를 하면 12개의 간선도로로 쏟아져 나오고 이때 개선문 지붕에 대포만 설치하면 적은 수의 군대로 시민을 제압할 수 있게 된다. 이유는 순수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직선의 도로망 덕분에 파리는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빠르고 효율적인 직선의 도로망 체계를 가지게 되었다.

여기서 유현준 교수는 오스만의 파리 개조에 대해 하나의 오해와 하나의 성급한 추론을 하고 있다. 하나의 오해는 오스만이 파리를 방사상 구조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오스만의 파리 개조의 결과물을 사진으로 보여줄 때 흔히 개선문 주변의 방사상 도로를 보여주곤 하기 때문에 이 사진만 본 사람들은 오스만의 계획이 랑팡(L'Enfant)의 워싱턴 DC 계획처럼 방사상의 구조가 반복되는 계획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아니면 오스만의 계획과 랑팡의 계획을 혼동하거나), 오스만의 boulevard들은 방사형이라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파리 이곳저곳에 건설되었다 #.

하나의 성급한 추론은 오스만의 파리 계획이 시민 봉기를 두려워한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 이후 오스만의 파리 계획의 주된 목적이 시민 봉기의 원활한 진압 때문이라는 견해가 널리 퍼졌지만, 그것이 적어도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Peter Hall은 오스만의 계획을 이야기할 때 시민 봉기 진압은 교통 소통 개선, 도시 건강 문제 개선, 기념비적 요소 도입과 함께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이야기한다. 당장 중세 이래 계획적인 개발과는 거리가 멀었던 파리 시의 도로 체계는 가히 혼란 그 자체였고,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여기저기 집을 짓고 생활했던 탓에 도로의 폭이나 선형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게다가 마차의 보급과 자동차의 개발로 도로가 수용할 수 있는 교통량이 점점 한계를 보였기 때문에 도로정비는 시급한 문제였다. 따라서 이 시기 파리 시의 대대적인 도로 정비는 오스만이 아니었어도 어떤 도시공학자라도 추진했을 사업이며, 그런 맥락에서 보듯 제일의 목표는 역시 도로체계의 개선이었다.
They would simultaneously achieve several key objectives: they would free up traffic, give access to the new [train] stations, make the suburbs accessible, clear slums to make the city healthier, create a monumental city that would be the envy of the civilized works and - not least - guard the city against demonstrations and civil disturbances. (Hall 1998 Cities in Civilization. p718).

오스만의 계획의 규모를 감안하면, 그의 계획이 복합적인 이유에서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그리고 오스만을 지원한 나폴레옹 3세는 대중의 인기가 주된 정치적 자산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더더욱 그러하다. 오스만의 계획을 전적으로 군사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그리고 오스만의 계획에 군사적인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유현준 교수가 기고문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개선문 지붕에 대포만 설치하면"과 같은 방식을 겨냥하고 대로(boulevard)를 건설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했듯 오스만의 대로는 이곳저곳에 훨씬 더 다양하게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파리 지도만 살펴봐도 방사형 집중 구조의 도로는 개선문 일대가 거의 유일하고 대부분 사방팔방으로 대로가 뻗어져 있어 어떠한 특징이나 통일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의 상황은 오히려 반대로 돌아갔는데, 오스만의 개조 이후 시민 봉기군인 파리 코뮨이 몇몇 대로의 결절점을 요새화했지만 진압군은 소로를 이용하여 이들을 우회하여 쉽게 진압하였다 #.

따라서 "교통 개선, 환기, 채광 등 여러 목적이 있지만 시민 소요의 원활한 진압이라는 목적도 있었다는 학계의 주장도 있다."고 서술하는 것이 사실관계에 보다 부합했을 것이다. 12개 방사상 도로 같은 이야기는 빼고 말이다. 물론 도시계획사는 유현준 교수의 전공분야가 아니지만, 오스만의 도시계획에 대한 조사가 더 필요해보인다.

1.2. 이벤트 밀도 개념

그의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조우석이 쓴 서평 #에 대해, 유현준 교수는 데일리안에 반론을 게재했다 #. 이 반론문에서 자신의 책의 독창성을 주장하면서 유현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 책에 나온 걷고 싶은 거리를 분석하는 “이벤트 밀도”와 “공간의 속도”를 규정하는 ‘개념’과 ‘공식’은 이전에는 없던 독창적인 분석 방법이고 이는 이미 토지주택공사의 발표에서 인정을 받아 새로이 디자인되는 도시에 적용하려는 독창성이 돋보이는 이론이다.

하지만 그가 주장하는 '이벤트 밀도'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이벤트 밀도는 '100m당 점포 입구의 개수로 정의된다 #. 하지만 가로에 면한 상점 등의 입구의 개수는 공공 공간의 질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게 사용되어온 변수이다.[3] 독창성을 주장하기에는 해당 분야에 대한 문헌조사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논문 #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기본적인 문헌조사가 없다. 논문에 포함된 10개의 참고문헌들은 본문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피어 리뷰를 거친 논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이 한 편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의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제시하는 또다른 '독창'적인 개념인 "공간의 속도"를 다룬 논문도 마찬가지다 #. 기본적인 문헌조사가 되어있지 않고, 논문에 수록된 참고문헌은 본문에서 다루지 않고 있다.

1.3. 귄터 니츠케를 잘못 인용

알쓸신잡 시즌 2, 1회에서 유현준 교수는 도산서원의 공간을 설명하며 "건터 니슈케라는 사람이 쓴 논문이 있는데"라고 말하며 귄터 니츠케(Günter Nitschke)의 "Time is Money - Space is Money"를 언급한다. 하지만 귄터 니츠케가 쓴 저 글은 논문이 아니고 귄터 니츠케의 "From Shinto to Ando : studies in architectural anthropology in Japan"라는 단행본에 실린 에세이이다. 그리고 이 글을 언급하면서 유현준 교수는 이런 설명을 한다.
공간이 넓으면 시간을 줄이는 쪽으로 건축이 발달한대요. 미국은 공간이 넓잖아요. 시간을 줄이는 고속도로가 발달했어요. 먼 거리를 빨리 갈 수 있게끔 [...] 반대로 공간이 좁으면 시간을 딜레이시키는 쪽으로 가요. 일본같이. 좁은 공간에서 넓어보이게 하려면 길을 꼬불꼬불하게 만들면 돼요"

하지만 귄터 니츠케는 이런 주장에 대한 근거로 인용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사람인데, 그의 전공 분야가 일본 정원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미국 도시와 일본 도시의 서로 다른 발전 양상을 비교하는데 니츠케를 인용하는 것은 엉뚱하다. 시청자로 하여금 마치 니츠케라는 해당 분야의 학자가 충분한 경험적 근거를 토대로 작성한 논문에 유현준 교수의 발언이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전문가가 보기에는 전혀 엉뚱한 사람이 엉뚱한 맥락에서 인용되었을 뿐이다.

그의 니츠케에 대한 오독은 그의 기고문 #에서도 반복된다.
진입로가 복잡한 또 다른 이유는 건축이론가 귄터 니치케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니치케에 따르면 미국처럼 공간이 넓은 곳에서는 시간거리를 줄이는 쪽으로 건축이 발달하고, 일본처럼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는 시간을 지연시켜서 공간을 심리적으로 커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시간거리를 줄이는 고속도로가 발달했고, 일본은 좁은 공간을 넓게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 진입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전통 찻집에 가보면 두세 평 남짓한 방에 들어가기 위해서 열 번 가까이 진입로가 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좁은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사례다. 좁은 집을 좀 더 넓게 느끼게 하려면 전체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게 설계를 해야 한다. 좁다고 집의 모든 벽을 다 터버리면 오히려 더 좁게 느껴지게 된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머릿속으로 전체 공간을 그려보게 하면 공간이 실제보다 넓게 느껴진다.

귄터 니츠케가 마치 환경심리학자인 것처럼 인용되었다. 귄터 니치케의 저작은 진입로가 복잡하면 공간을 넓게 느끼는지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는 일본과 미국의 공간 경험이 다르다는 에세이를 썼을 뿐이고, 실제로 공간이 복잡하면 더 넓게 느끼는지에 대해 아무런 경험적 결과를 제공한 바 없다. 잘못된 인용으로 독자를 오도하는 글쓰기이다.

공간의 형태 등의 조건이 지각된 공간의 크기(perceived spaciousness)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Stamps의 연구들을 보는 것이 훨씬 적절할 것이다. 물론 유현준 교수가 건축계획이나 환경심리학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것을 잘 모르는 것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1.4. 가우디의 역현수선 아치

알쓸신잡2 2회에서 유현준 교수는 가우디의 건축을 설명하며, 가우디가 줄을 늘어뜨려서 포물선을 만들고 그 '자연이 만든 완벽한 2차원 포물선'을 뒤집어 아치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하며, 그 방법을 생각해내고 구조로 바꾸는 선구적인 작업을 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사실이 아니다.

첫 번째로 줄을 늘어뜨려서 만들어지는 곡선은 포물선(parabola)이 아닌 현수선(catenary)이며 두 곡선은 모양도 다를 뿐더러 구조적 성질도 다르다. 가우디의 역현수선 아치(inverted catenary arch) 모델은 건축 전공자들에게 대단히 유명한 모델로서 이 곡선이 현수선이지 포물선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흔히 함께 이야기되곤 한다. 역현수선 아치에 대해서는 이것을 참조하라

두 번째로 이 방송에서 유현준 교수는 가우디가 저러한 방법을 처음 생각해낸 선구자처럼 묘사하였으나, 이 방법은 가우디보다 200년 먼저 태어난 로버트 후크에게도 알려져있던 사실이었다[4].

그리고 이 방송에서 가우디가 그러한 현수선을 이용하여 설계한 것을 마치 자연을 닮은 모습으로 디자인하려고 했던 것처럼 설명하는데, 가우디가 현수선을 사용한 것은 복잡한 구조해석을 위한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지 자연을 닮은 '모양'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수선 아치의 독특한 구조적 성질이라든가, 포물선 아치와의 차이, 그리고 가우디가 현수 모델을 이용해서 구조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 등은 일반인에게도 대단히 흥미로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었더라면 아주 흥미진진했을텐데, 이걸 포물선이라고 이야기해버리고 자연을 닮은 모습으로 디자인하려 했다고 하니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 물론 유현준 교수의 전문분야가 건축역사도 아니고 구조 분야도 아니라는 점은 감안해야할 필요가 있지만,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면 대중매체에서 좀더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1.5. 고대문명과 전염병에 대한 잘못된 설명

2020.02.28 조선일보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백신 예방주사가 만든 현대 도시", 2020.03.07. 중앙일보 "종교단체의 강적은 전염병…한곳에 못 모이면 권력 잃어", 2020.06.19. "KBS1 라디오 최경영의 경제쇼" 등에서 여러번에 걸쳐,

"전염병 때문에 초기 문명은 건조 기후대에서 발생했다. 건조한 기후는 전염병과 세균성 질병의 창궐을 막기에 유리하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구 건조 기후대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했고, 나일강 하구 건조 기후대에서 이집트 문명이 발생했다." 출처

"비가 적은 건조기후대는 그만큼 바이러스에 강한 환경을 제공한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도시를 통한 문명발전은 건조기후대에서 발생했다. 메소포타미아강과 티그리스강 하구의 건조기후대에서 수메르 문명이 발생했고, 나일강 하구의 건조기후대에서 이집트 문명이 발생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24236

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신빙성에 크게 의심이 가는 얘기이다.

1.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지금은 건조한 사막 지역이지만 문명 발생 당시, 겨울에는 온난 다습, 여름에는 고온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였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메소포타미아, 나일강 유역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불릴 정도로 기름진 지역이었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나일강이 불규칙적으로 자주 범람해 문명 발생의 단초를 제공했던 곳임을 상기하자. 홍수 이후에는 수인성 전염병이 번성하기 쉬운 것이 상식이다. 게다가 교통의 요지라서 여러 민족이 교차, 접촉하는 지역이었다. 이는 오히려 전염병 발생에 유리한 환경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전염병은 기본적으로 건조, 다습을 가리지 않는다. 이집트 사막화, 건조기후대가 된 14세기에도 페스트 창궐 카이로 인구 1/4~1/2이 사망했다고 한다.

2. 전염병 피하기가 유리해서 특정 지역에서 문명이 발생했다는 것은 근거가 없는 개인적 추론일 뿐이다. 그런데도 부정확한 역사 지식을 수차례에 걸쳐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4대 문명의 발생 원인은 1차적으로 비옥한 토지로 인한 농업생산성 증대, 어류자원의 풍부함, 교통의 편리성에서 먼저 찾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건조 기후는 목재 습득이나 낙농업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오히려 호흡기 질환의 치명도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기후이다. 물론 유 교수의 말처럼 다습 기후에 비해 건조 기후가 전염병의 매개물인 곤충, , 각종 미생물 서식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편이고 부패가 느리거나 오히려 미라화되는 환경인 것은 대부분 맞지만, 모든 전염병이 이들 원인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며, 특별한 매개물을 거치지 않는 단순 인간 사이의 비말 감염병이라면 어디서든 유행할 수 있다. 이는 코로나 사태만 봐도 확인된다.

1.6. 성기능이 떨어질수록 고층에 집착

2021년 3월 16일 유튜브 카카오tv에서 "심리적으로 남성은 성기능이 저하될수록 고층에 집착한다고도..." 라는 말을 하였다.이런 연구나 논문은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일반화 시켜서 말을 하였는데 구체적인 출처도 없는 상황이다.
여러 가능성들이 있지만 진화심리학적인 설명이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람이 높은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높은 곳에 있어야 사방을 잘 볼 수 있어 위험을 알아차리기 쉽고 적에게 도망, 회피, 사냥을 위한 계획 등등을 세우기 용이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수만년 된 선조들의 높은 곳에서의 경험을 유전적 기억으로 물려받아 높은 곳에 있으면 자기자신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권력자라는 용어로 맥락적 사고를 만들던데 지도자들이 높은 곳에서 조직을 이끌고 계획을 세우던 행동이나 문화가 단이 높은 곳에 지도자의 자리를 만드는 관습이 생긴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본다고 해서 권력이 생기는 게 아니고 권력은 여러 사람들이 믿고 인정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고 이런 사람이 높거나 정 가운데 있으면 조직 구성원들의 표정이나 구성원들 사이의 정서적 반응. 관계, 분쟁, 감정 등등이 한눈에 보이기 쉽고 리더십을 발휘할 때 참고하게 된 것 뿐이다. 즉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은 사람이 높은 자리나 정 가운데 자리에서 리더십을 잘 발휘하였고 이런 자리들이 권위자의 자리라고 학습된 것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높거나 정가운데 자리 앉는다고 전부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1.7. 자기 표절 의혹

한국공간디자인학회 논문집 제6권 3호 통권17호에 실린 유현준 교수의 "보스턴 뉴버리 스트리트의 이벤트 밀도 분석" #은 같은 논문집 제6권 2호 통권16호에 실린 동일인의 "도심 內 걷고 싶은 거리의 이벤트 밀도 연구" #와 앞부분이 거의 동일하다.

"2.1 이벤트 밀도의 정의"와 "2.2 이벤트 밀도의 의미"는, 한국공간디자인학회 논문집 제6권 2호 통권16호에 실린 동일인의 "도심 內 걷고 싶은 거리의 이벤트 밀도 연구" #의 "2.2 이벤트 밀도의 정의"와 "2.3 이벤트 밀도의 의미"를 그대로 옮겨왔다. 또한 17호 논문의 표1은 16호 논문의 표1과 동일하다. 한편 두 논문의 "1.1 연구의 배경 및 목적"은 4개의 동일한 문장을 공유한다.

17호 논문의 해당 부분에서 16호 논문에 대해 따옴표는 물론 인용 표시는 되어있지 않다. 또한 17호 논문의 참고문헌에 16호 논문은 제시되어 있지 않다.

1.8. 트램 관련 오개념 및 편향적인 주장

https://youtu.be/-EZEtLkG1Pw?t=340

위 영상의 6분에서부터 보면 트램은 2종류가 있어요. 보통 보면 모노레일처럼 위로 떠서 가는 걸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건 절대 반대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트램은 위로 떠서 가는 게 아니며 모노레일과 완전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즉 오개념을 설명한 것이다.

또한 이어서 왜냐면 모노레일 같은 게 위로 갔을 때 그림자도 드리우고 그런 게 지나가는 공간이 좋은 동네로 된 걸 제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상 모노레일로 지어진 대구 도시철도 3호선처럼 미관 문제 및 도심 단절 문제 등을 최소화하면서도 오히려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것도 있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1) 트램의 오개념을 설명하고 (2) 지나치게 트램의 장점만을 부각해서 설명하고 (3) 트램 이외의 교통수단은 지나치게 단점만을 부각해서 마치 트램을 선악의 개념처럼 설명하였다.

트램은 장점만을 부각하고 고가 전철은 단점만을 부각하면서 "절대 반대입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편향적인 의견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1.9. 한옥에 대한 편향적인 주장

유 교수는 한옥에 대해서도 상당히 편향적이고 또한 조선 시대 건축물에 한정된, 시간적 프레임이 정적인 관념을 보인 바 있다. 특히 사람이 거주하는 한옥에 중층이 잘 없는 이유와 관련해 지붕과의 비례 등을 언급하면서 그와 같은 비례의 조화를 깬 중국 등의 몇몇 현대성과 전통성을 합한 건축물을 보며 '비웃어 줄 줄 알아야 한다'라는 발언을 해서 댓글에서 논란이 되었다. 사실 한옥까지 갈 것도 없이 이 발언 자체가 문제가 되는데 중국 건축과 한옥을 같은 기준을 적용해 바라봤다는 점에서 엄연히 다른 나라에 대해 한국, 정확하게는 유 교수 개인의 관점을 적용해 선을 넘었다. 유 교수의 주장은 입장만 바꿔 이야기하면 한옥은 곧 중국 건축 양식이니 올바른 본토 중국 양식을 따르지 않는 한국의 전통 건축 양식은 비웃어 줄 줄 알아야 한다는 말과도 같아진다.

또한 유 교수의 한옥의 미에 대한 관점은 철저히 조선 시대에 한정되어 있다. 아래에 나와 있지만 유 교수 개인은 중층 건물이 쇠퇴하는 등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쇠퇴를 부른 온돌 문화를 비판한 바 있는데 그러는 본인이 정작 온돌 문화의 확산으로 말미암은 조선 후기식 한옥의 비례만이 마치 정답이라는 듯이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건축미의 기준은 결국 그 문화를 따르는 사람들이 결정한다. 깊이 따질 것 없이 그 사회 구성원이 좋게 받아들이면 그 건축 양식은 안전에 문제가 되지 않는 이상 어떤 색이든 어떤 비례든 어떤 형태든 어쨌거나 올바른 건축 양식이다. 유 교수의 관점을 반대로 적용하면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는 만큼 전통 한옥 또한 '기꺼이 비웃어 줄 줄 알아야 하는' 이상한 건축 양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옥이 현대 건축물과 키메라처럼 합쳐져 있는 사례도 국내에 몇몇 있는데 이 또한 하나의 랜드마크로 기능하고 지역의 시그니처가 된다면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이다.

2. 언론에서 잘못된 정보로 일반인을 호도하는 문제

2.1. "온돌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 발언

SBS 교양 공식채널 달리에 2021년 1월 27일 업로드된 유현준의 판타집 개론에서 온돌로 인해 조선이 망했다는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유현준의 주장은 크게 다음과 같다.

2.2. 공간과 권력에 대한 실험의 오류

똑같은 실험 영상이 2020.1.2에 tvN 인사이트(클립영상)에서 2021.1.23에 사피엔스 스튜디오(원본영상)에서 업로드되었는데 실험에 오류가 있었고 전문가 두 명이 실험 참가자의 대답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유도하려고 하였다.



[1] 사실 이러한 이유로 전문적인 내용을 대중에게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전문적인 내용은 필연적으로 깊고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을 가득 함의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간단하게 전달하자니 대중이 이해할 수 없어지고 그렇다고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니 지나치게 장황해진다. 결국 무언가에 대해 심도 있게 짚고자 한다면 시간을 내서 기초부터 끈덕지게 지식의 교양을 어느 정도 쌓아야 하지 쉽고 빠른 해답만을 좇으면 왜곡만 생기기 마련이다. [2] 다만 이 경우에는 그런 얘기도 있다는 식으로 발언하였다. [3] 참고문헌 Merlino, K. R. (2011). Urban grain and the vibrancy of older neighbourhoods: Metrics and measures. Considering research: Reflecting upon current themes in architectural research, 477-488.
SEVTSUK, A., EKMEKCI, O., NIXON, F., & AMINDARBARI, R. (2013). Capturing Urban Intensity. In Conference on Computer-Aided Architectural Design Research in Asia (CAADRIA 2013) (Vol. 551, p. 560).
Palaiologou, G; Vaughan, L; (2014) The sociability of the street interface – revisiting West Village, Manhattan. In: Oliveira, V and Pinho, P and Batista, L and Patatas, T and Monteiro, C, (eds.) Our common future in Urban Morphology. (pp. pp. 88-102). FEUP: Porto, Portugal.
Gehl, J. (2011). Life between buildings: using public space. Island Press.
[4] P. BLOCK, M. DE JONG, J.A. OCHSENDORF (2006) As Hangs the Flexible Chain: Equilibrium of Masonry Arches [5] 서울은 예외다. 조선시대에도 한양(서울)에서 성공하려는 사람이 많아 투기도 심했다 한다. # [6] 한국에 아파트가 처음으로 들어선 것도 산업화가 시작하고 1차 산업보다 2차, 3차 산업에 자본이 몰리면서 인구밀도가 높아졌고 주택 부족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려 아파트를 만들게 되었다. [7] 조선시대 부르주아로 불리며 신분 상승을 꿈꾸는 평민, 천민층이 고리대금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세력이다. [8] 동학 농민 혁명은 도시 스케일이 아니였다. 전국적으로 조선의 200만~300만 민중이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동학 농민 혁명을 진압하려 청나라와 일본을 번갈아 끌어들여 결국 청일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도시 스케일이 아니라 프랑스 + 유럽 규모였다. [9] 김정운 교수는 맥락적 사고를 사용해서 설문조사 분석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음을 경고하더니 유현준 교수를 따라서 같이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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