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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9:39:20

삼교

유불도에서 넘어옴
동아시아의 전통 삼교 (三敎)
유교 불교( 대승 불교) 도교
파일:삼교.jpg
어린 석가모니 노자에게 건네는 공자 그림[1]

1. 개요2. 상세

1. 개요

동아시아의 전통적 철학& 종교 사상으로 삼교(三敎)는 유교, 불교[2], 도교[3]의 세 철학&종교를 가리키며, 유불도(儒佛道) 또는 유불선(儒佛仙)[4]이라고도 한다.

2. 상세

'삼교'라는 개념은 최초로 중국 남북조시대 시절부터 사용되었다. 이미 인도 불교부터가 선정, 삼매를 비롯하여 갖가지 요가를 통해 집중력과 통찰을 얻어 수행에 활용하고 교리를 다듬는 경향이 강했고, 훗날 금강승 탄트라로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커져 기맥에 대한 관상수련이나 내단술을 연상시키는 훈련 등도 활용하고 있었다.[5] 이로 인해 남북조시대의 중국인들은 슈라마나나 승려들을 선인(仙人)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들이 보여준 온갖 기적에 대해 풍문이나 실제 관찰한 바를 남긴 당대의 역사 기록들이 이를 반영한다. 서역승들도 중국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유교 및 도교의 경서를 읽고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격의불교의 형성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폐불을 단행했던 북주의  무제는 이미 그 전부터 선비, 도사, 승려를 모아 삼교의 체계를 세우기 위한 논쟁을 몇 차례나 열어 서로의 가르침이 얼마나 우월한가에 대해 토의하도록 하였고 이러한 삼교논쟁은 후대 왕조에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그 결과 서로의 교리가 상당히 짬뽕되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 유교에 형이상학적 요소가 강화된 성리학의 출현이라든지, 중국 불교에서 등장한 <부모은중경>[6] 등 일부 위경[7]이나, 도교 측의 노자화호설[8]이나 각종 정신수련법이라든지.

북송 남송 시대에는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사대부들도 묵조선이나 간화선 등 참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교에서 가르치는 '인', '의', '호연지기' 등을 직접 체험하고 내재화시키고 싶었던 사대부들이, 성(性)을 강조하던 선불교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서 배우려 했던 것이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 역시 젊은 시절 참선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나 주희는 스승 이동을 만나면서 선불교를 비판하게 되었고, 마음을 단지 성(性)만이 아닌 이(理)와 기(氣)로 나누어 보는 이기론을 체계화하게 된다. 대신 주희는 마음을 깊이 관찰하여, 희노애락이 크게 발하기 전의 고요한 마음 상태(미발, 未發)를 관찰하는 주경함양(主敬涵養)과, 이미 희노애락이 발하였고 의식 위로 떠오른 상태에서 그 이치와 작용을 탐구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참선의 대안으로 제시했다.[9]

삼교는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요괴에 홀렸던 왕에게[10] "삼교[11]를 골고루 신봉하여 도사도 공경하고 스님도 존경하며 유능한 인재를 많이 기르시라" 라고 훈계하는 장면이 2번 정도 나온다. 즉, 소설이 쓰여진 그 당시에는 이상한 일도 아닌 수준이였다.

그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신라 화랑의 교리를 담은 경전 '선사(仙史)'가 삼교를 포함한 내용이었다고 하며, 기본적으로 유학자였던 최치원도 직접 남긴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비문에서 삼교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며 삼교 각각에 대한 풍부한 인용으로 유불도 모두에 조예가 깊은 그의 학식을 드러내었다. 신라와 고려시대의 팔관회에서도 불교와 도교 등이 융합된 모습이 나타나며, 비로소 조선시대에 들어서서야 신진사대부 계층의 주도로 숭유억불 정책을 통해 유불도에서 불,도를 배제한 유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도교, 토속신앙의 의례를 음사로 규정하고 유학의 근본주의적인 입장을 중시하였으나, 도/불 융합적인 민간신앙의 발달과 몇몇 지방 양반가에서 가풍으로 내단수련과 선행을 중시하는 내단파가 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의 경우는 신토에 융합된 현세적 불교와 유교, 도교가 병립되는 경향을 보였다. 주요 종교는 신토와 불교였고, 유교는 정치 철학적으로 제법 이용되었다.

베트남에서도 떰 지아오(Tam giáo, 어원은 삼교와 같다)라고 해서 베트남 사람들이 믿는 일상적이고 느슨한 형태의 전통을 지칭한다.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일단은 무신론적인 사람들이 많은 베트남이지만, 역사가 역사다보니 딱히 종교라기보단 풍습화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대만에서도 셋이 적당히 섞인 느낌으로 이런저런 신상이 있는 사원에서 기도하고 그러는 경우가 흔하다.

한편 종교에서는 도 계통의 종교들이 가장 삼교론을 지향하는데 예를 들면 전진도가 유불도의 삼교합일론을 주장하면서 효경[12], 반야심경, 도덕경 을 필수 경전으로 삼은 경우와 20세기 발생한 증산법종교유지범절, 불지형체, 선지조화라 하여 유불선 합일의 삼교론을 교리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식이다.

유교, 불교, 도교는 모두 가는 길은 다르지만 " 어차피 도달하는 곳은 같다"라는 사고관을 갖기도 한다. 이는 모두 심신의 수양을 통해 자아발전과 이상 사회를 이루려는 면에서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이다.[13]


[1] 나무위키에 업로드된 이 파일에는 출처가 적혀있지 않으나 구글을 통한 검색 결과 위키미디어 커먼즈에서 확인되며, 위키미디어 커먼즈에 따르면 청나라 시대의 그림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이 그림은 삼교의 문화적 영향력과 동아시아에서의 밀접한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상상도일 뿐이다. 역사상 노자 공자가 만난 내용은 실제 여부를 떠나 사기에도 전해지지만, 그들과 석가모니와의 직접적인 접점은 없다. 히말라야가 가로막고 있어 그당시 중국과 인도의 교류는 어려웠다. 게다가, 여러 추측이 있긴 하지만 석가모니의 출생년도는 기원전 560년경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며, 이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공자보다 먼저 태어난 연장자이다. 그러므로 중장년의 모습인 공자가 어린아이의 모습인 석가모니를 안고 있는 모습은 사실 실제와는 맞지 않는 셈. 애초에 아이 생김새가 인도인도 아니다. [2] 정확히는 동아시아에 전래되어 발전한 대승 불교. [3] 혹은 도가. [4] 득도得道하여 성선(成仙)하는 것이 목표인 도교를 선법(仙法) 또는 선도(仙道)라고 한다. [5] 지금까지도 금강승 밀교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즉신성불(卽身成佛)'이다. 이 개념은 본래 이번 생에 받아서 태어난 몸을 잘 활용하여, 삼세불의 법신광명과 계합하여 성불하는 것을 뜻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구카이와 그가 세운 종파인 진언종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즉신불이라는 미라화를 동반한 극단적인 형태의 금욕 수행으로 의미 변화가 일어났다. 인도 북부 및 티베트에서도 차고 건조한 기후 탓에 사망 후 자연적으로 미라화된 승려들이 많았는데, 이를 도교의 벽곡법 등에서 영향을 받아 변형된 형태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6] 고대 중국은 효孝를 굉장히 중요시 했는데, 유교 측에 의해 불교가 가장 많이 받는 비판이 바로 효도와 관련한 것이었다. 불교의 가르침이 부모의 은혜도 잊고 머리카락을 깎고서는 후사도 잇지 않고 수행한다며 안 좋게 본 것이다. 이에 불교 측에서 정립된 경전이 바로 부모님의 혜의 함을 논하는 전, 부모은중경이다. [7] 위경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관련 뉴스 기사. 이 기사와는 별개로, 다른 대승불교 경전이 그렇듯 '부모은중경'의 등장을 '경전과 사상의 발전과 확립'으로 봐야지 단순히 짝퉁처럼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들도 있다. 성리학의 성즉리(性卽理)와 같은 학설들이 고고학적 문헌의 발견으로 과거의 유교와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음에도 주자의 학설이나 성리학의 정립과 발전을 그저 '틀린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8] 老子化胡說. 도교에서 떠받드는 노자가, 서쪽의 인도 땅으로 가서 가르침을 펼친 게 불교가 됐다거나, 석가모니로 다시 태어나 그곳의 사람들을 가르친 내용이 불교라는 내용의 설이다. 도교 측에서 불교를 폄하하기 위해 펼친, 나쁘게 말해 선동용으로 지어낸 이야기이다. 胡(오랑캐 호)라는 말이 쓰인 이유는 당대의 도교를 추종하는 중국인들이 중화사상에 따라 인도 역시 오랑캐의 땅 취급하려 했기 때문이다. [9] 정작 미발수행법은 본래 도남학의 것으로, 선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었다. [10] 삼청관 도사 파트에서 나오는 차지국 왕 이야기이다. 이 왕은 도사로 변장한 요괴에게 홀려서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했다. 사실 이 뿐만이 아니고 서유기에서는 도교와 불교의 대립이 잦은데 서유기의 시대적 배경인 당나라 시대의 도교와 불교의 대립을 모티브로 했고 아무래도 주인공인 삼장법사가 승려다 보니 불교를 보다 긍정적으로, 도교는 상대적으로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보기도 한다. 다만 삼교를 모두 중시해야 한다고 하는 만큼 수보리조사, 태상노군 등 선역 도인도 존재하고 반면에 270세 먹은 노승으로 변장한 요괴가 존재하는 등 예외 사례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래도 일단 세계관 최강자가 석가모니라는 점에서(도교의 최고존엄인 옥황상제조차 석가모니 앞에서는 숙인다.) 일단 불교가 우위에 있긴 하다. [11] 당연히 유교를 포함한다. [12]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 증삼(曾參)이 문답한 것 중에서 효도에 관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13] 물론 세부적으로 보면 다르긴 하다. 유교는 효심과 충심, 인간다운 감수성(인)과 떳떳함이 동반된 공정함(의)을 겸비한 군자가 되어 자신과 주변, 나아가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도교는 우주의 이치와 하나가 되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모두 성취한 신선이 됨으로써 영원히 살거나, 최소한 불로장생하다가 삶과 죽음에 초연한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불교는 군자나 신선 등 무언가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는 '나'가 사실은 업과 연기법의 산물일 뿐 자성이 없음을 통찰하여, 구하는 마음과 자아에의 집착을 내려놓음으로써 번뇌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만 셋 모두(특히 불교를 대승 불교로 본다면), 사회참여 등 실천적 측면에서 보면 세상의 행복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