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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3 20:38:45

윌리엄 마르텔

성명 윌리엄 마르텔
William Martel
생몰년도 미상 ~ 미상
출생지 미상
사망지 미상
직위 왕실 집사, 서본 성주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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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무정부시대 스티븐 왕의 편에 서서 마틸다에 대적했다.

2. 생애

노르만족 귀족으로, 그의 가문은 도싯 지방의 보안관을 맡았다. 1130년부터 헨리 1세의 왕실 집사로 발탁되어 잉글랜드 왕국 노르망디 공국에서 헨리 1세가 반포한 헌장에 이름이 들어갔는데, 이는 그가 영국 해협 양쪽에서 왕과 정기적으로 동행했음을 의미한다. 1135년 12월 헨리 1세가 사망한 뒤 그 해 12월 22일 런던에서 열린 스티븐 왕 대관식에 참석했다. 이후 무정부시대 내내 스티븐 왕의 가장 충실한 추종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스티븐을 위해 헌장 181개를 작성했는데, 이는 그가 왕실 추밀원 회의에 자주 참석했음을 암시한다. 적어도 1141년부터 서본 성주였으며, 도싯 북부와 윌트셔에서 스티븐의 군사 총독을 맡아 왕을 대신해 통치를 행사했다.

1141년 2월 2일 링컨 전투에서 스티븐이 생포된 뒤에도 스티븐을 위해 활동했다. 그 해 4월 7~9윌 윈체스터 의회에서 스티븐의 지지자로 이뤄진 사절단 대표로서 스티븐 왕을 감옥에서 풀어줄 것을 청원했다. 그러나 사절단은 해산되었고, 마르텔은 윈체스터 주교 블루아의 앙리에게 파문당했다. 이후 켄트주에서 군대를 일으킨 스티븐 왕의 왕비 불로뉴의 마틸다에게 가담했고, 왕비가 마틸다를 몰아내고 런던을 수복하고, 윈체스터 전투에서 마틸다의 군 사령관 글로스터의 로버트를 생포해 스티븐 왕이 복위하는 데 일조했다.

1143년 7월 1일 윌튼 전투에서 스티븐 왕의 군대가 글로스터의 로버트의 기습 공격으로 무너졌을 때, 마르텔은 스티븐이 무사히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후위대를 이끌고 사력을 다해 맞서 싸웠다. 결국 그는 생포되었고, 스티븐은 서본 성을 로버트에게 넘기는 대가로 마르텔이 풀려나도록 했다. 마르텔은 서본 성을 잃은 후에도 스티븐 왕의 추밀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147년 군자금은 마련하기 위해 애빙던 수도원에 속한 영지를 약탈했다. 애빙던 수도원장은 스티븐 왕에게 그를 처벌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무시당했다. 1150년, 노퍽과 서폭 주 법원 합동 회의가 노리치에 열렸을 때, 마르텔은 왕의 재판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1`153년 8월, 스티븐 왕의 월링포드 공방전에 참여한 그는 월링포드 주변 지역을 황폐화했지만, 마틸다의 아들인 헨리 플랜태저넷의 매복 공격으로 참패했다. 그 해 11월 스티븐 왕과 헨리가 맺은 월링포드 평화 협약을 체결했을 때, 그는 증인 37명 중 한 명이었다. 1154년 스티븐 왕이 사망한 뒤 집권한 헨리 2세에 의해 서리의 회계관을 맡아 1155년까지 맡았지만 무능하다는 이유로 경질되었고, 보안관으로서의 직위도 상실했다.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