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우에키 히토시 [ruby(植木, ruby=うえき)][ruby(等, ruby=ひとし)] | Hitoshi Ueki |
|
|
|
출생 | 1927년 2월 25일[1] |
아이치현 나고야시 | |
사망 | 2007년 3월 27일 (향년 80세) |
국적 |
[[일본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활동 시기 | 1946년~2007년 |
신체 | 165cm |
학력 | 토요대학 |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유명 코미디언, 가수, 배우. 1960년대 고도성장기를 풍미한 인물.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 멤버 중 사쿠라이 센리와 함께 최연장자였다.[2]
2. 생애
1926년 12월 25일 정토진종계 승려 우에키 테츠죠[3]의 장남으로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우에키가 태어난 날은 공교롭게도 다이쇼 천황이 죽은 날이라 다이쇼에서 쇼와로 넘어가는 순간에 세상 빛을 본 셈이다. 그래서 우에키는 다이쇼 15년 생인지 쇼와 원년 생인지가 다소 애매하다.[4] 당시 종파의 수행으로 바쁘던 아버지 테츠죠 대신 숙부가 나고야 시청에 출생신고를 하려 했으나 깜빡하는 바람에 우에키의 출생신고는 2개월 늦어지며 호적상 생일은 1927년(쇼와 2년) 2월 25일 이다. 그래서 젊을 때는 경륜 있게 보이려고 다이쇼 태생을 자처했고 중년기 이후에는 조금이라도 젊은 느낌을 주고자 쇼와 태생이라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어린 시절을 미에현에서 보냈다. 승려인 아버지 테츠죠[5]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아 어릴 적 부터 불교 수행을 받았다. 청소년기에는 도쿄에 상경하여 진정사(眞淨寺)에서 수행을 계속하다가 전쟁이 끝났다.
전쟁이 끝난 후 토요대학 문학부 국한과(國漢科)를 졸업한 뒤 가수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고, 1955년 하나 하지메와 크레이지 캣츠 멤버로 합류하여 코미디언과 배우를 겸업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우에키의 대표적인 코미디 컨셉은 무책임한 남자로 주로 여럿이 음식을 먹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유도한 다음 하나 남은 음식을 몰래 집어 먹는다던가 옆에서 같이 길을 걷는 사람을 가볍게 툭 치고 모르는 척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였다. 대표적인 유행어는 나 안불렀어? 안 부른거지... 이거 또 실례했습니다!(お呼びでない?...お呼びでない、ね。こりゃまた失礼いたしました!)[6] 였고, 노래로는 스다라부시(スーダラ節), 무책임일대남(無責任一代男), 닥치고 나를 따르라(だまって俺について来い) 등을 대 히트 시키며 1960년대를 풍미하였다.
이외에도 이런 역동적인 포즈들의 몸개그로도 유명했다.
약 15년 동안 일세를 풍미하는 가수 겸 코미디언으로, 나머지 15년 간은 최고 인기 코미디 그룹의 자리를 더 드리프터즈에게 넘겨주고 중견 및 원로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다. 1985년[7] 이후로는 코미디 활동을 줄이고 음반도 리메이크 및 메들리 음반만 내는 등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
2007년 1월 식욕부진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으나 얼마 안가서 폐기종으로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결국 동년 3월 27일 폐기종 악화로 인한 호흡부전으로 사망했다. 향년 80세.
3. 여담
- 무대에서의 경박하고 익살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실제로는 굉장히 성실하고 진지한 성격이었다. 그는 평소 힘들지만 아등바등 노력하면서 간신히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자신은 주로 아등바등 열심히 사는 사람들 수고하쇼~ 라는 식의 자기 성격과 정 반대인 날로 먹는 캐릭터만 맡는 것이 고역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 1961년 발표한 스다라부시의 가사를 처음 받아본 우에키는 '딱 한 잔만 할 생각으로 마셨는데 어느 새 꽐라가 되어버렸고, 정신을 차려보니까 지하철역 벤치에서 자고 있었으니, 이러면 몸에 좋을 리 없는데 알고는 있지만 그만둘 수 없네' 라는 대략 그런 내용에 "뭐 이런 노래가 다 있어? 이 노래가 히트한다면 그 날은 일본이 망하는 날이다!" 라고 진저리를 치며 아버지 테츠죠에게 이 노래를 불러야 할지 상담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뜻밖에도 "좋은 노래다! 알고는 있지만 그만둘 수 없다, 이건 우리 정토진종의 종조이신 신란 성인(親鸞聖人)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사람이 해서는 안된다는 일인줄 알면서도 그만두는 것이 어디 쉬운 줄 아느냐? 네 녀석이 가업( 승려)을 잇지 않은 것을 속죄하는 셈 치고 열심히 불러 보거라" 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우에키는 아버지 말을 따라 스다라부시 앨범을 취입했고 결과는 초 대박이었다.
* 우에키의 매니저 겸 운전기사로 고용한
마츠자키 마사오미(松崎雅臣)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는 사실을 안 우에키는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라"면서 친자식처럼 살갑게 대해 주고[8] 연예계 스승으로서 그가 인기 코미디언, 배우로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그는 후일
코마츠 마사오 라는 예명으로 일본 예능계에서 이름을 날리고 2020년
아버지의 곁으로 갔다.
- 우에키 히토시, 코마츠 마사오의 우습고도 눈물나는 사제지간에 관한 에피소드가 2017년 9월 NHK 종합의 8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야마모토 코지가 우에키 역을 맡고 시손 쥰이 코마츠를 연기했다.
[1]
실제 생일은
1926년
12월 25일.
다이쇼 시대의 마지막 날이다.
[2]
생일로 따지자면 12월 생인 우에키에 비해 사쿠라이는 3월 생으로 먼저 태어났다.
[3]
그는 후일
환속하고 귀금속 공예가로 일했다.
[4]
쇼와 시대의 경우 쇼와 덴노가 죽은 날인 1989년 1월 7일에 태어난 아기들은 쇼와 태생으로 보았고 그 다음날인 1월 8일생부터 헤이세이 태생으로 보았다. 즉 1월 7일 오전 6시 33분 ~ 23시 59분에 태어난 모든 일본인들은 쇼와 없는 쇼와 시대에 태어난 셈.
[5]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신자들에게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설파하다가 수도 없이 감옥에 갇히면서
빨갱이 취급을 받은
진보 성향의 인물이었다.
[6]
주로 엉뚱한 타이밍에 뜬금없이 튀어 나오거나 또는 어떤 일을 저질러 놓고 뒷감당이 안되면 무책임하게 내뱉고 도주하는 멘트였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띠용 하면서 쓰러진다 참고로 이 유행어는 우에키의
매니저였던
마츠자키 마사오미의 실수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상세 내용은
코마츠 마사오 항목에 수록.
[7]
이 해 공교롭게도
도리후의 실질적 해체 시점인
8시라구! 전원집합가 종영하였으며 요시모토 흥업 소속의 코미디언으로 대표되는 관서 지방의 만담풍 코미디가 유행을 끌기 시작한 즈음이다.
[8]
그 전에 우에키는 자신의 호칭에 대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때리겠다" 면서 마츠자키를 농반 진반으로 협박(?)했다고...
[9]
다만 보이스 뱅크(VB)는 우에키 히토시 본인의 목소리로 만들어 진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