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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03:17:39

욘 안데르센

욘 안데르센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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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파일: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2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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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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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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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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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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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안데르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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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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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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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 위쿤
云南玉昆足球俱乐部
파일:PXsAYPo.jpg
<colbgcolor=#003e93><colcolor=#f68a00> 이름 예른 아네르센
Jørn Andersen
출생 1963년 2월 3일 ([age(1963-02-03)]세)
노르웨이 외스틀란데트지방 외스트폴주 프레드릭스타드시
국적
[[노르웨이|]][[틀:국기|]][[틀:국기|]]

[[독일|]][[틀:국기|]][[틀:국기|]][1]
신체 188cm
직업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003e93><colcolor=#f68a00> 선수 외스트시든 IL (1975~1982)
프레데릭스타드 FK (1982~1984)
볼레렝아 IF (1985)
1.FC 뉘른베르크 (1985~1988)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88~1990)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90~1991)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91~1994)
함부르크 SV (1994~1995)
SG 디나모 드레스덴 (1995)
FC 취리히 (1995~1997)
FC 루가노 (1997~1999)
FC 로카르노 (1999~2001)
감독 FC 루체른 U-21 (2001~2003)
로트바이스 오버하우젠 (2003~2004)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2005~2006/ 코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2006 / 감독 대행)
스코다 크산티 FC (2007)
키커스 오펜바흐 (2007~2008)
1. FSV 마인츠 05 (2008~2009)
AE 라리사 FC (2010~2011)
카를스루어 SC (2011~2012)
SV 아우스트리아 잘츠부르크 (2015)
북한 대표팀 (2016~2018)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8~2019)[2]
홍콩 대표팀 (2021~2024)
윈난 위쿤 (2024~ )
국가대표 27경기 5골 ( 노르웨이 / 1985~1990)

1. 개요2. 선수 경력
2.1. 초기 경력2.2. 독일 무대2.3. 커리어 말기2.4.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경력
3.1. 유럽 무대3.2.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3.3.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
3.3.1. 2018 시즌3.3.2. 2019 시즌
3.4.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3.5. 윈난 위쿤 감독
4. 여담5.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노르웨이 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24년부터 윈난 위쿤의 감독을 맡고 있다.

1.FSV 마인츠 05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인천 유나이티드 FC,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등의 감독을 역임했다.

2. 선수 경력

분데스리가 최초의 외국인 득점왕이다.

2.1. 초기 경력

노르웨이 프레드릭스타에서 태어나 1982년에 성인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주 득점원으로 자리잡았다. 1985년에 볼레랑아에서 뛸 당시에는 노르웨이 리그 득점 1위를 차지하기도 할 정도로 자국에서는 촉망받는 공격수였다.

2.2. 독일 무대

1985년에 1.FC 뉘른베르크로 이적하면서 독일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안데르센은 뉘른베르크의 주포로 자리잡았고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시절에는 18골로 분데스리가 최초의 외국인(독일 외 국적) 득점왕을 차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시즌 이후로는 폼이 떨어지면서 여러 팀을 오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뉘른베르크 시절에는 그럭저럭 준수한 공격수였던 반면, 오히려 득점왕을 수상한 프랑크푸르트 시절엔 기복이 심했는데, 다섯 시즌 동안 기록한 33득점 중 득점왕을 차지한 1989-90 시즌 18득점, 재영입된 1991-92 시즌 9득점 외에는 매시즌 2득점밖에 하지 못할 만큼 반짝 활약이었고 뒤셀도르프나 함부르크, 드레스덴에서는 이러한 깜짝 활약도 없이 벤치워머 수준의 스탯만 남겼다.

2.3. 커리어 말기

취리히, 루가노, 로카르노에서 남은 기간을 보내다가 2001년 은퇴했다.

2.4. 국가대표 경력

1985년 노르웨이 국가대표로 데뷔해 A매치 27경기 5득점의 기록을 남겼다. 이 시기 노르웨이가 유럽에서도 중하위권 팀이었기 때문에 메이저 대회 본선에 참가한 적은 없고 월드컵과 유로 예선을 주로 뛰었다.

3. 지도자 경력

3.1. 유럽 무대

2001년 FC 루체른의 U-21 감독이 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로트바이스 오버하우젠에서 처음으로 성인 팀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1.FSV 마인츠 05 시절에는 위르겐 클롭의 후임 감독이었다. 독일 2부 리그 준우승을 기록하며 2008-09 시즌 분데스리가로 승격시켰으나 2009-10 시즌 개막 직전 선수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유스팀 감독이었던 토마스 투헬로 대체되었다.

카를스루어 SC를 마지막으로 휴식기를 가지다가, 2015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감독이 되면서 감독 경력을 이어갔다.

3.2.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6년 5월에 월드컵 2차 예선[3]에서 탈락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북한이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건 1993년 헝가리 출신의 체르너이 팔[4] 감독 이후 23년 만이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북한이다보니 자국 언론에서도 비난 여론이 나오는 모양이다.

계약 기간은 1년이라고 한다. 하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 이미 탈락한 북한은 현재 나갈 만한 국제 경기가 거의 없는 상태인데 1년이라는 계약 기간은 좀 짧은 듯하다. 그리고 2018년 3월 31일까지 재계약하였다. # 북한 대표팀 감독 시절 연봉은 10억 원 이상에 최고급 호텔을 숙소로 제공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영어 통역이 없어서 처음에는 선수들과의 소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돕겠다고 포부를 피력.[5] 2017년에는 세리에A 칼리아리 칼치오 한광성이 진출하는데 도움을 줬다.[6] 2000년대 이후 북한 축구 대표팀의 성적이 급격히 하락한 것은 해외 고립이기 때문에 성과가 좋으면 재계약할 수도.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AKR20160826061400007_01_i.jpg
2016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평가전에서 승리한 뒤 북한 선수들과 함께.

2018년 3월을 마지막으로 북한 대표팀의 지도를 끝냈다. 2017년 E-1 챔피언십 부진이 이유라고 하지만, 외신과 인터뷰에서 "대표팀의 성장과 목표를 바라보며 지도하는 매력은 있지만, 악화된 경제난 탓에 더 이상 북한에 머무를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혀 사실상 금액적인 문제 때문에 재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직 북한 국가대표 감독이었다는 이색적 경력덕택에 남북 체육 관련 기사에는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가끔 인터뷰도 한다. 그리고 안데르센 감독 인터뷰에서 북한에도 나이키, 아디다스 매장이 있고 북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가장 많이 선호한다는 얘기를 했다.

3.3.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

파일:욘 안데르센.jpg

3.3.1. 2018 시즌

북한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거취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그러다가 5월 말, 이기형 감독의 사퇴 이후 감독직이 비어있던 인천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인천의 초대 감독인 베르너 로란트와도 인연이 있다고 밝힌 안데르센은 인천이 울산 현대를 상대로 임은수의 극적인 동점골을 통해 무승부를 거둔 경기를 인상깊게 보았다고 전해지며, 이후 스테판 무고샤 등 핵심 선수들의 분석과 수비 문제 개선 방안을 담은 자료를 건네기도 했다. 관건은 연봉 문제로 인천 재정 상 북한 대표팀에서 주던 연봉을 보장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안데르센 본인이 클럽 팀을 선호했고, 카메룬 대표팀 등을 거절하고 결국 인천을 선택했다. 2018년 6월 9일에 인천 감독직 부임이 발표되면서 구단 역사 상 세 번째 외국인 감독이 되었으며, 계약 기간은 1년 6개월로 전해진다. 그의 첫 경기는 7월 7일 전북 현대 모터스전 원정경기가 된다. 이 경기는 월드컵에서 내공을 쌓고 돌아온 문선민이 2골을 터트리며 인천이 3:2로 앞서갔지만, 퇴장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종료 직전에 김신욱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안데르센 감독 부임이후 인천 훈련이 죽을 맛이 되었다는 선수들 증언이 들려온다. 또한 이기형 전 감독 시절 선수들이 지각이나 팀 규율 위반에도 벌금조차 걷기 힘들었을 정도로 개판인 기강도 잡혔다고 한다.[7]

이후 2무 2패를 기록하다 7월 22일 FC 서울전 2:1 역전으로 K리그 무대 첫승, 이후 전남 원정에서도 3:1 승리로 2연승을 기록했다. 나름 상승세를 타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가 싶었지만, 8월 19일 강원에게 무려 7:0으로 발리는 충격패를 당했다. 안데르센이 복붙 라인업을 들고 오는데다가 자꾸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일부는 용병술이 이기형과 다를 바가 없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 대패 이후 선발 라인업을 대폭 변경하여 팀 분위기를 다잡았고 복귀한 고참 남준재를 중심으로 팀이 단결하면서 위기를 헤쳐나갔다. 확실히 전반기 내내 단 1승에 그쳤던 이기형 시절[8]에 비해서 확실히 승점을 차곡차곡 쌓고 있지만, 워낙 전반기 후유증이 심한데다 후반기 하필 비트코인급 경기력 떡상을 기록하고 있는 남쪽팀 덕택에 아직 최하위다. 하지만 전남의 김인완 대행으로의 교체 버프가 서서히 꺼져가고 인천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차이가 좁혀졌고, 결국 35라운드에서 상주 상무를 꺾고 탈꼴찌에 성공했다. 이어서 36라운드에 강원 FC를 꺾으면서 일단은 강등권을 탈출했다! 확실히 고정된 선수만을 기용하고, 고슬기 김대중 등 일부 선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신임을 꺾지 않는 고집스러운 면모가 있기는 하지만 고작 1승에 그쳤던 이기형에 비해서는 훨씬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반등의 가장 큰 요소로는 팀 분위기를 잡은 것, 팀이 심각한 부진을 보일 때마다 한 차례씩 라인업을 대거 교체해 다른 길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 남준재와 정동윤 등 훌륭한 선수의 영입이 이루어진 것 등을 들 수 있다. 팀의 해이한 기강을 잡고 조직력을 끌어올린 점과 체력 훈련을 기반으로 심각한 수준이었던 선수들의 몸상태를 그래도 꽤 개선시킨 점도 안데르센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후 36라운드 강원전 역전승, 37라운드 서울전 원정승[9]으로 마침내 다이렉트 강등 탈출에 성공했으며, 전남 드래곤즈와의 리그 폐막전에서 3:1 승리를 거두며 인천의 1부리그 잔류를 확정지었다.

잔류를 확정지은 이후 인터뷰에서 작심발언으로 구단 행정에 대한 한심한 행태를 강하게 지적했다. 특히 스카우팅 팀에 대해 쓴소리를 날렸는데, 스카우트 팀장과의 이면 계약으로 피해를 본 백승원 사건을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10]

3.3.2. 2019 시즌

전에 인터뷰에서 예고했듯이 스쿼드에 필요없는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기 시작했다. FA 대상자 중 이효균, 박종진 등 스쿼드에서 입지가 좁아진 선수들을 내보냈고 김동석 역시 인천을 떠나게 되었으며, 내셔널리그 출신의 선수들과 유스 출신 선수들을 수혈하는 등 전반적으로 젊은 팀을 만들었다. 팀 내 에이스였던 아길라르 문선민을 각각 제주와 전북으로 보냈지만, 공격과 수비의 핵심인 스테판 무고샤 부노자를 지켜냈다. 일단 공격 한 자리는 스웨덴 국가대표팀 출신의 질로안 하마드를 영입하였고, 스웨덴과 이라크 이중국적 소유자라 향후 이적 시장 상황에 따라 아시아쿼터로서의 활용도 가능하다. 또한 문선민을 보내면서 K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센터백 이재성을 데려오며 부노자의 파트너 자리를 채웠다. 여기에 문선민을 보내며 받은 현금으로 양준아, 문창진, 허용준 등 K리그1에서 검증된 선수들을 영입하며 매번 되풀이 되던 주전 선수의 이탈과 질보다는 양으로 스쿼드의 보충을 했던 과거와 달리 안데르센 감독의 의중이 반영된[11] 검증된 자원을 데려오며 2019 시즌의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다.

2월 3일 자신의 생일에 사비를 털어 바베큐 파티를 여는 비범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에 선수들도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해 전달하여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팀 분위기는 굉장히 좋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다만 생일 축하 자리에서 주장 남준재가 선수단을 대표해 휴식을 제안하는 등, 훈련 강도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2018년에 선수들 훈련이 죽을맛이 되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기도 했다.

3월 2일 열린 제주와의 홈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거두고 3월 9일 열린 경남과의 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2:1 승리를 거두면서 좋은 출발을 선보이고 있다. 한편 콩푸엉이 인천에 입단한 뒤 과거 쯔엉의 사례처럼 콩푸엉을 언제 출전시킬 것이냐는 베트남 팬들의 성화에 대해서는 선발 출전 여부는 오로지 누가 가장 좋은 컨디션을 갖췄느냐에 달려 있으며, 그것을 결정하는 건 감독인 자신의 소임이라고 강조하면서 선을 그었다.[12] # 그러면서도 능력이 좋다면 언제든 투입될 수 있다며 여지를 남겨뒀고, 3월 9일 경기에서 후반 막판에 승리가 확실시되자 드디어 콩푸엉을 투입시키면서 기회를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 1승 1무를 거둔 이후로는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부상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감독 본인이 반복하고 있는데, 물론 부상자의 발생이 잦은 것은 사실이지만 감독이 펼치는 전술 자체가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이전 해에는 중원의 밸런스를 고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압박, 활동량을 강조하는 나름의 철학도 있었으며 방향 전환 패스 능력이 있는 미드필더들을 중심으로 상대를 흔드는 플랜도 보였다. 그러나 2019 시즌의 인천은 완전히 무너진 팀 밸런스, 확연히 줄어든 압박, 짧은 패스만을 고집하다가 막혀서 결국 목적이 없는 롱패스만을 남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안데르센은 질로안 하마드의 성향만을 보고 실제 이 선수의 능력은 고심하지 않은 채 하마드를 중원에 위치시켰고, 이를 중심으로 전술을 짜려고 했다. 그러나 하마드는 중원에 서기에는 너무 돌파에 의존하고, 모험적인 패스가 많으며, 수비를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변 선수들이 하마드의 스타일을 잘 보조하는 것도 아니다. 파트너로 주로 기용된 박세직은 인천 선수들 중 그나마 방향 전환 패스를 비롯 기술적인 면이 호평을 받았으나, 전반적인 판단력과 수비 가담, 활동량이 부족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전임자인 고슬기에 비해 클래스가 많이 차이나는 편이다. 한석종이 떠난 공백도 드러내면서 동시에 임은수의 한계가 나타났고, 공격 전개가 완전히 실종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건을 해줘야 할 허용준도 이도저도 아닌 롤을 맡고 이도저도 아닌 선수로 전락했으며, 김보섭 역시 부상병동 인천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중원의 희망으로 여겨진 이정빈은 추락한 폼을 보여주고 있으며, 수비진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 김진야의 풀백 기용은 여전히 주요 비판점이고, 성향이 비슷한 부노자와 김정호의 센터백 조합은 계속 동선 문제, 뒷공간 문제, 집중력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5연패를 기록하자 인천은 4월 15일, 상호 합의 하에 안데르센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 생각보다 굉장히 빠르게 경질이 일어나서 여러 논란이 있었고 성급한 결정이라는 주장, 프런트와의 알력이 원인이라는 주장, 부상자가 많은데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단적으로 말해서 안데르센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오직 자신의 고집만으로 팀에 맞지 않는 전술을 무리하게 강행한 책임은 감독 본인에게 있으며, 김진야의 포지션이나 일부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기회를 주지 않은 점도 안데르센에 대한 비판점이다. 정말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기형의 경질이 지나치게 늦었던 것이지 안데르센에 대한 빠른 결정은 인천에게는 오히려 나은 결단일수도 있다. 물론 인천이 현실적으로 영입할 만한 감독 매물이 별로 없고 감독을 바꿔도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무엇이라도 시도해봐야 하며, 안데르센의 경질도 그런 측면에서 봐야 한다.

물론 감독이 아닌 프런트의 계속된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다. 구단의 근본적인 잘못이 고쳐지지 않은 채 감독만 계속 바꾸는게 무슨 이득이냐는 것이다.

실제로 인천은 안데르센 감독을 경질한 이후 임중용 수석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겨 다시금 깜짝 상승세를 노렸지만, 오히려 17일 K3리그 소속인 청주와의 FA컵 32강 경기에서 0대1 충격패를 당해, 청주에 구단 사상 첫 16강행이라는 선물만 상납한 꼴이 되어버렸다. 김봉길-김도훈-이기형 등을 성적 부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내심 없이 경질한 결과, 다음 감독을 선임하며 잠깐 동안만 반짝했을 뿐 근본적인 문제는 뭐가 바뀌었나는 것이다. 안데르센의 경우도 비록 5연패를 하긴 했지만 아직 시즌 초반에 몇몇 선수들의 부상 등까지 감안하면 좀 성급한 결정이 아니었냐는 의견 또한 있다. 그나마 이후 인천은 유상철을 선임하며 약간이나마 반등을 하며 10위로 잔류에는 성공한다. 이쯤되면 감독이 문제가 아니고 구단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 주는 것이다.

3.4.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21년 12월 18일,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2023 아시안컵 예선 D조에서 인도에 이어 조 2위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는 홍콩이 영국령 홍콩 시절이던 1968년 아시안컵 대회 이후 무려 55년 만의 일이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25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도 대표팀을 이끌었는데, 실력에 행운까지 따라주면서 본토인 중국 대표팀보다 더 호성적을 기록했다.

C조에 우즈베키스탄, 시리아, 아프가니스탄과 한 조에 편성되었으나, 돌연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가 기권을 하면서 조별예선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C조의 2팀은 무조건 16강 진출이라는 행운을 받았다.

하지만 우즈벡과의 2경기 모두 패배하며 홍콩이 토너먼트에서 금방 탈락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위로 진출한 16강에서는 비교적 약체인 팔레스타인을 만나 1:0 신승을 거두고 8강 진출에 성공했고, 10월 1일 펼쳐진 8강전에서는 이란 대표팀을 만나게 되어 대회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지배적인 예측과 달리, 1:0으로 이란을 잡는 이변을 보여 주며 4강 진출이라는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사상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같은 날 펼쳐진 다른 8강전 경기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지고 탈락했기 때문에 홍콩이 중국보다 더 높은 성적을 기록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펼쳐졌다.

55년 만에 나서는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조별 리그에서는 1차전 아랍에미리트를 상대로 1:3으로, 이란을 상대로는 0:1로, 3차전 팔레스타인을 상대로도 0:3으로 패하면서 3전 전패를 기록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홍콩의 전력이 예전에 비해 많이 올라왔다는 평이 지배적이며, 공격 상황에서 확실하게 슈팅을 날려줄 선수의 부재와 얇은 선수층의 한계로 아쉽게 패했다는 반응이 많을 정도로 55년 만에 홍콩을 아시안컵 본선에 진출시킨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4년 4월 29일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3.5. 윈난 위쿤 감독

2024년 6월 3일에 중국 갑급 리그의 윈난 위쿤 감독으로 부임했다.

4. 여담

5. 둘러보기

파일: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로고_좌우_White.svg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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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60259> A조 파일: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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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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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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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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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마사타다
역대 대회의 참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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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노르웨이 출신이지만 1993년 독일 국적도 취득. [2] 시즌 도중 경질. [3] 8개조 중에서 1위는 바로 3차 예선으로 가고 2위는 각조 2위끼리 승점 및 골 득실로 상위 4팀이 3차 예선으로 가는데 북한은 중국에 1점 차로 밀려서 5위를 마크, 3차 예선에 가지 못했다. [4] Csernai Pál (1932-2013) 헝가리 반소봉기 이후 망명한 헝가리인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의 전성시대를 이끈 명감독이다. 하지만 이후 커리어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고, 1993년 북한팀을 맡으며 절치부심을 노렸으나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진출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역할만 감독이지 북한 대표팀 내부 감독이 따로 있어 바지감독이라는 설도 있다. [5]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연변FC의 암흑기에 북한인 용병들이 와서 뛰곤 했다. 유럽 팀에도 몇몇 북한 선수들이 뛰고 있다. [6] 2023년 진행한 인터뷰에서 안데르센 감독 본인이 밝히길 이적에 필요한 추천서를 써주었다고 한다. [7] 이기형 시기에는 문학 경기장에서 레이싱을 펼친 선수가 있는가 하면, 부노자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젊은 선수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예 규율이라는 게 없는 수준이어서 자유를 넘어선 방종을 누린 선수들은 그야말로 정신 상태가 심각하게 해이한 수준이었다. 괜히 남준재가 영입되면서 한 인터뷰에 인천 특유의 끈끈함이 사라졌다는 말을 한 게 아니다. [8] 12경기 1승 4무 7패, 박성철 대행은 2경기 1무 1패. 안데르센은 부임 이후 리그 22경기 7승 7무 8패로 웬만한 중위권 팀 수준의 승점은 얻어냈다. [9] 서울원정승리는 무려 5년 8개월만이다. [10] 일설로는 과거 르언 쑤언 쯔엉 영입으로 살짝 말이 나왔던 문제 때문에 쯔엉 에이전트가 구단에 뭔짓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제기가 나왔지만 욘 안데르센 에이전트가 쯔엉 에이전트인 DJ 매니지먼트 이동준이라서 이 의혹은 설득력이 없다. 참고로 이동준 에이전트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에이전트다. [11] 이걸 제대로 증명한 게 응우옌 꽁 프엉 영입이다. 꽁프엉 얘기가 돌 때 인천 프런트가 또 마케팅용으로 데려와서 쯔엉 시즌2를 만들꺼라는 우려가 돌다가 안데르센 감독이 오랜기간 걸쳐서 봐뒀고 이천수 전력강화부장에게 영입을 요청했다고 해명해서 과거같이 프런트 독단이 없다는걸 증명했다. 실제로 신인선수 계약을 제외하고 모든 이적, 계약작업은 안데르센 감독과 이천수 전력강화부장의 합의로 진행된다. [12] 현실적으로도 이게 맞는 말이다. 팬들의 비위를 맞추다가 팀을 망치느니 욕은 좀 먹더라도 자신의 철학을 고수해서 좋은 결과로 보답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팀에 더 보탬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