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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욱(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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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彧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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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삼국시대 조위의 관료.

2. 생애

하급 관원으로 사마의 조상을 주살했고 왕릉 영호우 조방은 어려서 천자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면서 그를 폐위하고 초왕 조표를 옹립하기 위한 찬탈 계획을 꾸몄다.

251년 봄에 오나라가 도수를 막자 이 때문에 왕릉이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각 군대에게 비상태세를 갖추도록 하면서 적군 토벌을 하겠다는 상주문을 올렸지만 조서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왕릉이 양홍을 파견해 폐립하는 일을 황화에게 알리게 했지만 양홍이 황화와 함께 그 일을 사마의에게 알려 음모가 발각되었다.

사마의를 군사를 이끌고 내려오자 왕욱은 왕릉의 지시로 사마의에게 파견되어 왕릉을 대신해 사죄하고 인수와 절월을 보냈으며, 혼자 나와서 스스로를 결박하고 물가에서 죄값을 받으려고 기다렸다. 사마의가 왕릉 몰래 백척까지 나아가 왕릉이 있는 곳에 도달했으며, 왕릉은 스스로 대세가 끝났음을 알고 배를 타서 스스로를 결박하고 물가에서 죄값을 받으려고 기다렸다.

그 때 왕욱은 왕릉의 지시로 사마의에게 파견되어 왕릉을 대신해 사죄하고 인수와 절월을 보냈다.

3. 창작물에서

진삼국무쌍6에서는 왕릉의 난에서 수춘성 안에서 왕릉과 가까운 쪽에서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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