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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0 12:09:39

오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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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언어별 표기3. 역사4. 기타

1. 개요

체코 북부 모라바슬레스코주에 위치한 도시로, 인구는 55,600명(2024년 기준)이다.

2. 언어별 표기

체코어 Opava[1]
폴란드어 Opawa(오파바)
독일어 Troppau(트로파우)
라틴어 Oppavia(오파비아)

3. 역사

1195년 문헌에 처음 등장했다. 1224년 자치권을 부여받은 이래 실롱스크 공국의 수도가 되었고 1526년 보헤미아 왕국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에게로 넘어가면서 합스부르크 제국에 편입되었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으로 슐레지엔 프로이센 왕국으로 넘어갈 때 합스부르크 제국에 잔류했으며 이후 오스트리아령 상하 슐레지엔 공국으로 편입되었다. 1820년 트로파우 회의가 이 곳에서 열렸다.

191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당시의 도시 인구는 30,762명(이 가운데 29,587명은 상주 인구였음)이었으며 전체 인구 가운데 92%(27,240명)는 독일어가 모국어였다. 1919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성립된 체코슬로바키아에 귀속되었지만 1938년 나치 독일에 점령되기도 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체코슬로바키아에 귀속되었고 독일계 주민들은 강제 추방되었다.

4. 기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 창단된 프로축구 구단인 SFC 오파바가 이 곳에 있다.

원래 리히텐슈타인 공의 소유의 영지였으나 공식영토가 아닌 단순 부동산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되고 보헤미아 왕국이 독립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가 통치하였고, 이후에도 부동산 자체의 소유권은 계속 공가가 갖고 있었지만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화되면서 독일계 주민들을 강제 추방할 때 리히텐슈타인 공가 소유의 부동산도 함께 몰수해서 리히텐슈타인은 반환을 요구하며 오랫동안 체코와 단교한 상태로 외교관계가 없었다. 이후 수교를 하긴 했지만 결국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다.
[1] 영어 표기도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