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오타니 쇼헤이의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경력을 정리하는 문서.2. 일본 U-18 야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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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 캐나다전 |
2012 WBSC U-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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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 선발 | 이닝 | ERA | WHIP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피안타 | 피홈런 | 실점 | 자책점 | 사사구 | 삼진 | 상세 |
2 | 2 | 10⅓ | 4.35 | 1.26 | 0 | 1 | 0 | 0 | 5 | 0 | 5 | 5 | 8 | 16 | ## |
경기 | 선발 | 타수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도루 | 삼진 | 4구 |
9 | 9 | 34 | 11 | 0 | 1 | 0 | 7 | 3 | .324 | .400 | .382 | .782 | 0 | 5 | 3 |
2012년 9월, 고교 최고의 투수 유망주인 후지나미 신타로[1]와 함께 대한민국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에 일본 대표로 출전했다. 당시 인지도가 워낙 높다 보니 한국 언론에서도 다룰 정도였다. 당시 한국 언론에서는 오타니 쇼헤이의 라이벌로 윤형배( NC 다이노스 1차지명, 당시 천안북일고)를 꼽았다. 누가 더 괴물인가…다양한 변화구 韓 윤형배 vs 160km 던지는 日 오타니, 윤형배 “日 괴물 잡고 안방서 V6 쏜다”
캐나다를 상대로 선발 투수로 등판해 3.1이닝 동안 3실점 5사사구 4삼진 1폭투로 저조한 피칭을 했고, 이후엔 전경기 4번 지명타자로 출전 했다. 대한민국 U-18 대표팀과의 5-6위 결정전에 선발로 등판해 훗날 SK 와이번스에 입단하게 되는 이건욱 투수와 선발 맞대결을 벌여 7이닝 2실점 12탈삼진으로 호투했으나 패전투수가 되었다. # ## 이때 대표팀 선발이던 이건욱은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오타니에게 완승을 거두었다. 이 날도 4번타자로 타석에 들어서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3.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3.1. 2015 WBSC 프리미어 12
2015 WBSC Premier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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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 선발 | 이닝 | WHIP | 방어율 | 승 | 패 | 홀드 | 세이브 | 피안타 | 피홈런 | 실점 | 자책점 | 사사구 | 탈삼진 | 상세 |
2 | 2 |
13 (5위) |
0.38 |
0.00 (1위) |
1 | 0 | 0 | 0 | 3 | 0 | 0 | 0 | 2 |
21 (1위) |
## |
사실상 오타니가 대한민국 야구팬들에게 얼굴을 본격적으로 비추게 된 첫 국제 이벤트. 훗날 메이저 리그에서의 투타겸업 활약 이전에 오타니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대다수가 이 시절을 떠올릴 것이다.[2] 다른 경기도 아닌, 한일전에 두 차례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무려 총 13이닝 3피안타 21K 무실점이라는 충격적인 호성적을 기록했다.
이전에 후지카와나 이라부, 마쓰자카 같은 탑클래스 선수들도 어느 정도는 공략을 했었다는 전례로 비추어 오타니도 공략이 되지 않을까 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KBO 리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압도적인 구위를 자랑하며 160km/h를 던지는, 미친 퍼포먼스를 통해 당시 한국 국가대표팀 강타자들을 줄줄이 떡실신시키는 동시에 대한민국 야구팬들에게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3]
3.1.1. 11월 8일: 한국전 ( 홈) [승리]
승/패 | 이닝 | 탈삼진 | 피안타 | 피홈런 | 사사구 | 실점 | 자책점 | 하이라이트 |
승 | 6 | 10 | 2 | 0 | 0 | 0 | 0 | # |
3.1.2. 11월 19일: 한국전 ( 홈) [ND]
승/패 | 이닝 | 탈삼진 | 피안타 | 피홈런 | 사사구 | 실점 | 자책점 | 하이라이트 |
ND | 7 | 11 | 1 | 0 | 0 | 0 | 0 | # |
일본은 4강전 선발을 오타니 쇼헤이, 결승전 선발을 다케다 쇼타라고 미리 공개했고, 실제로 오타니는 11월 19일 도쿄돔에서 열린 4강전(두 번째 한일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다시 한 번 대한민국 타자들을 압살했다. 이대호에게 몸에 맞는 볼, 7회 초 정근우에게 맞은 첫 안타를 빼면 출루조차 허용하지 않으면서 한국 타자들을 압도했다. 개막전 김현수의 첫 안타는 55구 만에 기록했는데 4강전은 70구 만에야 첫 안타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오타니의 무실점 역투에도 불구하고 팀은 9회초 불펜진의 대방화로 쓰라린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전력분석관으로 참가했던 김시진은 준결승전을 앞두고 아예 오타니가 내려간 이후를 집중 공략하는 게 나을 거 같다고 말했고, 김시진의 예측은 9회 초에 적중했다. 오타니 공 보다가_다른 투수 공_보니_너무_느렸어요_txt.[4]
일본 현지에서는 준결승 탈락 이후 왜 85구밖에 안 던진 오타니를 왜 내렸냐며 일본 대표팀 감독 고쿠보 히로키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이에 대해 선수보호 차원에서 내렸다는 설도 있는데, 이를 뒷받침해 주는 일화로 오재원 인터뷰에 따르면 이대호에게 오타니가 리그에서도 저렇게 던지냐라는 질문을 하자 이대호가 "리그에서 1회부터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라고 했다고. 하지만 경기 후 오타니는 노리모토 다카히로가 잘 던질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마지막까지 던질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라고 한 걸 보면 오타니의 전력투구로 인한 무리로 일찍 내렸다기보다는, 고쿠보 감독의 투수교체 미스로 보인다. 고쿠보 감독은 "오타니는 투구수와 상관없이 7회면 충분하다고 봤다. 나머지 2이닝은 노리모토가 막아줄 것으로 생각했다. 결국 노리모토가 잘 이끌어줬어야 했다"고 인터뷰 했지만. 장훈 옹도 오타니를 더 길게 갖고 갔어야 했다며 고쿠보를 비판했다.[5]
프리미어 12에서 일본 측이 파행적인 경기운영으로 한국에 많은 불이익을 준 와중에도 오타니의 실력은 진짜라고 한국 팬들에게 인정받았다. 한국 대표팀이 역대 일본전에서 우에하라 고지, 마쓰자카 다이스케, 와타나베 슌스케, 다르빗슈 유, 이와쿠마 히사시 등 일본의 정상급 투수들에게 어느정도 고전해왔지만, 그 이상으로 벽을 느꼈던 상대가 바로 오타니였다. 아래는 한국 선수들, 감독들이 당시 오타니를 두고 남겼던 말이다.
- 김인식: “오타니는 정말 좋은 투수다. 직구 구위가 워낙 좋았고 손가락을 벌리는 차이가 만든 두 종류의 포크볼도 위력적이었다. 완전히 오타니에 눌려서 제대로 된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 선동열: "오타니는 한 세기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정말 좋은 선수이다."
- 이용규: "내가 그 투수를 얘네한테 말할 정도의 투수의 레벨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들어가서 느껴봐' 하고 끝냈다. '직구가 어때', '변화구가 어때' 이걸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이 투수는 얘기할 레벨이 아니었다."[6]
- 박병호: "오타니 쇼헤이의 공은 살면서 처음 경험한 위력적인 공이었다.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 김현수: "오타니의 공은 그냥 못 친다. 그 선수는 지구 최강의 투수다."
- 나성범: "야구를 하면서 이런 볼 처음 봤다."
- 황재균: "공이 없어진다"[7]
- 이대호: "못 친다... 저렇게 던지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다."[8]
이후 오타니는 2015 WBSC 프리미어 12 All-World Team 선발투수 부문에 선정됐을 뿐만 아니라, ERA 0.00을 기록하면서 최우수 평균자책점 부문도 수상하였다. 이 때문에 사실상 본 대회의 최대 수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타니는 프리미어 12 대회 이전에는 소속팀 닛폰햄의 미묘한 인기 때문에 그 역시 전국적인 인기 선수라기에는 조금 미묘했지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프리미어 12 한일전에서 한국 타자들을 줄줄이 압도하면서 전국구 슈퍼스타로 거듭났다.
그렇게 불펜진의 대방화로 팀이 역전패를 당한 뒤, 오타니는 인터뷰에서 " 대한민국은 뛰어난 단결력을 보였다"며 결과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준결승에 등판한 오타니가 불과 이틀 후의 3,4위전에 불펜으로라도 또 등판할 확률은 0에 가까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돔에서의 3,4위전 대비 연습에도 참가했다. # 이에 대해 오타니가 운동선수로서 프로페셔널한 마인드와 좋은 멘탈을 가졌다는 호평이 줄을 이었다. 이처럼 2015 WBSC 프리미어 12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내 팬들의 증가와 함께 언론의 관심 또한 상당히 높아지게 되었다.
3.2. 2017 WBC (불참)
인생 계획에 2017년 WBC 참가가 있을 정도로 열의가 있었으나, 2016년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 주루 중 발목 부상을 입었고, 11월 일본 대표팀 평가전에서 더욱 악화되었다. 발목 문제로 WBC에서 투수로는 뛰지 않고 타자로만 뛸 계획이었으나, 부상이 생각보다 심각해 결국 WBC 출전 자체가 불발되었다. 오타니는 "내가 빠진다는 것은 다른 선수가 지금 합류한다는 얘기인데, 여기까지 끌고 와서 미안하다. 어렸을 때부터 봐 온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뛰고 싶었다. WBC는 특별한 대회다. WBC에서 꼭 우승하고 싶었다. 지금은 목표를 잃은 상황이다. 좀처럼 바꾸기가 쉽지 않다." 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이 때 물거품이 되었던 오타니의 WBC 꿈은 후술하다시피 6년 뒤 드디어 실현되었다.
3.3. 2023 WBC
자세한 내용은 오타니 쇼헤이/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문서 참고하십시오.
[1]
완성도로는 오타니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
한신 타이거스 입단.
서울청소년야구대회, 일본 최강팀 온다.
[2]
이때 오타니는 투수로써 미친 퍼포먼스를 보였으므로 이 때의 퍼포먼스를 본 사람들 중에서는 현재도 투수로써 오타니를 더 잘 기억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3]
정말로 선발 투수로 160km/h를 던진
안우진이 등장하기 한참 전인 대회 당시에는 KBO 역사상 오타니급의 구속을 지닌 선발투수는 LG의
레다메스 리즈 정도 뿐이었고 그마저도 스플리터라는 확실한 결정구가 있었던 오타니와는 달리 직구 원툴에 가까웠으며 제구도 오타니에 비할 바 못했다. 애초에 그런 투수였으면 KBO 근처도 안왔겠지만.
이대호만한 장신의 오타니가 내리꽂는 160km/h의 직구와 140km/h 후반대로 날아오는 포크볼은 크보 타자에겐 그야말로
충공깽이었다.
[4]
다만 뒤이어 나온 투수들도 일본에서 최정상급 투수들이었다.
노리모토 다카히로와
마쓰이 유키는 그날 경기에서 적어도 150km/h대 초중반을 찍었던 강속구 투수들이었고 특히 노리모토는 9회의 무너질 때의 임펙트가 커서 그렇지 도쿄 대첩 당일에도 오타니의 뒤를 이어 올라온 8회를 단 8구 만에 삭제해버렸던 장본인이다. 즉, 오타니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이 느린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후속 투수들 역시 당시 기준 KBO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파이어볼러였다.
[5]
2017 WBC에서도 일본팀이 선수기용의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데,
선수 차출시 선수 소속 구단 및 선수와 투구 이닝, 투구수, 출전 타석, 수비 이닝 등을 비공개로 협상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비공개 출전 협상이 프리미어12 때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2017 WBC의 오타니 쇼헤이의 출전이 끝내 좌절된 이유 역시 표면적으로는 발목 부상 악화를 들었지만 위의 출전 협상이 양측간 이견이 컸기에 결국 나오지 못했다고 보고 있으며, 실제로 WBC 출전 좌절 이후 오타니가 시범경기 및 전지훈련때 발목 부상이 무색할 만큼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줬기 때문에 양측간 협상결렬로 출전하지 못 했다는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6]
당시 1번 타자였던 이용규가 오타니에게 아웃 당하고 대표팀 타자들에게 전했던 일화로, 보통 선두타자는 다음 타자들을 위해 겪어 본 투수의 정보를 알려주는데, 처음으로 야구 하면서 본인이 말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라 느꼈다고 한다. 또 상대해봤던 최고의 투수가 누구냐는 물음에 이용규는 단번에 '오타니'라고 답하기도 했다.
#
[7]
오타니의
스플리터를 보고 한 말이다. 오타니의 스플리터는 메이저리그 첫 시즌인 2018년에도 상위권 수준이였고 2021년기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압도적인 구종 1위로 선정되었다. 피안타율이 0.087로 메이저리거도 치기힘든 공인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황재균 당시 기준으로는 아니었지만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그 와중에 '솔직히 직구는 칠만했어요'라고는 했지만 실제로 치지는 못했다.
[8]
아웃 당하고 덕아웃에서 오재원에게 건넨 말. 당시 이대호는 NPB 소속으로 이대호의 對 오타니 통산 성적은 17타수 7안타 4삼진 7볼넷 0.412로 강한 편었다.
[9]
조사기간이 매년 10월 중순까지라서 2015년 11월에 개막한 프리미어12는 2015년 자료에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