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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4:35

오제우

제2차 세계 대전의 폴란드 해군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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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함생
2.1. 2차대전 이전- 탈린 입항2.2. 필사의 탈출, 활약2.3. 역사 속에서 갑자기 사라지다
3. 여담

1. 개요

ORP Orzeł
2차 대전 당시 폴란드 해군의 오제우급 잠수함 2번함. 이름인 오제우는 폴란드어 독수리를 의미한다.

2. 함생

2.1. 2차대전 이전- 탈린 입항

파일:ORP_Orzel.jpg

헬 반도의 항구로 입항하는 오제우. 사진이 찍힌 연도는 불명이다.

오제우는 1936년 네덜란드에서 건조되었다.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는 열심히 폴란드 해군에서 종사하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개시될 당시 초계 임무를 맡아 폴란드 해안으로 출항해 있던 오제우는 독일군의 공격으로 인해 모항이었던 헬(Hel) 반도가 독일 해군에 의해 봉쇄되면서 기지로 돌아올 수 없게 되었고[1] 결국 가까운 국가인 에스토니아로 이동하였다. 오제우는 9월 14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무사히 입항하였다.

2.2. 필사의 탈출, 활약

다행히도 에스토니아 측은 오제우와 승조원들은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9월 8일부터 중병을 앓던 함장 헨리크 크워츠코프스키(Henryk Kłoczkowski) 소령은 다음날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았다. 그러나, 오제우가 탈린에 입항한 사실을 알아차린 독일이 에스토니아 정부에 압력을 넣으면서 오제우의 선원들은 전원 함내에 감금되었고, 해도와 각종 항해 장비는 모조리 압수되었다.

그러나 오제우의 승조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먼저 입원한 크워츠코프스키를 대신해 1등 항해사였던 얀 그루진스키(Jan Grudziński) 중위가 새 함장으로 선출되었고, 그의 지휘 하에 탈출 계획이 차곡차곡 진행되었다. 그는 먼저 오제우의 선미 어뢰 발사관을 고의로 손상시킴으로서 에스토니아 측이 오제우의 어뢰를 압수하는 것을 막았다. 또한, 갑판장은 낚시를 한다는 핑계로 고무보트를 타고 밖으로 나가 몰래 항구의 수심을 측정, 최적의 탈출 경로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흘 뒤인 9월 17일 자정, 오제우의 현창 등이 갑자기 고장났고, 그루진스키는 이 기회를 이용해 탈출을 명령했다. 한창 탈출을 준비중이던 때, 갑자기 에스토니아군 장교 한 명이 오제우에 검문 목적으로 승선하면서 잠시 위기가 닥치기도 했지만, 이 장교는 30분의 검문 이후 딱히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는지 그냥 퇴함했다.

탈출 준비가 완료되자, 오제우의 승조원들은 에스토니아 경비대원 2명을 함내로 유인한 다음 인질로 붙잡음과 동시에 도끼로 계류줄을 끊어버린 뒤, 즉시 최대 속력으로 탈린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알아차린 에스토니아군은 급히 서치라이트를 켜고 항내를 여기저기 비추기 시작함과 동시에 기관총과 소구경 해안포들을 발사해 탈출을 저지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에스토니아군은 함내에 정박한 다른 선박들이 손상될 우려에 오제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었던 대구경 해안포만은 발포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오제우는 무사히 탈린을 빠져나가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탈린을 빠져나왔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에스토니아 측이 오제우의 해도를 압수해갔던 탓에 오제우는 도무지 어느 방향으로 항해해야 할지조차도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루진스키도 이걸 몰랐던 것은 아니라서 본래 독일 상선을 발견하면 정선시킨 다음에 해도를 빼앗아 올 생각이었으나, 발트해에 독일 상선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한 척도 없었고, 되레 독일 군함만 가득했다. 결국, 오제우는 포기하고 스웨덴 해안의 등대와 항해장교가 손으로 그린 조잡한 약도만에 의존해 핀란드 만과 스웨덴- 덴마크 연안을 거쳐 영국으로 성공적으로 탈출했다.[2] 또한 인질로 잡혔던 에스토니아 경비대원 2명은 중립국인 스웨덴 해안에서 고무보트에 태워진 채로 옷가지와 식량, 미국 달러를 받고 풀려났다.[3] 참고로 영국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오제우가 격침시킨 함선은 한 척도 없었으나 소련은 오제우가 9월 26일 소련 유조선 메탈리스트(Metallist)를 격침시켰다고 폴란드를 맹비난하였다.[4]

한편 소련은 에스토니아가 오제우를 탈출시켜줬다는 구실로 에스토니아에 소련군 주둔을 요구하는 내용의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후 에스토니아 정부가 반강제로 최후통첩을 수용함으로써 에스토니아는 사실상 소련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1940년 6월, 나머지 발트 국가인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 함께 소련의 일부로 합병당한다.

이후 영국으로 귀환한 오제우는 재정비 후 본격적으로 통상파괴작전을 시작했다. 오제우는 제일 먼저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 직전인 1940년 4월 8일 독일의 병력 수송선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를 어뢰로 공격하여 격침, 수백여 명의 독일군들을 물귀신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조국의 복수를 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에는 크릭스마리네의 소해함 V 705를 공격하였으나, 근처에 있던 독일 함선들 때문에 오제우는 어뢰가 명중한 것을 확인하거나 추가 공격을 가할 새도 없이 급히 잠항해야 했고, 결국 V 705를 격침시키는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이는 오제우의 마지막 공격이 되었다.

2.3. 역사 속에서 갑자기 사라지다

그리고 오제우는 통산 일곱번째 출격이었던 5월 23일, 항구를 나선 뒤 1940년 6월 8일, 흔적도 없이 실종되었다.[5] 실종자 중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그루진스키 중위도 포함되어 있었고, 공산 정권 붕괴 이후 폴란드 정부에서도 함선의 잔해, 아니 파편이나마 찾으려고 실종 지점 근방에서 애타게 찾았으나 역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현재도 오제우의 실종(격침) 원인에 대해서는 꾸준히 여러가지 추측이 나오는 중인데, 오제우가 영국군/독일군의 기뢰밭에서 기뢰에 접촉하여 격침당했다는 것과 영국군 초계기에게 유보트로 오인받고 공격당해서 격침당했다는 이 두 가지 설이 제일 유력하게 평가되고 있다.

참고로 오제우의 격침 원인과는 별개로 잔해를 찾으려는 시도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2013년 폴란드 해군은 오제우로 추측되는 잠수함 잔해를 발견했으나 조사 결과 이는 영국 해군의 J급 잠수함 J6으로 밝혀졌고, 2017년에도 오제우로 추정되는 잠수함 잔해가 발견되었으나 마찬가지로 이 역시 오제우가 아니라 그램퍼스급 잠수함 나왈(Narwhal, N45)로 밝혀졌다. 하지만 폴란드 정부는 아직도 잔해 수색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2020년 5월에는 민간 기업과 함께 합동 수사 계약을 체결하면서 재수색 준비에 돌입했다고 한다.

3. 여담

폴란드 해군은 오제우의 활약을 기려 이후 운용한 위스키급 잠수함 킬로급 잠수함에 오제우의 이름을 붙여 운용했다. 이 중 킬로급 잠수함 오제우는 2024년 현재 폴란드 해군에서 유일하게 작전가능한 잠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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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와중에 오제우의 헬 항구에 정박해 있던 그리핀급 기뢰부설함은 독일 공군의 Ju 87에 의해 격침당하고 말았다. [2] 영국 측은 당초 오제우가 격침당했다고 짐작하고 있던 터라, 스코틀랜드 해안에 오제우가 나타나자 보고 매우 놀랐다고 한다. [3] 저 두명의 경비대원은 애초에 적국인 독일이나 소련의 군인도 아니었으니 오제우 입장에서는 단순히 인질로 잡은 것 외에는 이들을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참고로 이들의 생환 소식이 알려지기 전까지 독일과 에스토니아 측은 오제우 승조원들이 저들을 살해했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4] 하지만 설령 오제우가 메탈리스트를 격침시켰더라도 소련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이미 저 시점에서 소련군이 폴란드의 동부 지역을 침공해서 먹어치운 후였기 때문이었다. [5] 정확히 말하자면 오제우의 실종 자체는 6월 1일에서 6월 2일 사이에 발생했다. 그 뒤로 오제우의 교신이 완전히 끊겼는데, 이를 불안하게 여긴 상부가 6월 5일에 오제우에게 귀환 명령을 내렸으나 역시 아무런 답신이 없었고, 결국 6월 8일 오제우의 실종이 공식적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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