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야마다 케이고
小山田 圭吾 | Keigo Oyama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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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오야마다 케이고 ([ruby(小山田 圭吾, ruby=おやまだ けいご)], Keigo Oyamada)[1] |
출생 | 1969년 1월 27일 ([age(1969-01-27)]세) |
도쿄도 세타가야구 | |
국적 | 일본 |
학력 | 세츠 모드 세미나[2] 졸업 |
직업 |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프로듀서 |
신체 | 169cm |
소속 그룹 |
플리퍼즈 기타 (
1987년 ~
1991년) 코넬리우스 ( 1993년 ~)[3] METAFIVE ( 2014년 ~ 2022년) |
레이블 | 워너 뮤직 재팬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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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뮤지션. 이른바 " 시부야계"를 창시했다고 평가받는 인물로, 헤이세이 시대 일본 음악에서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것과 동시에 그에 반비례한 인성을 지닌 일본 음악계의 문제아 중 하나.2. 생애
2.1. 학창 시절
아버지는 와다 히로시와 마히나스타즈(和田弘とマヒナスターズ)[4]의 멤버인 미하라 사토시(三原さと志)이며, 어머니는 타나베 마사하루(田辺正晴)[5]의 딸이다. 외삼촌은 가수 타나베 야스오(田辺靖雄)[6], 외숙모는 가수 고코노에 유미코(九重佑三子)이다. 다만 부모가 이혼하면서 어머니쪽으로 가서 아버지랑 교류가 없었다. 중고일관교[7]인 와코 중고등학교[8]에 다니며 이지메, 절도와 같은 불량한 행동들을 저질렀고, 이에 대한 처분을 받는 와중에 오자와 켄지를 만났다. 이후 세츠 모드 세미나라는 미술학교에 재학하는 중 플리퍼즈 기타를 결성하였다.2.2. 플리퍼즈 기타 시절
자세한 내용은 플리퍼즈 기타 문서 참고하십시오.2.3. 코넬리우스 시절
1991년에 일본을 풍미했던 플리퍼즈 기타가 해체되고 난 뒤, 오자와와 오야마다는 각자 솔로 활동을 하게 된다. 오자와가 자신의 명의로 아름다운 가사의 소울팝을 내놓아 '시부야계의 왕자님'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반면, 오야마다는 자신이 하고 싶던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서 '코넬리우스'라는 1인 밴드를 창설하게 된다. 이름은 혹성탈출 시리즈의 침팬지 과학자의 이름에서 따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음악성으로 인해 일본의 벡 한센이라 불리며 1997년 발표한 3집 ' Fantasma'는 좋은 평가를 들으며 미국 진출에도 성공했다. 롤링 스톤 재팬 선정 100대 명반 10위에 꼽힐 정도의 명반. 4집 ' Point'도 명반으로 꼽히고 있다.2008년 6월 내한하려 했으나 취소되었다. 어느 팬에 의하면 코넬리우스 측의 특수 무대 장치 요구를 주최측에서 들어줄 수 없었고, 취소 후 티케팅을 담당했던 업체에서는 사과의 의미로 센서스 앨범과 티셔츠를 보내준다고 했는데 쓸데없이 이미 가지고 있는 앨범만 받고 티셔츠는 못받았다고 한다. 결국 2019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통해 내한에 성공하였으나 하술하는 논란이 터졌다.
시부야계 레이블인 '트라토리아'를 창설하여 시부야계 뮤지션을 발굴하기도 하였다. 그의 연인이었던 카히미 카리가 대표적. 2014년부터는 YMO '타카하시 유키히로', 토와 테이, 덴키 그루브 '스나하라 요시노리', '곤도 토모히코', 'LEO이마이'와 함께 'METAFIVE'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다.
3. 음악 스타일
흔히 일본의 벡이라 불리는 뮤지션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꽤나 차이가 있는 편이다. 벡이 난잡한 사운드를 정리된 노래로 만든다고 하면, 반대로 오야마다는 정리된 사운드를 난잡한 노래로 만든다고 보면 된다. 이것도 Fantasma ~ Sensuous 앨범까지의 중기 음악에 한정되며, 전기나 후기의 스타일과는 다르지만, 그를 가장 대표하는 스타일이다. 영화나 광고, 리믹스에는 중기 스타일을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다.전기의 사운드는 플리퍼즈 기타의 연장선이라고 봐도 될 정도지만 좀더 하드한 록 사운드가 첨가되어 있고 샘플링을 본격적으로 가미하기 시작했다. 듣기에는 오히려 더 무난하며 음반의 판매량이나 대중적 지지도도 THE FIRST QUESTION AWARD ~ 69/96 앨범 시절이 더 높다. 반면 후기의 사운드는 MELLOW WAVES에서 시작되는, 보컬을 중시하는 스타일이 되었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전작보다 보컬의 비중을 늘렸다고 공표하였다.
그의 음악스타일 변화는 곧 시부야계의 정체성을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플리퍼즈 기타 시절에는 고전적인 서양팝의 이미지여서 '타지마 타카오', '노미야 마키' 등이 그에 해당되었으나, 코넬리우스 시절에는 일렉트로니카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나카타 야스타카,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 토와 테이, 오사와 신이치가 여기에 해당하게 되었다.
4. 비판 및 논란
4.1. 인성 논란
일본 음악계에서 구설수에 자주 오른다.음악활동을 하면서는 플리퍼즈 기타 시절에도 쇼핑센터가 문 닫는다는 이유로 인터뷰 끊어 먹기, 일본 디스크 대상 립싱크 공연에서 너바나와 같이 대놓고 립싱크 티내기, 일본 디스크 대상 시상식의 전화 연결에서 농담 따먹기를 하는 등의 행동을 하였다. 이는 솔로 활동에서도 계속되어 공연 환경에 마음에 안 들면 공연을 빵꾸내는 등의 행동을 하였다.
4.2. 펜타포트 욱일기 연상 영상 사용 의혹
2019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내한공연 당시 배경영상에서 욱일기가 연상되는 영상을 사용했다는 것( 관련 기사).주최측에서는 이를 60년대 교육영화에서 따온 영상이라고 하였다. 플리퍼즈 기타 시절 1991년 발매된 싱글 'Groove Tube'의 고전풍 뮤직 비디오에서도 사용될 정도로 오야마다가 자주 쓰는 문양이기도 하다. 해당 사진을 보면 욱일기보다도 소용돌이, 혹은 007 시리즈의 총열이 더 연상될 정도.
4.3. 과거 학교 폭력 가해 및 절도 경력
학창 시절에는 이지메 집단의 리더로 활동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전학온 장애인 동급생[9]을 골판지 상자 안에 가두어 공기 구멍 안에 지우개 가루를 털어 "독가스 공격이다!"라고 하거나, 이는 고등학생까지 이어져서 벌거벗겨 백드롭을 하거나, 츄리닝을 벗기거나, 인분을 억지로 먹이는 행위를 해왔음을 본인이 1994년 대중 앞에 자랑인듯 밝혔다. 그러다 못해 2004년에 과거의 그 사실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에 대해서도 "니들이 뭐라하든 난 상관안해!"라고 되레 화를 내었다.또한 쵸후역의 쇼핑 센터에서 약 100만 엔가량의 절도를 하기도 했다. @이 사건이 학교에서 발각되어 결국 전 학생들 앞에서 사과를 했는데 당시 학생회장이 바로 오자와 켄지. 후에 플리퍼즈 기타를 결성하는 둘의 만남은 오야마다의 범죄에서 시작된 것이다.
4.3.1. 도쿄 올림픽 개막식 담당으로 인한 재조명 및 사퇴
관련 문서: 2020 도쿄 올림픽/사건 사고/개·폐막식2020년 도쿄 올림픽 개막식 음악 담당으로 선정된 직후[10] 재조명 되었다. 일본 여론을 의식한 건지, 오야마다는 사과문까지 올리기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과거의 악행에 대해 반성은커녕 그걸 자랑까지 해오다가 논란이 되니 갑자기 사과한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의심된다는 것과 사임한다는 표명은 없어 논란이 더욱 거세진 상황.
조직위원회는 처음에는 오야마다를 유임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 그들은 “본인이 과거의 행동을 반성하여 사과문을 개시했다. 우리는 현재 그를 높은 윤리관을 가지고 창작 활동을 하는 창작자라고 생각한다. 개최식 준비의 공헌은 크다.” 발언하였다. 이 후 일본 장애인 단체는 강력한 항의 성명을 내고 조직위원회를 규탄했다. # 여기다 장애인 가족 단체에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
7월 19일 결국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올림픽 조직위원회측에 사임의사를 밝혔다.
이후 조직위원회는 오야마다의 사임을 받아들이고 무토 사무총장이 "오야마다 씨의 노래에 대해서는 개막식에서 사용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조직위원회는 오야마다 씨의 행위가 결코 용서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라며 2번의 유임 의사를 밝힌 자신들의 판단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사과했다. # 한편 조직위원회가 오야마다 스스로 밝히기 전까지 태도를 바꾸지 않았던 이유도 드러났는데, 무토 사무총장이 말하길 ‘ 용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우리들의 판단이 안이했다’고 한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 등도 이 음악 감독 사임 사건에 대해 코멘트를 남기고, 코넬리우스가 음악을 맡은 NHK 방송 프로그램 "디자인어"와 "JAPANGLE"가 방영 일시 중지를 결정하는 등 파장은 여전히 크다. 그 외에도 코넬리우스의 노래 "사우나 너무 좋아"를 주제가로 쓰려던 TV 도쿄 계열 드라마 "사도"가 주제가 사용을 취소했고, 시즈오카시는 오야마다의 곡을 배경음으로 쓴 시 홍보영상을 유튜브에서 내리는 등 여러 곳에서 오야마다의 곡을 사용 취소했다.
4.3.2. 도쿄 올림픽 이후 활동 재개 발표
2022년 5월 25일 본인의 SNS에 다시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하겠지만 여전히 대중들의 반응은 매우 안좋다.5. 디스코그래피
1st | 1994년 2월 25일 | THE FIRST QUESTION AWARD | ||
2nd | 1995년 11월 1일 | 69/96 | ||
3rd | 1997년 9월 10일 | Fantasma | ||
4th | 2001년 10월 24일 | Point | ||
5th | 2006년 10월 25일 | SENSUOUS | ||
6th | 2017년 6월 28일 | Mellow Waves | ||
7th | 2023년 6월 28일 | 夢中夢 |
6. 기타
- 영국 슈게이징 밴드 lush의 '미키 베레니'가 그의 6촌이다.
- 프렌치 팝 가수였던 ' 카히미 카리'[11]와 연인이었고 그의 노래를 써주기도 하였으나 헤어졌다. '미네카와 타카코'라는 싱어송라이터와는 결혼도 하였으나 이후 이혼하였다. 미네카와에게서 낳은 아들 '오야마다 마이로'는 현재 모델로 활동 중이다.
- 공각기동대 ARISE의 OST를 작곡하였으며, 사카모토 마아야와 협업하여 싱글을 내기도 하였다.
- 게임보이 어드밴스용 퍼즐게임인 컬러리스의 음악을 맡기도 했다.
- 젊은 시절에는 그의 미성과 함께 미청년 가수로 유명했고, 시세이도의 남성 화장품 브랜드인 uno의 첫 CF모델이 되기도 하였다.( 당시 CF) 오자와 켄지는 그에 비해 목소리도 두드러지지 않고 외모도 수수한 편이어서 후에 솔로로 성공하기 전에는 오야마다에게 묻혔다. 현재는 나이가 오십줄을 넘어서 주름살이 많아졌지만 미성은 그대로.
- 그 미소년적 외모 때문에 20대시절 모리나가제과의 초콜릿 광고( 영상)에 여장해서 출연했는데도 위화감이 없다.
[1]
小山田 圭悟에서 개명하였다. 발음은 동일.
[2]
모드 학원 코쿤 타워로 유명한 모드 학원 소속 전문 미술학교.
[3]
1인 프로젝트
[4]
일본의 국민적인 가요 그룹이다.
[5]
NHK 아나운서로, 제1회~제2회
홍백가합전의 총 사회를 맡았다.
[6]
오야마다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는데, 그때문인지 외삼촌과도 외모가 매우 비슷하다.
[7]
일본에서 중고일관교는 학비가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부잣집 학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집안이 얼마나 금수저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
[8]
이 학교가 속한 와코학원(和光学園)은 자유분방한 학풍으로 일본 내에서 유명한데, 오야마다 이지메 사건을 계기로 학교에 대한 평판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다.
[9]
언어 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0]
원래는
시이나 링고가 맡았다가 친구이자 크리에이티브 담당이었던
MIKIKO를 향한 사내 따돌림 및 불화 문제가 터졌고 하차했다. 오야마다는 이렇게 팀이 해산한 후 새로 뽑힌 인선.
[11]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의
네기시 소이치가 좋아하는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