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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1 18:13:33

오봉행

1. 도요토미 오봉행2. 모리 오봉행

1. 도요토미 오봉행

오봉행
사법 담당 행정 담당 토목 담당 재정 담당 종교 담당
아사노 나가마사 이시다 미츠나리 마시타 나가모리 나츠카 마사이에 마에다 겐이

일본 전국시대,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 하의 실무 관료를 봉행(奉行: 부교)이라 하였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업무를 담당, 활약한 5인을 오봉행(五奉行: 고부교)이라 하였다. 오늘날의 각 부 장관에 해당되는 직책이다.[1] 당시에는 오봉행이라는 명칭은 없었으며, 도시요리(年寄) 등으로 불렸다. 오봉행은 후세에 붙여진 명칭이다. 인원수도 5명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었으며, 6인 체제로 시행된 시기도 있다.[2]

다만 프랑스사 앙시앵 레짐과 유사하게 각 봉행의 영역은 확실히 분리되지 않고 겹치곤 했으며 충돌이 자주 발생했다. 더불어 봉행 소속 고정적인 행정조직도 부재했으며 내각과 같이 업무영역이나 갈등을 조율하는 제도 또한 없어 현대적인 성, 부의 개념과는 일대일로 비교하기 어렵다.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도 정치력만큼은 A급을 자랑하는 인물들로 나오며, 이시다 미츠나리나 마에다 겐이 같은 경우는 하라 테츠오 원작의 <하나노 케이지(비룡문)>에도 등장한다. 특히 마에다 겐이는 센고쿠히메 3에 등장한다. 이시다 미츠나리도 짤렸는데.

태합입지전 시리즈에서도 역시 정무 쪽에 특화되어 나온다. 능력치는 이시다 미츠나리>나가모리, 나가마사, 마사이에>겐이의 느낌.

겐이 같은 경우는 초기 시나리오에서 재야로 나오기 때문에 약소세력들의 희망이다. 첫 시나리오에선 나오지 않지만 나가모리 역시 1559년부터 재야로 등장한다.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에는 미츠나리와 마사이에가 서군, 나가마사가 동군,[5] 나가모리는 서군에 속했지만 동군과 내통하며 오사카 성에 있었고, 겐이 또한 오사카성에 있었다. 전후 미츠나리는 참수, 마사이에는 할복했으며 나가모리는 개역당한다.

2. 모리 오봉행

모리 오봉행
아카가와 모토야스 아와야 모토치카 쿠니시 모토스케 코다마 나리타다 카츠라 모토타다
모리 모토나리가 장남 모리 타카모토에게 당주 지위를 양도한 이후 타카모토의 아래에 성립시킨 조직. 타카모토의 측근 아카가와 모토야스, 아와야 모토치카, 쿠니시 모토스케 세 명과 모토나리의 측근이던 코다마 나리타다, 카츠라 모토타다[6] 두 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아카가와 모토야스는 타카모토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최측근이자 사실상 오봉행의 필두였다. 하지만 아카가와는 모토나리의 측근으로 오봉행을 구성한 코다마와 카츠라와 사이가 나빴고, 이로 인해 모토나리와 타카모토가 골머리를 앓았다.

1562년 타카모토가 젊은 나이로 급사하고 아카가와가 타카모토 독살 의혹을 사 모토나리에게 처형되자 모리 료센[7]의 정치 참여가 강화되면서 오봉행의 질서는 해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다마, 쿠니시, 아와야, 카츠라 네 가문의 모리 가 내의 주요 가신으로서의 지위는 유지되어, 모리 테루모토 시기까지 이어졌다.

[1] 물론 실제로 장관에 해당하는 직책은 따로 있지만(○○경 - 예컨대 중무경, 식부경, 궁내경, 대장경 등), 이 당시에는 유명무실했다. [2] 아사노 나가마사가 도요토미 히데츠구 사건으로 인해 일시 실각하였을 때. [3]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실인 네네의 일가로 추신구라의 발단이 되는 아코 번주 아사노 나가노리의 고조부이다. [4] 겐이가 승려 신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맡게 됐다. [5] 도쿠가와 히데타다군 소속. 나가사마가 코다이인의 집안사람이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행보다. [6] 카츠라 모토즈미의 동생. [7] 킷카와 모토하루, 코바야카와 타카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