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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 국경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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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개3. 결과4. 같이 보기

1. 개요

파일:800px-Oregoncountry.png
1818년 ~ 1846년 오리건 지역. 맨 위의 54° 40' 선이 미국 주장, 42° 선이 영국 주장, 49° 선은 미국-영국 합의안이자 현재의 미국-캐나다 국경이다. 그리고 저 42°선은 현재 오리건주와 캘리포니아주의 경계이다.

19세기 북아메리카 북서부 오리건 지역(Oregon Country)을 두고 일어난 영유권 분쟁. 오늘날 미국- 캐나다 국경 설정의 근간이 되는 사건이다.

이 당시 오리건 지역은 오늘날 미국 오리건주의 기원이 되는 곳이지만 영역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기준으로는 오리건주, 워싱턴주, 아이다호주 전역, 몬태나주, 와이오밍주 일부, 그리고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절반을 포함하는 일대를 오리건이라 칭했다.

2. 전개

미국은 1845년 텍사스 공화국을 합병하였고, 텍사스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신생 독립국 멕시코 제2연방공화국과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영국과 오리건 지역을 두고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앞서 오리건 지역은 영국, 미국, 스페인, 러시아 4개국이 영유권 분쟁을 벌였는데, 스페인은 미국과 애덤스-오니스 조약[1]을 맺고, 러시아는 미·영과 각각 국경 설정에 관한 조약을 맺으며 영유권 주장을 철회하였다.[2] 그렇게 미국과 영국이 마지막까지 남아서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었으나 점점 대립각이 날카로워지고 있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특히 캐나다 서부 해안선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를 두고 대립이 심했다.
파일:external/hpcanpub.mcmaster.ca/CP00110-3.jpg
54° 40' or Fight
그 때 확장주의 진영에서 나온 구호가 바로 54도 40분이 아니면 전쟁이다(54° 40' or Fight)였다. 알래스카의 최남단부가 바로 저 위도로, 캐나다의 태평양쪽 해안선을 전부 차지한다라는 것이 확장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이처럼 미국은 캐나다 서부 해안을 집어삼키고 더 나아가 캐나다 전체를 미국의 땅으로 삼으려 꾀하였다.

3. 결과

하지만 신생 독립국인 미국이 당대 패권국인 대영제국을 상대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결정적으로 영국과의 국경 분쟁을 빨리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미국은 영국, 멕시코와의 양면전쟁을 치러야 할 판이었다. 결국 54도 40분 주장을 포기하고 국경 분쟁을 마무리 지었다. 결과적으로 캐나다의 서부 해안선은 일부나마 유지되었다. 여기서 49도 이남에 일부 뻗어있는 밴쿠버 섬을 미국에 합병시켜야 한다거나, 최소 밴쿠버 섬의 49도 이남에 해당하는 지역만큼은 미국령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결국 밴쿠버 섬 전체를 캐나다의 일부로 인정하고 국경 분쟁을 끝냈다.

덕분에 후방의 위험이 없어진 미국은 바로 이듬해인 1846년 미국-멕시코 전쟁을 치르면서 더 많은 영토를 획득한다.

4. 같이 보기



[1] 반도 전쟁으로 신대륙 식민지에서의 영향력이 줄어든 스페인과, 영토 확장을 노리던 미국 간에 성사된 조약. 스페인이 플로리다를 포함한 일부 영토의 영유권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보상금을 지불하였다. [2] 당시 러시아는 러시아령 아메리카를 건설하며 신대륙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려 했으나, 모스크바가 위치한 본국과는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어 통치가 매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러시아는 훗날 알래스카 조약을 끝으로 신대륙에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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