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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2 11:48:32

에두아르트 샬모저

파일:Eduard Schallmoser and his Mother.jpg [1]

Eduard Schallmoser

1. 개요2. 생애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 공군 소속의 전투기 조종사였다. 총 3기 격추의 그 자체로는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전과를 올렸지만, 그 격추 과정의 비범함과 각종 기행으로 이름을 남겼다.[2]

2. 생애

바이에른 주 메밍겐 출신. 전쟁 말기이던 1944년, 나치 독일의 패색이 확실해지던 무렵에 군에 입대했으며, 비행기 조종에 우수한 자질을 보여 병장 계급으로 당시 독일군의 최정예 비행단 JV-44에 배속된다. 탑승 기체는 Me 262 "바이스 5(weiße 5)". 당시 독일 공군의 최고 베테랑들이 모인 부대였던 JV-44의 거의 유일한 신병이었고, 아무리 교육 과정에서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았다고 해도 당시 독일의 전투 조종사 양성 프로그램 자체가 야매였기에[3] 그 실력은 의문이었다. 때문에 선임들의 많은 관심과 걱정을 한몸에 받았으며, 지휘관이던 아돌프 갈란트 중장은 아예 그를 자신의 윙맨으로 배정해서 특별 관리했다. 1945년 3월 4일 첫 실전에 나섰으나,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탄을 단 한 발도 쏘지 못하고 투명인간이 되며 전투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귀환한 뒤 선임병들에게 호되게 질책을 들었다. 이후 4월 3일 부대 서쪽 림 공역을 순회하던 도중 마침 같은 곳을 정찰하던 미군 육군 항공대 P-38 라이트닝 편대와 조우, 그의 첫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샬모저는 아직 화기 관제에 익숙지 않았던 데다 설상가상으로 영점도 제대로 맞추지 않아서 기총을 제대로 적기에 명중시키지 못하며 밀리다가, 끝내 그와 공중전을 벌이던 윌리엄 랜들 중위의 라이트닝에 돌진해 그대로 들이받아 버리는 기행을 저지른다. 랜들의 라이트닝은 그대로 격추되었으나, 샬모저는 놀랍게도 상처 하나 없이 무사히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첫 전과었다.

이후 샬모저는 이러한 전술에 맛이 들렸는지(…) 같은 달 16일 란츠베르크 암 레히 공중전에서 B-26 머로더를 근접전으로 몰아붙이다가 그대로 들이받고, 바로 다음 날인 17일에 뮌헨 상공을 폭격하던 B-17 플라잉 포트리스를 요격하다 기총 난사에 당해 자신의 Me 262를 수 차례 피격당하며 궁지에 몰리자 또 들이받았다. 이런 기행을 연이어 저지르고도 정작 본인은 멀쩡히 귀환했으며 반면에 그와 맞선 상대는 모두 그대로 격추되었다. 이로서 자신의 총 격추 기록 셋을 모두 공중충돌 이루어낸 기이한 업적을 남겼다. 이 위업에 감탄한 동료 부대원들은 그에게 "Der Rammer[4]"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후 총알에 벌집이 된 기존 기체 "바이스 5"를 버리고 새 Me 262 기체 "바이스 11"을 인도받았다.

4월 20일, 샬모저는 그의 고향이던 메밍겐을 폭격하던 B-26 편대를 요격하기 위해 출격했다. 그의 고향이 전장이 된 탓인지 샬모저는 평소보다 격렬하게 도그파이트를 벌였고, 전투 도중 MK 108 기관포에 이 걸려 잠시 주춤한 사이 제임스 M. 헨슨 중위의 머로더의 기총 사격에 그대로 노출되어 주익 일부와 꼬리날개를 잃는 큰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샬모저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헨슨의 머로더에 돌격, 오른쪽 날개를 들이받아 한쪽 엔진을 날려버리는 큰 타격을 입힌 뒤 추락했다. 그는 이후 추락하는 기체에서 무사히 비상 탈출,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는데, 또 기묘하게도 자기네 집 뒷마당에 착륙했다. 그리고 엄마가 해준 팬케이크를 먹고 유유히 부대로 복귀했다⋯. 이때 착지 과정에서 한쪽 무릎을 접질려 잠깐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은 뒤 4월 25일에 JV-44로 복귀했으며, 그가 자대로 복귀한 지 며칠 되지 않은 5월 8일 나치 독일은 연합군에 전면 항복했다. 종전 이후로는 전역해 이후 군과 관련 없이 평화롭게 살았으며, 남미로 이주해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에두아르트 샬모저는 이러한 온갖 기행을 남겼지만, 신병이었음에도 당대 독일 공군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 JV-44에 배치되었고, 이후 실전에서도 짧은 기간 동안 나름의 전과를 올렸던 것을 보면 적어도 그 실력만큼은 확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전 투입 초기에는 고문관스러운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이며 선임들에게 갈굼받기도 했지만, 점차 전장에 적응해가며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해 동료들의 인정을 받았다. 당시 공중전에서 주로 사용되던 붐앤줌 전술이 아닌 초근접 격투전과 적극적인 근거리 도그파이트를 선호했으며, 이러한 공격적인 성향과 Me 262의 뛰어난 성능 덕에 " 공중충돌로 적기를 격추하는" 괴이한 사건을 여러 차례 일으킬 수 있었다.


[1] 후술할 자기 집 뒷마당 불시착 사건 당시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찍은 인증샷이다. [2] 후술할 기행들을 보면 딱 모게임 어떤유닛의 상위호환이라 생각이들 정도. [3] 예나 지금이나 전투기 조종사 양성은 철저한 교육과 장시간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일이다. 당시 연합국에서는 파일럿 양성 커리큘럼을 체계화시키고 뛰어난 전과를 올린 에이스 파일럿들은 교관으로 돌려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수준높은 조종사들을 배출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반면에 추축국은 패색이 짙어지며 많은 유능한 전투기 조종사들이 전사해 고질적인 파일럿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전쟁 후반기엔 일단 비행기를 날릴 줄만 알면 합격이란 식으로 질낮은 파일럿을 찍어냈으며, 이렇게 양산된 신예 조종사들은 실력 부족으로 대다수가 연합군 전투기의 밥이 되었다. 에리히 하르트만이나 이와모토 테츠조 같은 베테랑 조종사들도 후임 양성에 나서지 못하고 종전까지 현역으로 혹사당했다. [4] The Rammer, 처박는 자. Ram에는 충각이라는 뜻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