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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의숙

파일:yc100anniversarylogo.png 학교법인 양정의숙
중학교 고등학교
양정중학교 양정고등학교


1. 개요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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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05년 4월 군부협판 엄주익 외 7인에 의해서 설립된 대한제국 최초의 민족사학. 양정중학교 양정고등학교의 전신. 창학이념은 몽이양정 양심정기(蒙以養正·養心正己).

2. 역사

일본 본토에 갔을 당시에 일본의 문물을 본 엄주익(1872~1931년 사망)은 교육을 통해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 생각해, 귀국한 후에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과 함께 광화문 인근(현 세종문화회관 뒷편)에 3년제 법학대학을 설립한 뒤 초대 숙장에 취임했다.

1907년엔 엄주익의 재당고모[1] 순헌황귀비가 자신이 가진 황실의 토지 일부를 양정의숙에 하사했다.[2] 엄씨 가문은 양정의숙 외에도 숙명여학교 진명여학교도 설립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서구식 법학을 도입해 헌법, 형법총론, 민법총론,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국제법 등 20여 개의 교과목을 가르쳤다. 1913년에 재단 법인의 인가를 받아 숙장인 엄주익은 이사장이 되었으며, 몇 달 뒤엔 일제의 '조선교육령'에 의해 학교는 양정고등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이후 '양정의숙'은 학교 이름이 아니라 재단의 이름으로 쓰이게 된다. 양정고보 출신으로 1936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수, 한국인 최초의 농학 박사 임호식 등의 인물이 유명하다.

1918년에 만리재 고개 중턱으로 이사했으며, 1938년에 조선교육령에 의해 양정중학교로 이관되었고, 1951년에는 양정중학교, 양정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엄주익의 아들인 엄경섭(1906~1979년 사망)과 손자인 엄규백(1932~2020년 사망)이 양정의숙을 경영했다. 엄경섭은 양정고 교장(1947~1973) 재임 시절 제9대 국회의원( 유신정우회) 임명으로 인해 의정 활동과 학교 경영을 병행하기 힘들어서 당시 서울대 교수로 재직중이던 아들 엄규백에게 교장직을 넘기려 했으나 엄규백은 몇 달동안 거부했다. 그러나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말에 1973년 12월 양정고 교장으로 부임하여 2007년까지 재임했고 그 이후 양정의숙 이사장, 명예이사장을 역임했다.

양정고등학교는 중앙고, 보성고, 휘문고, 배재고[3]와 함께 '서울 5대 사립고등학교'라 불릴 정도로 많은 명사가 배출되는 학교로 깊은 역사와 높은 학교 명성으로 재학생들은 자교를 '대(大)양정'이라 칭한다.

1970년대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 이후로 대학 진학률이 떨어지던 양정고등학교는 1988년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에 신 교사를 짓고 이전하였다. 이후 강남 8학군에 뒤지지 않는 대학진학률을 보여주게 되었고, 2011년에는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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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친의 육촌누이를 뜻한다. [2] 그런데 실제로는 순헌황귀비의 명령으로 엄주익이 양정의숙을 설립한 것이며, 설립 당시에 그녀가 자금( 내탕금)을 줬다는 말이 있다. [3] 특히 배재고와는 양배전이라는 라이벌리로 매우 유명하다. 양정의숙과 배재학당의 피튀기는 럭비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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