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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2 21:13:34

안티오코스 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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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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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우코스 20대 군주
Antiochus VIII Grypus
안티오코스 8세
파일:안티오코스 8세.jpg
<colbgcolor=#000> 출생 미상
셀레우코스 제국 안티오키아
사망 기원전 96년
셀레우코스 제국 안티오키아
재위 <colbgcolor=#000> 셀레우코스 군주
기원전 125년 ~ 기원전 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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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제호 안티오코스 8세 그리포스
Antiochus VIII Grypus
가족 데메트리오스 2세 니카토르(아버지)
클레오파트라 테아(어머니)
안티오코스 6세 디오니소스(이부형)[1]
셀레우코스 5세 필로메토르(친형)
라오디케(친누이)
안티오코스 9세 키지케노스(이부남동생)[2]
트뤼파이나(첫째 부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둘째 부인)
셀레우코스 6세 에피파네스(장남)
안티오코스 11세 에피파네스(차남)
필리포스 1세 필라델포스(삼남)
데메트리오스 3세 에우카에로스(사남)
안티오코스 12세 디오니소스(오남)
라오디케 7세 테아(장녀)
참전 셀레우코스 내전 }}}}}}}}}

1. 개요2. 생애3. 독물학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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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셀레우코스 왕조의 20대 군주. 별명인 '그리포스'는 갈고리 모양의 코, 즉 매부리코를 뜻한다. 어머니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함께 공동 왕에 즉위한 뒤 어머니의 독살 시도를 물리치고 단독 군주가 되었으나, 내란에 시달리다 끝내 암살되었다.

2. 생애

암군 데메트리오스 2세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차남이자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데메트리오스 2세는 기원전 138년 파르티아 원정에 착수했다가 포로 신세로 전락한다. 이후 데메트리오스 2세의 동생 안티오코스 7세가 형수인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결혼하여 안티오코스 9세를 낳았다. 그는 상당히 유능한 군주로, 혼란에 빠졌던 제국을 안정시켰고, 하스몬 왕조 유대 왕국을 굴복시켜 제국의 봉신으로 삼았으며, 파르티아를 상대로 연이어 승리를 거두어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았다. 그러나 기원전 129년 이란 엑바타나 계곡에서 매복에 걸려 전사했다. 이후 데메트리오스 2세가 포로 신세에서 벗어나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재결합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남편이 파르티아에 억류되었을 때 파르티아 공주 로도구네와 결혼해서 낳은 아들에게 왕위를 넘길 걸 두려워했고, 해코지 당할 걸 우려해 안티오코스 8세와 안티오코스 9세를 각각 아테네와 키지쿠스로 보낸 뒤, 데메트리오스 2세를 몰아내기 위해 동맹을 찾았다. 기원전 126년,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8세로부터 병력 지원을 받은 알렉산드로스 2세 자비나스가 다마스쿠스 전투에서 데메트리오스 2세를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프톨레마이스로 달아났지만,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남편을 절대로 들여보내지 않겠다며 성문을 닫아걸었다. 버림받은 데메트리오스 2세는 배를 타고 티레로 도주했다가, 도중에 붙들려 처형되었다.

이후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모든 권력을 장악한 뒤, 셀레우코스 5세와 함께 공동 왕을 자처했다. 안티오코스의 형 셀레우코스 5세는 별칭이 '어머니의 사랑'을 뜻한 필로메토르(Philometor)였지만, 꼭두각시로 옹립된 왕이었다. 셀레우코스 5세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어머니가 자신을 꼭두각시로 세워 권력을 차지한 것을 원망했다.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아들이 본인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과 함께 그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했다. 결국 기원전 125년, 그녀는 셀레우코스 5세를 암살했다. 고대부터 내려온 이야기에 따르면 두 가지 버전이 전해지는데, 첫번째 주장은 아들 셀레우코스 5세가 왕권 강화를 위해 어머니를 적대시하자 그녀가 아들을 먼저 죽였다는 것이고, 두번째 주장은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아들 셀레우코스 5세가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고자 계획한 것이 들통나 그녀가 선수를 쳤다는 것이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던 간에, 헬레니즘 시대부터 내려온 이야기에 따르면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한 뒤, 셀레우코스 5세의 숨통이 끊겼다는 이야기를 보고받자마자 10세 된 차남 안티오코스 8세를 왕으로 내세워 공동 왕으로 즉위했다.

기원전 125년 어머니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정당성을 위해 공동 왕으로 옹립된 직후 비록 열 살 남짓의 아이였다. 어머니 테아는 안티오코스 8세를 옹립시킨 다음에 은화, 청동 주화를 발행하면서, 본인을 앞에 놓고 아들 안티오코스 8세의 얼굴은 그 뒤에 그림자로 새겨 넣었다. 즉, 노골적으로 아들을 꼭두각시로 선포하면서 본인이 상위 통치자임을 강조했다. 이런 홍보처럼 테아는 아들 안티오코스 8세가 본인 덕에 셀레우코스 제국 권좌를 지킴을 분명히 했다. 안티오코스 8세는 아주 어릴 때부터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비상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며 무조건 복종했다. 이렇게 되니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아들 안티오코스 8세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여겼다.

기원전 124년, 어머니 테아의 결정에 따라 프톨레마이오스 8세의 딸 트뤼파이나와 결혼했다. 어린 왕을 사위로 삼았다는 사실에 프톨레마이오스 8세는 더 이상 알렉산드로스 2세 자비나스를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이는 자연스레 자비나스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따라서 자비나스는 시리아의 일부를 통치함에도 불구하고 곧 자금난에 시달렸으며, 세력이 흔들리자 안티오코스 8세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원을 받은 덕분에 기원전 123년, 안티오코스 8세가 알렉산드로스 2세를 물리치고 셀레우코스 제국 전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티오코스 8세는 커갈수록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려 했다. 그는 정견을 어머니에게 밝혔고, 아내 트뤼파이나의 권위를 모친 테아보다 우선적으로 강조하며, 어머니에게 반항심을 드러냈다. 때마침 안티오코스 8세는 킬리키아, 시리아, 메소포타미아에서 그 영향력은 확고해졌고, 궁정 안에서 그가 주도해 벌인 화려한 연회로 귀족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은 권력욕이 대단한 테아를 자극시켰고, 모자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기원전 121년, 안티오코스 8세는 궁중 대신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왔다. 그런데 이날 클레오파트라 테아는 아들이 사냥에서 돌아오자,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아들에게 향 좋은 포도주 한 잔을 건넸다. 이는 평소 어머니가 보인 태도가 아니었다. 안티오코스 8세는 영리하고 눈치 빠르고, 예민했다. 아버지, 형이 어머니 손에 제거된 뒤, 어머니 손에 옹립된 때부터 그는 틈틈히 독물학, 해독학, 독살 예방에 대해 공부했고,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받고 분석하는 습관이 있었다. 따라서 안티오코스 8세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포도주를 권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의심을 했다. 그는 자신에게 다정히 포도주를 내민 어머니에게 좋은 향이 나는 포도주를 먼저 마실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테아는 화를 냈고, 눈치 빠른 그는 주변에 명을 내렸다. 안티오코스 8세는 어머니 테아가 방심한 틈을 노려, 부하를 시켜 테아를 포박했다. 이후, 어머니가 내준 포도주를 어머니 입을 강제로 벌린 다음 먹였다. 아들을 독살하려고 한 테아는 포도주를 마시자마자 피를 토하고 고통스럽게 죽었다.

이렇게 어머니의 독살 음모를 극복하고, 단독 왕에 등극한 안티오코스 8세는 오랜 내란으로 흔들린 왕국을 재정비하고 정국 안정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런 안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테아의 측근들은 궁중 곳곳에 있었고, 이들은 안티오코스 9세의 평판을 깎아내렸다. 그 결과, 안티오코스 8세의 치세는 위기에 빠진다.

기원전 116년,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안티오코스 7세 사이에서 태어난 안티오코스 9세가 망명지 키지코스에서 돌아왔다. 그는 세력을 갖춘 후 이부형 안티오코스 8세를 상대로 내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안티오코스 9세는 이부형 안티오코스 8세에게 자신이 왕이 될 정통 후임자라고 주장하면서 퇴위하라고 명령했다. 당연한 말인데 왕위를 내려놓지 않았고, 이는 가까스로 안정된 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둘의 내전은 20여년간 이어졌고, 셀레우코스 제국을 두 개로 나뉘었다. 안티오코스 8세의 아내 트뤼파이나는 안티오코스 9세의 아내이며 그녀의 자매인 클레오파트라 4세가 안티오키아 외곽의 다프네 신전에서 붙잡히자 처형시켰다. 이에 격노한 안티오코스 9세는 이듬해에 전투 후 붙잡힌 트뤼파이나를 처형했다. 이렇듯 형제간의 갈등은 깊어졌지만 내전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안티오코스 8세와 트뤼파이나 부부는 셀레우코스 6세, 안티오코스 11세, 필리포스 1세, 데메트리오스 3세, 안티오코스 12세, 라오디케 7세를 낳았다. 트뤼파이나가 죽은 뒤 기원전 105년경에 이집트의 통치자 클레오파트라 3세의 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와 결혼했지만,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클레오파트라 셀레네는 훗날 안티오코스 9세와 결혼했다.

기원전 96년, 최고 관료였던 헤라클리온에 의해 암살되었다. 이후 그의 다섯 아들이 제각기 왕위를 놓고 경쟁하면서, 가뜩이나 혼란스러웠던 셀레우코스 제국은 도저히 수습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3. 독물학의 대가

어머니 클레오파트라 테아의 손에 의해 아버지 데메트리오스 2세, 형 셀레우코스 5세가 비참하게 죽은 까닭에 어린 시절부터 독물학(毒物學)과 해독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사냥을 좋아하고, 의심이 많았지만 독초, 해독초에 통달했고 독살 예방에 대한 지식이 대단했다. 따라서 여러 권의 독물학 책을 저술하기도 했는데, 이는 로마 제국 시대의 그리스인 의사 갈레누스(페르가몬의 갈렌)가 인용할 정도로 그 수준이 대단했다.


[1]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 소생. [2] 안티오코스 7세 소생. 안티오코스 9세만이 둘의 사이의 유일한 자식인지는 불확실한데, 둘 사이에는 각각 안티오코스와 셀레우코스라는 이름의 두 아들과 라오디케라는 이름의 하나 혹은 두 딸이 더 있었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