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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4:56

안철수/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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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긍정적 평가
2.1. 하버드 케네디 스쿨 초청 세미나2.2. 김영란법 통과2.3. n번방 사건 공론화2.4. 신해철법 통과2.5. 송파 세 모녀 방지법 발의2.6. 코로나19 자원봉사
3. 복합적 평가
3.1. 단일화의 역사
3.1.1. 2012년 18대 대선3.1.2.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3.1.3. 2022년 20대 대선
4. 부정적 평가
4.1. 박원순 후보 지지4.2. 연이은 선거의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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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치인으로서의 안철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 평가를 각각 정리한 문서이다.

2. 긍정적 평가

2.1. 하버드 케네디 스쿨 초청 세미나

안철수는 하버드케네디스쿨 초청 외교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후 호평을 받았다. 케네디스쿨이 안철수까지 초청한 이유. 2022.03.01

원래 1시간 반을 계획했던 것을 한 시간으로 줄이면서 모두 발언 기회가 생략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는데 그가 침착하게 대응한 점, 또 사전 양해가 되어 있지 않은 즉석 질문들이 많이 나갔는데도 별로 막힘이 없었던 점 등이다. 미국 언론사 기자 출신으로 현재 하버드케네디스쿨에 소속된 한 인사는 "저건 외워서 하는 답변이 아니라 본인이 사안에 대해서 진짜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세미나 영상

2.2. 김영란법 통과

19대 국회의원 시절 통과시켰다 *. 그러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 *과 개정안에 대해 비판 *하기도 했다.

2.3. n번방 사건 공론화

관심이 꺼져가던 n번방 사건에 대해 귀국연설 당시 언급하여 주목받게 하여 대책을 수립하게 되었다.

2.4. 신해철법 통과

의사로서 다른 의사들의 반대와 많은 이익단체들의 이해 상충으로 반대함에도 법안을 끝까지 통과시켰다. 그리하여 신해철의 유족들이 안철수가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그대에게를 선거송으로 쓰도록 하였다.
참고로 신해철과 안철수는 사적 친분이 있었고 신해철 생전 안철수를 고평가했었다.

2.5. 송파 세 모녀 방지법 발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한 후 당시 공동 대표이던 안철수 의원이 세 모녀 법을 제1호 법안으로 발의하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 한 일명 세 모녀 법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사회보장수급권자의 발굴 지원법 제정안’이 있다.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발의하고 모든 의원이 서명할 정도로 전당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안철수 대표는 “이 법안은 4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2.6. 코로나19 자원봉사

안철수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자 대구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3월 1일 예정했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취소하고 대구로 내려갔으며, 그의 아내인 김미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도 자원봉사에 동행했다.

안 대표는 일반 의사와 다름없이 코로나19 관련 증상으로 내원한 환자들의 발열 체크, 검체 채취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의료 봉사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일 오후 페이스북에 ‘안철수 의사선생님께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정 전 의원은 “생각해 보니 저도 한때 안철수를 좋아한 적이 있었다”면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만들고 청춘 콘서트 할 때 멋졌다. 그가 의사 가운을 입고 대구에 달려갔다. 멋지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이런 자원봉사는 여야를 떠나 많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이 봉사 행위에 대해 안철수의 의사 면허가 아직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의사면허가 살아 있다고 한다. 애초에 의사면허가 살아있으니 일반 의사들과 동일한 일을 한거다. 의사 면허와 정치인 자격을 동시에 지닌 안철수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3. 복합적 평가

3.1. 단일화의 역사

2번의 대선과 1번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모두 단일화로 물러났기 때문에 현대 한국 정치인 중에서 단일화를 가장 잘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다만 이는 안철수가 거대양당이 아닌 제 3당에 속해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정치지형상 거대양당의 후보와 단일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이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3.1.1. 2012년 18대 대선

안철수 전 서울대학교 교수는 9월 19일 무소속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단일화 지지자의 자살과 문재인의 대권의지로 11월 23일 민주당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입후보를 포기했다.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율과 당선 가능성에서 앞서고 있었으나, 계속된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의 실패 끝에 이같은 선언을 발표하고 선거 기간 내내 문재인 후보를 적극 지원하였다.(같은 당이 아니고 경선을 치러서 문재인이 입후보 한 것도 아니었지만 40회가 넘는 전국 유세, 3회에 걸친 공동 유세를 했다. 선거 후 지분요구 없이 미국으로 간다.)

통합진보당은 경선을 통해 이정희 전 당 대표를 제18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으나, 이정희 후보는 12월 17일 민주당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였다.

정의당은 10월 20~21일 당원 찬반 투표를 실시해 심상정 의원을 제18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으나, 심상정 후보는 11월 26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며 선거 포기를 선언했다. 이후 진보정의당은 민주통합당에서 주도한 국민연대 결성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원하였다.

3.1.2.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으로 치러지는 2021년 재보궐선거가 그의 재기의 발판이 될 것이라 보여졌는데, 이전 선거들과 달리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과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권력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된 오세훈과 여론조사 지지율 차이가 박빙이었고, 심지어 재보선 국면 초기에는 훨씬 높았다. 여당에 대한 비토 여론이 선거날이 다가올 수록 높아지던 와중이었기 때문에 단일화만 승리했다면 서울시장에 당선되어 엄청난 정치적 자산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실제로 한동안은 안철수가 당선되는게 기정사실인 듯한 분위기까지 있었다.[1] 하지만 단일화 과정에서 지나치게 간을 보며 시간을 소모하자 결국 국민의 힘 지지층은 오세훈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대놓고 3파전이 되도 국힘당 후보가 이긴다는 발언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뒤늦은 단일화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오세훈의 승리였고, 선거도 치르지 못하고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하면서 사퇴하게 되어 결국 또다시 선거 패배를 떠안았다. 물론 오세훈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기로 한 만큼, 오세훈이 당선되고 서울 시정을 공동으로 운영하자는 제안까지 실현된다면 보수 정당으로 자리를 옮겨 정치 인생을 이어갈 수 있겠지만, 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던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갈등이 이어저 선거 승리 이후에도 합당까지 결렬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3.1.3. 2022년 20대 대선

2022년 20대 대선을 앞두고는 완주를 선언하며 기자회견까지 해놓고 사전투표 전날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로 사퇴하였다. 재외공관 투표의 경우 단일화 사퇴 이전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안철수에게 투표한 해외 유권자의 표는 전부 사표가 되었다.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재외국민들의 경우 한표를 행사하기 위해 10시간 이상 장거리를 운전하거나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렵사리 투표를 마치고 난 후 무효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대체로 허탈해하거나 분노하는 반응이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33353.html

윤석열과 안철수의 단일화로 인해 정권 교체에 성공했기에 이번엔 이재명과의 수싸움에서 이겼지만, 기존에 자신을 지지하던 국민의당 지지자들은 실망을 한 상태. 당시 안철수를 따르던 지지자들이 어찌나 배신감에 치를 떨었는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있다. 게다가 안철수가 거느리던 국민의당 소속 의원들은 친윤계 국민의힘 의원들의 노골적인 견제에 밀려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하는 모양새이고 이는 수장인 안철수도 마찬가지. 윤핵관의 핵심인 권성동 의원이 대놓고 자리 욕심내지 말라며 견제할 정도로, 그야말로 보기좋게 토사구팽 당해버렸다. 단일화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될거라고 예상했는데도 결국 이를 새겨듣지 않다가 본인의 차기 대권 지지 기반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윤석열을 뽑으면 손가락을 자르고 싶어질 것이라는 자극적인 워딩과 갈라지자 행보 끝에 겨우 단일화한 건 확실히 문제있는 행보였고, 이러한 단일화와 국민의당 합당은 당원과의 논의 없이 단독으로 처리한 건이었던 만큼 반발이 엄청났으며 이로 인해 손실된 이미지는 아직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는 중. 국민의힘 내에서도 친윤계를 중심으로 인수위원장 이후엔 자리 욕심 내지 말라는 노골적인 멸시와 홀대를 받는 판국이다.

4. 부정적 평가

안철수는 과거 프로그래머, 사업가로서는 뛰어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고, 많은 존경을 받았지만, 정치인으로써는 아쉬운 행보를 보이며 위상을 꽤 많이 깎아먹었다. 오죽하면 '안철수가 정치를 시작하지 않았다면?'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이다.

4.1. 박원순 후보 지지[2]

안철수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9월 4일에 주요 언론사들은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모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50% 상회하는 압도적인 수치를 보였다.

당시 정계 입문 전이고 서울시장 출마에 뜻이 없던 대학교수 안철수는 9월 6일 오후 4시에 '안철수와 관계 없이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박원순과 만나 불과 17분 동안의 대화 끝에 박원순의 뜻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라고 발표하였다.  당시 기사

이로 인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했는데 박원순 후보를 비판하면 처음부터 박원순을 지지하지 않은 보수 유권자에게는 "박원순을 시장 만드는데 공조한 주제에 책임은 나 몰라라 하는 얌체"로 보이기 딱 좋은 태도. 보수층을 두고 김문수와 경쟁을 벌여야 했던 상황에서 이런 태도를 보였으니 진보층과는 점점 멀어지면서 보수층은 끌어모으지 못하는 최악의 자충수가 되었다.

박원순 성폭력 사건 이후에는 더 부정적으로 작용하였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후보에게 "안철수는 박원순 만든 분"이라는 공격을 받았고,[3]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단일화에서도 패배하였다.

4.2. 연이은 선거의 패배

안철수는 맡은 공직이라고는 국회의원 재선에 불과하지만, 그를 대권 잠룡으로 이끈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 있다면 바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의 돌풍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본인도 재선에 성공했을 뿐더러 이후 대권 도전에 나서기 위한 정치적 기반을 다졌고, 그의 정치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맺은 결실이기 때문에 정치 리더로서 대표 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선거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은 대선에서 3위를 기록하며 주춤했는데, 초반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와 2강을 형성하다가 뒤쳐지기 시작하더니 정작 탄핵 당한 당 후보인 홍준표 후보에게도 밀린 3위를 기록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은 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국민의당 지지율이 추락하기 시작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바른정당과의 통합으로 바른미래당 소속이 되었지만 기존 당은 쪼개지고 처참한 지지율은 여전했다. 당의 요구로 서울시장 선거까지 나갔지만 또다시 극우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김문수 후보에게도 밀린 3위를 기록하며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무색무취한 중도 노선을 택한 전략이 번번히 대실패했다[4]. 여기에 바른미래당도 갈갈이 찢기며 본인이 당선시킨 후보들마저 다들 떠나기 시작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비례 3석에 그쳤고, 심지어 두 석은 지역구에 마땅히 갔어야 할 국회의원들을 비례로 당겨온 것이라 그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해줄 뉴페이스마저 전무한 상황에 놓였다.


[1] 오세훈 또한 무리하게 시장직을 내던졌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 [2] 정계 입문 전이라 안철수도 단일화라는 말보다 박원순의 뜻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라고 밝혔으므로 단일화의 범주에 넣는 것보다는 '후보 지지' 또는 '양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3] 참고로 안철수가 박원순을 지지하던 당시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의 상대 후보가 나경원이었다. [4] 특히 이 선거에서 안철수의 득표율(19.55%)이 약 1년전 19대 대선 당시 안철수가 서울에서 얻은 득표율(22.7%)보다 더 낮았다는 점이 뼈아팠다. 안철수는 19대 대선까지만 해도 문재인/민주당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라는 반문/반민주당 대세론을 내세워 자유한국당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물론 19대 대선에서 실버크로스 당하면서 대세론에 상당한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때까지는 "어쨌건 문재인과 민주당을 상대로 승리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보여줬던 것은 자신인데 그나마의 승리가능성도 없던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이 양보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콘크리트 재결집에 의지해서 자신에게 2위 자리를 빼앗아봤자 문재인을 못 이기면 의미없는 것 아니냐"고 받아칠 수는 있었다. 하지만 7대 지선에서 그나마 지지율을 더 상실하여 김문수에게 흡수당함으로써 대세론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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