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75)
고려 말기의 인물.
찬성사를 지냈고 1372년에 왜구에게 양천에서 패하자 공민왕이 사람들을 5군에 나누어 배속시키고 친히 승평부에 나아갔는데, 겨울 10월에 용천사의 산봉우리에 머물다가 숙위가 엄중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여러 관리들을 매질했다. 이 때 공민왕은 안사기에게 놀기 위함이 아니라 군사들이 행군하는 것을 보기 위한 것이라면서 자신의 뜻을 헤아리고 사람들을 잘 타일러 군령을 준수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를 두고 사관은 안사기 한 사람에게 의지해 군령을 떨치려고 했으니 그 일이 되냐고 비판했다.
1374년에 공민왕이 죽자 이강달이 왕명을 내세워 경복흥, 이인임 등과 함께 부름을 받아 역적의 토벌에 논의했고 명나라의 사신 임밀, 채빈 등이 귀국하려 하자 이인임이 명나라에서 공민왕의 죽음에 대해 문책할까봐 겁이 났는데, 안사기는 이인임의 지시로 김의를 꼬드겨 채빈 등을 죽이게 했다.
봄 2월에는 김흥경과 함께 풍악을 벌여 대궐 안에서 사사로이 연회를 했고 여름 3월에는 김유가 서북면 조선사로 임명되면서 김유에게 술을 내리는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며, 1375년에 명나라의 사신을 죽인 김의의 종자를 후하게 대한 것을 수상히 여긴 박상충이 안사기가 김의를 사주해 죽였다고 상소했다.
우왕이 하옥시키려고 하자 안사기는 인가로 달아나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으며, 그 목은 저잣거리에 걸렸다.[1]
정도전(드라마)에서는 권태원이 배역을 맡았다. 이인임의 수하로 나오며 그의 지시를 받고 김의를 시켜 명나라 사신을 죽이는데 앞장 선다. 그러나 행적이 들통나 하옥된다. 옥으로 찾아온 이인임이 자살을 권유하자 거부한다. 이어 최영과 정몽주를 만나려 한다. 그러나 만나러 가는 도중 잠복한 이인임의 호위무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1]
당연히 겨우 10살이었던 우왕 본인의 의지는 아니고, 집권자였던 이인임에게 버림받았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