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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21:42:45

아프가니스탄 평화 축제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사건 이전3. 강행4. 사건의 전개5. 기타

1. 개요

2006년 인터콥 아프가니스탄에서 평화 축제를 열겠다고 하면서 일어난 사건.

2. 사건 이전

아프가니스탄이 사실 처음부터 반한, 반선교활동 감정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선교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성경책과 왕진가방 하나만 들고 동분서주하며 의료봉사와 선교활동을 해왔는데 선교활동은 둘째치고 봉사활동 덕분에 나름 아프간에서 한국인에 대한 좋은 평판을 심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신변이 위험하단 걸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긴 거리의 이동은 오로지 정기 비행기를 구해 타고 이동했다.

3. 강행

하지만 2006년 3월 개신교계 선교단체인 인터콥[1]의 본부장 최바울(본명: 최한우) 목사는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지방에서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한국인 개신교 신자 2000여 명과 기타 인원이 '2006년 아프가니스탄 평화 축제'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당시에도 아프가니스탄은 여행하기엔 너무 위험한 지역이라[2] 외교부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가능 여부를 문의하면서 인터콥 측에도 가지 말 것을 권고했는데 3월 19일 아프가니스탄 외교부에서도 '이들을 수용할 수 없다'라고 외교부 측에 답신했고 외교부 측에서는 인터콥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다른 NGO까지 위험해질 것을 우려하여 현지에 '아프가니스탄 평화행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였다. # 외교부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내부에서도 극구 반대했다. 인터콥 본부장 최바울 선교사는 현지인들은 이것이 평화축제인 줄 안다고 주장했으나 한기총 선교분과위원장 강승삼 목사는 개신교인들의 집회인 건 현지인들도 알고 선교사들도 안다면서 이런 주장을 일축했다. #

이렇게 반대가 계속되자 인터콥이 아니라 '아시아문화개발협력기구'(이하 IACD)[3]가 축제를 기획, 진행하고 일정도 8월 5일부터 4일간 진행하는 것으로 바꿨다. # 그런데 인터콥 본부장 최바울 선교사는 IACD의 사무총장이기도 했다.[4] 나중에는 일정을 하루 더 줄여서 8월 5일부터 7일까지 하기로 했다.

4. 사건의 전개

일정이 8월 5일에 시작한다고 딱 그날에 입국하는 게 아니라 이전에 미리 아프카니스탄에 입국했다. 8월 2일에 입국하던 사람 중 35명이 카불 공항에서 현지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추방됐다.[5] 하지만 입국이 거부된 인원들은 자신들이 쇠몽둥이로 집단구타를 당하고 추방됐다고 주장했으며 최바울 목사는 이렇게 되기 전에 벌써 1300여 명이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했다고 밝혔다. 덧붙여서 최바울 목사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한국인 입국을 불허하는 까닭은 위험해서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압박해서 그렇다고 주장했다. # 이들은 이곳에서 한국에서도 그랬듯 전도활동을 벌였다. 물론 현지 주민들이 거부감을 느끼든 말든 상관없이.

그러다 보니 아프간 주민들의 반감도 계속 커져 갔고 아프간 정부도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아프간에 한국인 입국이 일시적으로 제한되었으며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성직자 500여 명이 한국인 선교 축제 인원을 즉각 추방할 것을 주장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아프간 정부 측에서는 8월 1일에 "한국인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미 들어온 한국인 개신교도 1,500명을 강제출국시킬 것을 결정했다. 물론 인터콥 대표 겸 IACD 사무총장이기도 한 최바울 목사는 이런 모든 소식들이 사실무근, 헛소리라고 주장했다. # 이 와중에 평화 축제가 예정된 곳과 매우 가까운 곳에서 폭탄 조끼가 발견되었으며 격앙되는 반한 감정으로 아무 상관없는 한국 교민 180명이 피신하는 등 엄청난 민폐를 끼쳤다.

이 와중에도 아프간에 못 들어간 개신교인들이 인도 델리와 UAE 두바이를 경유하여 몰래 아프간 입국을 기도하다가 걸리는 등 계속해서 민폐짓을 저질렀고 이때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이 아이들까지 데리고 와서 기후와 위생 문제로 인해 환자가 생기기까지 했다.[6] 이쯤 되면 같은 기독교인이 봐도 웬만하면 분노할 지경이다. 결국 평화 축제는 이러한 해프닝 끝에 취소되었고 정부는 전세기 등을 동원하여 교인들을 한국으로 다시 데려오면서 사태는 종료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아프간 간 건 정당하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을 살려준 정부에게 너희들 때문에 선교 못했다며 소송을 걸기까지 했다.

단기선교 가면서 드는 비행깃값과 체재비를 대신 기부하면 수많은 굶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데 열흘 남짓의 단기선교에서 봉사다운 봉사는 하지도 못하고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선교했다'는 자기만족에 빠져서 열흘 동안 관광하다가 돌아오는 자화자찬에 그친다는 게 그야말로 위선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봉사활동'을 할 자격조차 없는, 아니, 자기 몸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사람들이었다. 강제 출국당하는 순간까지 물갈이와 복통에 시달리는 인원이 대다수였다.

5. 기타



[1] 인터콥과 그 본부장 최바울 선교사는 개신교 내부에서도 이단 혐의가 끊이지 않는다. 자세한 사항은 인터콥 신사도 운동 문서 참조. [2] 2005년에만 1100여 명이 죽었고 2006년에는 상황이 더욱 나빠져서 4월부터 6월까지에만 1600여 명이 사망할 정도로 치안이 엉망이었다. [3] 영어로는 Institute of Asian Culture and Development라서 약칭이 IACD다. [4] 더더욱 웃긴 건 이 단체가 써댄 책을 보면 당시 이 상황이 평화의 상징이라고 아무 일 없다고 아주 허풍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다. 참고로 여긴 이스라엘 가서도 평화축제니 뭐니 또 벌이며 팔레스타인인에게 개신교 믿으라고 하려고 했다. 물론 악랄한 기독교 탄압 국가(얼핏 비슷한 종교라 친해 보이지만 사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는 썩 좋지는 않다.) 이스라엘이 '정말이지 늬들 오면 다 죽여버린다'는 말 하나로 이들을 막아버렸다. 이뭐병도 아니고... [5] '32명이 추방됐다'는 기사도 있고 35명이 추방된 기사도 있는데 나중에 나온 35명 추방 기사가 더 정확한 듯하다. [6] 이로 인해서 당시 아프간 재건을 위해 파병된 동의, 다산부대는 비상이 걸렸고 군의관, 간호장교 각각 3명, 의무병 1명, 장교 1명이 미군의 호송하에 파견 나가 진료를 했으며 이들 30명은 현지에서 치료 받고 귀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