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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22:46:00

아이신기오로 위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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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cd21><colcolor=#00386a> 愛新覺羅 毓嵒
애신각라 육암
파일:800.png
출생 1918년 5월 17일
중화민국 직예성 베이징시
사망 1999년 1월 18일 (향년 82세)
부친 애신각라 부칭(愛新覺羅 溥偁)
모친 부찰경귀(富察 敬貴)
암서(巖瑞)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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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 부의의 재당조카이다.

2. 생애

도광제의 다섯째 아들인 순친왕(淳親王) 혁종의 증손자로, 혁종은 푸이의 할아버지인 순친왕(醇親王) 혁현의 형이었다. 즉 7촌 숙-질 관계가 된다. 어릴적 이름은 소서자(小瑞子)였다. 베이징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는 만주족 황실이 남긴 재산으로 호화롭게 살았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어릴 때는 아예 극단을 자기 집에 불러 저녁때마다 연극이나 경극을 관람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훈복벽이후 청황실은 공화국에 대한 역모를 꾸민 것으로 간주되어 점점 탄압을 받았고, 이 때문에 가세가 기울어 푸이와 마찬가지로 톈진으로 옮가가서 살았다.

1936년 강덕제가 된 재당숙 부의에 의해 만주국 황실의 학원(學員)으로 선발되어 부의와 가깝게 지냈으며, 이 때 명사의 지도 아래 왕희지(王羲之)·안진경(安眞慶)·조맹부(趙孟頫)· 건륭제의 서법을 주로 배웠다.

1945년 만주국이 멸망하자 육암도 체포되어 소련에 의해 시베리아 포로로 보내졌다. 1950년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기 직전, 부의는 육암을 후계자로 세웠다.[1]

1950년 8월 송환되어 다른 만주국 관련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순 전범 교도소에서 지냈는데, 상당히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여 다른 전범들과는 달리 기소 없이 7년 만에 석방되었다.

출소 후에는 농부로 일하다가, 저우언라이의 배려로 베이징의 옛자택의 한 부분에서 지낼 수 있었다. 이때 한문을 가르치고 잡화를 팔아 생계를 꾸렸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그 신분 때문에 산서성 노동 개조소로 보내져 을 하였다가, 마오쩌둥 사망 이후인 1979년에야 13년 만에 북경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는 중국 정부의 문화부 공왕부박물관에 고문으로 초빙되어 공무원 신분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 1999년에 사망했다.

하지만 만주국 황실의 왕위요구자는 1937년 만주국의 제위계승법에 의해 부의의 동생인 부걸(溥傑, 푸제)이 상속했다. 청 황실의 방계 황족은 만주국 황족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

3. 가족

열조부 건륭제
현조부 가경제
고조부 도광제
재종조부 광서제, 순친왕, 동치제
증조할아버지 아이신기오로 이총
재당숙 선통제
재당숙모 효각민황후
증조부 아이신기오로 이힌, 아이신기오로 이후완
아들 아이신기오로 헝전, 아이신기오로 헝카이
재당숙 아이신기오로 푸런
증조부 함풍제
당고모할머니 영수고륜공주
증고모할머니 수은고륜공주
친사촌 남동생 진위장

[1] 부의의 자서전에는 '육암을 상속인으로 검토하겠다고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