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1-11-24 00:40:20

아나세이니 타키포



파일:Tonga_Reine_Takipo.jpg

ʻAnaseini Takipō

1893년 3월 1일 - 1918년 11월 26일 (향년 25세)

아나세이니 타키포는 1909년부터 1918년까지 통가 왕비를 지냈다.

1893년 누쿠아로파에서 태어났다. 부계로 귀족 집안이었다. 아버지 테비타(Tēvita Ula Afuhaʻamango)는 투이 카노코폴루(Tuʻi Kanokupolu) 계열의 귀족이었다.

이복언니로 오파키바바우(ʻOfakivavaʻu)가 있었는데, 1899년에 당시 통가의 국왕인 시아오시의 신붓감으로 유력했다. 그러나 시아오시는 라비니아 베이옹고를 왕비로 골랐고 오파키바바우는 2년 뒤인 1901년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이듬해에 라비니아도 결핵으로 사망하면서 왕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결혼에서 1900년생인 살로테 공주가 태어났다.

당시 부족장 등은 오파키바바우와 결혼할 것을 왕에게 권고했는데, 왕이 이를 거부하고 라비니아와 결혼한 바람에 통가 사회에선 살로테 공주에 반감이 있었다. 이때문에 이런 여론을 달래고자, 1909년에 조지 투포우 2세는 16세인 아나세이니와 결혼하였다. 아나세이니가 오파키바바우의 이복자매였기 때문이다.

아나세이니는 1911년에 첫 딸인 오네루아(ʻOnelua) 공주를 낳았으나 그 해에 경련으로 죽었다. 1912년에는 푸시팔라(Fusipala) 공주를[1] 낳았다.

1918년 4월 5일에 남편인 조지 투포우 2세 스페인 독감으로 서거하였다. 왕위는 의붓딸인 살로테 공주가 계승하여 살로테 투포우 3세가 되었다.

아나세이니 본인도 같은 해 11월 26일에 인플루엔자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통가 인구의 8%가 이로 사망했다. 성인까지 유일하게 생존한 자식인 푸시팔라가 1933년에 미혼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 아나세이니의 생물학적 후손은 끊어졌다.

파일:Princess_Fusipala_of_Tonga_wearing_a_hat_and_coat,_New_South_Wales,_August_1926.jpg
성인까지 생존했던 유일한 자식이었던 푸시팔라 공주.
[1] 풀네임은 ʻElisiva Fusipala Taukiʻonetuku. 1912-1933.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공부한 뒤 통가로 돌아왔다. 이복언니인 살로테가 왕위를 계승한 뒤, 푸시팔라의 외가 친척들을 중심으로 왕위가 푸시팔라에게 간다는 주장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1933년에 푸시팔라 공주가 일찍 별세하면서 그런 주장은 힘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