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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6 02:57:02

살로테 루페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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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투포우 1세 조지 투포우 2세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 아호에이투 투포우 6세
살로테 루페파우
1
라비니아 베이옹고
2
아나세이니 타키포
할라에발루 마타아호 아호메 나나시파우 투쿠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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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Queen_Charlotte,_Tongataboo,_Friendly_Islands,_during_the_Challenger_Voyage.jpg

Sālote Lupepauʻu

살로테 루페파우는 통가 왕비이다. 이름은 영어 이름 샬럿 통가어 음차이다.

살로테는 1811년에 태어났다. 귀족 집안 태생이다. 어릴 적에 투이 통가(Tuʻi Tonga)[1] 라우필리통가(Laufilitonga, 1797-1865)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살로테는 다른 부족장이었던 타우파하우(Tāufaʻāhau)와 정분이 났다. 벨라타 전투(Battle of Velata)에서 타우파하우는 투이 통가 라우필리통가를 패배시키고, 느슨한 부족장들의 연맹체였던 통가를 근대적으로 통일시키고 왕위에 올라 시아오시 투포우 1세가 되었다. 이후 살로테는 시아오시의 아내가 되었고 투포우 왕조의 첫 왕비가 되었다.

전 남편이었던 라우필리통가는 1865년에 죽었고, 투이 통가를 조카에게 계승하였다. 조카였던 파타헤이 투이 펠레하케(Fatafehi Tu'i Pelehake)는 투이 통가 직위를 반납하였다. 그럴 법도 한 게, 귀족들끼리 워낙 혼맥이 얽혀 있어서, 투이 펠레하케는 당시 국왕인 투포우 1세의 사위이기도 했다. 살로테 본인에게는 전남편의 조카가 자신의 사위였던 것이다.

남편 시아오시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으나 모두 부모보다 먼저 죽었다. 장남인 투아키타우(Tuʻuakitau)는 1839년에 태어나 1842년에 죽었고, 차남인 부나 타키타키말로히(Vuna Takitakimālohi)는 1844년에 태어나 1862년에 죽어서 살로테의 생존 후손은 없다. [2] 시아오시 1세의 뒤를 이은 시아오시 투포우 2세는 남편인 시아오시 1세의 사생아 자식들의 후손이다.

살로테는 1889년 9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통가의 사립 여학교인 퀸 살로테 칼리지(Queen Salote College)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1] 전설상의 왕 아호에이투로부터 기원하였다고 전해지는 통가의 왕위이다. 사실상 부족장의 직위에 가까웠고, 통가가 근대화되는 과정 중에 이런 직위들이 귀족 작위가 되었다. [2] 이후 통가에는 법적인 계승자가 없었는데, 1875년에 헌법을 도입하면서, 시아오시가 둔 사생아인 테비타 웅가(Tēvita ʻUnga, 1824-1879)를 왕세자로 삼았다. 본래 기독교 상속에 따르면 사생아의 계승권은 없으며, 현재 통가 왕실에서도 사생아의 계승 권한은 인정하지 않음에도 테비타 웅가는 예외적으로 왕세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