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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13 11:07:13

쓰시마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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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현재 지명

1. 개요

쓰시마국([ruby(対馬国, ruby=つしまのくに)], 구자체: 對馬國)은 사이카이도 쓰시마섬에 있었던 율령국이다. 현재 나가사키현 쓰시마시다.

2.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쓰시마섬/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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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년 다이카 개신으로 쓰시마섬에 율령국 쓰시마국이 들어섰다. 663년 백강 전투 패배 이후, 당나라 신라의 침략을 대비하여 규슈의 율령국 및 이키국과 함께 쓰시마국에도 시키모리(防人)를 두었다. 시키모리는 저 멀리 아즈마노쿠니에서 징발했는데, 만요슈에는 방인가(防人歌)가 여러 편 남아 있다.

1274년과 1281년에 걸쳐 원나라의 일본원정을 겪었다. 한반도 국가 측에서 왜구를 정벌한다는 목적으로, 1389년 고려, 1396년과 1419년 조선에서 대마도 정벌을 벌였다. 이후, 1443년 조선과 쓰시마 슈고 소씨 계해약조를 맺은 이래 쓰시마는 조일 무역의 창구가 되었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임진왜란을 벌일 때, 소씨는 조일 무역에 지장이 생기면 곤란해지니 전쟁을 회피하려 했다. 임진왜란이 진행되고, 쓰시마는 부산포 히젠 나고야성의 중간 거점으로 쓰였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소씨는 패배한 서군 쪽에 섰지만, 영토는 몰수되지 않았다. 에도 시대에는 에도 막부와 조선과의 국교를 재개했다. 쓰시마에는 조선 통신사가 머물렀고, 부산에는 왜관이 세워져 국교가 이루어졌다.

3. 현재 지명

쓰시마섬에는 철도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철도역 접두사로는 사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