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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8 17:28:20

신준섭(권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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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올림픽 복싱 남자 미들급 금메달
파일:오륜기(여백X).svg
파일:쿠바 국기.svg 호세 고메스
( 1980)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신준섭
( 1984)
파일:독일 국기.svg 헨리 마스케
( 1988)

<colbgcolor=#131230><colcolor=#ffffff> 신준섭
申俊燮 | Shin Joonsup
파일:신준섭복싱.jpg
출생 1963년 6월 17일 ([age(1963-06-17)]세)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길곡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 / 학사)
원광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 석사)[1]
종목 복싱
체급 미들급
신체 176cm, 70kg
1. 소개2. 선수 경력3. 수상 기록4. 기타

[clearfix]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아마추어 권투 선수이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우승했는데, 이는 대한민국 권투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2. 선수 경력

2.1. 유년 시절

고등학교 때 복싱을 시작했으나 국내선발전에서도 번번히 탈락하는 평범한 선수였다. 전국체전과 아시안 게임 선발전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셨으나 1983년 로마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결국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물론 미들급 신준섭은 체급이 체급인지라 동메달 정도 기대하던 선수였고 대신 라이트플라이급 김광선, 플라이급 허영모, 밴텀급 문성길, 페터급 박형옥, 라이트웰터급 김동길이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았다.

2.2.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웰터급 이상 체급이었지만 메달권에서 벗어난 것으로 평가되어 1회전에 통과하고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성길, 김동길이 탈락한 이후에는 복싱의 메달 획득이 어렵다는 분위기가 나왔지만, 다크호스 신준섭, 전칠성, 안영수가 선전했다. 신준섭은 우간다, 캐나다, 나이지리아, 푸에르토리코 선수를 차례로 물리치고 결승에서 미국의 버질 힐과 만나 일대접전을 펼쳤다. 승부는 판정으로 결정되었는데, 미국이 홈인 상황에서 판정으로 간다는 것이 곧 패배로 인식된 것인지 결과발표 전 신준섭은 고개를 숙였고, 버질 힐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밖으로 신준섭의 우승으로 끝났다. 이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은퇴했다.

2.3. 현재

유인탁의 뒤를 이어 2019년 9월1일부터 전라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을 역임하고 있었다.

2023년 7월 25일, 전라북도체육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윤영숙 도의원(익산3)의 외압과 갑질 및 폭언을 폭로했다. 같은 날 윤영숙 의원 역시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법적인 조치를 시사했다. #

3. 수상 기록

올림픽
<colbgcolor=#ffd700> 금메달 1984 로스앤젤레스 -75kg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6 서울 -75kg

4. 기타


[1] 석사 학위 논문: BOXNG선수의 은퇴후 의식 및 건강실태에 관한 조사연구(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