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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14:02:57

신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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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신동혁[1]
출생 1982년 11월 19일 ([age(1982-11-19)]세)
평안남도 개천시 개천 제18호 관리소
거주지 미국 캘리포니아

1. 개요2. 일부 거짓 증언과 후폭풍3. 유사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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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북한이탈주민.

개천 제18호 관리소 출신. 그의 부모는 수용소 내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표창결혼'으로 맺어졌다고 한다. 그한테 형이 있다고 하는데 이복형인지 친형인지는 불명이다. 표창결혼으로 태어난 탈북자는 신동혁이 유일하기 때문이다.[2] 표창결혼이 이미 아이가 있는 상태이건 없는 상태이건 간에 일 잘하는 남자와 여자를 아무나 막 붙잡고 나이차 관계없이 강제로 시키는건지 아니면 한번 가정이 되면 일을 잘했을때 결혼을 한번 했던 그 부부들끼리 시켜주는 건지도 불명이다.

갖은 수모를 당한 신동혁은 세 번의 탈출 시도 가운데 마음이 맞았던 평양 출신 태권도 사범 박 씨 성의 40대 남성을 수용소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에게서 수용소 바깥의 이야기를 듣는다. 특히 먹을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계속 그것만 생각나서 결국 탈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같이 탈출하려고 했던 태권도 사범은 결국 전기 철조망에 감전되어 죽게 된다. 그의 희생으로 전기 철조망을 넘어 2005년 1월 2일 극적으로 탈출해 성공했다고 한다. 철책을 넘는 와중에 큰 화상을 입었고 지금도 신동혁의 등과 어깨에는 커다란 흉터가 남아있다. 수용소 밖에서 화폐의 가치를 모르다가 한 민가에서 쌀가마니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간식과 담배를 산 뒤, 중국 국경의 경비대원에게 뇌물로 주고 북한을 빠져나왔다고 한다. 이후 중국을 떠돌며 노가다를 하다가 상하이의 한 식당에서 만난 기자의 도움으로 주중 한국 대사관에 보호 받고 2006년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탈출 후에는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라는 수기 형식의 책을 집필하였다. 출간 당시에는 주목을 받았으나 후술되는 거짓 증언들이 밝혀진 이후에는 그다지 거론되지 않고 있다.

2010년대에는 오랜 수용소 생활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각종 질환들(육체적, 정신적)에 시달리고 있으며 치료를 받고 있는 모양이다. 가끔 해외에 가서 특별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강연을 펼치고 있으며 남한 내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더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북한의 인권 문제가 남한보다는 외국에서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신동혁 본인도 처음에는 남한에 책을 내는 등 수용소의 실상을 알리려는 시도를 했으나, 결과는 꽤 좋지 않았는지 남한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했다는 생각에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다. 주로 보수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경험담을 세간에 밝히고 있으며 구글에서 '신동혁'으로 검색하면 내용이 쭉 뜬다. 인터뷰의 내용은 수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2012년 4월 미국에서 논픽션 장르로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 <Escape From Camp 14>라는 책을 또 냈다. 본인이 쓴 것은 아니고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였던 블레인 하든 씨가 그를 인터뷰하여 책으로 낸 것. 이 책의 내용 가운데 화제가 된 부분은 형의 탈출 시도를 간수에게 밀고한 것은 자신이고 그 때문에 그가 보는 앞에서 각각 교수형과 총살형을 당했다는 것인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한국에는 2013년 3월 27일 <14호 수용소 탈출>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판매되기 시작하였다.

2013년 8월, 유엔 북한인권조사관 주재로 열린 청문회에서 자신은 어머니와 형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단지 먹을 것을 놓고 경쟁하는 상대로밖에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또한 탈출 논의를 하던 그들을 밀고했을 때가 가장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워낙 수용소 생활이 가혹했기 때문에 가족애나 정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014년 10월 26일 우리민족끼리가 "거짓과 진실 신동혁은 누구인가"라는 영상을 업로드 했다. 영문 자막이 첨부된 이 영상은 신동혁의 수용소 생활 증언이 모두 거짓이며 수용소에 산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신동혁이 13살 소녀를 강간하고 도주한 범죄자라고 주장한다. 이를 두고 신동혁 본인은 북한에서 신동혁의 아버지를 인질로 잡고 있으며 '독재자가 내 아버지께 무슨 행동을 하든 내 눈을 가릴 수 없고 내 입을 막을 수 없다'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고발을 계속한다는 뜻을 밝혔다. 관련 기사

2015년 4월 6일 미국에서 미국 백인 여성과 결혼했다. 결혼 후에는 후술할 논란 때문인지 사실상 활동을 그만둔 상태. 이후 그에 관해 새로 전해진 소식은 2017년 득남했다는 것이 전부다. #

2. 일부 거짓 증언과 후폭풍

북한 인권과 관련해 자극적인 거짓 증언은 진짜 증언까지 의심을 받게 하는 범죄이다. 거짓으론 악을 이길 수 없다.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기자 주성하 기자의 기사 중 발췌

2015년 1월 18일 신동혁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자서전의 내용 일부 내용에 오류가 있음을 시인하였다. 수감된 수용소의 위치는 개천 제14호 관리소가 아닌 개천 제18호 관리소로, 수용소에서 고문받던 시기를 13살이 아닌 20살로 정정하였다.

여담으로 15호 혁명화구역 출신인 강철환은 해당 번복 이전부터 신동혁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주성하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신동혁의 어머니와 형은 탈출죄가 아닌 살인죄로 사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관련해서 익명의 다른 탈북자와 북한 정권의 증언이 존재한다. 당시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일어난 증언 번복에, 당시로는 결의안 채택에 난항이 예상되기도 하였으나, 이 건과는 별개로 해당 안은 유엔이사회에서 2015년 3월 27일에 채택되었다.

한편 신동혁의 증언 번복을 계기로 국정원이나 북한인권정보센터 등에서 제대로 교차확인 되지 못한 증언은 검증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당시에는 14호 탈출 호소인이 신동혁이 유일하여 교차확인이 불가능 했다고 한다. TED 강연을 통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촉구한 이현서 역시 신동혁의 증언 번복 후 외신기자들이 노골적으로 "당신의 주장이 (신동혁의 경우처럼) 과장이거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믿어야 하느냐" 고 질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동아일보의 탈북자 출신 기자 주성하는 신동혁이 해제민 출신이라고 보고 있다. 즉 북한의 수용소에는 우리가 말하는 수용자인 '이주민', 형기 만료나 사면 등으로 수용자에서 벗어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해제민', 그리고 외부에서 노동력 보충을 위해 투입된 '외부인'이 거주하고 있다. 신동혁의 부모는 모두 해제민이었다면 신동혁도 수용소 수감자는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성하 기자는 "신씨의 책을 보면 그가 자라면서 들었을 과거 수용소 시절의 이야기가 자신의 체험담처럼 말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고 평하고 마지막에 문단 상단의 인용문을 남기며 신동혁을 비판했다.

신동혁의 북한 내 지인들과 북한 정권 측 자료도 신동혁이 해제민의 아들이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 자료에 따르면 신동혁은 1980년 평안남도 북창군 석산리에서 출생했는데 18호의 별칭이 '석산리'라고 하는데, 일단 18호 수용소 내에서 태어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신동혁이 3살이던 1985년 '마당해제'라고 부르는 대규모 사면이 있었을 때 함께 사면받은 것으로 보이며, 신동혁의 지인도 신동혁이 11년 무상교육을 받은 후 봉창학교, 득장학교에 나온 후 평안북도 운산군 광산에서 광산 노동자로 일했다고 증언했다. 신동혁의 다른 지인[3]도 신동혁이 학교를 졸업한 후 집 주변의 수안갱과 부흥광산에서 일했다고 증언했다. #

다만 신동혁을 만나 여러 방면으로 테스트를 해봤던 안명철[4]은 신동혁이 완전통제구역에서 쓰는 언어를 쓰고 내부 생활 준칙과 환경도 잘 알고 있는 데다가 그가 밝힌 내용들이 '거기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는 내용'이라고 평했고, 신동혁의 자서전을 집필한 워싱턴 포스트 기자 하든은 자서전의 일부 오류는 그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해명하면서 트라우마 전문가들은 이런 것을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여기는 등[5] 신동혁이 진짜 완전통제구역 탈출자가 맞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긴 하다. 물론 상술한 것처럼 신동혁이 해제민 시절 주변에서 들은 정치범수용소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적었다고 하면 그렇게까지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3. 유사 사례



[1] 본명은 '신인근'이었지만, 남한으로 탈북 후 개명 [2] 표창결혼으로 태어난 수감자의 자식은 수용소에서 그대로 살아가게 된다. [3] 1970년대 부모와 함께 18호 수용소에 수감된 후 어린 시절부터 탄광에서 일하다 80년대 중반에 해제민이 되었으며, 2000년대 초 탈북했다. [4] 완전통제구역 경비병 출신이다. [5] 사람의 기억력은 의외로 조작되기 쉬우며(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일수록) 자신 뿐만 아니라 남도 자신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라우마에 기억이 영향을 받아 뒤죽박죽 섞였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자세한 것은 유년시절의 성폭행 기억은 억압된다 참고. [6] 탈북자들은 그녀의 주장에 대해 "북한은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을 서서히 죽어가게 하지 노골적으로 잔혹하게 죽이지는 않는다" "북한은 7살 어린이들에게까지 고철을 수집하라 할 정도로 쇠가 귀한 나라인데 이럴 데 쓸 쇳물이 있을 리가 없다" "사람이 쇳물바가지를 손에 들고는 사람에게 쇳물을 붓는다는 것도 허황되었다"라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7] 주성하의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한국과 미국에서의 간증과 북한 실상 강의로 큰돈을 벌어 미국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으리으리한 집과 여러 대의 고급 승용차를 사들일 정도였다고 하며, #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위를 이수한 후 2016년부터 교회 전도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8] 해당 유튜버는 기독교 우파 성향으로, 신동혁과 박연미 같은 몇몇 탈북자들의 거짓 증언들을 다룬 영상도 올린 바가 있다. # 그 유튜버는 정치범수용소 실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도 이순옥의 증언은 처음 보고도 너무 과장이 심한 수준이라고 느꼈다고 밝힐 정도였다. [9] 자세한 것은 해주시 문서 참조. [10] 후자는 탈북자들의 과장된 증언이 오랫동안 정설로 알려졌단 것에서(심지어 주성하 통일연구원조차 낚였을 정도였다) 신동혁과도 유사하나, 전자는 탈북자들도 전혀 주장하지 않고 오직 남한의 몇몇 인터넷 글들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