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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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시시 곤살레스 Sisi Gonzále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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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시시니오 곤살레스 마르티네스 Sisinio González Martíne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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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6년 4월 22일 ([age(1986-04-22)]세) | |
스페인 카스티야라만차 지방 알바세테 자치주 알바세테 | ||
국적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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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66cm, 63kg | |
직업 | 축구선수( 미드필더, 공격수 / 은퇴)[1] | |
소속팀 | 유스 |
알바세테 발롬피에 발렌시아 CF (2001~2003) |
프로 |
발렌시아 CF B (2003~2004) 발렌시아 CF (2004~2008) → 에르쿨레스 CF (임대) (2004~2006) → 레알 바야돌리드 CF (임대) (2006~2008) RC 레크레아티보 데 우엘바 (2008~2009) 레알 바야돌리드 CF (2009~2012) CA 오사수나 (2012~2015) 수원 FC (2015) 레흐 포즈난 (2016) 베리아 FC (2016) FC 기후 (2017) 도쿠시마 보르티스 (2018~2019) 에히메 FC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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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12경기 2골 ( 스페인 U-21 / 2007~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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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스페인의 前 축구선수. 포지션은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겸 공격수이다.2. 커리어
2.1. 발렌시아 CF
알바세테 발롬피에의 유소년 팀 출신으로, 2001년에 발렌시아 CF 산하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게 된다. 이후 2003년, 당시 스페인 세군다 디비시온 B의 발렌시아 CF B팀에서 만 17세의 나이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2004년 3월 14일, 29라운드 UDA 그라먼트 전에서 프로 데뷔골을 넣었으며, 최종적으로 리그에서 10경기 출전 2골을 기록, 팀은 리그 7위로 마감하는 등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라리가에 소속된 발렌시아 CF 1군으로 당당히 승격하게 된다. 그러나, 시시가 1군으로 승격한 2004년에 발렌시아는 2003-04 시즌 리그 우승, UEFA컵 우승, 코파 델레이 4강에 이르는 미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시시가 16세부터 청소년 대표팀에 들어가 좋은 활약으로 17세에는 스페인에 U-17 준우승[2]을 이룬 재능있는 선수라는 건 발렌시아에서도 눈여겨보고 있었으나, 이미 최상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발렌시아 CF로서는, 그를 임대 보내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2.1.1. 에르쿨레스 CF(임대)
2004년, 1부 리그 라리가의 발렌시아 CF에서 3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 B 에르쿨레스로 임대되었으나, 시시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에르쿨레스에서 주전으로 뛰며 빠르게 적응한 그의 활약으로, 작년 시즌 9위였던 팀은 2위로 6년 만에 2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승격하게 된다.당연하게도 에르쿨레스는 발렌시아 CF에게 임대 연장을 요청했고, 시시는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1년 더 경험을 쌓게 된다.
에르쿨레스에서 73경기를 뛰며 2골을 기록하며, 2006년에 기간 만료로 다시 발렌시아 CF로 돌아가게 된다.
2.1.2. 레알 바야돌리드 CF(임대)
좋은 활약을 펼치고 발렌시아로 돌아왔으나, 시시의 입지는 변하지 않았다. 팀의 상태가 2004년에 비해 나빠지긴 했지만 발렌시아는 여전히 상위권에 있었고 당시 19세 밖에 되지 않았던 시시를 기용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다.
결국 발렌시아는 시시를 다시 한번 임대 보내기로 결정했고, 당시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전력 보강을 하던 레알 바야돌리드 CF에서 시시를 임대 영입한다. 바야돌리드는 라리가에서 강등된 후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2004-05 시즌 6위, 2005-06 시즌 10위로 중위권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시시는 바야돌리드에 빠르게 녹아들며 중원의 핵심이 되어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세군다 디비시온 8라운드에서 전반전 8분 만에 골을 기록하는 것을 시작으로, 40경기[3]를 뛰면서 4골을 기록했으며, 팀의 중원을 책임지며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다. 시시의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바야돌리다는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2위 UD 알메리아를 8점차로 따돌리며 우승을 차지, 라리가 승격에 성공했다.
이 때의 활약으로 스페인의 골닷컴에서는 스페인의 젋은 재능 6인 중 한 명으로 시시를 꼽았고, 그는 U-21 대표팀에 입성하게 된다.
당연히 바야돌리드는 승격의 주역인 시시의 임대 연장을 신청했고, 여전히 2선 미드필더 자리가 포화상태이던 발렌시아도 이를 수락해 시시는 바야돌리드에서 라리가에 데뷔하게 되었다.
2007년 9월 2일 라리가 2라운드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전에서 1:2로 뒤진 후반 77분에 라리가 데뷔골을 극적인 동점골로 기록하며 2:2 무승부를 만들었다.
13라운드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전에서 1-2을 만드는 역전골을 성공시키며 자신의 라리가 2호골을 성공시켰다. 다만, 90분에 팀의 자책골이 터지면서 3:4로 패배.
시시는 07-08 시즌 라리가에서 36경기 2골을 기록했고, 승격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거의 풀타임을 뛰며 준수한 활약으로 본인의 라리가 첫 시즌을 마무리했다. 바야돌리드도 15위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잔류에 성공했다.
2.2. RC 레크레아티보 데 우엘바
시시와 발렌시아의 계약은 임대가 마무리되던 2008년 여름에 종료될 예정이었고, 발렌시아에서 자리가 없을 것이라 판단한 시시는 재계약 대신 FA로 풀리는 것을 택했다. 결국 2008년 여름 시시는 발렌시아를 떠났고, RC 레크레아티보 데 우엘바에 새 둥지를 틀었다.이제 임대생 신분도 아니고 제대로 된 소속팀에서 뛰어볼까 했는데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A형 간염 판정을 받으면서 두 달간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게 된다. 결국 시시는 2008-09 시즌 28경기 1골을 기록했는데, 그 가운데 단 6경기만 풀타임으로 소화할 정도로 컨디션 난조를 겪었다. 여기에 팀의 에이스였던 골키퍼 세르히오 아센호마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수비진에 구멍이 뚫렸고, 결국 하락세를 탄 레크레아티보는 30라운드부터는 거의 강등이 확정되었다는 평을 들었다. 결국 남은 경기에서 시시는 5회의 풀타임 출전을 포함해 거의 모든 경기를 출전했지만, 때는 늦었고 레크레아티보는 최하위로 강등되었다.
2.3. 레알 바야돌리드 CF
레크레아티보의 강등과 함께 여러 주력 선수들은 이적을 택했고, 시시도 마찬가지로 이적을 요청했다. 그리고 2년 전 승격의 기쁨을 함께한 라리가의 레알 바야돌리드 CF가 3년 계약으로 시시를 영입한다.
2009년 9월 20일 라리가 3라운드에서 선발 출장하여 1:1로 비기고 있는 상황에서 역전골을 넣으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고 팬들의 기대감을 높게 했다.
하지만 5라운드를 끝으로 장기부상으로 이탈했고, 결국 시즌 종료 시점까지 복귀하지 못하며 단 5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리고 시시의 부재 속에 바야돌리드는 부진을 겪다가 결국 17위 말라가 CF와 승점 단 1점차로 18위에 랭크되며 강등당했다.
하지만 시시는 팀에 남아 바야돌리드와의 재도전에 나섰고, 부상으로 아쉽게 날린 한 해를 만회하기 위해 2010-11 시즌에 임했다. 10-11 시즌에는 아쉽게 7위에 그치며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지만, 이어진 2011-12 시즌에는 개인 한 시즌 최다골인 5골을 기록하고 주장 완장도 차는 등 팀의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그리고 바야돌리드는 11-12 시즌 세군다 디비시온 3위를 기록하며 라리가 재승격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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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당신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함께합니다." |
2012년 여름을 끝으로 시시와 바야돌리드의 계약은 만료되었고, 시시는 재계약 없이 팀을 떠나게 되었다. 팀의 에이스를 위해 바야돌리드는 성대한 송별행사를 열어줬다.
2.4. CA 오사수나
2012-13 시즌을 앞두고 시시는 CA 오사수나와 계약하며 라리가에 재입성했다.시즌 초반 준수한 활약을 하며 주전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었지만, 13라운드 라요 바예카노 전에서 부상으로 35분에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결국 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었고, 오사수나는 12-13 시즌을 16위로 마감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시시는 의욕적으로 2013-14 시즌을 준비했지만, 2013년 10월 9일 라리가 9라운드 FC 바르셀로나전에서 경기 시작 5분만에 카를레스 푸욜과의 충돌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고 만다. 그냥 부상도 아니고 또 다시 시즌 아웃이 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고, 시시가 빠진 사이 오사수나는 2009-10 시즌 바야돌리드처럼 승점 1점차 18위로 밀려나며 강등되었다.
당시 영상[4]
악몽같은 부상 악령을 떨쳐내고 재활을 마무리한 시시는 2014-15 시즌에 복귀했고,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꾸준히 출전하며 오사수나의 잔류를 이끌었다. 다만 언론 앞에서도 과거와 같은 움직임은 아니라고 하는 등 몸 상태가 100%는 아니라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데 시간을 꽤 썼다.
시즌 종료 후 오사수나는 시시에게 재계약을 제안했으나, 시시는 해외 무대 도전을 위해 재계약을 거부했으며, SNS에 장문의 편지를 올려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오사수나를 떠났다.
2.5. 수원 FC
그렇게 스페인 무대를 떠난 시시의 다음 행선지는 놀랍게도 대한민국 K리그, 그것도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 소속의 수원 FC였다.
그간 K리그 무대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들을 봐도, 시시처럼 유소년 시절부터 스페인의 연령별 국가대표를 두루 거쳤고 프로 데뷔 이후에 라리가에서 주전급으로 활약하기도 한 네임드 선수는 절대 흔치 않았고, 그런 선수가 1부 리그도 아닌 2부 리그에 온다는 사실이 다소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고가 같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착각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품었다. 물론 시시는 소속될 팀이 2부 리그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같은 연고의 팀과 착각한 것도 아니라고 본인 입으로 인증했다. 떠나기 전, 친구가 "수원 삼성으로 간다며?"라고 물어보자 "아니, 연고만 같은 작은 팀이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5]
다른 나라에서 뛰어보고 싶었던 차에 아시아 리그에서 오퍼가 들어왔고, 특히 인도에서 적극적이었으나 선수 본인이 싫다 하여 한국으로 왔다. 치안이 좋고 임금 체불이 없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 모양. 그리고 스페인에서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한 오스마르 이바녜스가 성공한 것에 자극을 받은 것 같다. 시시는 인터뷰에서 한국에 온 이유에 대해 "모든 것이 경쟁이고 치열함의 연속이었던 스페인 생활에서 벗어나 축구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언급했다. #
대략적인 연봉은 2억 5,0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시민구단인 데다가 원래 무리하지 않는 수원 FC의 경영스타일을 보면 이례적으로 투자를 많이한 셈. 올해가 승격의 적기라고 생각하고 과감히 지른 것으로 보인다. 시시를 영입한 이후 수원 FC가 K리그 승격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게 됨으로써 이 선택은 상당히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고 부산 아이파크와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여 수원 FC의 K리그 클래식 승격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시즌 종료 후 가족 중 아픈 이가 있어 되도록 가족과 가까운 곳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구단 측에서도 승격에 크게 공헌했던 시시를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긴 했지만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시시의 생각을 존중하여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아름답게 이별했다.[6]
그래도 한때 같은 팀 출신에 같은 에이전트를 두고 있는 하이메 가빌란에게 한국행을 적극 추천하며 끝내 가빌란의 수원 FC 입단을 성사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 폴란드로 떠나는 시시의 수원 FC에 대한 마지막 선물인 셈이다.
그리고 이적이 확정된 후 수원 FC 측에 쓴 장문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다시 한번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2.6. 유럽 복귀
파일:external/img.lechpoznan.pl/agwythla.jpg레흐 포즈난 시절.
파일:external/pbs.twimg.com/Cq91HkwWAAAHePp.jpg
베리아 FC 시절.
반 시즌간의 활약을 끝으로 유럽으로 돌아간 시시는 2016년 1월 폴란드의 레흐 포즈난에 입단했고, 같은 해 8월 그리스 수페르리가 엘라다 소속 팀인 베리아 FC로 이적하여 반 시즌 간 11경기를 뛰었다.
2.7. J리그 도전
2017년 1월, J2리그 소속인 FC 기후에 1년 계약으로 입단하면서 다시 아시아 무대를 밟게 되었다. # 이적하기 몇달 전에 자신의 트위터에 J리그 경기 영상[7]을 올렸던 것으로 보아, 이번에도 수원 FC에 입단했을 때와 똑같이 자신의 의지로 아시아 복귀를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뒤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고, # 2018년 같은 리그의 도쿠시마 보르티스로 이적하였다.
2019년 5월 전치 4~6개월의 왼쪽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상 시즌 아웃. #
결국 시즌 종료 후 재계약 없이 팀을 떠났고, 2020 시즌을 앞두고 에히메 FC로 이적했다.
2020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여담
- 스페인 U-17, U-18, U-21 대표팀에 모두 선발된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제대로 밟은 선수로, 동 세대에 시시와 함께 뛴 선수들로는 세스크 파브레가스, 다비드 실바, 로베르토 솔다도, 산티아고 카소를라 등이 있다. 하지만 성인 무대에서도 성공해 스페인 성인 대표팀에도 선발된 다른 선수들과 달리, 시시는 여러 차례의 장기 부상으로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하며 성인 대표팀에는 승선하지 못했다.
- 1986년생 동갑내기인 다비드 실바와 절친으로, 발렌시아 유스와 스페인 연령별 대표팀에서 함께했다. 실바는 2010년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할 즈음 인터뷰에서 "만약 과거와 현재에서 함께 뛸 수 있는 선수를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랑 함께 하고 싶습니까?"라고 묻자 "발렌시아 유소년 팀에서 함께 뛰었던 마누엘 루스[8], 시시니오 곤살레스와 함께 뛰고 싶네요. 그들은 정말 훌륭한 선수예요." 참고로 다비드 실바는 시시보다 1년 먼저 발렌시아 1군으로 승격했지만, 당시 발렌시아의 스쿼드가 워낙 강력해서 2년간 임대로 실력을 쌓아야 했다. 그리고 시시는 앞서 말했듯 발렌시아 1군에서 제대로 뛰지 못하고 이적하면서 두 선수가 1군 팀에서 함께 뛴 적은 없다. 이후 시시가 수원 FC로 이적하게 되자, 이걸 들은 실바가 시시에게 한 소리가 "너 미쳤냐?"였다고 한다. 이후 수원 FC가 승격하자 "1부 리거가 된 걸 축하해"라고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 어느 팀에 있든 간에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선수이다. 본인도 팬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CA 오사수나를 떠날 때에도 팬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작성하는 등, 매우 호감형 선수다.
- 수원 FC 클럽 역사를 바꾼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된 영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실업리그인 한국 내셔널리그에서 프로로 건너온 지 얼마 안되어 프로와 실업구단 그 중간즈음의 성격을 지닌 어정쩡한 위치에 있던 수원 FC가, 시시를 영입하고 나서 K리그 챌린지에서 승격을 노리는 경쟁력있는 구단으로 위상이 상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시시는 2015년 구단에 합류해 2015 시즌 구단의 사상 첫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이뤄냈고, 후반기 17경기에 출전하며 미친 탈압박과 킬러 패스를 선보이며 당시 2부 리그 최고의 닥공 팀이던 조덕제 감독의 수원 FC의 공격의 키 역할을 맡았다. 시시는 2016년에 유럽으로 돌아갔지만, 2016 시즌 1부 리그로 승격한 수원 FC는 가빌란, 오군지미, 레이어 등 유럽무대 경력이 상당한 외국인 선수진을 꾸리며 화제를 모았고, 비록 최하위로 강등되긴 했지만 역대 강등팀 최다승점 신기록을 세우며 나름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이후로도 수원 FC는 팀의 저력을 갖춰 다시금 승격을 노리는 구단으로 성장했고, 2019년에 3위를 기록하더니 2020 시즌 K리그2 준우승을 차지하며 1부 리그 재승격에 성공했다. 그러더니 2021 시즌에는 잔류를 넘어 상위 스플릿 진입은 물론, 대혼전 양상 속에서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까지 노려볼 정도로 선전하고 있다. 시시를 영입해 놀라움을 주었던 수원 FC의 외국인 스카우트는 이후 가빌란과 오군지미가 동반 실패를 거두고 그 후로도 레이어와 브루스 정도를 제외하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2019년 치솜이 대활약으로 팀의 3위를 이끌고, 2020년에는 마사가 맹활약하고 전북에서 자리를 잃은 라스를 여름에 데려와 잘 써먹으며 다시금 그 능력을 입증했다. 그리고 2021년, K리그 2년차가 된 라스를 비롯해 무릴로, 잭슨이 동반 대활약하며 수원 FC의 스카우트진도 다시금 높게 평가되고 있다.
[1]
본래 포지션은 미드필더로, 윙어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수원 FC에서는 좀 더 전진해서 처진 공격수 위치에도 기용됐었다.
[2]
당시 스페인 17세 대표팀에서 시시와 함께 미드필더 진을 구성한 선수가
세스크 파브레가스,
다비드 실바다. 스페인은 이 대회 조별 예선에서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한국 U-17 대표팀과 맞붙어 3-2로 승리하기도 했는데, 그 때 한국 대표로 활약한 선수들은
정인환,
양동현,
이용래,
이상협 등이 있다.
[3]
세군다 디비시온은 총 경기 수가 42라운드다. 40경기 중 선발이 36경기에 교체 투입이 4경기다. 팀 내에서 시시의 입지를 알 수 있는 대목.
[4]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카를레스 푸욜과의 충돌 후, 몸에 이상을 느낀 시시가 교체 의사를 밝혔으나, 감독이 계속 뛰라고 했고, 그 직후 참사가 일어났다.
[5]
수원 삼성의 경우는 친선전이지만
호나우지뉴의 전성기 시절
FC 바르셀로나와 경기해서 승리한 적도 있으니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는 편인 듯하다.
[6]
시시는 수원 FC가 가족들의 병원 문제까지 해결 해 주기를 원했지만 비교적 영세한
시민구단인 수원 FC는 그럴 수 있는 사정이 못 된다. 시시의 요구 사항을 들어줄만한 구단은
K리그 내에서도 거의 극소수다.
[7]
사족을 달자면 이 경기는
나고야 그램퍼스와
아비스파 후쿠오카의 경기이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인지 이 두 팀은 2016년 나란히
J2리그로 강등되고 만다(...).
[8]
Manuel Ruz. 실바, 시시와 마찬가지로
발렌시아 CF 유스 출신인 1986년생 선수로, 주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이었다. 이 선수도 발렌시아 성인팀에서는 자리잡지 못해
짐나스틱 데 타라고나로 임대 후 이적했고, 이후 하부 리그 팀에서 활약하다가
심낭염으로 인해 2013년을 끝으로 만 27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