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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20:09

스티븐 말크머스

<colbgcolor=#9d3134><colcolor=#fff> 스티븐 말크머스
Stephen Malkmus
파일:stephen_malkmus.jpg
본명 스티븐 조셉 말크머스
Stephen Joseph Malkmus
다른 활동명 SM, Hazel Figurine
출생 1966년 5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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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싱어송라이터
활동 1982년 ~ 현재
사용 악기 보컬, 기타, 드럼, 베이스
장르 인디 록, 포크, 컨트리, 로우파이[1]
데뷔 EP [Slay Tracks: 1933–1969](1989)
소속 밴드 페이브먼트(1989년–1999)[2]
실버 쥬스(1989-2009)[3]
스티븐 말크머스 & 더 직스(2000–)[4]
레이블 마타도어 레코드, 도미노 레코딩 컴퍼니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솔로 활동
3. 음악적 성향4. 사용 악기5. 디스코그래피6.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로, 90년대를 풍미한 인디 록 밴드 페이브먼트 보컬 기타를 담당했다. 현재는 스티븐 말크머스 & 더 직스에서 솔로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말크머스는 캘리포니아 주 산타모니카에서 태어났다. 10대 때는 로디의 한 고등학교에 다녔으며, 여러 상점에서 알바를 하며 상당히 자유분방한 삶을 보냈다. 이게 어느 정도였냐면, 불과 16살 때 술을 마시고 인근 주택가의 지붕 위를 쏘다니다가(...) 유치장에 갇혀 하룻밤을 보내기도 했을 정도. 이후 미성년자 음주로 보호관찰을 받았고, 문제아로 낙인찍힌 그는 환각버섯 파티에 갔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당했다.[5]

그가 처음으로 기타를 연주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미 헨드릭스 Purple Haze를 듣고 나서였다. 그는 Purple Haze를 계속 돌려듣고 연주를 카피하면서 기타를 배웠다. 16살 즈음 그는 인근 지역에 기반을 둔 여러 펑크 록 밴드들을 돌아다니면서 처음 음악을 시작했다. 이후 1989년 친구였던 스콧 캔버그와 함께 친구네 집 차고를 전전하며 데모 테이프를 만들고 밴드를 결성하는데, 이 밴드가 바로 페이브먼트이다.

이들은 드러머 게리 영의 집에서 세 장의 데뷔 EP [Slay Tracks: 1933–1969], [Demolition Plot J-7], [Perfect Sound Forever]를 녹음해 작은 인디 레이블을 중심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다소 장난스럽게 느껴지는 사운드에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로파이 사운드로 무장한 이들의 EP는 입소문을 타고 인근 지역의 매니아층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들의 소문은 영국 인디 씬에까지 퍼지면서 이내 존 필까지 그들의 팬을 자청할 정도였다.

이후 제대로 된 멤버를 구해 궤도에 오른 페이브먼트는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에 착수했으며, 녹음 기간만 따지면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을 만큼 빠르게 앨범을 녹음하여 데뷔앨범 Slanted and Enchanted를 발매한다. 적당히 멜로디컬하면서도 기존의 록 음악 공식을 전면으로 무시하는 아마추어리즘, 거친 로파이 사운드로 무장한 이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온갖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2007년까지 15만 장이 넘게 팔리며 인디 씬 치고는 꽤나 큰 성공을 거두었다.[6]

이후의 활동은 페이브먼트 문서 참고.

2.1. 솔로 활동

페이브먼트가 해체된 후, 말크머스는 솔로 활동을 위해 새로운 밴드인 스티븐 말크머스 & 더 직스를 결성했으며 현재까지도 여러모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2년 솔로 밴드 명의로 한국에 내한한 적도 있다. [7] 솔로로도 성공해서 솔로 데뷔작은 50만장 팔렸다고 인증한 바 있다. 공연도 매진될 정도라 음악으로 밥 먹고 사는게 가능하다고 밝혔을 정도.

2019년에는 솔로 앨범으로 일렉트로닉 뮤직 장르의 'Groove Denied'을 발매했다. 원래 2017년에 만들어졌던 앨범이었으나 음반사인 마타도어 레코드에서 아직 앨범을 발매할 시기가 아니라고 말려서 뒤늦게 공개된 것으로, 이 앨범의 모든 악기와 제작 및 엔지니어링은 말크머스가 주도적으로 제작했다.

시인 겸 작사가 데이비드 버먼과 함께 록 그룹 실버 쥬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9년 초에는 베이시스트/보컬리스트 킴 고든, 기타리스트/보컬리스트 서스턴 무어, 시카고 아방가르드 출신의 베테랑 짐 오루크, 유명한 일본 드러머 이쿠에 모리 등이 참여한 소닉 유스 베드롭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앨범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라이브 공연을 몇 번 했다.

2007년에는 밥 딜런의 삶을 바탕으로 만든 토드 헤인스 감독의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에 "Ballad of a Thin Man", "Can't Leave Her Behind", "Maggie's Farm" 등 3곡을 제공했다. 말크머스는 자신이 "딜런의 진정한 팬이 아니었지만, 영화는 내가 딜런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듣게 만들었다." 고 했다.

3. 음악적 성향

페이브먼트 당시의 말크머스의 성향은 느슨하고 아마추어스럽지만 묘하게 중독적인 인디 락이었으며, 솔로 활동 중인 현재는 포크 기반의 인디 락으로 정의할 수 있다. 페이브먼트 1집을 만들 때의 그는 작곡과 녹음의 기술적 면에 있어서는 일자무식이라고 봐도 다름이 없었는데, 오히려 펑크 록마냥 이러한 아마추어스러운 실험정신이 원초적인 창작 에너지와 결합해서 인디 록 불후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이후에는 대중적으로, 실험적으로 더욱 원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1집만큼의 원초적 감성은 없을지언정 특유의 독특한 멜로디 메이킹이 돋보이는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다.

가디언지에서 스티븐 말크머스의 인생트랙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 기사에 따르면 말크머스의 음악적 취향은 다음과 같다.
-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곡 California Dreamin', 마마스 앤 파파스 (1965)
- 기타를 연주하게 만든 곡 Purple Haze,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1967)
- 반항기에 좋아했던 앨범 Fresh Fruit for Rotting Vegetables, 데드 케네디스 (1980)
- 자신의 송 라이팅에 영향을 준 앨범 Let It Be(리플레이스먼츠 음반), 리플레이스먼츠 (1984)
- 자신의 원점이라고 말할 곡 Sister Ray, 벨벳 언더그라운드 (1968)

리스트를 보면 지미 헨드릭스, 마마스 앤 파파스를 제외한 세 밴드들은 대중적인 성공과는 영 거리가 먼 밴드들인데,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간결한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밴드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면에서 그의 음악적 성향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필두로 한 미국 로큰롤, 80년대의 포스트 펑크, R.E.M.으로 대표되는 컬리지 록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8]

4. 사용 악기

- Fender Stratocaster
- Guild S-100
- Fender Jazzmaster[9]
- Gibson SG[10]

5. 디스코그래피

6. 여담




[1] 페이브먼트 초기 활동 시절 한정. [2] 이후에는 2009년, 2020년에 이벤트성으로 재결합해 투어를 돌기도 했다. [3] 여기서 쥬스는 음료수(Juice)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Jews)을 뜻한다. 직역하자면 은색 유대인들. 리더였던 데이비드 버먼이 유대인이라 이런 이름이 붙였다. 당시 말크머스 인지도가 훨씬 높았던 상황이라, 엄연히 버먼의 밴드임에도 말크머스 사이드 프로젝트로 인식되는 문제도 있었다. 2009년 버먼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해체했지만 서로 사이는 원만했다고 한다. 2019년 버먼이 자살하면서 더 이상 실버 쥬스로서 활동은 볼 수 없게 되었다 [4] 말크머스 본인의 솔로 활동을 위해 결성한 밴드. 데이비드 보위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활동 당시 데리고 다니던 백밴드 'The Spiders from Mars'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5] 물론 말크머스 본인은 환각버섯을 일절 복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문제아로 인식되던 그를 편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이후 버지니아 대학교 사학과로 진학해 졸업한 걸 보면 어찌 고등학교 졸업은 한 것으로 보인다. [6] 당장 80년대 미국 인디 락의 거물이었던 소닉 유스마저도 대부분의 앨범 판매량은 5만 장 언저리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페이브먼트의 성공은 확실히 입지전적이었던 셈이다. [7] 이때 이석원과 대담을 가지기도 했다. [8] 이러한 그의 음악적 성향은 고스란히 페이브먼트 음악의 자양분으로 이어졌다. [9] Brighten the Corners 제작 당시 사용. [10] Crooked Rain, Crooked Rain 제작 당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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