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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18:38:46

스티븐 제라드 vs 프랭크 램파드

스램제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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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장과 근거
2.1. 제라드 우위론2.2. 램파드 우위론
3. 잉글랜드 대표팀에서4. 커리어 비교
4.1. 우승 경력 비교4.2. 개인 수상 비교4.3. 지도자로서의 비교?
4.3.1. 2021-22 시즌4.3.2. 2022-23 시즌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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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축구선수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중 누가 더 나은지에 대한 논쟁 혹은 그 떡밥. 여기에 폴 스콜스[1]도 끼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그러나 스콜스는 스타일도 달랐고, 개인 수상에서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나는데다 전성기를 구축한 나이도 달랐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다는 평가가 많다.[2] 아래에 있는 캐러거와 네빌의 토론 역시 램제 떡밥이 아닌 스램제 떡밥이다. 위 주제들은 몇몇 축빠들이 가진 관념과 달리 진짜 전문가들도 심심하면 건드리는 주제였다. 캐러거와 네빌의 논쟁, 스카이스포츠 주관 투표, BBC 주관 투표

예전에는 떡밥이 커지면 스램제 떡밥에 사비 에르난데스까지 끌어들여서 당대 중미 원탑 논쟁도 벌어지곤 했지만, 이들의 커리어가 끝난 시점에선 개인 커리어, 팀 커리어 모두 사비가 둘을 압도하면서 이 떡밥은 효력을 잃었다.

아무 조용한 게시판에나 던져 두면 순식간에 몰려드는 양 선수의 팬들과 또 그 와중에 객관성의 탈을 쓴 제3의 축구 팬들이 몰려와 신나게 물어뜯는 혈전을 관람할 수 있다. 게시판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위험 떡밥. 더구나 램파드 제라드 두 선수의 오랜 기간 소속 팀이 각각 첼시와 리버풀이어서 더 이런 라이벌 대결 구도가 주목받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떡밥이 붙게 되면 첼시 팬들과 리버풀 팬들이 많이 몰리는 편이다.

논쟁에서 보통 제라드 우위론의 경우 FIFA 월드 XI, UEFA 올해의 팀 선정이나 UEFA 올해의 선수상과 같은 개인 커리어를 선수 평가의 기준으로 두고, 램파드 우위론의 경우 골이나 어시스트같은 스탯과 우승 기록을 선수 평가 기준으로 두는 편이다.

두 선수 모두 은퇴한 후 램파드는 더비 카운티, 제라드는 레인저스로 감독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향후 둘이 감독으로도 라이벌이 될 가능성이 생겼다. 그리고 램파드가 2019-20 시즌부터 첼시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제라드만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한다면 감독으로서의 빅매치가 성사될 수 있었지만 램파드가 첼시 감독에서 경질됨으로써 의미 없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2020-21 시즌, 제라드는 아스톤 빌라의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램파드도 노리치 감독으로 부임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노리치가 램파드를 감독으로 선임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1-22 시즌 도중, 램파드가 에버튼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드디어 둘의 감독 매치업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각 선수의 팬들이 서로 물고 뜯는 것과는 별개로 제라드와 램파드는 서로에 대한 라이벌 의식은 있지만 상대방을 높게 평가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사이이다. 동일 포지션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선수가 누구였냐는 질문에 제라드는 램파드를, 램파드는 제라드를 뽑을 정도. 또한, 국대에서 워낙에 자주 봤던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 친분도 있다.

2. 주장과 근거[3]

2.1. 제라드 우위론

2.2. 램파드 우위론

3.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당시 국대에서 둘의 공존은 잉글 국대에 새로 부임한 감독은 누구나 시도해보는, 그리고 뭐가 됐든 결론적으로 실패하게 되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2010년대의 팬들은 잘 실감하지 못하겠지만 2000년대 중~후반 제라드와 램파드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들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대의 축구는 4선 축구가 대세지만, 4선 축구가 대세인 가장 큰 이유는 오프사이드 룰 개정 덕분이고 이를 통해서 알론소, 피를로, 차비 등 최고로 꼽히는 중앙 미드필더들이 떠올랐지만 3선 축구가 대세이던 시절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는 제라드와 램파드였다.[13] 따라서 세계 최고의 선수를 둘이나 거느리고 있으니 조합을 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14]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두 선수 모두 소속 팀에서는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는 미드필더이며 허접한 잉글랜드 국대 공격진의 약점을 보강하기 위한 미드필더진의 공격력 강화에 가장 어울려 보이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상황이 두드러진다. 루니라는 월드클래스의 문을 두드리는 스트라이커가 나왔으나 골이 없었고 잉글랜드는 조별리그부터 미드필더들의 골에 의존해 힘겨운 경기를 치른다. 제라드 vs 램파드 구조로 비교한다면 제라드는 당시 잉글랜드의 06독일월드컵 최다 득점자, 램파드는 잉글랜드 최다 슈팅 0골(자국민들에게 욕을 엄청 먹었다.)이었고 제라드의 압살이라고 보면 된다. [15]

2008년부터 잉글랜드 국대 감독을 맡은 파비오 카펠로 감독도 둘의 공존을 시도했으며 대표적인 것이 제라드의 오른쪽 윙 기용이었고 꽤 나쁘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근데 그러느니 차라리 본업이 윙어인 다른 선수한테 맡기는 게 낫지 않느냐는 얘기도 많았고, 결론적으로 2010년 월드컵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아예 둘의 공존이 불가능한 건 아닌데,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 앵커 내지 홀딩 역할로 가레스 배리, 스콧 파커를 놓고[16][17] 제라드와 램파드가 양 메짤라 내지 공격형 미드필더로 함께 뛸 때에는 둘 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 롤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로 2007년 즈음 해서 오언 하그리브스도 급부상하였는데 이는 배리처럼 뛰어난 활동량과 체력, 수비 그리고 공격 전개 능력이 우월했기 때문.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부상해 버리면서 요원하게 됐다.[18] 결국 이런 조합을 쓸 당시에도 미드필더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제라드의 출전이 더 많았다.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2010년 이후 국대에서는 램파드보단 제라드가 좀 더 중용받고 있는 중. 아무래도 램파드가 월드컵에서 보여준 39슈팅 무득점이 한몫하는 것 같다. 물론 그중엔 독일전의 오심으로 날아간 골이 있지만 램파드가 중거리 슛을 난사하기 시작한 것은 06 월드컵 때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이다. 결과적으로 제라드는 월드컵에서 3골을 기록했고 램파드는 1골도 넣지 못했다.

단, 유로 2004만큼은 램파드가 제라드보다 훨씬 잘했는데 램파드는 이 대회에서 3골을 기록, 루니와 함께 대회 올스타팀에 뽑혔을 정도로 맹활약했다. 제라드는 오히려 앙리에게 준 조공패스만 간간이 회자되는 정도다.

결국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제라드와 램파드 둘 다 대표팀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둘의 조합은 마지막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끝나게 되었다.

VS로 지켜본다면 제라드가 더 빠른 데뷔와 큰 영향력을 보여줬고 전 포지션에서 고르게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라드의 출장이 더 잦았다. 실제로도 둘 중 가레스 배리나 스콧 파커를 이용한 조합을 짤때도 제라드가 더 중용됐으며 실질적 출장도 제라드가 더 잦았다.

4. 커리어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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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4.1. 우승 경력 비교

4.2. 개인 수상 비교

4.3. 지도자로서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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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선수 모두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추후 또다른 떡밥이 생겨날 가능성도 열려있다. 두 사람 모두 정식 감독(헤드 코치)으로서의 커리어는 18-19 시즌 시작하였으며, 램파드는 EFL 챔피언십의 더비 카운티에서, 제라드는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의 레인저스 FC에서 출발하여 19-20시즌 현재 램파드는 전성기를 함께 한 첼시 FC의 정식감독이 되었지만 전반기에 부진하여 경질된 것에 비해 제라드는 레인저스의 감독으로 한 때 공중분해[29]되었던 레인저스를 아주 훌륭히 이끌고 있는 중이다.

물론 같은 리그 내에서 팀을 맡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그냥 잠재적인 떡밥거리라고 볼 수 있으며, 램파드와 같은 리그 내에 속해있는 맨유 감독 올레 군나르 솔샤르[30]와의 비교가 훨씬 더 핫한 얘깃거리로서 온라인 해축 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중이다.[31]

그러나 세계 최고의 리그 중 하나로 불리며 강팀들도 자주 일격을 당하곤 하는 PL과 사실상 셀틱과 레인저스의 양강 체제 리그인 스코틀랜드 리그의 수준, 압박감의 차이는 상상 이상이다.[32]

2020년 6월 26일 프랭크 램파드 감독이 이끄는 첼시 FC 맨체스터 시티 FC에게 2:1 승리를 거두면서 리버풀 FC가 마침내 30년 만의 리그 우승이자 최초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달성하게 되었다.[33] 제라드도 못한 우승확정을 시켜준 덕분에 램파드야말로 리버풀 레전드라며 제라드가 리버풀 감독으로 와서 리그 우승 하기 전까지는 이 논쟁 꺼내지도 말라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리고 2021년 1월 25일 램파드가 첼시 감독에서 경질되고 셀틱 FC에 부임할수 있다는 기사가 뜨고 있다. 만약 성사된다면 레인저스 FC의 제라드와 셀틱 FC의 램파드라는 올드펌 더비를 볼 수 있게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램파드가 부임하지 않으면서 무산되고, 2021년 11월에는 제라드가 애스턴 빌라 FC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레인저스를 떠났다.

4.3.1. 2021-22 시즌

그리고 2022년 1월 30일에 프랭크 램파드가 에버튼에 부임하면서, 다음 시즌부터[34] 지도자로써의 제라드 VS 램파드가 실제로 일어나게 되었다!

21-22 시즌, 에버튼이 잔류를 확정지은 시점에서 제라드 감독은 중하위권이던 아스톤 빌라를 현상유지(작년 11위 → 14위), 베니테즈 때문에 강등권까지 추락하게 생긴 에버튼을 맡은 램파드 감독은 하위권 팀들에게도 승점을 주며 여전히 강등 가능성이 제기되긴 했지만 결국은 잔류를 해내며 소방수 노릇을 제대로 했다. 감독 역량으로는 서로 비등비등한데, 램파드는 첼시, 맨유 등의 강팀은 잡고 하위권 팀에게 대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기 전술에 대한 고집을 버리고 승점벌이를 할 수 있는 전술로 바꾸고 나서야 승점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쌓을 수 있었으나 첼시 때처럼 수비 안정화를 가져오지 못한 점은 램파드의 숙제. 하지만 강등을 막아준 것만으로도 에버튼 팬들에게는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이다.

제라드의 경우 최종전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필리페 쿠티뉴의 대활약으로 전반까지는 0:2로 리드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체력이 떨어진 아스톤 빌라 수비진을 상대로 펩이 일카이 권도안을 투입하는 승부수가 제대로 맞아떨어지면서 3:2로 역전패를 당해 18/19 시즌의 램파드처럼 리버풀에게 우승을 안겨주지는 못하고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4.3.2. 2022-23 시즌

2022년 8월 13일 PL 2R 빌라 파크에서 아스톤 빌라 에버튼의 경기가 치러짐에 따라 지도자로서의 제라드 VS 램파드가 성사되었다. 경기 결과는 아스톤 빌라가 2:1로 승리하면서 두 사람 간의 첫 감독 맞대결은 제라드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러나 빌라는 이 경기 이후로 부진에 빠졌고 결국 풀럼과의 리그 12R 0:3 패배를 끝으로 16위를 기록한 상태에서 제라드가 먼저 경질되면서 위의 경기가 마지막 맞대결이 되었다. 빌라는 제라드의 경질 이후 취임한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22-23시즌 리그 7위까지 성적을 끌어올렸고, 23-24시즌에는 챔스권에 드는 순위경쟁을 펼침으로써 빌라의 전력으로 하위권을 맴돈 제라드의 역량에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램파드 역시 20R 웨스트햄전에서 0:2로 완패하면서 3승 6무 11패, 19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해 에버튼에서 경질됐고 이후 2023년 4월 6일 첼시가 포터 감독을 경질한 후 램파드를 임시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남은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램파드는 첼시에서도 11경기를 지휘하면서 1승 2무 8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고 올시즌 램파드가 지휘했던 두 팀이 모두 강등권 경쟁을 하는 등[35] 역대 최악의 감독에 버금가는 활약을 보였다. 사실상 EPL에서는 감독으로 재취업하기는 힘들어보인다.

결국 두 사람 모두 22-23시즌에 최악의 역량을 보였고, 제라드는 사우디 리그에서 2027년까지 계약이 됨으로써 당분간 두 감독의 대결을 유럽무대에서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5. 관련 문서


[1] 폴 스콜스와 제라드, 램파드의 비교는 스콜스 항목 참고 [2] 실제로 스콜스는 램제의 전성기 시절에도 맨유의 주전으로서 활약하긴 했지만, 스콜스는 제라드보다 6살이나 더 많은 한 세대 이전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선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현지에서도 스램제는 상당히 흔한 논쟁거리이다. [3] 각 선수의 우세를 주장하는 구체적인 논거는 수정전쟁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작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4] 물론 램파드가 뛰던 당시 첼시엔 존 테리라는 위대한 주장이 있었다. 만약 존 테리의 존재만 아니었다면, 램파드도 첼시에서 소속 팀 주장을 맡았을 것이다. [5] 최전성기 시절인 2009년쯤 까지는 보통 밀어주고 강슛을 날리는 세트피스를 시도해서 넣는 위주였다면, 2010~2011년쯤부터 직접 프리킥으로 꽤 많은 골을 터뜨렸다.(0607시즌부터 리버풀에서 마지막 시즌까지 리그에서 프리킥득점 7개) [6] 06/07시즌부터 집계된 EPL 프리킥 득점 7골로, 공동 3위 기록. 1위는 라르손(11골), 2위는 호날두(9골) [7] 중앙 미드필더인데도 크로스 능력이 매우 뛰어나 정교한 얼리크로스 어시스트가 많다. [8] 리버풀이 우승 직전까지 갔던 13-14 시즌엔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기도 했다. [9] 단 2010 월드컵 독일전에서 골 라인을 넘어간 슈팅이 골로 인정되지 않은 오심의 피해자였기에 감안의 여지는 있다. [10] 오웬과 뛸 당시 울리에 감독의 회상에 따르면 제라드와 오웬의 스피드 테스트 결과가 같은 날도 있을 정도로 빨랐다고 한다. [11] 당연한거지만 이 횡적인 패스는 당연히 전진 패스이다. [12] 프리미어리그 10시즌 연속 두자릿수 골 기록(역대 프리미어리그 1위) 등의 기록이 램파드의 꾸준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이다. [13] 06 월드컵 당시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카카, 아드리아누, 카푸, 카를로스 등 이름값만은 엄청났고, 또 최고의 선수들을 거느렸다는 찬사를 공공연히 듣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조차 인터뷰에서 잉글랜드의 미들진은 우리보다 낫다고 할 정도였다. [14] 다만 굳이 조합할 필요는 없었다.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페루초 발카레지 감독은 이탈리아의 최고 미드필더인 잔니 리베라 산드로 마촐라를 공존시키기 보다는 번갈아 출전시킴으로써{이를 릴레이 전법(staffetta)이라고 불렀다.} 공존 문제를 해결한 전례가 있다. [15] 2010년 월드컵때 득점을 한번 했지만 그유명한 독일과의 16강경기에서 오심으로 취소당했다. [16] 동시대 전성기에 접어들던 마이클 캐릭은 배리나 파커와 달리 전형적인 홀딩 미드필더라기보다는 레지스타에 가까웠다. 조합상으로 결국 제라드나 램파드 중 누군가가 캐릭의 수비 몫을 부담해야 하는데 이러면 둘의 공격력을 십분 뽑아먹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일부러 3미들을 짤 이유가 없었다. [17] 특히 이 중 배리와의 조합은 리버풀의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이 몹시 탐내서 배리를 리버풀로 데려오려 노골적으로 군침을 흘렸고, 배리는 사적으로도 제라드와 친했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배리의 리버풀행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비 알론소가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분노의 각성을 보여주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고, 그런 알론소가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한 뒤 배리가 엉뚱하게도 맨체스터 시티 FC로 도망가면서 리버풀의 암흑기가 시작되었고 제라드의 주름살이 늘어만 갔다. [18] 이러한 실험은 스티브 맥클라렌 감독이 의도적으로 데이비드 베컴을 배제하며 대표팀을 꾸려가던 시기에 써보던 방식이기도 했다. 허나 이 시절 잉글랜드의 스트라이커진에는 국대에서의 폼이 영 아니었던 웨인 루니 외에는 제대로 된 9번 빅맨이나 잽싸게 라인을 뚫어줄 포처가 없었다. 한물 간 에밀 헤스키가 서른이 넘어서 다시 대표팀에 불려오고 빅클럽의 외국인 스트라이커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던 칼튼 콜 같은 선수가 고작. 만약 해리 케인이나 제이미 바디 정도의 선수만이라도 전방에서 버텨줬다면 충분히 승부를 해볼 수 있었을 것이나 이 시절 바디는 아마추어 리그에서 밥벌이를 걱정하던 시절이었고 해리 케인은 중학생이었으니 결국 뒤늦게 그 오른발을 믿으며 베컴을 다시 모셔왔음에도 잉글랜드는 유로 2008 예선 탈락이라는 쓴잔을 들이킨다. [19] 2014-15 시즌 도중에 올라온 것으로, 당시 램파드의 소속팀은 맨체스터 시티 FC였다. [20] 두 선수 모두 기적 같은 우승이다. 램파드의 경우 조별 리그 통과부터 위험했고 16강, 4강, 결승 모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우승. 자세한 건 첼시 FC/2011-12 시즌 참고. 제라드 역시 조별리그 탈락의 위기에서 올림피아코스전 극적인 중거리골로 진출하였으며, 심지어 결승전이 바로 그 유명한 이스탄불의 기적. [21] 리버풀의 2000-01 우승 당시엔 UEFA컵이었고, 2009년 7월부터 UEFA컵에서 유로파 리그로 바뀌었다. [22] 램파드도 2차례 기회가 있었으나 두 번 다 준우승. 11/12 시즌 챔스, 12/13 시즌 유로파 우승으로 온 두 번 다 AT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에게 지고 말았다. [23] 1982년부터 리그컵은 후원사의 명칭에 따라 대회명도 바뀌어 왔다. # [24] 기자단, 감독들이 뽑은 베스트 XI에서는 두 명 다 제외 [25] 게리 리네커, 앨런 시어러, 이안 라이트, 대니 머피가 선정 [26] 발롱도르 시상을 대체해 2020년 현재 진행 중 [27] 수비형 미드필더 후보 20인 중 하나로 선정, 최종 득표율은 20인 중 7위 [28] 유럽 스포츠 미디어(European Sports Media). 메이저 스포츠 언론 10곳에서 매달 월간 베스트 11을 투표로 뽑는다. 월마다 뽑기 때문에 팀 성적의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어느정도 객관적인 실력 평가가 가능한 게 특징. # [29] 재정 문제로 인해 한때 4부리그까지 강등되었다. [30] 오히려 솔샤르는 지금까지의 행보로는 제라드나 램파드와 비교하기 힘들정도로 성공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소방수로 부임했던 시즌에 대어 파리 생제르망을 잡은것과 더불어 2020-21시즌에는 퍼거슨 은퇴이후 처음으로 리그 1위를 달성하는 등 중소리그에서 감독을 하는 제라드나 수천억을 쓰고도 중위권에 있는 램파드와는 비교하기 미안할만큼 성과가 확실하다. 하지만 21-22시즌 들어서는 장점이 죄다 사라지고 단점만 남으면서 솔샤르에 대한 평가도 추락했으며 결국 2021년 11월 21일에 경질되었다. [31] 스콜스는 지도자로서의 커리어는 완전히 말아먹었기에 스콜스가 낄 일은 없을 듯하다. [32] UEFA 유럽 리그 랭킹으로만 따져봐도 PL은 유럽 전체 1위, 스코틀랜드 리드는 유럽 전체 8위이다. [33] 13/14 시즌과 완전 반대의 상황으로, 그때는 첼시가 스티븐 제라드 실수 리버풀의 우승을 저지하고 맨시티를 우승시켜 줬지만, 이번의 경우 프랭크 램파드가 이끄는 첼시가 맨시티의 우승 가능성을 소멸시키고 리버풀의 우승을 도왔다. [34] 에버튼과 아스톤 빌라는 램파드가 감독으로써 부임하기 전인 2021-22시즌 1월 22일에 경기를 치렀다. [35] 특히 70년 넘게 1부 리그에 머물렀던 에버튼은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따내면서 잔류를 확정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