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저스 FC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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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 정보 | <colbgcolor=#0c2577> 구단 | <colbgcolor=#fff,#191919><colcolor=#000,#fff> 레인저스 FC| 레인저스 WFC| 레인저스 FC 아카데미 | |
선수단 | 스쿼드| 스쿼드(간략)| 임대 명단 | |||
역사 | 역사 | 역사| 기록| 유니폼| 역대 엠블럼| 역대 크레스트 | ||
최근 시즌 | 2020-21| 2021-22| 2022-23| 2023-24| 2024-25 | |||
관련 인물 | 창립자| 유명 선수| 역대 최고의 팀| 명예의 전당| 역대 감독| 올해의 선수| 역대 최다 출장자| 역대 최다 득점자 | |||
관련 상식 | 더비 매치 | 올드 펌 | ||
구단 시설 | 경기장 |
플레셔스 호1873~1875 번뱅크 파크1875~1876 키닝 파크1876~1887 아이브록스 파크1887~1899 아이브록스 스타디움18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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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장 | 레인저스 트레이닝 센터 | |||
기타 | 연고지 | 글래스고 | ||
스폰서 | 32Red메인 스폰서 | 캐스토어킷 스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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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틱 FC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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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8749> 정보 | <colbgcolor=#fff> 구단 |
셀틱 FC |
셀틱 FC 위민 셀틱 FC 아카데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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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 | 스쿼드 | 스쿼드(간략) | 임대 명단 | |||
스태프 | 보드진 · 코칭 스태프 | |||
역사 | 정보 | 역사 | 기록 | 전적 | 유니폼 | 역대 유니폼 엠블럼 | ||
최근 시즌 | 1966-67, 2014-15, 2015-16, 2016-17, 2017-18, 2018-19, 2019-20, 2020-21, 2021-22, 2022-23, 2023-24, 2024-25 | |||
관련 인물 | 역대 최고의 팀 | Hall of Fame | 역대 감독 | 올해의 선수 | 역대 최다 출장자 | 역대 최다 득점자 | |||
관련 상식 | 더비 매치 | 올드 펌 | ||
구단 시설 | 경기장 |
오리지날 셀틱 파크1888~1892 셀틱 파크1892~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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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장 | 레녹스타운 트레이닝 센터 | |||
이 외 | 연고지 | 글래스고 | ||
스폰서 | dafabet메인 스폰서 | 아디다스킷 스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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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스 FC Rangers F.C. |
셀틱 FC Celtic F.C. |
올드 펌 (Old Firm) |
종합전적 (2024년 9월 1일 기준) |
||
레인저스 FC Rangers F.C. |
무승부 |
셀틱 FC Celtic F.C. |
169 | 103 | 170 |
최근 5경기 전적 | |||
일시 | 장소 | 결과 | 대회 |
2023년 12월 30일 | 셀틱 파크 | 셀틱 2 - 1 레인저스 |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
2024년 4월 7일 | 아이브록스 파크 | 레인저스 3 - 3 셀틱 |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
2024년 5월 11일 | 셀틱 파크 | 셀틱 2 - 1 레인저스 |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
2024년 5월 25일 | 햄던 파크 | 셀틱 1 - 0 레인저스 | 스코티시컵 |
2024년 9월 1일 | 셀틱 파크 | 셀틱 3 - 0 레인저스 |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
기록 | ||
최다 출전 | 최다 득점 | 최다 점수차 승리 |
알렉 스미스 (87경기) |
앨리 맥코이스트 (27골) |
6점차 셀틱 7 : 1 레인저스 |
1. 개요
영국 스코틀랜드에 위치한 글래스고를 연고로 하는 두 명문 프로 축구단인 레인저스 FC와 셀틱 FC와의 경기를 일컫는 말이다.
"올드 펌"이란 용어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두 가지 가설이 있는데, 하나는 1900년대 초반 해설자들이 "이 두 팀은 마치 굳건하고 오래된 친구 같다 (like two old, firm friends)"라고 표현한 것으로 인해 생겼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1903-04 시즌 스코티시 컵 결승전을 앞두고 잡지에 실린 풍자만화에서 이 둘의 만남을 상호 상업적 이익을 강조한 "Patronise The Old Firm: Rangers, Celtic Ltd"라고 적힌 샌드위치 보드를 든 두 노인으로 묘사했는데, 이것이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이 둘은 1890년에 창설된 스코티시 풋볼 리그의 창설 멤버이기도 하다.
프리미어 리그에 밀려 중위권 수준으로 전락한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주목받는 거의 유일한 흥행 카드라 볼 수 있고,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에서 이 둘과 나머지 구단의 수준 차는 압도적이다. 2002-03 시즌에 두 팀이 승점 97점을 기록하였을 때[1] 3위를 차지한 하츠의 승점은 겨우 63점이였다. 2008-09 시즌에는 레인저스가 승점 86점으로 우승을 했고 셀틱이 82점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는데, 3위를 차지한 하츠의 승점은 겨우 59점이었다. 게다가 두 구단의 홈구장은 각각 5만 명을 훌쩍 넘기는 대구장인 데 반해 다른 팀들은 겨우 1~2만 명 안팎을 넘나들 뿐이다.
우승 횟수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나는데, 레인저스가 55회 우승하고 셀틱이 54회 우승을 한 반면에 이 두 팀을 제외한 다른 팀들의 우승한 횟수를 전부 합쳐도 고작 19회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압도적인 차이 때문에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은 올드 펌을 제외하면 볼 게 없는 그저 그런 리그로 취급받아 평가가 박하다.
굉장히 치열한 라이벌이지만 두 팀의 유니폼 메인 스폰서는 오랜 기간 동안 동일했었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동일한 스폰서를 쓰다가 1987년부터 레인저스가 '매키언 라거(McEwan's Lager)'라고 하는 맥주 브랜드와 스폰서 계약을 맺으면서 서로 다른 스폰서로부터 후원을 받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상대 스폰서 제품에 대해 불매 운동을 전개해 영업에 차질이 생기자 다시 스폰서를 통일했다. 2011-12 시즌까지 두 구단의 메인 스폰서는 테넌트(Tennent's)라는 맥주 브랜드였고, 그 이전엔 영국의 위성/케이블/인터넷업체 NTL[2][3], 맥주 브랜드 칼링(Carling)[4]이었다. 그러나 레인저스가 강등 당한 이후부터는 서로 다른 기업과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1980년대에 알렉스 퍼거슨이 이끌었던 애버딘과 짐 매클린이 이끌었던 던디 유나이티드가 리그와 유럽대항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올드 펌'과 대비되는 명칭인 '뉴 펌'이라는 명칭이 붙으며 리그가 달아오르던 시절이 있었는데, 두 팀 모두 감독이 떠나자 다시 이전의 양강체제 리그로 돌아갔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축구 팬 중엔 '퍼거슨이 조금 더 오래 있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2. 역대 전적
대회 | 경기 | 승리 | 무승부 | |
레인저스 | 셀틱 | |||
스코티시 리그 | 336 | 127 | 118 | 91 |
스코티시컵 | 55 | 18 | 27 | 10 |
스코티시 리그컵 | 51 | 24 | 25 | 2 |
합계 | 442 | 169 | 170 | 103 |
3. 기록
3.1. 최다 점수 차 승리
순위 | 결과 | 날짜 | 대회 |
1 | 셀틱 7:1 레인저스 | 1957년 10월 19일 | 리그 컵 |
2 | 레인저스 5:0 셀틱 | 1893년 9월 2일 | 리그 |
3 | 레인저스 5:0 셀틱 | 1894년 1월 1일 | 리그 |
4 | 셀틱 5:0 레인저스 | 1925년 3월 21일 | 스코티시 컵 |
5 | 셀틱 5:0 레인저스 | 2018년 4월 29일 | 리그 |
6 | 셀틱 0:4 레인저스 | 1898년 9월 24일 | 리그 |
7 | 셀틱 6:2 레인저스 | 1895년 12월 14일 | 리그 |
8 | 셀틱 0:4 레인저스 | 1898년 9월 24일 | 리그 |
9 | 레인저스 0:4 셀틱 | 1898년 12월 14일 | 리그 |
10 | 셀틱 4:0 레인저스 | 1900년 3월 10일 | 스코티시 컵 |
3.2. 출장 순위
순위 | 국적 | 이름 | 클럽 | 출장수 |
1 | 알렉 스미스 | 레인저스 | 87 | |
2 | 존 그레이그 | 레인저스 | 74 | |
3 | 폴 맥스테이 | 셀틱 | 70 | |
4 | 빌리 맥닐 | 셀틱 | 65 | |
더기 그레이 | 레인저스 | 65 | ||
6 | 샌디 자르딘 | 레인저스 | 64 | |
7 | 로이 에이킨 | 셀틱 | 62 | |
8 | 패키 보너 | 셀틱 | 60 | |
존 맥퍼슨 | 레인저스 | 60 | ||
10 | 대니 맥그레인 | 셀틱 | 58 |
3.3. 득점 순위
순위 | 국적 | 이름 | 클럽 | 골 | 경기 수 | 경기당 득점 |
1 | 앨리 맥코이스트 | 레인저스 | 27 | 55 | 0.49 | |
2 | 로버트 해밀턴 | 레인저스 | 24 | 46 | 0.52 | |
3 | 지미 맥그로리 | 셀틱 | 22 | 35 | 0.63 | |
4 | 샌디 맥마혼 | 셀틱 | 22 | 43 | 0.51 | |
5 | 지미 퀸 | 셀틱 | 18 | 37 | 0.49 | |
6 | 존 맥퍼슨 | 레인저스 | 17 | 60 | 0.29 | |
7 | 알렉스 벤터스 | 레인저스 | 16 | 26 | 0.61 | |
8 | 지미 던컨슨 | 레인저스 | 16 | 30 | 0.53 | |
9 | 헨리크 라르손 | 셀틱 | 15 | 30 | 0.50 | |
10 | 바비 레녹스 | 셀틱 | 15 | 51 | 0.29 |
3.4. 감독 승률
최소 10경기 이상 올드 펌을 경험한 감독에 한정.순위 | 국적 | 이름 | 클럽 | 경기 수 | 승리 수 | 승률 |
1 | 브렌던 로저스 | 셀틱 | 19 | 15 | 78.9% | |
2 | 스티븐 제라드 | 레인저스 | 13 | 8 | 62% | |
3 | 마틴 오닐 | 셀틱 | 27 | 16 | 59% | |
4 | 빌 스트루스 | 레인저스 | 116 | 66 | 57% | |
5 | 엔지 포스테코글루 | 셀틱 | 11 | 6 | 55% | |
6 | 그레이엄 수네스 | 레인저스 | 27 | 14 | 52% | |
7 | 조크 스타인 | 셀틱 | 58 | 29 | 50% | |
8 | 월터 스미스 | 레인저스 | 56 | 28 | 50% | |
9 | 스콧 사이먼 | 레인저스 | 61 | 29 | 48% | |
10 | 빌리 맥닐 | 셀틱 | 46 | 22 | 48% |
4. 역사
두 팀의 라이벌 의식은 셀틱이 창단되었던 18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셀틱은 월프리드 수사가 내세운 '축구를 통한 사회 봉사'라는 가치 아래 창단되었다. 월프리드 수사가 셀틱을 창단한 결정적인 이유는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글래스고로 대거 이주한 아일랜드 이주민들을 구제하려는 것이었기에 당연히 셀틱의 서포터들은 아일랜드 이주민들로 채워졌다.
셀틱을 응원하는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가톨릭 교도(구교도)였기 때문에, 반가톨릭 정서가 강하고 잉글랜드에 더 강한 동질 의식을 느끼던 영국충성파 스코틀랜드인들은 결국 셀틱이 창단되기 전에 이미 글래스고에 있었던 지역 라이벌 레인저스를 응원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같은 켈트인인 아일랜드는 멸시•천대하면서 영국 왕실에는 충성을 다하는 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세계 각국의 식민지에서 수탈한 자원과 이윤을 나눠 먹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두 구단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갈수록 많은 이주민들이 유입됨에 따라 출신 지역 차이로 인한 반목은 차츰 옅어지고, 둘의 라이벌 관계는 종교전쟁의 색깔을 강하게 띄게 되었다. 셀틱은 단 한 번도 개신교 신자의 입단을 막은 적이 없었지만, 개신교 신자가 아닌 선수는 레인저스에 입단할 수 없던 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알렉스 퍼거슨이 1963-64 시즌에 레인저스로 영입되었을 때, 아내가 가톨릭 교도라는 것 때문에 경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상당한 심적 타격을 받았다고 훗날 자서전에서 술회한 바 있다. 레인저스와 계약할 때 구단 관계자가 퍼거슨보고 아내가 혹시 가톨릭이지 않냐고 직접 물어봤다고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X까라고 했어야 했는데 당시 퍼거슨은 레인저스의 팬이었고 그곳에서 뛰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치적 배경과 연계된 종교 문제가 개입된 만큼 서로에 대한 증오심과 팬들의 광기는 극에 달했으며, 심지어 자신들의 클럽이라도 종교적 정체성에 반하는 무브를 보인다면 가차없이 공격했다. 대표적으로 셀틱에서 FC 낭트를 거쳐 레인저스로 이적한 '모 존스턴'을 예로 들 수 있다. 존스턴은 셀틱 팬들을 엿 먹이고 레인저스로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영받기는커녕 종교 때문에 오히려 미움을 샀다. 레인저스 서포터들은 영입을 결사반대하는 것은 물론 종교적 정체성이 무너졌다고 간주, 클럽에 절망하여 폭력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존스턴이 올드 펌에서 인저리 타임에 결승골을 넣는 활약을 보이자 이후 레인저스 팬들은 그를 응원했었다.
이러한 광기는 올드 펌 더비에서 폭력성으로 변질하여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낳았고, 축구 팬들이 올드 펌 더비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축구 경기 중 하나로 인식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올드 펌 더비의 폭력성을 말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영상. 1분 40초쯤 당시 레인저스 감독이었던 딕 아드보카트의 모습이 보인다.
이 경기는 굉장히 유명하면서도 스코틀랜드 축구계 자체적으로 반성의 계기를 마련한 의의가 있는 경기이다. 당시 상황은 1998-99 시즌 레인저스가 1위, 셀틱이 2위로 둘이서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었고, 33라운드 셀틱 홈에서의 올드 펌 더비가 예정된 가운데 레인저스가 이 경기에서 승리할 경우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이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상대의 홈에서 우승 컵을 들어올리는 일은 양 팀 역사를 통틀어 한 번도 없는 일이었으므로 셀틱은 절대 패배해선 안 되는 상황이었고, 경기 전부터 경기에 대한 관심과 셀틱 측의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결과는 레인저스가 3-0의 완벽한 스코어로 셀틱 파크에서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는 셀틱에겐 사상 최악의, 레인저스에겐 사상 최고의 순간이었다. 비슷한 사례로 2008년에 FC 바르셀로나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입장할 때 우승 축하 박수를 쳐준 뒤 1-4로 대패한 사건이 있다.
문제는 경기 내용이었는데, 전반 초반 레인저스의 닐 맥칸의 선제골이 터지면서 셀틱 진영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하였다. 이후 석연찮은 판정이 몇 차례 이어지다 셀틱의 스테판 마헤가 지나친 항의로 퇴장을 당하자 셀틱 팬들이 난동을 부리며 심판을 저격하였다. 당시 셀틱 관중 중에선 주취자가 한둘이 아니어서 주심에게 린치를 가하기 위해 경기장에 난입한 관중이 확인된 수만 4명이었고, 결국 주심이 날아온 동전에 머리를 맞아 경기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또 테라스석에서 관중이 추락하여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셀틱 선수들은 광기로 가득찬 경기장 분위기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고, 결국 퇴장만 총 3명을 당하고 자멸했다. 레인저스의 3번째 득점 후 셀틱 선수들의 산산조각난 멘탈이 선명하게 보인다. 또한 또다른 유혈 사태를 우려한 주심이 세리머니를 하는 닐 맥칸을 보고 관중석에 접근하지 말라고 잡아끄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경기 후에는 주심의 집 창문으로 벽돌이 날아오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또한 당시 셀틱의 CEO가 "주심이 (당시 레인저스 선수였던)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의 엉덩이를 치며 친근하게 대하는 걸 봤고 동시에 주심의 머리로 동전이 날아왔다. 관중들이 난동을 부린 건 편파적인 주심의 행동을 목격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며, 이를 증명하겠다고 행동심리학자까지 고용해 주심의 손짓 분석을 의뢰하는 추태를 보였다. 또 협회에 해당 주심을 해고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청난 비난을 받고 "주심의 커리어를 망칠 생각은 아니었다. 심리학자를 고용한 것은 그가 더 좋은 심판이 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라고 해명해야 했다. 참고로 해당 주심은 이 모든 일을 겪고도 다시 올드 펌 심판을 맡고 싶다고 인터뷰한바 있다. 팬에게나 선수에게나 라이벌에게 져선 안 된다는 정신적 압박이 얼마나 극심한지 여러모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경기 후 재발을 막기 위해 관중들의 경기 전 음주가 줄게끔 올드 펌 경기 시간을 낮으로 설정하고, 올드 펌으로 리그 우승이 가려질 확률이 낮게끔 리그 일정을 계획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대부분의 악명 높은 더비들이 그렇듯이 이젠 예전에 비하면 많이 얌전해진 상태다.
2016년 4월 17일 한국 시간 오후 8시에 스코티시 컵 4강전에서 두 팀이 맞붙게 되었다. 전후반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연장까지 가며 2-2를 만들었다. 결국 페널티킥 승부까지 가는 혈투 끝에 레인저스가 승리하면서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그러나 셀틱까지 잡아놓은 레인저스는 결승전에서 스코티시 챔피언십(2부 리그) 출신인 하이버니언 FC에게 2-3으로 패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거기다가 레인저스 FC가 2015-16 시즌 스코티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으로 복귀하면서 2016-17 시즌부터 다시 올드 펌이 열리게 되었다.
2016-17 시즌 첫 올드 펌 경기이자 브렌던 로저스 감독의 첫 올드 펌 경기에서는 4년 동안 하부 리그에 있었던 레인저스가 수준 차이를 보이며 1-5로 완패했다. 2차전 리그 경기에서도 2-1로 셀틱이 이겼고 리그 컵 4강전은 셀틱이 1-0, FA컵 4강전은 2-0으로 셀틱이 이기면서 레인저스가 연패를 했다. 그나마 3차전 리그 경기는 1-1로 비겼고 2017년 4월 29일에 가지는 리그 4차전만 남았는데 이 경기도 셀틱이 5-1로 뭉개버렸다. 셀틱은 34승 4무 무패로 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챔피언스 리그 3차 예선 진출권을 따냈고 레인저스는 19승 10무 9패로 3위를 기록하며 유로파 리그 3차 예선 진출권을 따냈다. 이 시즌은 레인저스는 전 경기에서 올드 펌 더비를 모조리 패한 시즌이었다.
2017-18 시즌 리그 1차전인 2017년 9월 23일 경기는 레인저스가 또 홈에서 셀틱에게 0-2로 패했다. 2017-18 시즌에도 셀틱이 4승 1무로 압도했고 레인저스는 1부 리그 복귀 후 올드 펌 더비 전패를 기록했다.
2018-19 시즌에는 9월 2일 리그 4라운드 맞대결에서는 셀틱이 1-0으로 승리했지만 12월 29일 리그 21라운드 맞대결에서 드디어 레인저스가 1-0으로 승리하면서 1부 리그 복귀 후 올드 펌 더비 첫 승을 기록했다.
셀틱의 황금기의 한장을 그린 브랜든 로저스가 레스터 시티 FC로 떠나고 레인저스 감독으로 스티븐 제라드가 오면서 점차 우위가 바뀌고 있는데 2020-21시즌에는 32라운드 기준 28승 4무로 리그 무패를 기록하며 조기 우승을 확정지은 사이 셀틱은 닐 레논 감독을 해임했다. 거기다 3월 21일 열리는 시즌 세번째 올드 펌 더비 경기에서 셀틱이 가드 오브 아너를 해줘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셀틱은 레인저스에게 가드 오브 아너를 해주기를 거부했다. 스티븐 제라드와 그 팀도 몇 년전에 셀틱의 리그 우승을 위한 가드 오브 아너를 거부했다. #
2021-22 시즌, 2021년 8월 29일에 시즌 첫 올드 펌이 열렸다.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레인저스가 셀틱을 1:0으로 꺾었다. 그리고 2022년 2월 3일, 셀틱 파크에서 열린 두번째 올드 펌에서는 하타테 레오의 엄청난 활약으로 셀틱이 3:0 대승을 거둔다. 4월 3일,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즌 세번째 올드 펌에서도 셀틱이 2:1로 승리를 가져오며 리그 우승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4월 18일, 햄던 파크에서 열린 스코티시컵 준결승에서 양 팀이 맞붙었고 연장까지 가는 혈투 끝에 레인저스가 2:1로 승리를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다. 이 시즌 마지막 올드 펌이자 리그 우승 결정전이라고 볼 수 있었던 올드 펌이 5월 1일에 열렸다. 양 팀은 이 경기에서 각각 한 골씩 넣으며 1:1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2022-23 시즌의 첫 올드 펌은 2022년 9월 3일에 열렸다. 셀틱 파크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셀틱이 4:0으로 대승을 거두며 시즌 초반의 기세를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3년 1월 2일에 열렸던 두번째 올드 펌에서는 2:2 무승부를 거두었고, 레인저스는 셀틱과의 승점차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 2월 27일에 열린 스코티시 리그컵 결승에서 두 팀이 맞붙었고, 셀틱이 2:1로 승리하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4월 8일에 열린 정규리그 마지막 올드 펌에서는 후루하시 쿄고의 멀티골에 힘입어 3:2로 셀틱이 승리를 거두었다. 4월 30일에 스코티시컵 준결승에서 맞붙은 두 팀은 조타의 결승골로 셀틱이 승리를 거두었다. 5월 13일에 열렸던 시즌 마지막 올드 펌에서는 레인저스가 3:0으로 완승을 거두며 시즌 첫 올드펌 더비 승리를 가져갔다.
2023-24 시즌 첫 올드 펌은 직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9월 3일에 아이브록스에서 열렸다. 레인저스는 시종일관 셀틱의 골문을 위협했지만 전반 종료 직전에 나온 후루하시 쿄고의 결승골을 지켜내며 셀틱이 1:0 승리를 거뒀다. 12월 30일, 셀틱 파크에서 열린 올드 펌에서는 후루하시 쿄고의 결승골로 2:1로 승리를 거두었고, 이 승리로 승점차를 8점차로 벌렸다. 2024년 4월 7일, 아이브록스에서 열린 시즌 세 번째 올드 펌에서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5월 11일, 셀틱 파크에서 열린 이 시즌 리그에서의 마지막 올드펌에서 셀틱이 2:1로 승리를 거두며 우승 레이스에 매우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5월 25일, 햄던 파크에서 열린 스코티시컵 결승에서 셀틱이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역대 전적에서 동률을 이루어냈다.
2024년 9월 1일, 셀틱 파크에서 펼쳐진 2024-25 시즌 첫 올드 펌에서 셀틱이 3:0으로 완승을 거두며 근래 올드 펌에서의 우세를 이어갔다.
5. 여자 축구
레인저스 WFC와 셀틱 FC 위민이 각각 2007년·2008년 창단하며 여자 축구계에도 올드 펌이 형성되었다. 다만 여기서는 글래스고 시티 FC가 오래 전부터 절대 1강으로 군림하고 있기에, 두 팀은 글래스고 시티에 도전하는 신흥 강호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6. 기타
6.1. 양 구단에서 모두 뛴 선수
- 1군 기준으로 양 구단에서 뛴 이력이 있는 선수만 기재
- 1차 세계대전 이전
- 톰 던바: 셀틱 (1888~1889, 1892~1898) - 레인저스 (1891~1892)
- 존 커닝햄: 셀틱 (1889~1892) - 레인저스 (?~?)
- 앨런 마틴: 레인저스 (1891~1892) - 셀틱 (1895~1896)
- 알렉스 킹: 레인저스 (1895) - 셀틱 (1896~1900)
- 조지 리빙스톤: 셀틱 (1901~1902) - 레인저스 (1906~1909)
- 알렉 베넷: 셀틱 (1903~1908) - 레인저스 (1908~1918)
- 톰 싱클레어: 레인저스 (1904~1906) - 셀틱 (1906~1907)
- 로버트 캠벨: 레인저스 (1904~1906) - 셀틱 (1906~1914)
- 휴 쇼: 레인저스 (1905~1906) - 셀틱 (1906~1907)
- 윌리 키블리찬: 레인저스 (1905~1911) - 셀틱 (1907~1911)
- 데이비드 테일러: 레인저스 (1906~1911) - 레인저스 (1918~1919)[5]
- 데이비 맥린: 셀틱 (1907~1909) - 레인저스 (1918~1919)
- 스콧 던컨: 레인저스 (1913~1918) - 셀틱 (1918~1919)[6]
- 제임스 영: 셀틱 (1917~1918) - 레인저스 (1917~1918)
- 1차 세계대전 이후
6.2. 이야깃거리
- 유럽 내에서 과격하기로 유명한 더비고 역시 서포터 간 폭력 사태가 줄곧 일어나지만, 두 팀 팬들이 싸우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스코틀랜드 클럽이 PL팀과 대결할 때나 아이브록스 참사 등의 인명 관련 비극이 직면할 때다. 2016년 레인저스 버스 전복 사고가 일어났을 때 셀틱은 구단 성명을 통해 레인저스 팬의 사망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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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셀틱 현지 팬들은 레인저스가 파산 후 재창단한 2012년 이후로 이 더비를 올드 펌이 아닌 그냥 글래스고 더비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파산 이전의 레인저스와 파산 이후의 레인저스는 아예 다른 팀이라는 뜻으로 불리는 명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