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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07:37:32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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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 경위3. 발단4. 전개5. 발견과 이후6. 기타7. 유사 사건8. 관련 문서

1. 개요

巣鴨子供置き去り事件

1988년 도쿄도 도시마구(豊島区)의 모 아파트에서 어린이 4명만 두고 어머니가 집을 나갔던 사건. 일본 영화 < 아무도 모른다>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기도 하다. 기사

2. 사건 경위

3. 발단

사건이 발각된 당시 어머니의 나이는 40세였다.[8]

어머니는 가나가와현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의류학과로 진학했지만 가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실제 음반도 낸 적이 있었으나 팔리지는 않았다.

그 후 영화에도 잠깐 나왔던 것처럼 백화점의 판매원으로 일하다가 그 때 만난 남성과 동거를 시작하면서 4명의 아이들이 방치되기 시작한다. 결국 이 남성과의 결혼도 부모의 반대로 실패하고, 사건이 발각된 후 둘 사이에 생긴 아이는 양자로 보내졌다.

이 사건의 발단은 첫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살 때부터 일어났다. 사실 아이들의 어머니는 당시 아버지와 결혼상태인 줄 알고 있었으며 당연히 혼인신고도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혼인신고는 되어 있지 않았다.

첫째가 태어난 후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출생신고를 부탁했으나, 아버지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이것이 이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

4. 전개

아버지는 다른 여성을 만나면서 커다란 액수의 대출을 받고 사라진다. 이 때가 딱 첫째가 초등학교에 취학할 나이였으나 어떤 통지서도 날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구청에 문의 후 자신의 혼인신고와 아이들의 출생신고가 안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때 어떤 조치를 취했다면 이 사단이 나지 않았겠으나 결국은 이 사실을 끝까지 숨기는 결정을 하고 만다.

그 후 다른 남자들을 만나며 임신하면 집에서 출산했다. 그렇게 4명의 아이들을 낳았는데 병으로 사망한 셋째는 집에 은폐했다.

5. 발견과 이후

어머니는 5명의 아이를 낳았는데 대부분 집에서 출산했고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았다.[9]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취학 통지는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행정기관이나 관계기관에 어떠한 문의나 상담을 하지 않았다. 교재를 사주고 공부를 시키는 등의 교육을 하긴 하였지만 그 수준은 매우 낮아 장남은 당시 14세였는데도 자신의 성만 한자로 쓸 수 있었고 이름은 히라가나로만 쓸 수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차남이 사망한 이후의 행적이 밝혀졌다. 사건 발생 2년 전인 1985년 2월, 차남이 우유병을 입에 문 채 죽어 있었다. 어머니는 처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신고하지 않고 그대로 비닐 봉투에 숨겨 두었으며 스가모로 이사할 때도 가방에 넣어 이동했다. 그나마 벽장을 불단으로 꾸며 비교적 깨끗하게 관리하였고 제물(祭物)도 올렸다고 한다. 경찰이 발견한 백골 시신은 그 때 사망한 차남이었다.

사건 이후 이들 중 딸 자매는 어머니가 다시 데려갔고 이름을 바꾸고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첫째는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다.[10]

6. 기타

JTBC에서 방송 중인 세계 다크투어에서 이 사건을 다뤘는데 이 문서에 서술된 정보와는 내용이 약간 다르거나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이 있다. # #

7. 유사 사건

8. 관련 문서



[1] 1973년 10월생이며 현재 나이는 [age(1973-10-01)]세이다. [2] 1982년 11월생이며 현재 나이는 [age(1982-11-01)]세이다. [3] 1983년 11월생. [4] 1984년 9월생이며 현재 나이는 [age(1984-09-01)]세이다. [5] 1985년 9월생. [6] 당시 생일이 지나지 않았다. [7] 당시 첫째가 친구들과 함께 폭행에 가담했다는 혐의가 있었으나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으며 고아원 송치가 결정되었다. [8] 1948년생으로 추정 [9] 2남 3녀 모두가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둘째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사망했음에도 출생신고와 사망신고를 하지 않았다. [10] 그도 그럴 것이 여동생을 친구들과 함께 죽이고 유기한 과거가 있는 이상 입양은 당연히 무리이며 범죄 기록은 당시에는 말소됐겠지만 알려지면 살아가는 게 힘들어지니 사실상 과거를 숨기며 혼자서 살 수밖에 없다. [11] 한국에서는 법률상 혼외로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는 어머니가 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일본과는 달리 남편이 없어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미혼부의 출생신고에 문제가 많았다. 가족관계등록비송 문서 참고. [12]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마이니치 신문에서 보호 중인 동생들이 오빠를 변호한다는 작은 기사를 보게 됐는데 오빠가 친절했다는 관점으로 기사가 난 것을 보고 이를 토대로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