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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20:57:27

쑨지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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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GADㅇㅇRXM.jpg
<colbgcolor=#eee> 이름 쑨지하이
孙继海(孫繼海) / Sūn Jìhǎi
출생 1977년 9월 30일 ([age(1977-09-30)]세)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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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83cm
직업 축구 선수 ( 풀백 / 은퇴)
축구 코치
소속 <colbgcolor=#eee> 선수 다롄 완다/다롄 스더 (1995~2002)
크리스탈 팰리스 FC (1998~1999 / 임대)
맨체스터 시티 FC (2002~2008)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2008~2010)
→ 청두 톈청 (2009 / 임대)
구이저우 런허 (2010~2014)
충칭 리판 (2014~2015)
베이징 런허 (2016)
코치 중국 U-21 대표팀 (2018~2019 / 코치)
국가대표 80경기 1골 ( 중국 / 1996~2008)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평가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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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前 축구 선수. 주 포지션은 수비수였다.

역대 중국 선수 중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오래 활약한 선수다.[1]

2. 클럽 경력

2.1. 커리어 초기

쑨지하이는 1995년 18살의 나이에 중국 슈퍼리그의 명문 구단인 다롄 완다에 입단했다.[2] 1995년 5월 28일에 데뷔전을 치렀다. 다른 뛰어난 중국 선수들이 그랬듯 이 그도 브라질의 중국 유스 트레이닝 캠프에 들어가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했다. 그러나 잠재 기량이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고 캠프에 입소하지 못했다.

이에 쑨지하이는 크게 실망했지만 곧 보란듯이 성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연습했다. 이러한 노력은 빛을 발휘했고 얼마 안가 리그 최고의 탑풀백으로 거듭났다. 그는 좌우측 풀백을 모두 소화하며 4년간 71경기를 소화하고 1골을 기록했으며 매 시즌 10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다롄 스더는 쑨지하이의 활약을 앞세워 리그에서 2번 연속 우승했고(1996년, 1997년) 중국 슈퍼컵도 1997년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렇듯 엄청난 활약을 선보인 쑨지하이를 맨처음 주목한 팀은 크리스탈 팰리스 FC였다. 1998년 8월, 쑨지하이는 크리스탈 팰리스와 1년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크리스탈 팰리스는 한 시즌만에 2부 리그로 강등당한 상태였다. 1998-99 시즌 리그컵 대회에서의 데뷔전을 시작으로, 크리스탈 펠리스에서 전반기 23경기를 모두 선발 출전하여 좋은 활약을 해줬다.

그러던 중 다롄이 리그에서 꼴지로 추락하자, 쑨지하이는 1999년 1월에 임대 복귀하여 팀을 꼴지에서 구원했고 이후 2000년에 24경기 2골, 2001년에 28경기 3골을 기록하며 팀의 2연패에 절대적으로 공헌했으며 중국 FA컵에서도 2001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2.2. 맨체스터 시티 FC

파일:sun-jihai-vid-holding.ashx.jpg

2002년 2월, 2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하였다.

코번트리 시티 FC를 상대로 4:2로 승리한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탁월한 수비력과 공격적인 태클을 선보이며 팬들을 만족시켰다. 이후 그는 로테이션급 선수로서 간헐적으로 출전하였고 그때마다 좋은 경기력을 선보여 팬들로부터 2002년 9월 맨시티 이달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이로서 그는 프리미어 리그 역사상 최초로 골을 기록한 중국 선수로 기록되었다.

쑨지하이는 2002-03 시즌에 리그 28경기, FA컵 1경기, 리그 컵 2경기를 포함하여 총 31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하며 훌륭한 활약을 선보였다. 또한 2003-04 시즌에, 그는 이전 시즌보다 더욱 좋은 활약을 선보였다. 리그 33경기, FA컵 3경기, 리그컵 1경기, 그리고 유럽 대회에 5경기를 출전하여 총 42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다. 경기 수만 봐도 알겠지만 그는 이 시기 로테이션을 넘어 주전 멤버로 자리잡았고 팀내 수비진 중 수비력이 좋은 편에 속했으며 성실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004-05 시즌 리그 6번째 경기에서, 그는 선수 경력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첼시의 공격수 아이두르 구드욘센이 깊은 태클을 가하는 바람에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만 것이다. 그는 결국 리그를 조기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쑨지하이는 부모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으며 재활훈련을 무사히 치르고 2005-06 시즌에 로스터에 합류하는데 성공했다.

쑨지하이는 2005-06 시즌에 리그 29경기에 출전하였지만 이전에 비해 기량이 많이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홈에서 열린 웨스트햄과의 FA컵 8강전에서 보복 행위로 퇴장당해 1-2 패배로 탈락의 원인을 제공했다. 이후 쑨지하이는 2006-07 시즌에 주로 교체로 13경기 출전했고 2007-08 시즌에도 교체 멤버로서 14경기에 출장했다. 2007-08 시즌이 끝난 뒤 그는 재계약 불가라는 팀의 통보를 받고 2008년 6월 2일에 챔피언십 팀인 셰필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했다.


맨체스터 시티 FC 시절 영상으로는, 풀럼과의 경기에서 공격 가담에 나선 GK 데이비드 제임스가 상대 페널티 박스에서 클리어링 미스를 내자 전력질주 후 다이빙 발리로 상대의 슈팅을 걷어낸 장면이 있다. 조 하트의 우사인 하트 사건보다 먼저 있었던 일. 맨시티 TV와의 인터뷰에서 쑨지하이 본인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2.3. 셰필드 유나이티드 FC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뒤 카드를 많이 받아 출전 정지 징계를 몇번 받은 것 빼고는 어느 정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1월 이후 부상이 재발하는 바람에 제대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경기를 거의 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리그에서 겨우 12경기를 출전했다.

이후 쑨지하이는 중국으로 복귀하기를 희망했고 2009년에 중국 슈퍼리그 소속 클럽인 청두 톈청으로 임대를 간후 1년간 활약하고 2010년에 셰필드와 계약이 만료되자 중국으로 돌아갔다.

2.4. 중국 복귀 이후

2010년 1월 8일, 쑨지하이는 중국 슈퍼 리그의 팀인 구이저우 런허에 입단했다. 그는 즉시 팀의 주장이 되었고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매년 20경기 이상 출전하여 팀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활약했다.

그러다 2015년, 구이저우 런허가 중국 갑급 리그로 강등되자 팀을 리빌딩하는 차원에서 고액 급료를 받고 있던 쑨지하이를 슈퍼리그로 올라간 충칭 리판으로 이적시켰다. 쑨지하이는 2015년 한해 동안 충칭 리판에서 플레잉 코치로 일하면서 28경기를 출전했다.

파일:i (1sysysy).jpg

선수생활 말년의 베이징 런허(2016) 시절

2016년부터는 임대에서 복귀하여 구이저우에서 베이징으로 연고지를 옮긴 베이징 런허에서 뛰었다. 베이징 런허가 2부 리그에 있긴 했지만, 체력의 한계 때문에 결국 9경기 출전에 그쳤는데, 2016년 12월 10일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중국 U-21 대표팀에 부임한 거스 히딩크 감독 사단에 코치로 합류할 예정이라는 시나닷컴의 보도가 나왔다.

3. 국가대표 경력

쑨지하이는 1996년 12월 6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1999년에는 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뽑혔지만, 한국과 예선 1차전에서 거세게 판정 항의[3]를 하다 FIFA로부터 1년간 국제경기 출전금지, 1개월간 국내경기 출전금지 처분을 당했다.

2002 한일 월드컵 명단에 포함되어 월드컵 경기를 치렀다. 그러나 조별 예선 1차전인 코스타리카에서, 그는 상대 선수의 깊은 태클로 인해 무릎 부상을 입었고 결국 그는 월드컵에서 더 이상 뛰지 못했다. 쑨지하이는 그 후에도 중국 대표팀에서 활약했지만 2008년 6월 7일, 그는 카타르와의 2010 남아공 월드컵 지역 예선 경기에서 출전했으나 무리한 태클을 가하는 바람에 퇴장을 당했고 결국 1:0으로 지고 말았다. FIFA는 그에게 5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고 이후 더 이상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4. 평가


2012년, 에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올드팬들의 환영을 받는 쑨지하이.

유럽에 진출한 중국 축구선수 중 몇 없는, 유니폼 장사용 간판이 아닌 진짜 실력있던 선수로 평가받는다.[4] 친선 경기 몇 번에 리그에선 5경기 이하, 심지어는 단 한 경기도 못 뛰고 1~2년 만에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한 이들과는 달랐다. 만약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그의 EPL 인생은 더욱 훌륭했을지도 모른다.

쑨지하이는 맨시티에서 간간이 출전하며 6년간 꾸준히 활약했다. 물론 그가 맨시티를 이끈 선수라고 할 순 없겠으나, 프리미어 리그에서 그만한 경력을 쌓았다는 것은 그의 역할을 안정적으로 맡을 정도의 실력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경기 외적의 인간성도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자신의 성공은 스스로 잘나서가 아니라 값싼 몸값 덕분이었다는 식의 인터뷰로 겸손함을 잃지 않았고, 중국 선수들이 EPL에 들어올 때면 각별하게 대접을 해주고 선수로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조언도 많이 해줬다.

또한 비슷한 시기 활동한 박지성 이영표에게도 존경의 뜻을 밝히기도 했는데, 당시 박지성을 아시아 최고의 축구 선수로 칭송했고 이영표 또한 훌륭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실력과 마음가짐도 후배인 우레이보다 확실히 나은 모습을 보인다는 평이 많다.[5]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에게도 쑨지하이는 제법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실제로 같은 연고지의 서로 다른 팀 소속인 박지성과 친분이 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1] 악명 높은 중국 선수들 중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2] 이 구단은 스더그룹에 넘어가서 2000년부터 다롄 스더라고 이름을 바꾼다. [3] 심지어 경기 끝날 무렵에는 쓰러져 있던 이동국의 머리를 쥐어 뜯고 흔들었다. [4] 그와 견줄만한 선수로는 독일에서 오랜기간 살아남았던 샤오자이나 찰튼, 셀틱에서 꽤 좋은 활약을 했던 정즈 정도가 전부다. 그마저도 모두 쑨지하이보다는 유럽 활약 기간이 짧고 낮은 리그에서 활약한 기간이 긴 편이다. [5] 게다가 RCD 에스파뇰에서 아무런 활약도 없이 퇴출된 우레이와는 달리, 쑨지하이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긴 활약을 해왔기에 그를 우레이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매우 큰 실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