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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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9236A><colcolor=#ffd400> 조선 정종의 후궁
숙의 지씨 | 淑儀 池氏 |
|
본관 | 충주(忠州) |
부모 |
부친 -
지윤(池奫, ? ~ 1377) 모친 - 순흥 안씨 |
형제자매 | |
배우자 | 정종 |
자녀 | |
봉작 | 숙의(淑儀) |
능묘 | 황해도 개풍군 광덕산 |
[clearfix]
1. 개요
조선 정종의 후궁. 아버지는 고려 말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낸 지윤(池奫)이며, 어머니는 순흥 안씨이다.지윤의 세 딸은 모두 태조 이성계의 자식들과 혼인하였는데, 맏딸은 태조의 장남 진안대군 이방우와 혼인하여 삼한국대부인이 되었고, 둘째 딸과 막내딸이 정종의 후궁이 되었다. 바로 성빈 지씨와 숙의 지씨이다.[2]
슬하에 의평군 이원생, 선성군 이무생, 임성군 이호생과 함양옹주를 낳아 3남 1녀를 두었다.
2. 생애
숙의 지씨가 언제 어떻게 정종의 후궁이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정종의 왕비 정안왕후가 자식을 낳지 못한 것에 비해 그녀는 정종의 자식들 15남 8녀 중 서장자 의평군을 낳았다는 점, 그리고 가장 먼저 봉작된 점으로 보아 일찍 정종과 혼인하여 자식을 낳은 것으로 보인다.효령군(孝寧君)ㆍ충녕군(忠寧君)을 진봉(進封)하여 대군(大君)으로 삼고, 상왕(上王)의 궁인(宮人)의 아들
이원생(李元生)ㆍ
이군생(李群生)을 봉하여 부정윤(副正尹)으로 삼았다.
《 태종실록》 태종 12년 5월 3일
《 태종실록》 태종 12년 5월 3일
1419년(세종 1) 정종이 승하하자 아들 의평군이 섭상주(攝喪主)가 되어 장례를 주관하였다.[3][4]
3. 대중 매체
- 연못에 핀 목화 - 송경별곡 자세한 것은 숙의 지씨(송경별곡) 참조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