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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13:53:03

소해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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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편제

1. 개요

소해 업무를 담당하는 해상자위대 전단급 부대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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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일본군 해군은 1945년 12월 1일에 해군성 폐쇄로 사라지게 되었으나 문제는 일본 열도 근처에 막대하게 뿌려진 기뢰였다. 미군은 기뢰를 제거하기 위해 수로를 잘 아는 연안해군이 필요했고 일본 해군 가운데 소해(掃海)[2] 업무를 담당하는 부대를 1만 명 정도 남겨 놓았다. 이들은 일본군 해군 복제를 그대로 입고 계급장만 떼어냈다.

일본군 육군이 장비를 파묻고 조직이 와해되어가는 와중에 미 해군의 제독들은 일본 해군의 하드웨어[3]와 소프트웨어[4]를 남겨놓았다. 1940년대말에 중화민국 중국공산당에게 밀리고 소련과 갈등이 심해지자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검토했고 해상 전력에서 살아남은 일본군 해군 출신들이 소해부대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재무장은 급물살을 탔고 소해부대들은 한반도 근처에서 기뢰 제거 작업을 하였다가 북한의 외교적 항의를 듣고 철수하였다.[5] 정식으로 군을 파견한 것은 아니나 준군사조직 해상보안청의 형태로 이들은 한국전에 잠시 참가하였다.[6]

1952년에 해상보안청과 경비대가 분리되면서 소해정 등 76척의 함정이 양도되었다.[7] 1952년 11월에 마이즈루총감부 휘하에 항로계개부(航路啓開部)[8]를 설치했고 1954년에 제1소해대군이 설치되었다. 1962년에는 제2소해대군이 생겼고 1969년에 자위함대로 편입되었다. 2000년에 두 소해대군은 합쳐져 현재에 이른다.

어쨌거나 자위대가 있지도 않은 시절에 한국 전쟁에 파견된 게 소해부대였고 걸프전 때 처음으로 해외파병을 나간 것도 소해부대였다. 이런 노하우 때문에 자위대의 소해업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6년 7월, 제1수송대 및 제1공기부양정대가 소해대군으로 편성되었다. 또한, 제51소해대가 해대되고 제1소해대를 개편했으며 제3소해대를 신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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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편제

자위함대 직속부대이다. 각 지방대에도 1개씩 별도의 소해부대가 있다.
제1소해대 소해모함 MST-463 우라가(우라가급)
소해함 MSO-304 아와지(아와지급)
MSO-305 히라도(아와지급)
소해정 MSC-606 하츠시마(에노시마급)
제2소해대 소해정 MSC-601 히라시마(히라시마급)
MSC-602 야쿠시마(히라시마급)
MSC-603 타카시마(히라시마급)
제3소해대 소해모함 MST-464 붕고(우라가급)
소해정 MSC-690 미야지마(스가시마급)
제101소해대 소해정 MCL-731 유게시마(우와지마급)
MCL-732 나가시마(우와지마급)
제1수송대 강습상륙함 LST-4001 오오스미( 오오스미급)
LST-4002 시모키타(오오스미급)
LST-4003 구니사키(오오스미급)

[1] 대군(隊群)은 대한민국 해군의 전단에 상당한다. 단 준장이 없는 자위대의 특성상 지휘관 소장이다. [2] 항해의 안전을 위해 바다에 부설한 기뢰 등을 제거하는 일을 말한다. [3] 소해 업무를 담당할 함선과 히키아게샤 등 재외 일본인을 데려올 수송선을 남겨놓았다. [4] 후생성 제2복원국(과거 해군성)에 Y위원회라고 해군 관련 자료를 연구하는 일본군 출신들을 남겨놓았다. [5] 일부 인원은 원산 등에 입항하여 체류하기도 했다. [6] 그 외에도 하역 노동자 등으로 한반도를 밟은 일본인이 많았다. [7] 그리고 한반도 등으로 파견된 소해부대원을 해상보안청 소속으로 볼지 해상자위대 소속으로 볼지 지금도 두 집단의 키배 주제가 되고 있다. [8] 계개(啓開)는 일본어로 물속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