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베리노 미넬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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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세베리노 미넬리 (Severino Minelli) |
출생 | 1909년 9월 6일 |
스위스 퀴스나흐트 | |
사망 | 1994년 9월 23일 (향년 85세) |
국적 | 스위스 |
포지션 | 라이트 풀백 |
신체조건 | 174cm / 74kg |
소속팀 |
세르베트 FC (1929~1930)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1930~1943) FC 취리히 (1943~1946) |
감독 |
FC 취리히 (1943~1946) 스위스 대표팀 (1949~1950) |
국가대표 | 80경기 0골 ( 스위스 / 1930~1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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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위스의 전 축구인.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미넬리의 조상들은 이탈리아의 베르가모에서 거주해왔고 그는 스위스 취리히 근교인 퀴스나흐트(Küsnacht)에서 태어났다.미넬리는 퀴스나흐트의 지역 축구팀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19살 무렵 세르베트 FC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세르베트는 미넬리의 데뷔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지만 미넬리는 1930년 자신의 커리어 대부분을 보낼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로 이적했고 이 곳에서 나티에 데뷔함과 동시에 5회의 리그 우승과 8회의 스위스 컵 우승 등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미넬리는 1943년, FC 취리히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부임해 1946년까지 자리를 지켰고 1946년에 선수 은퇴를 결정했다.
2.1.2. 국가대표
1930년 6월 15일, 미넬리는 로손다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경기를 시작으로 스위스 대표팀 멤버가 되었다.미넬리는 2차례의 월드컵에 모두 주장으로 출전했으며 두 대회에서 스위스는 모두 2라운드에 진출했다.
미넬리는 1943년 6월 14일, 자신의 A매치 데뷔 상대이자 데뷔 장소인 로손다에서의 스웨덴전을 끝으로 13년간의 대표팀 경력을 마무리했다. 미넬리는 스위스 대표팀에서 총 80경기에 출전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A매치 세계 최다 출장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1956년 페렌츠 푸스카스가 경신하기 이전까지 미넬리의 기록은 13년간 존속되었고 미넬리는 스위스 대표팀 내에서도 하인츠 헤르만의 기록 이전에 44년간 대표팀 내 최다 출전자로 남아 있었다.
2.2. 감독
미넬리는 FC 취리히에서 감독 생활을 마친 후 잠시 스위스 대표팀에서도 감독직을 맡았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미넬리는 빠르면서도 지능적이고 꾸준한 기량을 선보였다. 그러면서 양발을 이용해 기술적으로 뛰어난 수비를 펼쳤고 위치 선정에 능해서 스위퍼같은 역할을 수행했다고 알려져 있다.그래서 그는 30년대 유럽을 대표하는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4. 수상
4.1. 클럽
- 스위스 슈퍼 리그 우승 6회: 1929-30( 세르베트 FC), 1930–31, 1936–37, 1938–39, 1941–42, 1942–43(이상 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 스위스 컵 우승 8회: 1931–32, 1933–34, 1936–37, 1937–38, 1939–40, 1940–41, 1941–42, 1942–43(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 스위스 슈퍼 리그 준우승 3회: 1932-33, 1933-34, 1937-38(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 스위스 컵 준우승 2회: 1930-31, 1932-33(그라스호퍼 클럽 취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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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