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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1 17:00:21

서태지와 아이들 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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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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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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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taiji and Boys III
파일:attachment/서태지와 아이들 3집/서태지3집.jpg
{{{#!folding CD 뒷면 앨범 아트 《펼치기 • 접기》
<colbgcolor=#7A547B><colcolor=#ffffff> 아티스트 서태지와 아이들
유형 정규앨범
발매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4년 8월 10일
장르 , 랩 록, 얼터너티브 메탈, 얼터너티브 록
곡 수 9곡
러닝타임 35:52
스튜디오 콘웨이 레코딩 스튜디오
파이브 필 마스터링 스튜디오
발매사 스포트라이트
기획사 반도음반
프로듀서 서태지
타이틀곡 발해를 꿈꾸며

1. 개요2. 앨범 제작3. 문화 대통령이 되다4. 안티의 등장5. 성적6. 수록곡
6.1. Yo! Taiji6.2. 발해를 꿈꾸며6.3. 아이들의 눈으로6.4. 교실 이데아6.5. 내 맘이야6.6. 제킬박사와 하이드6.7. 영원(永遠)6.8. 발해를 꿈꾸며 (Inst.)6.9. 널 지우려 해
7. 트랙 리스트8. 제작진9. Special Thanks To Our Fan10. 여담

[clearfix]

1. 개요

1994년 8월 10일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3번째 앨범이다. 대표곡은 교실 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등이다. 록 음악으로의 회귀를 선언한 앨범이며 동시에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담기 시작한 앨범으로 서태지 팬들 사이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중 최고의 음악성으로 평가받는다. 수많은 악재들로 인해[1] 앨범 판매고가 크게 떨어졌다는 게 150만장이다. 1집이 170만장, 2집이 220만장이었으니 크게 떨어지긴 떨어졌지만 백만장을 우습게 돌파했던 무서운 성적.[2]

서태지와 아이들의 앨범 중에서도 특히나 록 음악의 색깔이 강한 앨범으로, 전체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뿌리인 스래쉬 메탈을 주축으로 하나,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보여준다. 특히 이 앨범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당대 전 세계 록의 흐름을 주도하던 얼터너티브 록이었다. 록 마니아들 사이에선 극과 극의 록 음악으로 불리는만큼 골수 정통록/헤비메탈 키드인 서태지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텐데[3] 이 앨범에선 꽤 높은 수준의 흡수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발해를 꿈꾸며>의 전개부[4]에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스타일의 펑키한 기타 연주가 나타나고 후렴부[5]에는 U2 디 에지를 연상시키는 쌩딜레이톤이 나타난다. 두 밴드의 음악 스타일은 꽤 다르나, 그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주목할 만한 기타 연주의 스타일들이 이 곡엔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2. 앨범 제작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 제작시 녹음 자체는 1집부터 외국에서 후반 마스터링 작업을 하긴 했다. 서태지가 사비로 집에다가 꾸린 Techno Taiji Studio의 설비로는 한계가 있었다고 하는데, 세션까지 전부 외국계로 갈아치운 것은 2집의 표절시비가 계기가 된 듯. 당시 이태섭이 테스타먼트의 기타 애드립을 도용해서 하여가에 붙여준 게 문제가 컸다.[6] 이후 3집에는 Tim Pierce[7], Kevin Scott 같은 미국/캐나다계 세션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다. 그래서 사운드 자체는 매우 괜찮은 편이다.

특히 < 교실 이데아>의 백미는 곡 전체에서 쏟아지는 DJ 스크래치의 향연인데, 당대의 신성 DJ이자 이후 본토에서도 최고의 DJ로 추앙받게 되는 DJ Q Bert 솜씨이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백댄서 였던 지누션의 소개로 이 앨범에 참여했다고 하며, 직접 자신의 장비를 들고 한국에 와서 서태지의 집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고 한다.

녹음도 외국에서 해서 당시 대중들 사이에선 뭔가 대단한 것처럼 인식되었다. 주로 컴퓨터로 찍어대던 1, 2집에 비해[8] 세션들을 대거 기용해서 제대로 된 음악을 한다라는 느낌이 든 앨범.

서태지는 < 발해를 꿈꾸며>의 연주 버전을 8번 트랙에 집어넣었는데, '사운드 떡칠해놨으니 즐길 사람은 즐겨보라'는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참고로 이 앨범이 나온 직후 문화평론가 이동연 교수와 인터뷰를 한 책이 나왔다. 제목은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인데, 저자의 관심사가 사회적인 분야이므로 주로 3집에 대한 내용들이 많다.

이 책에 따르면 3집은 이전 앨범과는 달리 가사와 주제를 먼저 잡고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3. 문화 대통령이 되다

1, 2집이 기본적으로 사랑 타령에 댄스 음악인데 반해 3집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노래가 많았다. 또한 3집을 기점으로 사회 시대상을 반영하는 노래가 많아졌다.

타이틀곡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주제인 < 발해를 꿈꾸며>였다. 김대중 前 대통령은 이 곡을 듣고 서태지를 높이 평가하였으며, 나중에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다. <발해를 꿈꾸며>는 교과서에도 실렸는데, 요즘은 대중가요가 교과서에 실리는 일이 종종 있지만[9], 발해를 꿈꾸며가 처음 실렸을 때는 흔치 않은 일이라 기사화 되며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 교실 이데아>로 입시 제도를 비판했다. 이전까지 서태지가 청소년, 청년층을 대변한 가치는 자유와 도전 같은 추상적 내용이었다면 교실 이데아에선 교육이라는 구체적인 논쟁거리를 던진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민중가요라고 해서 사회를 비판하는 노래 자체는 엄연히 불려지고 있었지만, 포크송 위주였기 때문에 이미 당대 청소년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이러한 사회비판적인 노래를 당대의 인기 장르와 결합하는 식으로 불렀고, 서태지는 단순한 10대들의 우상을 넘어서서 문화대통령으로 불리게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이 발매되었던 당시의 시대배경을 보자면 사회가 문민화, 자유화되는 것과는 상관없이[10] 1986년부터 교복부활이 시작되어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할 시점에는 교복 착용이 완전히 재정착되었고, 청소년 일탈을 막는다는 명목하에서 학생 두발단속도 염색이나 장발, 파마만 아니라면 어느정도 풀어주던 1980년대에 비해 크게 강화되어, 심하면 1970년대식으로 빡빡머리와 단발을 강제 하는 학교들도 종종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체벌남용과 촌지, 0교시, 야간자율학습은 여전히 횡행하는 등 당대의 청소년들은 사회전반의 자유화와 문민화의 흐름에서 한창 소외되었다.[11] 사실 입시위주 교육과 과도한 사교육으로 인한 학생 혹사 문제는 이미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을 받아왔을 정도로 유서깊었기 때문에 교육문제 비판 자체는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12] 거기에 더해서 일선학교에서 대학을 보내야된다는 이유로 청소년들의 자유와 개성을 무조건 억압하는 세태를 노골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문화 대통령으로 등극하는 데는 위 두 곡이 가장 주목을 받았지만, 소재의 다양성을 늘렸다는 점에서 < 내 맘이야>, < 제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곡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3집 컨셉으로 치마를 입고 나와 나름 충격을 안겼다.[13] 아마 내 맘이야에 나오는 가사 내용을 실제로 써먹은 듯 하다. 이후 치마 콘셉트는 조금 순화되어 삼국시대 복장 비슷한 걸로 바뀌었는데 치마 콘셉트는 발해 왕자의 이미지를 살리려는 당시 코디네이터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링크 원래 전공이 한국 전통 의상이었기 때문에 바지 위에 덧입은 치마가 금관조복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생활한복에 가까운 의상을 제작해 입히기도 했다.
파일:서태지 개량한복.jpg 이 사진은 1995년 2월호 잡지에 실린 것으로, 오로지 잡지 인터뷰용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이때 서태지는 "교실이데아가 아니라 서당 이데아예요"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고 한다.

파일:발해를 꿈꾸며 복장.jpg
1995년, 3집 활동을 마무리하는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 때 <발해를 꿈꾸며>를 부르며 입었던 의상이다.
앞서 언급한 금관조복을 연상케 하는 스타일이다. 음악잡지 '뮤직라이프' 1995년 2월호 특집화보에 실렸던 사진.

4. 안티의 등장

서태지 안티가 발생하기 시작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크게 음악적 안티와 사회/문화적 안티로 나눌 수 있다.

음악적 안티는 이 앨범이 락으로 회귀하면서 발생했다. 시나위의 베이스 주자였던 서태지는 원래부터 본류라 할 수 있는 정통 메탈 사운드 마니아들에겐 전향자 취급받고 있었고, 3집의 행보는 오히려 자존심 센 락매니아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특히 <교실 이데아>에 협력하고 라이브에서는 아예 특별게스트로 참가한 크래쉬 같은 경우는 '배신자'라는 소리까지 듣는 바람에 나중에 인터뷰에서 보컬 안흥찬이 해명한 적도 있을 정도. 이 때가 PC 통신의 확산기[14]라고 할 만한 시기였는데 음악 게시판 등지에서 많은 논쟁이 오갔었다.

사회/문화적 안티는 3집의 사회비판 메시지에 반발한 기성세대에서 등장했다. 1집, 2집에서도 대중문화의 주축이 10대로 넘어가는 현상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감은 있었다지만 음악 산업 분야에 한정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서태지가 3집에서 보여준 내용은 사회 전반에 걸쳐 세대간 담론 전쟁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언론을 중심으로 '서태지 죽이기'로 통칭되는 공격이 있었다. 여기에 교실이데아 루머 문단에서 소개할 ' 피가 모자라' 사건 때문에 개신교계에서도 안티가 발생했고 기존 팬들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당대 교육계 입장에서는 교복부활이 막 완료되었고, 청소년 탈선방지를 명목으로 두발단속도 강화해놓은지 몇년이 채 안되던 시기였는데 톱스타가 이러한 흐름을 뒤엎으려고 하니까 당황해했고, 당대의 40대 이상 보수적인 기성세대들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트로트가 한물간 음악 취급받기 시작하고, 힙합이 주류가 되는 등 음악시장의 유행이 자기네들 취향과 맞지 않게 흘러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거기에 대놓고 민중가요적인 가사를 넣은 노래까지 내놓자 여기에 발작한면이 있었다.

5. 성적

||<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4d3a93><width=80>
파일:KBestAlbums100.jpg
||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26위 ||
||<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4d3a93><width=80>
파일:KBestAlbums100.jpg
||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
1998년 26위 ||

멜론 선정 명반
서태지와 아이들 3집

6. 수록곡

트랙 곡명 작사 작곡 편곡 재생 시간
01 Yo! Taiji 서태지 0:39
02 발해를 꿈꾸며 4:41
03 아이들의 눈으로 5:04
04 교실 이데아 4:19
05 내 맘이야 3:01
06 제킬박사와 하이드 5:11
07 영원(永遠) 3:54
08 발해를 꿈꾸며 (Inst.) - 서태지 4:36
09 널 지우려 해 양현석 4:36

6.1. Yo! Taiji

6.2. 발해를 꿈꾸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발해를 꿈꾸며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발해를 꿈꾸며
진정 나에겐 단 한 가지 내가 소망하는 게 있어

6.3. 아이들의 눈으로

아이들의 눈으로
나에겐 꿈이 있어요

6.4. 교실 이데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교실 이데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교실 이데아
됐어(됐어) 이제 됐어(됐어)

6.5. 내 맘이야

내 맘이야
그런데 지금 나는 TV를 껐어

6.6. 제킬박사와 하이드

제킬박사와 하이드
내 마음을 철저하게 속이고 살아온 내 인생에

6.7. 영원(永遠)

영원(永遠)
내가 멀리 있다 느껴져도

6.8. 발해를 꿈꾸며 (Inst.)

발해를 꿈꾸며 (Inst.)
시원스레 맘의 문을 열고

6.9. 널 지우려 해

널 지우려 해
우연히 길을 걷다

7. 트랙 리스트

트랙 제목
1 Yo! Taiji
2 발해를 꿈꾸며
3 아이들의 눈으로
4 교실 이데아
5 내 맘이야
6 제킬박사와 하이드
7 영원(永遠)
8 발해를 꿈꾸며 (Inst.)
9 널 지우려 해
재발매판 추가곡
10 Opening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11 널 지우려 해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12 너에게 (이제는 너에게)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13 Farewell To Love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16]
14 태지 Solo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15 교실 이데아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17]
16 07' 교실 이데아 (Remix)

8. 제작진

기획: 최진열
프로듀서: 서태지
마스터링 엔지니어: 빌 마체티(Bill Mazzetti)
마스터링 스튜디오: 파이브 필 마스터링 스튜디오(Five Feel Mastering Studio)
레코딩 스튜디오: 콘웨이 레코딩 스튜디오(Conway Recording Studio)

드럼 테크니션: MR. DRUM DOCTORS T.M.[18]
기타 테크니션: 케빈 스콧(Kevin Scott)
베이스 기타 테크니션: 데이비드 프리드먼 (David Freedman)

기타 : 서태지, 케빈 스콧, 팀 피어스(Tim Pierce), 존 피어스(John Pierce)[19]
베이스 : 서태지, 존 피어스
드럼 : 조시 프리즈(Josh Freese), 데니 폰게이저(Denny Fongheiser)
드럼 프로그래밍 : 서태지
키보드 : 서태지, 최태완(어쿠스틱 피아노)
첼로 : 권선미
스트링 : 제팬 킹 오케스트라(The Japan King Orchestra)

디제잉 : |DJ Q-Bert
컴퓨터 프로그래밍 : 서태지

디자이너: 권혁방, 임성구 (Ivy Production)
컴퓨터 그래픽스: 이욱재 (Shins Graphics)
사진: 임두현
카피라이터: 채송아
프로덕션 코디네이터: 김국현

9. Special Thanks To Our Fan

깊은 것은 언제나 믿음이 됩니다.
기다림의 시간들 -
믿음으로 마음이 닿아 있었기에
이제, 세 번째의 앨범을 여러분께 바치며
새롭게 시작되는 날엔
함께 하고 싶습니다.

10. 여담



[1] 피가 모자라 사건, 방송 금지 처분 등이 있다. [2] 많은 1위를 차지했던 1, 2집과 달리 3집에서는 <발해를 꿈꾸며>가 가요톱텐에서 3위까지 든 게 최고 성적이다. 참고로 활동 당시 MBC는 순위 프로그램이 없었던 시기였고 SBS는 방송출연 금지를 당했던 시기였다. [3] 다만 서태지의 신대철과의 음악적 불화 및 오렌지에서의 가사를 보면 음악 장르에 대한 편견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어터너티브 록이던 헤비메탈이던 랩을 하고 댄스음악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꼰대들에게 있어 이미 서태지는 천덕꾸러기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현재에도 뉴메탈이나 이모코어 같은 음악을 했던 서태지의 커리어에 고전 클래식 록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선 서태지를 록 뮤지션으로 인정을 하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다.(...) [4] 한민족인 형제인 우리가... [5] 우리 몸을 반을 가른 채... [6] 몇 년 후, 원곡의 기타솔로가 외국 민요라는 정보를 일본의 메탈 전문 잡지 <Burn!>을 통해 접했다 해명하긴 했지만, 그 해명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를 서태지에게 바로 알려주지 않은 것은 문제가 된다. [7] 브루스 스프링스틴, 본 조비, 조 카커, 마이클 잭슨, 마돈나, 셀린 디옹, 엘튼 존, 에릭 클랩튼, 오지 오스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과 작업했다. [8] 서태지는 사운드덕후 기질이 강해서 혼자 지지고 볶고 찌고 해야 속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이 기질은 갈수록 노하우와 짬이 붙으면서 더 강해졌다. 후에 낸 5집과 6집은 아이들 신경 쓸 거 없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던 데다가 서태지의 연주력과 사운드덕후 기질이 합쳐져 미친 듯한 퀄리티의 작품이 나왔다. [9] 이마저도 교과서 개정 등으로 인해 상당히 오래된 대중가요가 실리는 경우가 많다. [10] 물론 1989년 중순부터 1992년까지는 전교조를 불법화, 학생운동가 고문 및 탄압 , KBS 사태, 즐거운 사라 출판금지 사건에서 볼수있듯이 자유화가 후퇴하는 흐름이 있었다. [11] 물론 당시에도 체벌남용이나 두발자유화, 교복의 불편함 같은 문제점은 진지하게 다루어졌던 문제점이기는 했지만, 당대 교육계의 관성과 행정편의주의로 인해서 교육현장에서 무시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12] 2020년대 이후로 대학정원이 남아도는 사태가 벌어진것도 이런 교육열을 대학진학률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봤기 때문이었다. [13] 처음에 이주노도 이 선택을 두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14] 당시 인터넷은 한통과 데이콤이 상업서비스를 실시했지만, 부유층과 소수 얼리어답터들의 전유물이었고, PC통신과 인터넷을 같이하는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당대 PC통신 요금이 비싼데다가 컴퓨터 가격도 웬만한 직장인 몇달치 급여에 해당되는 제법 값나가는 가전제품이라서 당대의 PC통신 이용자들도 제법 사는 계층이기는 했다. [15] 엄밀히 말하자면 서울 부산에서만 공연했으므로 투어라고 하기 애매하다. 애초에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는 1집 시절 외에는 전국투어라고 불릴 만한 공연을 한 적 없이 서울 외에는 부산 정도에서만 공연했다. [16] 원곡은 시나위 4집 수록곡이고 김종서와의 협연한 공연음반 트랙이다. 이 곡을 위해 서태지와 아이들 멤버 모두가 세션이 되었다. 이주노는 원래 기타를 잘 쳤기에 베이스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양현석은 드럼을 새로 배워야 했다고. 춤 실력으로 갈고 닦은 박자감을 토대로 빨리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17] 크래쉬가 편곡하고 직접 연주까지 했다. [18] 본명 로스 가필드(Ross Garfield). # [19] 팀 피어스의 동생. [20] 당시 이주노는 '태지야, 이건 아니잖아.'라고 했다고 후술. [21] 현재는 이명한, 나영석 이우정 등 모두 tvN으로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