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감리회 상동교회 尙洞敎會 | Sangdong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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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d86a6><colcolor=#ffffff> 설립일 | 1888년 10월 9일 ([age(1888-10-09)]주년) |
소속국가 | 대한민국 |
소속교단 | 기독교대한감리회 |
담임목사 | 이성조 (2019~現) |
연도표어 |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통치되는 교회! |
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30 ( 남창동)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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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 남창동에 위치한 1888년 한국 감리교 최초의 의료선교사인 목사 윌리엄 스크랜턴(Scranton, W. B.)이 서울 남대문로에 세운 개신교 감리회 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소속된 교회이다.2. 역사
1885년 어머니인 메리 스크랜턴[1]과 함께 조선에 입국한 윌리엄 스크랜턴은 정동교회 근처에 정동감리교병원을 세우고 가난한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하다가, 의료사업을 확장하기로 하고 남대문 근처의 복숭아밭을 구입하여 약국과 병원을 차려 의료선교와 복음선교를 겸함으로써 오늘의 상동교회가 시작되었다.1893년 이 병원교회가 정식으로 구역회로 승격되어 스크랜턴이 담임목사로 임명되었고, 1895년 정동병원을 상동병원으로 통합하여 상동교회 자리는 전적으로 병원으로 사용하고, 교회는 지금의 한국은행 자리인 달성궁(達城宮)으로 옮겨 비로소 교회와 병원이 분리되었다.
1900년 7월 상동병원이 세브란스병원과 통합되자, 그 자리에 현대식 교회건물을 신축, 1901년 6월에 준공을 보아 교회를 옮기고, 1902년 전덕기(全德基)를 전도사로 임명하였다.
1897년 상동교회 안에 초등과정의 공옥여학교, 1899년 공옥남학교를 설립하고, 1904년 민족지도자급 인사들과 함께 중등 교육기관인 상동 청년학원[2][3] 을 설립해 청년들에게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취시켜 독립정신을 함양하는 데 주력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덕기를 중심으로 한 조약무효투쟁이 전개되어, 김구, 이준 등의 독립투사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박제순(朴濟純) 등 을사5적을 암살할 모의를 계획하기도 했으며, 1907년 헤이그 특사 논의가 이루어졌으며, 같은 해 이 곳에서 신민회(新民會)가 조직되어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1907년 담임 목사가된 전덕기는 독립운동과 개몽운동에열정을 쏟았다.
그러나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신민회가 와해되자 전덕기는 독립운동조직을 재구축하는 일과 신흥무관학교 등 해외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한 노력을 계속했으나 1914년 전덕기가 지병인 폐결핵으로 사망하고, 일제의 압박으로 상동청년학원이 강제폐교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으며, 민족항일기 말기에 이르러서는 교회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가혹해져, 1944년 3월 일제에 의해 교회가 폐쇄되어 신사참배와 소위 황도정신(皇道精神)의 훈련장인 황도문화관으로 바뀌는 수치를 당했다.
8.15 광복을 맞아 재건되었으나 6.25 전쟁으로 교회건물이 많이 파괴되었으므로, 1974년 10월 벽돌예배당을 헐어 현재의 12층 건물을 신축, 7층 이상을 교회로 사용하고 지하층과 지상 4층까지는 상가[4]로 사용하여, 여기서 나오는 이윤을 전적으로 선교사업에 충당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3년 상동교회를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하며 "헤이그 밀사사건을 계획한 역사적인 현장이며 전덕기 목사 외 최석모, 오화영, 이필주, 신석구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출하며 민족운동의 중심지로 활용되었던 장소로서 보존 가치가 있음장소로서 보존 가치가 있음" 이라고 선정이유를 남겼다. #
3. 삼일학원
삼일학원은 상동교회에서 운영중인 학교법인이다.소속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