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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57:19

삼전도비 스프레이 훼손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상세3. 사건 이후

1. 개요

파일:삼전도비2007훼손상태.png
파일:삼전도비2007보존처리방법.png
스프레이로 훼손된 삼전도비 문화재청의 복구 방법 보도자료

2007년 2월 3일 백모씨가 삼전도비에 스프레이를 뿌려 훼손한 사건.

2. 상세

2007년 2월 3일 오후 9시 40분경 백모씨가 서울특별시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삼전도비 전면과 후면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철거 370 병자[1]'라고 쓰고 도주하였다.

2월 5일 아침 공원을 청소하러 온 송파구청 직원이 삼전도비가 훼손된 것을 발견하였고[2] 경찰에 신고하였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CCTV를 분석하고 전국의 유사 사례를 추적한 끝에 2월 27일 범인 백 모씨를 검거하였다.

경찰 조사 결과 백 모씨는 생활정보 제공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고 2007년 1월 16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역사인물공원에 위치한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이 된 탐관오리 조병갑의 선정비 등을 망치로 훼손한 전력이 있었다.[3] 백 모씨는 조사에서 병자호란의 교훈을 본받아 정치인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모씨는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3. 사건 이후

백 모씨는 이 사건 이후에도 2012년 12월 12일 노태우 생가에 방화하여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2016년 12월 1일에 박정희 생가에 불을 질렀다가[4] 현장에서 경찰에 구속된 후 1심에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3년[5]으로 감형이 확정되었다.

삼전도비의 낙서를 지우기 위해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검토한 끝에 가장 손상이 적은 방식으로 습포제를 활용한 제거 방법을 채택했는데 페인트를 흡수한 습포제가 굳으면 저압스팀으로 떼어내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3월 22일부터 6월 15일까지 약 '3개월' 동안 복원 작업을 실시하여 이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으며 이 사건을 통해 페인트 훼손 복구에 대한 노하우를 얻게 된 점은 뜻하지 않은 긍정적 성과다. 2023년에 발생한 경복궁 영추문 및 담장 훼손 사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해당 사건의 발생 시점이 추운 겨울철임을 감안할 때 삼전도비의 복구보다 오랜 기간이 걸릴 수 있다.


[1] 당시 2007년은 삼전도의 굴욕이 일어난 병자년으로부터 370주기가 된다. 즉, 370년 전 우리 역사의 치욕을 의미하는 것. [2] 얼마나 관심이 없는 문화재였는지 만 하루가 지나서야 훼손된 걸 발견할 정도였다. [3] 다만 조병갑 선정비가 워낙 단단한 돌이라 그런지 눈에 띄는 훼손은 없었다고 한다. 본인도 체포 후 진술에서 괜히 망치로 쳐서 훼손 효과가 없었다고 후회했다고 한다. 수십 번 내리쳤는데 깨지기는커녕 훼손 효과가 없어서 속상해서 더 내리치다가 총 100번 넘게 쳤는데도 기어이 훼손이 안 되자 포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 범행에서 진짜로 훼손되는 걸 노리고 스프레이로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4] 당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논의되던 때였다. 여담으로 박정희 생가는 경상북도 지방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5] 2심 재판장이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관계기관과 유족에게 법적으로 큰 금전적 배상을 해야 하는 상황을 감안했다"며 감형사유를 밝혔다. 범인은 범행당시 박정희와 육영수의 영정사진부터 불을 질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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