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페르디난트 갈란트(Wilhelm-Ferdinand "Wutz" Galland: 1914년 10월 23일~1943년 8월 17일)
"동생 빌헬름은 전투기 조종사로서의 재능을 발휘해 나중에 기사철십자 훈장을 획득했다. 막내 파울에게는 열정과 넘치는 용기가 있었지만, 무턱대고 돌진하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표적을 놓치는 타입의 조종사였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단점을 극복해냈다." - 아돌프 갈란트
1. 유년기
적기 55대를 격추하여 기사철십자 훈장을 받은 에이스 파일럿이지만, 그보다는 공군 중장 아돌프 갈란트의 동생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빌헬름페르디난트 갈란트는 1914년 10월 23일에 베스트팔렌 지방의 보쿰(Bochum)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갈란트 집안은 4형제로 장남 블리츠만 제외하고 차남 아돌프, 3남 빌헬름, 4남 파울 갈란트까지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 모두에게 별명을 붙였는데, 아내 안나에게는 아니타, 블리츠에게는 토비, 아돌프는 게바, 빌헬름에게는 우츠, 막내 파울은 볼리첸이라고 불렀다.
2. 대공포병에서 조종사로
1935년에 루프트바페가 창설되던 시기에 입대한 그는 처음에는 대공포 연대에 배속되었다. 1940년에 프랑스 침공 작전까지도 대공포 사수로 복무했지만, 그 해 말에 제26전투항공단(JG 26)의 보충 비행대에서 속성으로 비행 훈련을 받아 조종사가 되었다. 1941년 6월 27일에 제26전투항공단 예하 제II비행단(II./JG 26)의 6비행중대원으로 배정받았다.빌헬름은 7월 23일에 헤스딘(Hesdin) 근처에서 스핏파이어를 떨구면서 자신의 첫 전과를 보고했다. 1942년 4월 10일에는 에타블 상공에서 또다시 스핏파이어에게 승리를 거두며 5기 격추로 에이스 파일럿 대열에 들어섰다. 5월 5일에는 II./JG 26 제5중대(5./JG 26)의 지휘권이 주어졌다. 6월 2일, 솜므 강 상공에서 스핏파이어 2대를 격추한 그는 10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12월 12일, 볼로뉴(Boulogne) 상공에서 격파한 스핏파이어는 20대째 전과였다. 1943년 1월 13일, II./JG 26의 지휘관에 임명되었다. 1월 28일에 24대 격추 전공으로 독일 십자훈장을 받았다. 2월 15일, 램즈게이트(Ramsgate) 근교에서 스핏파이어를 잡아내고 30대째 격추 스코어를 기록했다. 4월 21일에 그가 이끄는 II./JG 26은 아브빌 차량 기지를 표적으로 삼고 날아온 영국 공군의 폭격기 편대를 요격하기 위해 긴급 출격했다. 이 요격 전투에서 빌헬름 갈란트는 2대의 록히드 벤튜라를 격추하면서 자신의 41번째 전과를 장식했다. 5월 18일에 45기 격추 전공을 인정받아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3. 본토 항공전
7월 14일, 빌랴쿠블레(Villacoublay)를 폭격하는 B-17를 호위하는 미 육군 항공대의 P-47 편대와 맞서 싸워 2대의 적 전투기를 격추시켰다. 8월 17일, 연합군은 슈바인푸르트(Schweinfurt)에 대한 대공습 작전을 개시했다. 16시 52분에 II./JG 26는 루티치(Lutych)에서 출격해 미군 폭격기와 엄호 전투기들을 요격하기 위해 마중을 나갔다. 벨기에의 리에주 상공에서 그들이 맞닥뜨린 연합군 공습부대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미군 중폭격기만 150~200대에 호위 전투기도 약 200대나 함께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교전에서 폭격기를 향해 거듭해서 달려들던 빌리 갈란트는 미8공군 제56전투항공단 소속의 P-47에 격추되어 전사했다. 그를 격추시킨 조종사는 24.25대를 격추한 에이스 버드 마후린(Walker “Bud” Mahurin)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4. 최후
빌헬름페르디난트 갈란트가 타고 있던 Fw 190A-5(W.Nr. 530 125)는 겉보기론 그리 심한 피해를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콕핏에 피탄되었는지 거의 수직으로 추락해서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Maastricht)의 지상에 충돌해 산산조각나 버렸다. 추락 지점에는 지면에 큰 파공이 생겼고 기체는 수천 개의 파편으로 흩어져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할 수 없었다.사후 2계급 특진된 빌헬름페르디난트 갈란트 소령은 그때까지 186회 실전 출격을 해오면서 55기를 격추했는데 그 모두가 서부전선에서 거둔 전과이다[1]. 그 중에는 중폭격기가 7대, 스핏파이어는 37대나 된다.
5. 서훈
[1]
소련 공군 조종사들의 기량은 전쟁 후반기로 가면 갈수록 나아졌고 에이스들도 많이 배출되었지만 확실히 기체 성능이나 조종사의 기량 전반이 미국, 영국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실제로 격추수 200회를 기록한 대부분의 슈퍼에이스들은 비교적 손쉬운 소련 공군을 상대로 기록한 전과라 서부 전선의 그것에 비해 좀 덜 쳐주는 경향이 있기도 했는데 동부전선에서 에이스 인증을 받으려면 총 100대를 격추시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