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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7 07:16:55

브란코 스탄코비치

브란코 스탄코비치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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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Branko Stanković.jpg
이름 브란코 스탄코비치
(Branko Stanković)
생년월일 1921년 10월 31일
사망년월일 2002년 2월 20일 (향년 80세)
국적 파일:세르비아 몬테네그로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출신지 유고슬라비아 왕국 사라예보
포지션 라이트 풀백
신체조건 176cm | 77kg
소속팀 FK 슬라비야 사라예보 (1939-1941)
BSK 베오그라드 (1941-1945)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46-1958)
국가대표 55경기 3골 (1946-1956)
감독 FK 젤레즈니차르 사라예보 (1960)
NK 올림피야 류블랴나 (1963-1964)
FK 보이보디나 (1964-1967)
AEK 아테네 FC (1968-1973)
아리스 테살로니키 FC (1973-1975)
FC 포르투 (1975-1976)
PAOK FC (1976-1977)
FK 보이보디나 (1977-1978)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78-1981)
페네르바흐체 SK (1982-1984)
베식타슈 JK (1984-1986)
페네르바흐체 SK (1986-1987)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88)
카르시야카 SK (1989)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이후
3. 스타일 & 평가
3.1. 선수3.2. 감독
4. 뒷이야기5. 수상
5.1. 선수
5.1.1. 클럽5.1.2. 국가대표
5.2. 감독
5.2.1. 클럽

[clearfix]

1. 개요

유고슬라비아(現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세르비아 혈통의 스탄코비치는 1936년부터 FK 슬라비아 사라예보 유스팀 소속이었으며 1939년에 1군에 데뷔했다. 그러나 스탄코비치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였던 1941년에 사라예보를 탈출, 1930년대에 유고슬라비아를 주름잡았던 BSK 베오그라드에 합류해서 세르비아 축구 리그에서 활동했다.

1946년, 스탄코비치는 새로 창단된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에 합류했고 1958년까지 리그 최고급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2.1.2. 국가대표

스탄코비치는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에서 FIFA 월드컵( 1950, 1954)과 올림픽( 1948, 1952)에 참가했다.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올림픽에서 2연준을 거뒀지만 월드컵에서는 최고 8강의 성적으로 다소 불만족스러운 성적에 그쳤다.

보스니아어 세르비아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1956년 11월에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잉글랜드와 유고슬라비아의 경기에서 스탄코비치는 스탠리 매튜스의 페이크에 속아 넘어졌다. 스탄코비치는 이후 매튜스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매튜스의 다리를 붙잡았는데 어떤 기자는 이 장면을 이렇게 평했다. "스탄코비치씨, 이건 내 다리입니다."

2.2. 이후

스탄코비치는 감독으로서도 성공 가도를 달린 인물이었다. 그는 주로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터키의 팀들을 감독했고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친정팀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감독 시절이 스탄코비치 최고의 전성기였는데 그는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 2회 우승, UEFA컵 준우승의 성과를 올렸다.

3. 스타일 & 평가

3.1. 선수

스탄코비치는 태클보다는 위치 선정과 예측으로 수비를 하던 풀백이었다. 특유의 우아한 스타일로 그의 별명은 대사였고 동료들에게 정확한 패스를 주고 공을 제어할 수 있었다. 때로 스탄코비치는 테크닉과 드리블로 상대 공격진에 침투하던 현대적 풀백의 모습을 보여줬고 강력한 다리힘으로 프리키커로도 나섰다.

3.2. 감독

스탄코비치는 선수 시절과 다르게 감독으로는 엄격하고 권위주의적이어서 선수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페네르바흐체 SK 시절에 통역사가 지각했다는 이유로 한 달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고 취임 첫날부터 페네르바흐체 선수들에게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켰다. 이로 인해 일부 선수들은 첫날부터 부상을 당하거나 스탄코비치 감독에게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스탄코비치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불만을 표출한 선수들을 제외시켜버렸다.

베식타슈 시절엔 훈련 세션때 선수들이 자신의 전술적 지시를 따르지 않고 계속 물만 마시자 물통을 걷어차고 남은 시간동안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페네르바흐체 2기 시절엔 선수들과 사이가 틀어진 이유가 있었는데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생고기를 식단에 넣으려다 선수들이 반발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스타일이라 스탄코비치는 능력에 비해 한 팀을 오래 맡지는 못했다.

4. 뒷이야기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5.1.2. 국가대표

5.2. 감독

5.2.1. 클럽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