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19:53:42

불신의 역병


Plague of Unbelief
[1]

1. 개요2. 발단3. 진행
3.1. 배교자 추기경3.2. 팽에서의 전투3.3. 키로스의 분투3.4. 가탈라모어로 가는 길3.5. 위대한 증거자
4. 결말5. 여담6. 외부 링크

1. 개요

Warhammer 40,000 세계관의 사건 중 하나. 제국 국교회의 추기경 뷰카리스(Bucharis)에 의해 일어난 대규모 반란 사건.

고그 밴다이어 치세 하의 배교의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대사건으로, 규모 또한 대단히 컸다. 불신의 역병 자체는 교황 토르 1세, 세바스티안 토르의 즉위 수십년 후에 일어났으나, 제국은 이 사건을 배교의 시대 속의 일련의 사건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시스터 오브 배틀 2판 코덱스가 정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 문서에서는 이 사건을 불신의 역병으로 의역한다.

2. 발단

배교의 시대는 제국 행정부의 장관직과 제국 국교회의 교황직을 겸임하던 고그 밴다이어가 죽음으로써 일단은 끝나게 되었다. 밴다이어의 죽음 이후, 세바스티안 토르는 제국 국교회의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교단은 여러 긍정적인 개혁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때, 추기경 뷰카리스는 홀리 테라의 남서 방향에 위치한 가탈라모어(Gathalamor)에서 자신의 교구를 관할하고 있었다. 뷰카리스는 커다란 야심을 가진 추기경으로, 그의 동료 추기경들이 이룬 업적을 질투하곤 했었다. 때문에 그는 황제를 기리기 위한, 가장 거대한 성당을 건립하리라 맹세했다. 가탈라모어의 민중이 그의 맹세를 위해 가혹하게 부역에 동원되었지만 그럼에도 자원과 인력은 부족하기만 했고, 이에 추기경은 타 행성들을 정복해서 부족한 것들을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2]

3. 진행

3.1. 배교자 추기경

일단 뷰카리스는 가탈라모어 근처에 위치한 행성 란다(Rhanda)를 수많은 암살자와 첩자를 동원해 정복했다. 행성 란다는 풍부한 자원을 가진 행성이었고, 곧 뷰카리스의 부는 늘어났다. 그는 이 와중에 임페리얼 네이비의 세할라(Sehalla) 제독과 임페리얼 가드의 가스토(Gasto) 대령을 포섭했으며, 이들을 이용해 자신만의 소왕국을 만들었다.

워프 폭풍 덕택에 뷰카리스의 소왕국은 다른 지역과의 길이 꽤 차단된 상태였고, 이 때문에 세바스티안 토르가 교황 토르 1세로써 착좌한 사실과, 제국 국교회가 여러 개혁과 함께 재조직된 소식 또한 널리 전해지지 못한 상태였다. 뷰카리스는 성간 통행을 모조리 차단함과 동시에 오가는 소식 또한 철저히 막아서, 테라로부터 새로운 소식이 자신의 왕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그는 고그 밴다이어의 치세를 들어, 제국은 몰락했고 테라는 타락했다고 선언했다. 가탈라모어는 새 믿음의 중심지요, 자신이 새로운 황제의 입이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바야흐로 불신의 역병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뷰카리스의 통치 하에 있는 행성들은 곧 힘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무법지대로 변하고 말았다.

하여간 여러 가혹한 방법들을 통해, 뷰카리스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켰고, 그의 영토는 넓어져만 가고 있었다. 테라가 몰락해버렸다는 그의 거짓말에 홀랑 속아넘어간 나머지 여러 임페리얼 가드 연대들과, 임페리얼 네이비의 함대조차 그를 따르게 되었고, 특히 하이드라퍼(Hydraphur)를 모항으로 삼고 있는 배틀플릿 파시피쿠스(Battlefleet Pacificus)도 뷰카리스에 가담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뷰카리스의 왕국의 확장은 북으로는 카디아, 남으로는 바카(Bakka)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는데, 전자는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의 관심을 끌게 될 경우 어떤 결과가 벌어질 지 추기경 자신이 똑똑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후자는 배틀플릿 템페스투스(Battlefleet Tempestus)의 모항으로, 이들의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뷰카리스의 왕국은 커져만 가고 있었고, 그의 발 아래 굴복하는 항성계 또한 늘어만 가고 있었다. 곧 그의 군세가 테라를 향해 나아갈 날도 머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세등등하던 뷰카리스 왕국의 확장은, 레기오네스 아스타르테스 출신 퍼스트 파운딩 챕터 스페이스 울프와 그들의 모성 펜리스를 건드리는 미친 짓을 저지름으로써 주춤하게 되었다.

3.2. 팽에서의 전투

기세등등하던 뷰카리스의 군세는 스페이스 울프의 함선을 공격했고, 뒤이어 그들의 모성인 펜리스의 모항성계까지 침범하고 말았다. 뷰카리스 휘하 함대가 나타나자, 스페이스 울프 소속 함대는 곧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스페이스 울프의 함대는 분명 수에서 밀리고 있었으나, 힛 앤 런 전술을 효과적으로 구사해 뷰카리스의 함대에 큰 피해를 강요했다. 그러나 수적 차이는 압도적이었고, 그러다 스페이스 울프의 모성 펜리스에 배반자 임페리얼 가드 부대가 강하했고, 뷰카리스 또한 펜리스에 와서 휘하 병력을 지휘했다.

포트리스 모나스터리 팽을 제외한 펜리스 전체가 이들에게 점령당했고, 펜리스의 원주민들은 노예로 부려지거나, 학살당했다. 고대의 성지이자 스페이스 울프의 요새인 팽은 배반자 임페리얼 가드 부대에 의해 포위되었다. 공성포들이 설치되어 팽에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으나, 팽은 굳건하기만 했고, 수적으로 밀리는 마린들은 오히려 기습을 통해 야무지게 반격해왔다. 병력은 의미없이 소모되어만 갔고, 뷰카리스는 자살 공격부대까지 편성해가며 팽의 성문을 공략하기도 했고, 팽의 성문을 처음으로 넘는 자에게 커다란 보상을 약속하기도 했지만, 굳건한 팽을 보면 그 약속은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질질 끌려만 가고 있던 팽 공성전은 3년의 시간을 잡아먹었고, 팽은 함락되지 않았다. 화가 난 뷰카리스는 평시에 비해 소수의 병력만이 주둔하고 있던 가탈라모어에서까지 병력을 끌어모았고, 자신의 앞에 우뚝 선 스페이스 울프의 요새를 기어코 함락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운명은 끝내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공성전이 지속되고 있던 와중에, 항성계 바깥에서 그레이트 울프 키릴 그림블러드(Kyrl Grimblood)가 이끄는 배틀 바지 대함대가 귀환을 위해 다가오고 있었고, 뷰카리스의 함대는 스페이스 울프 대함대에 의해 순식간에, 그리고 처참하게 깨져버렸고 잔존 함선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페이스 울프 함대는 뒤쫓지 않고 곧장 위기에 빠진 펜리스로 향했다. 그렇게 펜리스에 있던 반역자 임페리얼 가드 병력은 완전히 박살났고, 뷰카리스는 겨우 도망쳐나올 수 있었다.

스페이스 울프를 잘못 건드렸다가 병력만 왕창 잃고 대판 깨져버린 뷰카리스는 당분간 다른 곳을 침공하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쪽을 택했다.

3.3. 키로스의 분투

뷰카리스의 병력 대부분이 팽에서 고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왕국은 커졌으면 커졌지, 결코 줄어들지는 않았다.
배반자 추기경의 왕국은 느리게나마 확장되고 있었다. 그러나 뷰카리스는 또다른 장애물에 부딪히게 되는데, 바로 키로스(Chiros) 항성계였다.

키로스 항성계는 뷰카리스의 침공에 완강히 저항했으며, 대규모의 학살이 자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도저히 항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뷰카리스는 아예 연대 하나를 증원시켰는데, 파견된 병력은 오히려 키로스의 주민들에게 항복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보고를 보냈다. 뷰카리스는 어이가 없었다. 임페리얼 가드가 스페이스 마린처럼 강력한 군대는 아니라는 것을 그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 전체가 파견된 만큼 항성계 하나쯤은 점령할 수 있어야 했다.

몇몇 요원들을 보내 정보를 수집한 뷰카리스는 그제서야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의 용병은 부실한 무기를 손에 쥔 수백 수천의 민병대와 마주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향해 행성의 주민 전체가 손에 무기를 들고 싸운 것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주민 모두가 뷰카리스의 군대와 맞서 싸웠으며, 어떠한 보급도 받지 못하고 뷰카리스의 군대는 무너져 내렸다.

3.4. 가탈라모어로 가는 길

키로스를 시작으로, 여러 행성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당시 발생했던 일련의 봉기의 진행경로는 뷰카리스의 왕국을 쭉 가로지르고 있었으며, 그 경로의 끝자락에는 바로 가탈라모어가 위치해 있었다.

봉기의 시작 패턴은 수상한 우주선 몇 척이 행성에 상륙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봉기는 빠르면 수상한 우주선이 행성에 나타난 지 며칠, 느리면 수 개월이 지나서도 발생했고, 행성 전체가 들고 일어났다. 뷰카리스가 임명한 지배자들은 어김없이 행성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봉기는 왕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뷰카리스의 궁전으로 한 명의 사절이 찾아왔다.

사절은 자신이 증거자 돌란 키로시우스(Dolan Chirosius)가 보낸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대담하게도 그 사절은 증거자 돌란은 당신이 즉시 항복하기를 요구한다. 라고 뷰카리스의 항복을 요구했다. 뷰카리스는 그의 직위를 박탈한 후, 곧장 추기경궁의 성문 위에 매달아버렸다.

3.5. 위대한 증거자

돌란 키로시우스는 곧 가탈라모어로 찾아왔고, 뷰카리스는 돌란을 위대한 구세주처럼 모시고 있던 대중에게 쇠사슬에 묶인 채로 거리에 내던져져 채찍을 맞고 있는 구세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증거자는 가탈라모어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어 구금당했다. 그는 수많은 이단 행위와 황제에 대한 반역이라는 죄목을 뒤집어 썼고, 거리를 끌려다니며 채찍질당했다. 이 와중에도 끔찍한 고문과 고통이 수반되었고, 거리를 질질 끌려다니는 증거자의 여정은 무려 6개월 이상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고통과 고문에도 불구하고, 분노에 찬 증거자 돌란의 눈빛은 흐려질 줄을 몰랐다. 오히려 그의 정신은 또렷했으며, 절대로 수사관들에게 머리를 굽히지 않았다. 뷰카리스는 그냥 이 자를 죽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짜로 이 증거자를 황제의 적으로 선언하고, 정당하게 처벌해야만 그에 대한 민중의 기대가 사그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돌란을 재판에 정식으로 회부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뷰카리스는 공정한 재판 따위를 할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었으나, 겉으로는 적어도 공정하게 보여야만 했다. 이에 정확한 절차와 판례에 따라 재판이 진행되었고, 돌란을 포함해 수백 건의 질의가 오갔다. 증거자는 자신을 변호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고, 재판은 5개월 간 지속되었다.

돌란은 키로스에서 자신이 어떻게 민중들에게 설교했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뷰카리스의 폭정과 잘못된 사상을 낱낱이 드러내고 비판했다. 그의 연설은 청중들의 가슴 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는 자신에게 씌워진 어떠한 죄목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뷰카리스는 돌란과 그의 추종자들을 무정부주의자나 우상숭배자로 몰았고, 반역 선동 외의 기타 범죄들을 근거로 사형을 선고했다. 돌란은 판결이 내려진 후 8개월 동안이나 모진 고문을 받았고, 결국엔 죽고 말았다.

이 재판을 지켜본 행성들은 모두 천여 개에 달했다.

4. 결말

위대한 증거자를 욕보이려던 뷰카리스의 계획은 걷잡을 수 없이 큰 역풍을 몰고 왔다. 공정한 재판이랍시고 돌란에게 쥐어준 권리들은, 돌란이 직접 연설함으로써, 그의 메시지를 뷰카리스의 왕국 전역에 전파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꼴이었다. 돌란 키로시우스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공표되자, 뷰카리스의 왕국 전체가 반란의 불길에 휩싸였다. 천여 개의 행성에서 동시에 반란이 일어났고, 가탈라모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추기경궁은 난입한 성난 군중의 물결에 휩쓸렸고, 뷰카리스에게 충성하던 측근들조차 그를 배신하고 이들에게 성문을 열어주었다.

반역자 추기경은 우주선에 올라 도망치려 했으나, 우주선에 승선하려던 찰나, 성난 군중들에게 휩싸였고, 수천의 인파가 뷰카리스 하나를 죽이기 위해 몰려들었다. 곧 그의 시신은 갈가리 찢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3]

5. 여담

이 사태의 원흉인 뷰카리스의 악명은 이후로도 남아 훨씬 이후 시점인 소설 울프타임에서도 M36 시기 가탈라모어 추기경이었다고 로부테 길리먼 앞에서 지나가듯이 언급된다.

6. 외부 링크



[1] ※ 워해머 관련 규정을 적용하여 본 문서를 삭제하려 시도하시기 전에 먼저 본 토론을 읽어주십시오. 본 문서는 나무위키 및 그 전신인 리그베다 위키에서 직접 작성되었으며, 원작자는 "1997년에 나온 코덱스 시스터 오브 배틀 2판 39~42페이지"를 출처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2] 단순하지만 정말로 이 반란의 시작은 큰 건물을 지어 업적을 세우겠다는 야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실제로 아래 계속되는 침략의 산물이자 원인인 가탈라모어의 추기경궁은 단일 규모 건물로는 제국 전체를 통틀어 3위를 차지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1위는 당연히 홀리 테라의 황궁이며, 2위는 오필리아 VII의 교황궁. [3] 신정국가에서 폭정을 자행하는 종교인 출신 독재자였다는 점에서 통합 전쟁 시기 인도네식 블록의 탕 추기경과 매우 유사하다. 그의 과거 지지자였던 시민들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최후도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