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우도 에텔(Wolf-Udo Ettel : 1921년 2월 26일~1943년 7월 17일)
1. 명문학교 출신 엘리트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 제국이 멸망하고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가 열린지 어느덧 3년이 흐른 1921년 2월 26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볼프-우도 에텔은 성장한 후에 두 남동생과 함께 포츠담에 있는 나폴라(Nationalpolitische Erziehungsanstalt)에 입학했다. 소위 명문학교로 알려진 나폴라의 실상은 훗날 위대한 독일의 부활을 위해 다시 준비해야만 할 군대에 필요한 예비장교들을 양성해내는 기관이었으나, 외부에는 평범한 기숙사 학교로 알려져 있었다. 나폴라의 이런 우파적인 정책은 나치가 정권을 잡자 그 영향을 아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제3제국의 장래를 이끌어나갈 정치인과 군인들을 양성해내는 교육기관으로 변모하게 된다. 에텔 형제들은 자연스럽게 나치즘에 동화되면서 충성의 대상이 조국이 아닌 총통과 나치당으로 바뀌어나갔다.2. 공군 입대와 독소전 참가
형제 중에서 맏형인 볼프-우도 에텔은 18세가 되던 1939년 11월 15일에 독일 공군에 입대했다. 이 시기, 나치 독일은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해 인접국을 차례차례 먹어치우고 있었다. 조종사와 공군 장교 과정을 모두 마친 그가 소위 계급장을 달고 첫 자대에 부임한 것은 1942년 초엽으로, 동부전선에 참전 중인 제3전투항공단(JG 3) 제4비행단에 배속되었다. 그는 Bf 109F-4(WNr. 8363 “White 1”)를 몰고 6월 24일에 일류신 Il-2를 단숨에 2기 떨구면서 첫 전과를 신고했다. 7월 10일에는 영국이 소련에 원조해준 A-20 보스턴 폭격기를 격추했지만 엄호 전투기들에게 반격을 받고 보로네시 부근에서 격추되었다. 타고 있던 Bf 109를 지상에 불시착시킨 그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돈강을 헤엄쳐 건넌 다음 걸어서 4일 후에 부대에 복귀했다.8월 9일까지 20대, 10월 7일에는 30대째 격추를 달성한 그는 이미 받아두었던 1급 철십자 훈장에 공군 최전선비행 금장을 추가하게 되었다. 해가 바뀐 1943년 2월, JG 3은 쿠반 교두보를 전전하며 몇 달 동안에 집중적으로 출격을 거듭하며 육군을 지원했다. 에텔 소위는 붉은 공군의 항공기를 3월에만 28대, 4월에는 36대나 격파해 자신의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고감도 격추 행진으로 볼프-우도 에텔은 4월 28일에 독일 공군에서도 38번째로 100기 격추를 달성했다. 이 시기, 그의 전과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소련 공군이 3대만 만들어 평가 목적으로 전선에 투입한 실험 전투기인 폴리카르포프 I-180을 3대나 떨군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소련이 시험 투입한 3기를 모두 에텔 중위가 격추한 셈이 된다.
3. 두번째 생환
5월 11일에는 적 기지 상공에서 P-40과 LaGG-3를 상대로 120번째 승리를 거두었으나 탑승기 Bf 109G-4(W.Nr.19453 “White 10”)가 대공 사격에 피탄되어 불시착했다. 하지만 그의 운은 아직도 다하지 않아서, 또다시 무사히 생환하였다. 탈출 도중에 소련군 보병에게 발각된 그는 빗발치는 소총 사격을 받았지만, 손끝 하나 다치지 않고 독일군 전열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무용담으로 훈장을 추천받은 그는 6월 1일에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4. 지중해 전선에서
6월 5일, 그는 항공단을 옮겨 그리스에 본부를 둔 제27전투항공단(JG 27) 예하의 제8비행중대장 보직이 주어졌다. 7월 14일에 시칠리아 섬 상공에서 만난 영국 공군의 스핏파이어를 격파한 그는 이틀 후인 16일에는 미군의 B-24를 2대 떨구고 호위 전투기인 P-38 중전투기 1대를 자신의 긴 격추 리스트에 보탰다.그렇지만 이처럼 불사신처럼 보였던 그의 운도 다하는 때가 기어코 다가오고 만다. 7월 17일에 시칠리아 섬의 동쪽 항구도시인 렌티니(Lentini) 방면의 영국군 대공포 진지를 공격하는 근접항공지원 임무로 출격한 그는 원인불명의 요인에 격추되어 전사하고 말았다. 오늘날까지도 그가 탄 전투기를 떨군 것이 영국 공군의 전투기인지 대공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약관 22세의 나이에 세상을 뜬 그에게는 8월 31일부로 제289호 곡엽기사철십자 훈장이 추서되었다.
그때까지 볼프-우도 에텔 중위는 250회 이상 출격하면서 총격추수는 124대를 헤아리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21대는 동부전선에서 떨군 Il-2였다.
5. 서훈
2급 철십자 훈장 (1942년 7월 24일)1급 철십자 훈장 (1942년 8월 2일)
공군 최전선비행 금장(Frontflugspange Gold) (1942년 10월 23일)
공군 명예컵 (1943년 6월 25일)
독일 황금십자장 (1942년 12월 23일)
기사철십자 훈장 (1943년 6월 1일)
곡엽기사철십자 훈장 제289호 (1943년 8월 31일)
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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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56b94> ▲ 31~50위 | ||||
순위 | 이름 | 국적 | 격추 수 | 비고 | |
52위 | 아돌프 보르허스 | 독일 | 132대 | ||
아돌프 티크펠트 | 독일 | ||||
에르빈 클라우젠 | 독일 | ||||
55위 | 빌헬름 렘케 | 독일 | 131대 | ||
56위 | 게르하르트 호프만 | 독일 | 130대 | ||
하인리히 슈테어 | 독일 | ||||
58위 | 프란츠 아이제나흐 | 독일 | 129대 | ||
59위 | 발터 달 | 독일 | 128대 | ||
프란츠 되어 | 독일 | ||||
61위 | 루돌프 라데마허 | 독일 | 126대 | ||
요제프 츠베르네만 | 독일 | ||||
63위 | 디트리히 흐라박 | 독일 | 125대 | ||
64위 | 볼프-우도 에텔 | 독일 | 124대 | ||
65위 | 헤르베르트 일레펠트 | 독일 | 123대 | 스페인 내전에서 9기 격추 | |
66위 | 볼프강 토네 | 독일 | 122대 | ||
▼ 67~84위 |